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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99화 (299/372)

299화

“실비아, 괜찮아? …어, 내가 잠결에 마법을 쓴 모양이네.”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너한테 당한 게 한두 개였니. 실비아는 젖은 머리를 빨래 짜듯이 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미 블루 때문에 많이 죽은 적 있었기에, 이 정도는 재난 축에도 끼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 침대에서 나온 블루는 목걸이를 이용해 자신과 그녀의 몸을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언제 물난리가 났었냐는 듯 침대보까지 보송보송해졌다.

봐도 봐도 신통방통한 목걸이 마법에 실비아가 감탄사를 흘리고 있는데, 블루가 그녀를 다시 침대 위에 눕히며 미소 지었다.

“아침이니까 한 번 더 할까? 어제 한 건 어제 한 거고….”

“앗!”

가운 속으로 손이 파고들어 왔다. 실비아는 약하게 몸부림치며 블루를 진정시켰다.

“어제 많이 했잖아. 그리고, 오늘만 날이 아니야. 우린 앞으로도 살날이 많이 남았어.”

그래도 난 아직 많이 부족하단 말이야.”

뜨거운 숨결이 부드러운 가슴에 닿았다. 실비아는 미간을 좁히곤 진지하게 말했다.

“안 돼. 다음에 해. 몸은 멀쩡한지 몰라도 지금은 정말,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어.”

“안 돼? 응? …칫.”

거듭되는 만류에 블루는 아쉬운 기색으로 실비아 위에서 일어났다. 실비아가 흐트러진 가운을 정리하는 와중에 블루도 어쩔 수 없이 가운을 걸쳤다. 그는 잠시 제 아래를 가라앉히는 명상을 한 후에 실비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몸은 괜찮아? 어제, 음….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많이 한 것 같은데.”

아는 놈이 또 하려고 했어? 잠시 입을 삐죽인 실비아는 그래도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마워 대답했다.

“응. 연고랑 약초 덕에 몸이 멀쩡한걸! 진작에 이럴 걸, 그동안 괜한 고생을….”

“진작에? 우린 어제 처음 했잖아.”

앗차. 블루의 말에 실비아는 급히 말을 얹었다.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아니. 내가 말 안 했던가? 가끔 무리하면 상태 이상에 걸린다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몸이 맛이 간 적이 있었거든. 어! 맞아. 그때 본 그 모습도 전날 우,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더니 그렇게 됐지 뭐야.”

“운동?”

실비아는 목이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이며 블루의 질문을 얼른 받았다.

“어. 지나친 운동은 건강에 독이라더니, 참,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어.”

“아아, 운동을 많이 해서 그랬던 거구나. 이제 몸조심하면서 해.”

실비아의 거듭되는 설명에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늘 하나 없는 밝은 표정을 보니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휴우, 생각이 많은 타입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블루가 창문 밖을 힐끗대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밖으로 나갈까?”

“근데, 옷이 다 찢겨서 어떡해. 누가 봐도 뭔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은데….”

실비아가 곤란한 표정으로 넝마가 된 옷가지를 한데 모았다. 이걸 복원하는 마법 같은 건 없을 것 같았다. 기둥도 여전히 쓰러져 있는 걸 보면 말이지. 블루는 문제없다는 듯 이공간에서 새 옷을 꺼냈다.

“다른 옷을 입으면 되지. 찢어진 옷들은…. 어쩔 수 없어. 어차피 어제 우리가 말없이 사라져서 뭔 짓 했는지 다 알….”

“악! 안 돼. 그런 말 하지 마!”

실비아는 귀를 손바닥으로 연속해서 치며 고개를 저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변태인 그녀는 남들이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알길 원하지 않았다. 별궁에서 이 난리를 친 데다가 어디 갔는지 밤새 보이지 않았을 텐데도 찾아오는 사용인들이 없었다. 그러니 아마도 둘이 뭘 하고 있는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남들이 어림짐작하는 것과, 우리 무슨 짓 했어요. 티 나죠? 라고 당사자들이 확정 짓는 건 다른 문제였다. 눈 감고 아웅이라도 하려고 연회에서 입었던 옷과 비슷한 걸 걸치려고 했던 건데. 블루의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반응에 그녀의 얼굴에 빨간 빗금이 그어졌다.

실비아가 펄쩍펄쩍 뛰자 블루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웃는 낯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게 더 이상해 보일걸? 이곳을 떠나려고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하면 되지.”

“아! 그건 그렇네.”

블루가 웬일로 똑똑한 소리를 하지? 한번 새겨진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제국어를 순식간에 익혔어도 블루의 기본 베이스는 멍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속 알맹이도 다 똘똘하게 업그레이드 완료된 모양이었다.

감탄사를 내뱉은 그녀는 조언대로 인벤토리에 넣어놨던 옷을 꺼냈다. 눈탱이 맞았던 비밀상점에서 제일 잘 산 게 <완벽한 인벤토리> 아이템이었는데, 그 덕에 언제 어디서나 옷을 불러낼 수 있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며 기둥 뒤에 숨어서 옷을 걸치자 블루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귀여운 실비아. 굳이 왜 기둥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다들 아는데 말 안 하는 걸….”

“악! 싫어!”

실비아가 기둥 뒤에서 빽- 소리 지르자 블루가 숨죽여 웃은 뒤 대꾸했다.

“알았어. 입 닫을게.”

실비아는 옷을 갈아입은 뒤 기둥 뒤에서 나왔다. 그녀가 오늘 입은 옷은 맑은 바다가 떠오르는 푸른색의 원피스였다. 블루는 흰색과 검은색이 조합된, 깔끔해 보이는 옷을 입었다.

둘은 눈치 보며 밖으로 나왔는데, 아무도 나와보는 이가 없자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엔 우리 말곤 아무도 없어?”

“있어. 근데 눈치껏 자리를 피한 것 같아.”

블루의 대답에 실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알아?”

“어제 옷을 찾으러 갔을 때 수인 시녀와 마주쳤었어. 별다른 말 없이 옷을 건네주던데.”

“웬일이야…. 이제 날이 밝았으니까 나와도 되는데….”

얼굴이 붉어진 실비아가 손부채질하자 블루가 아무 말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어젯밤의 일은 블루가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일부 사용인들에게 미리 언질을 줬기에 별궁이 예쁘게 준비되어 있었던 거였다. 혹시나 해서 사용인들에게 무슨 소리가 나도 나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런 지시를 하길 잘했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탈 줄이야.’

만약 어제 사용인들이 주르륵 나와 있었다면 실비아는 부끄러워서 도망가버렸을지도 모른다, 라고 블루는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은 원래 냉정하게 판단이 안 되는 법.

실비아는 부끄럽든 말든 한시가 급하기에 어떻게든 어젯밤 역사를 이뤘을 텐데, 블루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사용인들이 나타나지 않은 덕에 첫날밤을 성공적으로 보냈다고 말이다.

실비아는 실비아대로 얼렁뚱땅 고백 이벤트를 넘겨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었다. 그녀는 주머니에 든 발찌를 만지작거렸다. 아침에 옷가지를 한데 모으면서 은근슬쩍 발찌를 챙겼는데, 블루 몰래 확인해봤지만, 아이템은 아닌지 별다른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기왕 선물 받은 거 하루빨리 발에 걸어보고 싶지만 지금 발목에 걸면 너무 눈에 띄니까 나중에 해야겠어.’

이젠 일도 치렀겠다, 발찌를 껴도 상관없긴 했지만 당장 헤실거리고 있는 블루의 눈에 선물한 것을 차고 있는 모습을 보이긴 부담스러웠다. 그러면 어제 하다만 얘기를 또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여러모로 소시오패스 같았지만, 별수 없었다. 정말 지겹도록 말하지만, 그녀는 놀러 온 게 아니라 나태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게임 공략을 해야 하는 차갑고 냉정한 플레이어였으므로.

꽃게 한 마리 안 보이는 별궁을 나온 그들은 어젯밤에 봤던 아치형 다리와 정원을 지나며 한가로이 산책했다. 바다 위에 있는 햇볕을 끌어오는 마법 장치 덕에 낮의 심해왕국은 바깥과 다름없이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했다.

어느새 왕궁의 중심 정원에 다다른 그들은 정원수를 관리하던 가재 수인과 맞닥트렸다. 그리고 정원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용왕도 함께.

‘어우, 당장 마주치기 제일 부담스러운 인물인데.’

“아들아. 실비아 양. 좋은 아침이네.”

“안녕하세요 용왕님.”

“아버지.”

둘이 깍듯이 인사하자 용왕이 손을 휘젓더니 앉기를 권유했다. 잠시 후 사용인이 그들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내왔다. 자유로운 용궁의 분위기답게, 티타임을 즐기는 용왕 옆에서 아침 식사도 가능했다.

‘어? 이게 뭐야!’

실비아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서빙된 메뉴를 들여다봤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멍게 비빔밥이었다. 사용인이 뭐라 뭐라 메뉴 이름을 말하고 갔는데, 이름은 달랐으나 생긴 게 딱 멍게비빔밥이었다.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키곤 용왕이 일러주는 대로 비빔밥을 비볐다.

‘멍게는 수인이 될 수 없나? 뭔가 동족상잔의 비극 같아서 조금 찝찝한걸.’

찝찝한 건 찝찝한 거고 맛은 참 좋았다. 야무지게 비벼서 식사를 즐기고 나자 디저트로 숭늉과 약과가 나왔다. 실비아는 그것도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용왕이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많이 배고팠나 보군.”

“네?! 컥, 커헉.”

지레 찔린 실비아는 사레들려 컥컥대다가 가까스로 진정했다. 놀란 블루가 조그만 등을 퍽퍽 두드려주자 약과 조각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용왕은 겉으론 태연하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마음이 복잡했다. 왕궁의 일은 그에게 모두 보고되기에, 그는 당연하게도 어젯밤 아들과 실비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상식선에선 딱히 문제 될 게 없는 것이었기에 태연하게 아들과 무슨 사이냐고 물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비아의 과한 반응을 보자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많이 부끄러운가 본데.’

그렇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대화 주제로 꺼내려던 거였지, 굳이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며 호기심을 채우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용왕은 아들과 눈을 마주친 후 다른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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