325화
실비아의 말을 알아들은 망치가 쏜살같이 모루에서 벗어나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굳이 두 무기를 겹치려고 할 필요 없이 새 망치는 전에 쓰던 망치가 쓰던 스킬을 그대로 쓸 수 있었다.
“오! 날아다닐 수 있었어? 진작에 하지 그랬어. 그럼 아프지 않았을 텐데. 돌아와!”
와장창-!
망치가 힘차게 베란다 쪽으로 날아오더니 기껏 수리한 베란다 창문을 깨버렸다. 실비아의 등 뒤로 시원한 바람이 슝슝 들어왔다. 망치는 일을 저지른 게 민망했는지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멍해 있던 실비아는 세비스가 방에서 뛰쳐나오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이게 무슨 소리…! 헉, 실비아 님? 망치가 이번엔 창문도 깬 건가요?”
“어…. 하아, 이 자식 이거,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겠네.”
나일론 끈을 서랍에서 꺼내온 실비아는 망치를 모루 위에 단단히 결박했다. 인벤토리에 넣어놔도 몰래 나와 난장판을 만들 수도 있었기에 내린 조치였다. 손을 털고 일어난 그녀는 애써 긍정적으로 두뇌 회로를 돌렸다.
‘…이놈의 망치, 거친 야생마 같은 맛이 있군. 후후, 온순한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딱 맞아. 그래도 길들이고 나면 위급상황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아닌 게 아니라, 손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는 망치가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거기다가 날아다닐 수도 있는 망치라니, 아주 좋았다. 제멋대로 구는 것만 빼면 말이다.
세비스는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가져오다가 베란다에 이상한 대장간이 차려진 걸 뒤늦게 발견하고 멈칫했다.
“뭔지 몰라도 대단한 걸 얻으셨군요. 대장간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그러게. 나도 정말 매일매일 놀라고 있어…. 다시 들어가 있을래? 강화를 마쳐야 하니까.”
세비스가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실비아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무기끼리 합치는 건 보아하니 안 되는 것 같고, 씨앗으로 강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루카의 씨앗은 이미 저번에 사용해서 <불망치>라는 스킬을 얻었기에 블루의 씨앗을 하나 꺼냈다. 물빛 씨앗을 결박한 망치 위에 대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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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씨앗을 10개 소모하면 무기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시도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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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스킬인지는 미리 알려주지 않나 본데…. 해야 해, 말아야 해?’
블루의 씨앗은 총 21개가 있으니 강화재료로 사용해도 10개의 씨앗이 필요한 결정체를 만드는 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음에 또 만나면 실컷 해서 모으면 되는 것이고.
하지만 미지의 스킬을 위해서 함부로 소중한 씨앗을 낭비할 수 없는 법. 실비아는 우선 상태 창에다가 씨앗을 가져다 대보기로 했다. 획득 가능한 다른 스킬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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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진 씨앗으로 획득 가능한 스킬을 확인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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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겠어!’
실비아가 속으로 외치자 메시지가 떴다. 엇? 실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가진 씨앗으로는 획득 가능한 스킬이 없다는 문구였다. 공략하고 나서 바로 스킬을 두 개나 줬으니 애초부터 더 획득 가능한 게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가진 씨앗의 개수로는 획득 가능한 스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실비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물빛 씨앗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레몬빛 씨앗을 꺼냈다. 그녀는 씨앗을 만지작거리다가 스킬을 획득하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이 순간 너무 속물처럼 보여 잠시 멈칫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걸. 이건 남주들의… 아냐.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녀는 고개를 휘저으며 잡념을 물리쳤다. 노엘의 씨앗은 현재 39개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망치 위에 가져다 대자 새로운 스킬 획득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건 좀 많이 남아있으니까 사용해봐도 좋을 듯? 확인하겠어.’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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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30개를 소모하여 <매가 약이다> 스킬 획득이 가능합니다. <대장간> 아이템을 이용하여 강화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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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이게 뭐지.’
실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킬명을 보니 치료 스킬 같긴 한데, 망치를 강화해서 치료 스킬을 얻을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전사는 치료 스킬이 꼭 필요한 법. 근거리 공격을 하기에 포션을 많이 소모하는 직업이다. 실비아는 속으로 하겠다고 외쳤고, 망치로 씨앗이 스며들더니 비어있는 상태 바가 떴다.
‘상태 바를 가득 채우면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좋아, 해보겠어.’
실비아는 소매를 걷어붙이곤 열심히 망치를 두드렸다. 예상대로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상태 바가 조금씩 차올랐다. 뚱땅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자 어딘가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치-!”
“두드리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사자후와 필적하는 샤우팅이었다. 구멍이 난 창문을 간과한 탓에 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크게 울린 모양이었다.
‘어우, 누가 찾아올라. 커튼 좀 쳐야겠다.’
실비아는 바깥을 힐끗 보곤 재빨리 커튼을 쳤다. 그리고 휴지를 가져와 귓구멍을 막았다. 망치 소리를 막는 건 불가능하니 샤우팅 소리를 막아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제 마음이 편안하네.’
건조대에서 마른 수건을 하나 빼 목에 건 실비아는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작업을 했고, 노력의 결실로 상태 바가 완전히 가득 찼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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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씨앗 30개를 이용해 망치 강화를 성공하셨습니다. <매가 약이다>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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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메시지가 뜨자마자 찬란한 빛이 망치를 감싸더니 쇠로 된 추 표면에 십자가 모양이 새겨졌다. 두 손을 번쩍 든 실비아는 귓구멍을 막은 휴지를 빼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층간 소음으로 항의가 올까 봐 뒤늦게 입을 틀어막아야 했지만.
결박한 끈을 풀었지만 망치는 실컷 얻어맞아서 그런지 아무 움직임 없이 조용했다.
‘매가 약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걸 수도? 이제 난동 부리지 않겠지.’
얌전해진 망치를 흐뭇하게 쓰다듬은 실비아는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러곤 상태 창에서 새로 획득한 스킬의 상세 설명을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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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가 약이다
- 말 그대로 매가 약이 되는 스킬.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타인도 치료 가능하다. 약간의 오해만 감수하면 말이다. 치료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후에는 싹 나아버린 신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대당 10의 피로도가 감소하며 하루 최대 100의 피로도를 없앨 수 있다. 상처 부위에도 가능하나 매타작을 얼마나 맞아야 할지는 경중에 따라 다르다. 전투 스킬과 생활 스킬 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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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스킬인데! 노엘 님이 신관이라서 그런가, 정화 스킬에 치료 스킬에 기적 스킬까지. 이렇게 좋은 것만 퍼주기도 힘들 거야. 정말 여러모로 참 고마운 분….’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실비아는 노엘의 은혜로운 얼굴을 떠올리며 어딘가를 향해 입맞춤을 날렸다.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고생하고 있는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대장간>을 정리해 인벤토리에 넣은 실비아는 너저분해진 베란다를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심해왕국을 갔다 온 여독이 풀리지 않은지라, 이제 정말 월요일이 될 때까지 잠만 자고 싶었다.
* * *
“실비아 님, 비가 오네요.”
“아, 정말이네? 잘 됐다. 난 우산 말고 우비를 입겠어!”
비가 올 줄이야. 베란다를 무리해서 일요일에 고친 보람이 있었다. 안 고쳤다면 지금쯤 거실이 물바다가 됐겠지.
수리업자는 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며 혀를 찼었다.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황궁 경비대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으름장에 절대 싸우거나 한 건 아니라며 해명을 해야 했다.
창밖에선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올 때 더 쌩쌩 달린다는 <소금쟁이 운동화>의 상세 설명을 기억하고 있던 실비아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우비를 입었다. 황궁까지 도보로 간다는 실비아의 말에 세비스도 함께 뛰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뭐? 너는 그냥 마차로 가지? 난 새로 얻은 운동화의 효능을 시험해 보고 싶을 뿐이야!”
“저도 같이 갈래요. 잊으셨어요? 저 늑대족인 거. 변신해서 가면 실비아 님이랑 속도가 비슷할걸요.”
그는 언제 산 건지 모를 성견용 하네스를 서랍에서 꺼냈다. 실비아는 경악으로 입을 떡 벌린 채 하네스를 바라봤다.
“뭐…! 하네스, 하네스를…! 몸줄을 착용하겠다고?”
“네. 뭐 잘못된 것 있나요? 수인족들은 황궁 출근할 때 가끔 동물로 변신해서 와요.”
“아, 아니야….”
조그만 머릿속에 순간 하네스를 착용한 세비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민망스럽게도 상상 속의 세비스는 늑대가 아닌 인간 상태로 몸줄을 착용한 상태였는데, 새하얀 근육질 몸 위에 하네스를 착용한 모습이 무척 섹시….
‘어우, 이런 이상한 생각하면 안 돼. 훠이, 물러가라!’
실비아는 세차게 고개를 젓곤 자극적인 망상을 물리쳤다. 세비스가 그런 그녀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실비아는 시선을 돌리며 민망함을 감췄다.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를 상대로 이런 상상을 하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세비스가 이미 저를 상대로 별의별 상상을 했단 건 꿈에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실비아가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세비스는 제 방으로 가서 늑대로 변신하고 돌아왔다. 날카로운 빛이 감도는 붉은 눈의 검은 늑대가 거실 한가운데에 섰다. 성체가 된 세비스의 늑대 모습은 대형견은 물론이고 말이랑 흡사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와, 거실이 꽉 차는 느낌이야. 완전히 다 자란 늑대족은 이런 느낌이구나. 엄청 용맹해 보이고 털도 비단결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