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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19화 (319/372)

319화

황궁에 무사히 편지를 보내고 난 뒤 향한 곳은 제국민 센터였다. 실비아의 소지금이 몇만 골드 불어난 바람에 불안해서였는데, 다행히도 아직 자격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오, 아직은 괜찮구나. 뭐, 이제 이 자격도 곧 필요 없지. 황궁에 출근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뤄질 테니까!’

전서구 센터와 제국민 센터에서 볼 일을 무사히 본 뒤 그들은 수도 중앙의 던전 거래소로 향했다. 오염된 던전에서 획득한 구슬들을 팔 수 있는 장소였다. 심해 던전에서 얻은 구슬의 값어치가 꽤 나갔기에, 상당한 양의 금화를 얻을 수 있었다.

금화 주머니를 짤랑거린 그녀는 세비스 몫과 제 몫을 나눴다.

“실비아 님, 이제 이럴 필요 없잖아요.”

“아냐. 돈 많은 티는 절대 낼 필요가 없어. 그건 만고불변의 진리야.”

실비아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힐끗거리며 돈주머니로 세비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는 두리번거린 뒤 그녀가 건넨 주머니를 받았다. 재산 은닉을 성공적으로 마친 실비아는 방긋 웃으며 앞장서 걸었다.

“이제 급한 볼일은 다 끝냈으니 옷가게로 가볼까.”

“옷가게요?”

세비스의 물음에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몸이 커졌으니까 새 옷을 몇 개 사야지. 점점 쌀쌀해지니까 우리 겨울옷도 사고 말이야.”

“아! 좋아요. 어디로 갈까요?”

옷가게로 간다니. 실비아와 데이트하는 것 같은 느낌에 세비스의 검은 귀가 즐겁게 쫑긋거렸다. 백화점을 갈지, 아니면 일반 옷가게로 갈지 고민하던 실비아는 미간을 좁혔다.

“옷을 여러 벌 사야 할 것 같은데. 몸집이 커져서 맞는 옷이 별로 없지 않아? 옷을 많이 사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으려나.”

사실 백화점이 무난하긴 하지만, 여러 벌의 옷을 사기엔 다소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가진 돈이 넉넉하긴 해도 자가 마련 자금이 얼마나 들지 모르니,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필요가 있었다.

실비아의 고민하는 표정에 세비스가 아! 하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며칠 전에 야채 가게 상인한테 들은 건데, 옷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가 하나 생겼대요. 여기서 멀지 않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오픈 기념으로 거리 전체가 세일 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세일? 어머머, 그런 건 진작 말해야지. 당장 거기로 가보자.”

지나가던 마차를 잡아탄 둘은 금방 세비스가 말했던 옷가게 거리에 도착했다. 큰 대로변 양쪽에 여러 옷가게가 줄지어 입점해 있는 게 보였다. 입구에는 맛있는 음식을 파는 노점과 조그만 식당들이 있었는데, 현생의 번화가에 온 것처럼 그리운 느낌에 실비아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이런 곳도 있었구나. 너무 좋아. 일단 좀 걸을까?”

“네, 좋아요.”

둘은 천천히 거리를 거닐며 아이쇼핑을 했다. 즐겁게 여기저기 구경하기도 잠시, 출출해진 실비아는 먹거리 노점을 기웃거리다가 타코야키 가게를 발견했다. 어라, 그런데 간판의 상태가….

“뭐지? 저 타코야키 가게 가판에 왜 네 이름이 있어? 세비스네 타코야키 3호점?”

“아! 이건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밝혀지네요.”

세비스가 쑥스러운 듯 뒷덜미를 긁적였다. 이어진 그의 말에 실비아는 입을 떡 벌렸다.

바닷가 마을에서 타코야키 장사로 한몫 제대로 챙겼던 세비스는 수도로 올라와 황궁에서 타코야키 요리사가 됐다. 그러나 이대로 황궁에서만 타코야키 기술을 썩히기 싫었던 그는 그 기술을 전수받을 창업자를 암암리에 모집했다. 현대의 프랜차이즈점 모집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도 내에 세비스의 기술을 전수받은 업주들이 타코야키 노점을 차리기 시작했고, 3호점까지 얼마 전에 냈다고 한다. 그 가게가 이 거리에 생겼단 건 방금 알았단 게 그의 설명이었다.

“세상에나. 황궁 요리사로만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뒤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있었어?”

“네. 황궁 요리사는 참 좋은 직업이지만, 아무래도 큰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죠.”

세비스가 성공한 청년 사업가 같은 건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실비아는 존경을 담아 그를 바라봤다.

가끔 실비아가 퇴근하고 나서도 한참 뒤에 세비스가 들어올 때가 있었다. 황궁 요리사는 분명히 일찍 퇴근한다고 들었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인턴 생활이 바빠 별 신경을 못 썼던 그녀였다. 돌이켜보니 아마도 그때부터 프랜차이즈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너 정말 멋지다. 성체가 돼서 어른스러워졌다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까 넌 원래 어른스러운 아이였어! 네가 내 집사라니, 자랑스러워!”

“하하, 별것 아니에요.”

실비아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극찬에 세비스의 양 뺨이 발그레해졌다. 순간 맑은 초록색 눈이 계속 자신만 바라봐줬으면 하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을 멍하니 마주 보던 세비스는 순간 가슴을 선득하게 하는 현실을 떠올리곤 어색하게 표정을 굳혔다.

‘아, 왜 계속 이런….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잖아.’

세비스는 한숨을 내쉬곤 걸음을 옮겼다. 실비아는 영문도 모른 채 그의 뒤를 쫓아왔다.

지금 상황에서 실비아의 마음을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황폐한 늑대 왕국을 떠올린 그의 눈빛이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해야 할 일을 잊으면 안 돼. 이런 감정은 지금 나한테 사치야. 거기다가 실비아 님은 이미 다른 남자가 있으시지. 아니, 남자들인가….’

세비스의 뇌리에 루카와 노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실비아 님은 그 둘 중 누구랑 연인 사이인 걸까? 설마 둘 다는 아니겠지. 둘 다인가?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정확히 뭐라고 했었더라….

그날 너무 크게 충격받은지라 정확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았다. 복잡한 생각이 이어지던 와중에 실비아가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세비스? 타코야키 사 먹자니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 타코야키요. 황궁 가면 제가 직접 만들어드릴 수 있는데…. 기계가 없어서 집에서는 못 만들었지만 말이죠.”

“난 당장 먹고 싶은걸?”

실비아가 뽀로통하게 뺨을 부풀렸다. 고민하는 표정이던 세비스는 대답 없이 타코야키 노점 앞에 섰다. 상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세비스를 바라봤다.

“어?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저 세비스예요. 성체가 되는 바람에…. 좀 많이 달라졌죠?”

“헉! 와, 대표님. 이렇게 사람이 달라지나요! 거리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어요.”

놀란 상인이 안경을 다시 고쳐 쓰며 입을 쩍 벌렸다. 쑥스럽게 뒷덜미를 긁적인 세비스가 입을 열었다.

“하하, 뭐 좀 많이 달라졌죠. 그건 그렇고 타코야키는 잘 만들어지고 있나요?”

“네. 대표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잘하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 손에 익진 않아서 속도가 더디네요.”

상인이 세비스를 대표라고 지칭하자 옆에 선 실비아가 ‘어머 어머.’ 하면서 두 손 모아 세비스를 응시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에 기분이 좋아진 세비스는 노점 안으로 들어가서 상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손에 익지 않으신다고요. 그럼 여기서 한 번 더 타코야키 만드는 걸 보여드릴까요? 이분이 타코야키를 먹고 싶어 하셔서요.”

“아! 그래 주시면 고맙죠. 어? 아아, 여자친구분이시구나!”

상인이 실비아를 쳐다보곤 손뼉을 짝 쳤다. 실비아는 손사래를 치며 그의 말을 부인하려고 했다.

“엇, 그런 건….”

“아이고, 세비스 대표님은 얼굴도 이렇게 잘 생기셨지, 거기다가 능력도 좋으시고 이젠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분까지! 크으, 복이 많으세요.”

“하하, 그런 거 아녀요.”

말허리를 끊은 상인이 세비스를 추켜세웠다. 다시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대꾸하려던 실비아는 세비스와 상인이 서로 바쁘게 대화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둘은 상권분석과 타코야키 원재료 값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에이, 그래.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인데,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상인에게 여분의 앞치마를 건네받은 세비스는 손을 깨끗이 씻은 후 타코야키 기계 앞에 섰다. 잠시 아무 말 없이 기계만 노려보며 손을 움직이던 그는 녹아버릴 것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영문 모를 그 미소에 실비아의 눈에 의문이 서리는 순간, 세비스의 입술이 벌어졌다.

“실비아, 어떤 맛이 좋아?”

“뭐?! 이런…!”

실비아는 화를 내려다가 관뒀다. 예전에 옷가게에서 할인을 받기 위해 신혼부부인 척한 것처럼 지금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닐까. 아니면 기분이 좋아서 단순히 장난을 친 거거나. 그는 동글동글한 타코야키를 금세 만들어서는 종이 그릇에 담았다.

“무슨 맛으로?”

“…치즈 맛으로.”

세비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치즈 소스를 뿌렸다. 뚱한 실비아의 표정에 그는 웃음을 참으며 타코야키를 건넸다. 실비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그가 내민 걸 받아들었고 안을 들여다본 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소스로 하트를 만들어놨네?’

당황한 실비아가 세비스를 봤지만, 그는 실비아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타코야키 기계를 솔로 슥슥 문질렀다. 그러곤 앞치마를 벗고 태연한 표정으로 실비아의 옆으로 왔다. 실비아가 하트가 그려진 그릇과 세비스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눈치를 줬지만,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상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참 좋을 때네요.”

“우리 둘이 어울려요?”

“!”

실비아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세비스를 바라봤지만, 그는 곧 레이저가 쏘아질 것 같은 실비아의 시선을 꿋꿋이 무시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상인은 실비아와 세비스를 번갈아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자친구분이 많이 쑥스러워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럼요, 어울리죠. 완전 선남선녀네요. 아! 대표님이 만드신 거니까 타코야키는 그냥 가져가세요!”

“그렇죠? 하하, 감사합니다. 타코야키 고마워요. 장사 잘하시고 어려운 거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세비스가 상인에게 꾸벅 인사하자 실비아도 떨떠름하게 인사한 뒤 그를 뒤따라 갔다. 타코야키 노점이 멀어지자 실비아가 앞서가는 너른 어깨를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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