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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04화 (304/372)

304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로군.”

“엄마야! 제 생각을 아셨나요?”

“그럼, 알다마다. 흰 드레스라니, 그런 건 입을 생각도 없다네.”

속으로 한 생각을 알아채다니. 보통 신묘한 게 아니었다. 실비아는 고개를 조아리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곤 잽싸게 인벤토리를 뒤적여 <곱창볶음 밀키트>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래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거북이 수인님이 좋아하실 만한 걸 한번 챙겨와 봤어요.”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거북이 수인은 실비아의 말에 한쪽 눈을 뜨더니 <곱창볶음 밀키트>를 보았다. 투명한 비닐 포장이었기에 밀키트의 내용물은 아주 잘 보였고, 거북이 수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뭘 또 이런 걸 다. 흠흠, 준 사람 성의도 있으니 잘 먹겠네.”

실비아에게서 얼른 밀키트를 가져간 수인은 헤벌쭉 웃으며 좋아했다. 아이템 상세 설명에 나와 있던 대로 육지 동물의 간으로 이뤄진 밀키트가 맘에 든 모양이었다. 입꼬리를 흐뭇하게 올린 그는 밀키트를 자신의 소맷자락에 집어넣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이 되어 뒤돌았다.

“잠자코 나를 따라오게.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 앉아서 얘기하세나.”

“네!”

거북이 수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옮기자 실비아가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갔다. 그들은 해변가 뒤쪽의 소나무 숲을 지나 조그만 초가집에 도착했다. 실비아에게 마루에 잠시 앉아있으라고 말한 거북이 수인은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곱창볶음과 인삼주를 들고나왔다. 그는 쪼르륵, 잔에 술을 따르더니 실비아에게 권했다.

“한잔 들게나.”

“어머, 이건 인삼주네요.”

코를 킁킁댄 실비아가 화색을 띠며 대답했다. 그러나 곧 표정이 어색하게 변했다. 왜, 전래동화를 보면 신선들 놀음에 껴서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현생으로 돌아가면 도끼가 썩어있고 그런다지 않나. 주인공은 엉엉 울면서 증손주에게 한탄하고.

곱창볶음에 젓가락질하던 거북이 수인이 쯧쯧 혀를 차며 실비아를 나무랐다.

“거참, 보면 볼수록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구만? 그 정도로 세월이 흐를 리가 있겠어? 속고만 살았나.”

“아, 네….”

또 생각을 읽혔다. 하지만 머릿속을 읽혔다고 해서 생각하는 걸 멈추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뇌에 힘을 줄 수도 없고 말이지. 실비아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어차피 게임을 저장해놨으니까 별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입에 인삼주를 털어 넣었다.

“캬아.”

“어때? 맛이 좋은가? 피로가 싹 사라질 걸세.”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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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수인이 잇몸으로 씹어 30년간 되새김질해서 만든 인삼주>의 효과로 실비아의 피로도가 0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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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잇몸? 되새김질….’

실비아는 생각을 멈추고 거북이 수인을 살짝 노려봤다. 생각을 읽힐 수가 있으니 속으로 욕도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대놓고는 못 하고 살짝 노려보고 있으려니, 거북이 수인이 술을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크으, 술맛 좋다. 바다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돼지 곱창볶음을 가져왔으니 좋은 것을 줘야겠지.”

“아! 그런 걸 바라고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만,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실비아는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뇌에 안간힘을 주었다. 거북이 수인은 소맷자락을 뒤적이더니 복주머니 두 개를 꺼냈다. 그는 실비아의 눈앞에 푸른색과 붉은색 복주머니 두 개를 흔들며 질문했다.

“어떤 복주머니를 가지고 싶나?”

그의 말과 함께 실비아의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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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수인이 내민 복주머니 두 개.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1. 푸른색 복주머니 : 당장의 걱정을 뒤로 미룰 수 있는 것

2. 붉은색 복주머니 : 넘쳐나게 있는 것을 골고루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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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랜덤 박스처럼 고르게 하던 것에서 이번엔 선택지가 나오다니, 완전 좋았다. 실비아는 1, 2번 선택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눈이 선택지를 한번 거북이 수인을 한번 번갈아 보자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장난을 좀 쳤더니 불안한 게냐. 이제 생각을 읽지 않을 테니 신중히 선택해 보거라.”

“네….”

마음을 놓은 실비아는 뭘 고를지 고민했다. 1번 선택지의 ‘당장의 걱정’이란 무엇일까. 눈을 도르륵 굴리던 실비아의 입에서 조그만 탄성이 흘러나왔다. 돌아갔을 때 당장 걱정되는 건 루카와 노엘의 일이 제일이었다. 뒤로 미뤄야 할 걱정이라면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 일이 맞다면 뒤로 미룬다면 더없이 좋겠지. 2번은….’

2번 선택지의 넘쳐나게 있는 것을 골고루 나누는 것은 뭘까. 나한테 넘쳐나는 게 있다고? 그런 게 어딨어. 성욕이랑 식욕 말고 없지 않나. 입술을 삐죽이던 실비아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다, 넘쳐나는 것이.

‘지력이 지금 700이나 되잖아. 설마 그걸 말하는 건가?’

혹시나 딴 게 있나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지만 넘쳐나는 것을 골고루 나눈다는 설명을 보니 지력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성욕이나 식욕은 골고루 나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실비아는 선택을 유보하고 거북이 수인을 빤히 바라봤다. 혹시나 보충 설명을 해줄까 싶어서 본 거였으나, 그는 이제 복주머니를 상 위에 올려둔 채 곱창볶음 먹기에 열중할 뿐이었다. 입맛을 다신 실비아는 다시 복주머니에 시선을 던졌다.

‘아, 너무 고민되네. 1번이냐, 2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체 뭘 선택해야 잘 선택했다고 소문이 날까나.’

노엘과 루카를 만나는 걸 미룬다면 한동안은 마음 편히 지낼 것이다. 그건 실비아가 제일 피하고 싶은 문제 중 하나였으니까. 700이나 되는 지력을 재분배하는 건 무척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긴 했다. 그러나 분배 포인트가 이미 120이나 있고, 우라엘 황태자의 공략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 스탯을 잘못 분배했다간 쓸데없는 곳에 스탯 분배를 해,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몰랐다.

‘거기다가 이 게임은 단순 RPG가 아니란 말이야. 남주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면 게임 공략을 실패하게 될 수도 있어.’

그와 함께 엘리셔스 월드에서 지력을 700이나 올렸던 만큼, 공략 조건에 맞는 퀘스트가 또 생길 것 같다는 판단도 있었다. 어떻게든 지력을 재분배하지 않고도 다른 공략 조건은 채울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거기다가 나한텐 세이브 시스템이 있지. 마지막 세이브 지점이 이곳의 입구니까. 우라엘 황태자의 공략 조건을 보고 나서 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돼. 그 정도는 다시 수고할 가치가 있지.’

고민을 마친 실비아는 1번을 선택했고, 푸른색 복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휴우, 선택할게요. 푸른색 복주머니를 고르겠어요.”

“그래. 잘 선택했네.”

어느새 곱창볶음을 다 먹어 치운 거북이 수인이 배를 두드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복주머니를 조물락거린 실비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복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복주머니 안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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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복주머니>가 영험한 빛을 내뿜습니다. 실비아의 걱정이 뒤로 미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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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지는 정확히 안 나와 있네. 설마 노엘과 루카 일이 아닌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그 일밖에 없다고.’

떨떠름한 그녀의 표정에 거북이 수인이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을 내뱉었다.

“아마 원하는 대로 될 걸세. 어허,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나. 자네의 생각을 읽은 건 아니야. 나는 효험 없는 물건을 가짜로 주는 사기꾼이 아니라네. 그러니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모든 게 뜻한 바대로 이루어져 있겠지.”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좋은 물건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비아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거북이 수인이 괜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는 점잖게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옆에 치워놨던 보자기로 상을 덮었다. 다시 보자기를 치우니 곱창볶음과 인삼주는 온데간데없고 수정과와 약과가 나타났다.

“자, 이것도 먹어. 후식도 먹어야지.”

“앗, 네.”

약과를 집어 들자 거북이 수인이 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크흠, 이렇게 왔는데 달랑 물건 하나만 받고 가긴 뭣하지 않겠나. 나는 진리를 아는 거북이 수인.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게.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난 다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

이게 웬 개이득. 당장의 걱정을 미룬 것만 해도 충분히 고생한 값을 했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니. 어떤 걸 물어보면 좋으려나. 실비아가 고민하자 거북이 수인이 말을 얹었다.

“개인사 같은 것은 물어보지 말게나. 남의 일을 말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미래도 곤란해. 여기가 어떤 세계인지 알지? 자네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미래가 바뀔 테니 그런 건 함부로 말해줄 수 없네. 나도 그건 모르고 말이야.”

“아, 그렇군요.”

에이, 그럼 뭘 알려줄 수 있는 거야. 개인사나 미래를 물어보려던 실비아의 입이 오므려졌다. 해변에서 넘어온 시원한 바닷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여유롭게 수정과를 홀짝이던 거북이 수인이 소탈하게 웃었다.

“물어볼 게 없지 않을 텐데. 궁금한 거 없는 게로군. 그럼 이만….”

“아, 아니에요!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더 주세요.”

실비아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고개를 젓자 거북이 수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충분히 생각하려무나.”

뭘 물어봐야 하지? 개인사를 물어보지 말라고 했으니까 남주에 대한 질문은 애초부터 하지 못한다. 그리고 미래도 물어보지 말라고 했으니 자신이 지옥으로 갈지 천국으로 갈지도 물어볼 수 없고…. 맞아, 나태 지옥!

그녀는 잠시 잊고 있었던 나태 지옥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태 지옥의 왕 같았던 루카의 형도. 진리를 안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알겠지. 뭐라고 물어보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그녀는 적절한 질문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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