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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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볶음 밀키트>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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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웬 먹을 것? 이걸 거북이 수인이 좋아할까나. 우선 상세 설명을 한번 보자.’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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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볶음 밀키트
- 돼지 순대, 간, 내장이 주재료인 맛있는 곱창볶음 밀키트이다. 아주 오랜 옛날, 거북이 수인은 선대 용왕에게 토끼 간을 가져다주는 데 실패한 뒤 크나큰 상심을 했다. 쓰라린 기억은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 복수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굼뜬 몸 때문에 복수할 길이 요원했기에 그의 복수심은 한 번 더 입맛으로 치환됐고, 육지 동물의 간이면 없어서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간으로 만든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는 전설이 떠돌고 있다. 특히 돼지의 순대, 간, 내장으로 이뤄진 이 밀키트는 거북이 수인의 서러움을 씻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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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보니 딱 좋은 아이템이네.’
실비아는 흐뭇한 미소를 짓곤 인벤토리에 밀키트를 집어넣었다. 거북이 수인이 뭘 좋아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았는데, 돼지 간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할 줄이야. 빈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은 그녀는 멀찍이 선 수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수인분들, 감사해요. 덕분에 좋은 물건을 얻었네요.”
“뭘요. 오히려 저희가 많은 도움을 받았는걸요. 이 정도 보답은 당연하죠.”
훈훈한 말들이 잠시 오가고, 수인들은 일꾼 등록을 위해 꼴뚜기 수인과 함께 왕국민 센터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본 용왕과 실비아네도 왕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떠나면 되는 걸까. 좀 더 천천히 놀다 가고 싶지만,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실비아가 아쉬운 눈으로 왕궁을 한 바퀴 훑는데, 용왕이 블루에게 손짓했다.
“아들아, 아까 한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볼까? 제왕학을 배우는 것 말이야.”
“네. 아버지. 실비아, 여기 잠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게.”
“응. 알았어.”
실비아는 왕궁 응접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잠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댕그래진 초록색 눈이 궁 여기저기를 훑었다. 동양식 건축은 기분만 냈고, 나머지는 다 서양식인 퓨전 궁인지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궁의 건축 양식을 관찰하던 실비아는 흥미를 금방 잃고 시스템 창을 살폈다. 오늘은 게임 65일 차 화요일이었다. 거북이 수인을 만나고 이것저것 볼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화요일 저녁이겠지?
우선 세비스에게 장어구이 밀키트와 이곳에서 구한 식재료들로 요리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동안 세비스가 주로 요리를 했으니 이번엔 제 실력을 뽐낼 참이었다.
‘요리라곤 주로 계란후라이와 라면만 해봤지만, 난 먹는 걸 좋아하니까 기본 실력이 있을 게 분명해.’
요리 실력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실비아는 밀키트 정돈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실비아는 세비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며 마음을 편하게 만든 뒤, 노엘 님의 저택으로 옮기자고 말해보기로 계획을 잡았다.
요리를 맛있게 먹고 행복해진 세비스가 수락을 하고 나면 이사를 하고, 그다음에 노엘과 루카에게 편지를 보내서 최대한 만나는 약속을 미루도록 달래야 한다. 그 전에 제국민 복지혜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나 확인하는 것도 빼먹지 말아야 할 터.
급한 볼일을 다 끝내고 나면 쉴 수 있느냐, 아니다. 포리쉐 돌봄 시녀 등록을 하러 황궁으로 간다. 그리고 림보는 황궁에서 일하면서 빼낼 방법이 없나 강구해본다.
마지막으로 빼먹지 말 것이 있다. 블루도 사이사이에 만나야 한다. 왜냐, 아직 씨앗을…. 휴, 하여튼 씨앗이 필요하다.
‘…할 일이 너무 많잖아. 개 같은.’
일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더 진해졌다. 그녀는 아려오는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면서 화병이 올라오려는 걸 막았다. 온전히 쉰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쉬어도 항상 지역에 있는 던전 공략을 하거나 하다못해 섹스를 했으니까.
즐겁던 취미도 일이 되는 순간 고통이 된다던가. 아직까지는 섹스하는 게 늘 새롭고 짜릿했지만, 아직 두 명이 더 남아 있단 게 그녀를 절망스럽게 했다.
‘세 명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다섯 명이 말이 돼? 내 몸뚱어리는 한 개라고.’
게임에 빙의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성년의 날 축제에 가서 동정이면 다 따먹어버리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빙의 당시에 현생에서 팽팽 놀아서 에너지가 남아돌았고, 한꺼번에 세 남자를 상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뭘 몰라서였다.
세 남주를 공략했으니 한참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고작 65일밖에 지나지 않았고 아직 두 남주를 더 공략해야 한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이러다가 정말 어디 잘못되는 거 아냐?’
주위를 살핀 실비아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순간 치마를 들춰 자신의 다리 사이를 확인했다. 혹시 닳아 없어지진 않았나 싶어서였다.
‘휴, 아직 멀쩡하군.’
다행히 아직은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통풍이 잘되라고 치마를 펄럭였다. 누가 보면 좀 추잡스러워 보이겠지만, 이렇게라도 건강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실비아는 점점 자신의 생식기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병이 들 걱정은 게임 세계이니 없지만, 허구한 날 아무렇게나 놀리고 다니다가 물리적으로 닳아 없어지면 어쩌나. 사라지지 않더라도 헌다거나 말이지….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이 미친 게임은 그런 해괴망측한 엔딩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공략을 하긴 해야겠지만 정말 내키지 않네. 이미 부르기만 하면 언제나 달려올 남자가 세 명이나 있는데 두 명을 더 공략하라니. 양심에도 좀 찔리고 말이야.’
두 명이라. 우라엘은 이미 알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굴까. 눈을 도르륵 굴리던 그녀는 세비스를 떠올렸다. 그가 성체가 되면 상태 창이 떠오를 가능성이 꽤 있었다. 하지만….
‘세비스는 공략 남주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두 달 동안 동고동락했더니 그냥 남동생 같아.’
세비스는 공략 남주가 아니길, 그냥 단순 NPC이길. 그와 발가벗고 야한 짓을 한다니 잠시 상상한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실비아가 한창 여러 가지 걱정을 하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용왕과의 대화를 끝낸 블루가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실비아, 오래 기다렸지.”
“아냐. 아버님이랑 얘기는 잘 끝났어?”
의자에서 일어난 실비아는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응. 그게….”
응접실 밖을 함께 나서며 블루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간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제왕학을 배우러 일주일에 한 번씩 심해왕국을 방문할 것, 그 일정 외에는 대륙에서 여러 경험을 풍부하게 쌓기로 얘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차기 국왕이 되는 건 십 년 후가 될 거라, 그동안은 자유의 몸이라는 얘기까지 하자 실비아는 궁금증이 생겼다.
경험을 어디서 쌓겠다는 걸까? 엘리셔스 월드에서 일일 알바를 곧잘 해내는 블루를 보며 나중에 신문 구인 광고로 일을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제왕의 경험을 쌓아야 하는 몸. 신중하게 일을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디서 지낼 계획이야?”
“음, 일단은 아버지께서 소개해주신 가이드 일을 해볼까 싶어.”
“가이드?”
실비아가 되묻자 블루가 말을 이어갔다.
“응. 저번에 말했었지? 드래곤들은 지혜의 종족이지만 천성이 느긋해서 제국어를 빨리 익히지 않는다고. 아버지 말씀으론 오래 산 드래곤들 중에는 타고나길 심하게 게으른 이가 많대. 그분들 중 한 분의 대륙 유희를 도와주며 지혜를 전수받을 계획이야.”
제국어는 여러 나라에서 통하니 대륙 여행을 하기에 딱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블루는 드래곤의 황혼 여행 가이드를 하는 셈이었다.
“오, 정말 괜찮은 생각이네. 근데 그러면….”
감탄사를 흘리던 실비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말은 제국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닌단 얘기였다. 섹스를 몇 번 더 해야 하는데,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데 벌써 가다니, 무척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실비아의 어두운 표정에 블루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얹었다.
“실비아, 오해하지 마. 너를 아예 안 보는 게 아냐. 퍼랭이가 있잖아. 우린 언제든 연락할 수 있어.”
퍼랭이라, 전서구 퍼랭이를 시켜 편지를 주고받는 것보다 블루가 직접 날아서 오는 게 빠르지 않나. 잠시 생각하던 실비아는 블루가 제국 상공을 휘젓고 다니다가 전투가 일어났던 걸 떠올리고 입을 닫았다.
‘칫, 그래도 그렇지. 섹스하고 나니 볼 장 다 봤다 이거야? 옆에 계속 붙어있어도 모자랄 판에, 실망스러워!’
막상 옆에 계속 붙어있다면 몸이 남아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막 불이 붙은 사이인데 떨어진다니 뭔가 좀 불만스러웠다. 그녀의 꿍한 얼굴에 블루가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더니 허리를 휘감았다.
“뭐야, 무슨 생각 해?”
“아니야….”
볼을 한껏 부풀린 실비아가 시선을 피하자 블루가 말랑한 귓불을 입술로 물었다.
“아니긴. 자주 만나면 되잖아. 돌아가면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할걸.”
“왜?”
간지러움에 실비아가 몸을 움찔하며 대답하자 허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더 은근해졌다.
“내가 뭐로 변신해서 올지 모르거든. 잊었어? 난 물개로도 변신했었잖아. 물개 변신을 풀지 못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좀 꺼려지긴 하지만, 널 만나기 위해서라면 용기를 내야지.”
어느새 블루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그는 붉은 혀를 내어 조그만 귀를 야릇하게 핥았다. 실비아는 흠칫 놀라면서도 넓은 품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능글맞긴, 근데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