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실비아를 뒤에서 부드럽게 끌어안은 블루가 그녀의 정수리에 코를 묻었다. 동시에 그의 손은 원피스 속의 은밀한 곳을 더듬었다. 야릇한 손길에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며 신음했다.
“아이, 이러다가 온종일 하겠어.”
“또 하면 되잖아.”
붉은 혀가 실비아의 조그만 귓가를 야릇하게 핥았다. 간지러운 느낌에 실비아는 조그맣게 웃고는 가슴을 또 쳐댔다.
“아이, 몰라 몰라.”
“끼룩-끼룩!”
살기를 거둔 블루 덕에 다시 하늘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한 갈매기가 그런 둘을 작작 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꼬나보며 한 바퀴 빙 돌았다. 심지어 야자수에 보란듯이 새똥을 갈기기까지. 대놓고 주변을 맴돌며 울음소리를 내는 갈매기 때문에 실비아와 블루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포옹을 풀었다.
“저놈의 갈매기가 눈치 없이….”
실비아가 허공에 주먹질을 하자 갈매기가 멀찍이 물러섰다가 놀리듯이 엉덩이를 내밀고 사라졌다. 블루는 그런 그녀를 귀여워하며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내가 살기를 거둬서 다시 날아온 거 같아. 이제 좀 있으면 날이 어두워지겠네. 밤이 되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돼서 엘리셔스 제국으로 가기가 힘들어. 늦기 전에 출발하긴 해야겠어.”
블루가 날개를 펼친 뒤 실비아의 허리를 단단히 받쳤다. 그녀가 목을 감싸자 그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린 뒤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잠시 갈매기가 놀라서 허둥지둥 날아가는 해프닝이 있은 뒤, 블루는 한참을 날아 엘리셔스 제국의 변두리에 도착했다.
인적이 드문 숲길에 착지한 그는 날개를 집어넣은 뒤 실비아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저번에 생각 없이 제국 상공을 날아다니다가 큰일 날 뻔했었잖아. 그때 붉은 머리 아저씨가 마차를 타고 다니라고 말해주더라고.”
“아-. 어쩐지. 그래서 여기로 내려온 거구나.”
안 그래도 혹시나 제국 안으로 무턱대고 날아갈까 봐 주의 주려고 했었는데. 다행히 블루는 루카 아버지한테 단단히 혼난 덕에 제국을 정상적으로 돌아다니는 방법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어, 저기! 저기 마차 정류장이네.”
마차 정류장 표시를 발견한 실비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블루의 손을 잡고 뛰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검은색 모범 마차가 그들의 앞에 섰다. 어차피 급할 것 없었기에 실비아는 모범 마차는 우선 보내고 저렴한 일반 마차를 기다렸다가 탔다.
‘비밀상점에서 과소비를 한 걸 만회하려면 모범 마차 말고 일반 마차를 타야겠어.’
블루는 모범 마차든 일반 마차든 둘의 차이를 전혀 몰랐기에, 실비아가 검은색보다 갈색을 더 좋아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마차가 덜커덩- 소리와 함께 흔들거렸다. 블루는 어렸을 적 둥지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화를 얘기하며 실비아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녀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 선에서 현생에서 있었던 재밌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마차 안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참이 지나 창문 밖에 어둑해질 무렵, 마차는 익숙한 거리에 들어섰다. 엘리셔스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것이다.
“수도에 도착했네.”
“블루야, 우리 이제 곧 헤어질 시간이야. …아쉬워.”
잠시 뒤를 힐끗 본 실비아는 마부석과 연결된 칸이 제대로 닫혀있는 걸 확인하고 블루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고개를 꺾어 입술을 겹치자 맞닿은 입술이 부드럽게 벌어지고 당연한 듯 촉촉한 혀가 빠져나와 그녀의 입안을 천천히 유영했다.
실비아는 블루의 품에 거의 기대다시피 한 자세로 그의 혀를 열렬히 환영했다. 두 혀가 끈끈하게 맞닿으며 마치 한 몸처럼 엉키자 마차 내부의 공기가 따뜻하게 데워졌다. 타액을 주고받고 서로의 입속을 갈급하게 탐색하기를 한참, 어느새 혀만 비비는 게 아니라 가슴도 비비고 아래까지 비비게 됐다.
몸이 한껏 달아오른 실비아는 입을 겹친 채 웅얼웅얼 뭔 소리를 했다.
“으으, 으읍 으으읍으.(우리, 잠시 쉬었다 갈….)”
마차도 공공장소라면 공공장소. 공공장소에서 엄한 짓을 해서 천벌이 내린 걸까? 그 순간 커다란 방지턱을 지나가며 마차가 크게 흔들렸고, 방심하고 있던 실비아는 인정사정없이 혀를 강하게 깨물었다. 눈앞에 별이 보이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실비아가 입을 떼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악!”
“실비아, 괜찮아?”
실비아는 본능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심상치 않은 비명에 놀란 블루가 실비아의 얼굴을 살피려고 했는데, 살짝 진정이 된 실비아가 손을 떼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으, 갱찬….”
“피 나는데? 아니, 피가 그냥 나는 정도가 아니라 철철 나는데!”
“므?! 엇!”
실비아는 혼미한 정신에도 입가를 급히 훔쳐보았다. 팽팽 도는 시야에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이 들어왔다. 턱에 흐르는 게 침이 아니라 피였어?
고개를 들자 당황한 블루의 모습이 보였다. 블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더니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이공간에서 연고를 꺼냈다.
“이게, 이게 효과가 있을까 모르겠어. 피가 이렇게 나는데 효과가 있을까. 우선 바를게.”
“어, 어어…. 에엑.”
연고는 무척 쓴맛이 났다. 실비아는 질색을 하면서도 얌전히 혀를 빼물었다. 하지만 방금 해변에서 듬뿍 써버리는 바람에 혀에 바를 연고가 모자랐다. 텅 빈 연고 통을 긁던 블루가 곤란한 듯 실비아의 입을 살폈다. 여전히 지혈이 안 돼서 피가 철철 났는데, 누가 보면 사약이라도 마신 줄 알 정도였다.
“큰일이네. 지혈이 안 되고 있어. 근데 던전 공략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이렇게 피가 많이 나는데도 아직 정신이 멀쩡하다니.”
“므리 으파….”
실비아는 머리가 아프다고 어눌한 발음으로 호소했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아까만 해도 초롱초롱하던 초록색 눈동자가 동태눈깔이 되어가던 순간 블루가 손가락을 딱 부딪치더니 이공간에서 붕대를 꺼냈다.
“급한 대로 이거라도 감자. 이래도 지혈이 안 되면 병원을 가는 수밖에 없고.”
“우웅….”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한 실비아의 입을 블루가 칭칭 감았다. 혀를 다치긴 했지만 어쨌든 입을 다 막으면 피가 흘러나오지 않으니 지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돌돌돌돌- 붕대 감기 초보자였던 블루는 실비아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입은 물론 온 얼굴에 붕대를 다 감았다.
그다음 목을 감고, 그걸로도 모자라 가슴까지 칭칭 감으며 붕대가 동이 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철저한 붕대 감기는 끝이 났다.
“이러면 효과가 있을 거야. 피가 새어 나올 틈 없이 단단히 봉했으니까.”
“으읍, 으에!(뭐야, 이게!)”
유리창에 비치는 미라 같은 제 모습에 실비아가 불만을 표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것 보니 덜 감았네. 입 벌리지 마. 피나!”
실비아의 입이 댓 발 나오자 블루가 고개를 젓더니 남은 붕대를 더 철저하게 돌돌돌 감았다. 완전히 입까지 봉하고 나서야 블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붕대를 매듭지었다.
“됐다. 이제 피가 빠져나갈 틈이 없을 거야.”
“으으읍읍.(이상한데.)”
“하하,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당연한 일인걸.”
피가 빠져나가는 틈이 없는 건 물론이고 피가 안 통할 것 같았다. 블루는 웅얼거리는 실비아의 말을 오해한 채 손사래를 쳤다. 다행히 붕대 감기가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저절로 멎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듭을 짓고 나니 실비아의 입에서 흐르던 피가 서서히 멎었다.
블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가볍게 털었다.
“휴우, 다행히 효과가 있나 보네.”
“우웅.”
“아, 실비아. 말하지 마. 잘못하면 기껏 지혈했는데 다시 피날 수도 있어.”
실비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혀가 아릿하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애초부터 붕대 때문에 말하기가 힘들어졌기도 하고 말이다. 마차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제 모습이 좀 많이 심각해 보였다.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붉은 피도 묻어있으니 괴기스러웠다.
“아, 내친김에 이것도 써.”
이공간을 뒤적거린 블루는 이상한 검은 투구를 꺼내더니 실비아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윙-소리와 함께 투구 안에서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이게 뭐지?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뿌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살균 투구야. 얼굴을 살균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슬슬 칡뿌리 마켓에 팔까 했던 참인데, 가지고 있길 잘했네. 상처 다 나을 때까지 꼭 쓰고 다녀. 세균 들어가면 안 되니까.”
‘너무 과잉 치료 같은데, 이거.’
혀 하나 다쳤다고 얼굴부터 가슴까지 붕대에 살균 투구까지 쓰다니, 목에 감긴 붕대를 만지던 실비아는 한숨을 흘리며 손을 내렸다. 워낙 칭칭 감아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것도 그렇고 당장 풀어버린다면 블루 말대로 기껏 지혈해놨는데 다시 피가 철철 흐를지도 몰랐다.
“워워.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마부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둘에게 알려왔다. 블루의 부축을 받아 나오는 실비아를 무심결에 보던 마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는 마차 삯을 급하게 건네받고는 별다른 말 없이 빠르게 마차를 몰아 사라졌다.
‘내 꼴이 어째 보이기에 저렇게 빨리 달려간담.’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뭐야.’라고 혼잣말을 한 블루는 투구를 쓴 실비아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실비아, 이제 정말 작별의 시간이네. 한동안은 못 본다고 생각하니 슬퍼….”
“우웅, 우우웅.(너무 슬퍼.)”
실비아도 살균 투구의 눈구멍 사이로 초록색 눈을 촉촉하게 적시며 슬픔을 표현했다. 그들은 한동안 행인들이 힐끗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대로 한복판에서 찐한 작별 포옹식을 가졌다. 한참 동안 너른 가슴팍에 실비아의 머리통을 가져다 대고 비비던 블루는 촉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서 바로 연락할게. 그리고 내가 전에 조심하라고 했지? 물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나면 변신해서 네 앞에 나타날게. 뭐로 변신할지 모르니 늘 긴장하고 있어.”
“헉, 우웅, 우우웅!(굳이 그럴 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