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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81화 (281/372)

281화

『건조대야. 양동이에 바닷물을 담가서 보관해도 되겠지만, 그러면 성가시게 양동이를 들고 다녀야 하잖아. 이공간에 넣었다간 물난리가 날 테고! 그래서 생선을 여기 걸어서 말리려고.』

“아아, 좋은 생각이야. 말린 생선도 쪄먹으면 꽤 맛있지. 그럼 얘를 우선 반으로 갈라서 내장을 빼….”

그때, 그들의 잔인한 대화를 견디다 못한 생선이 땅바닥에서 크게 튀어 올랐다.

“이 잔인한 자식들! 반으로 갈라서 뭘 어째?!”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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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체를 밝혔다! 그는 생선 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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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맛 좀 봐라! 퉤엣!”

생선이 실비아 눈높이만큼 펄쩍 뛰어오르더니 단번에 수인으로 변했다. 그러곤 망설이지 않고 뭔가를 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발광 물질에 실비아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다행히 발광 물질은 그녀의 얼굴을 비켜 가 땅에 떨어지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악! 뭘 쏘는 거야!”

『실비아! 어떡해, 괜찮아?』

블루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며 걱정하는 와중에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별거 아닌 시시한 내용이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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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카디날 피쉬 수인이 발광 물질을 뱉었다!]

[별다른 공격력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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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실비아를 기습 공격한 것에 화난 블루가 이공간에서 끈을 불러내 생선 수인을 결박했다. 꽁꽁 묶이는 와중에도 생선 수인은 캬악거리면서 발광 물질을 연거푸 뱉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든 발광 물질을 모조리 뱉고 지레 지쳐서 고개를 꺾었지만 말이다.

“하마터면 수인인 줄도 모르고 말린 생선으로 만들 뻔했네. 아무리 그래도 수인을 먹긴 좀 그렇지.”

『아쉽다. 간발의 차였네….』

블루가 건조대를 이공간에 집어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실비아는 생선 수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협박을 내뱉었다.

“그렇지만 말이야. 별미가 먹고 싶어지면 내가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할 수 없어. 영양소가 결핍되면 인간은 새로운 음식을 찾게 되는 법이거든. 좋은 말할 때 동료들을 데려오면 몸이 바짝 마르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 천인공노할 놈들!”

분한 표정이 된 생선 수인이 침을 뱉듯 입안에 남은 발광 물질을 퉤, 하고 뱉었다. 왜 저렇게 화내는 거지? 잠시 기막혀하던 실비아는 화법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자신도 모르게 인질을 협박하는 납치범처럼 말하고 있었다.

“거참, 누가 보면 우리가 나쁜 놈인 줄 알겠네? 우리는 오염된 기운으로 던전화가 된 도시를 정화하러 온 거야! 너희들을 죽이려고 온 게 아니라고.”

“여길 정화하러 왔다고?! 안 돼! 이 도시가 원래대로 돌아가면 우리는 여기서 쫓겨난단 말이야!”

이게 무슨 상황일까. 오염된 기운에 당한 것 같지 않게 말이 통하는 것 같길래 솔직하게 목적을 밝혔건만, 생선 수인의 반항이 수그러들질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실비아네의 목적을 알고 나자 포박당한 끈을 풀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바라보던 블루가 몸부림에 거의 풀려가고 있던 끈을 다시 단단히 묶었다. 그는 생선 수인과 대화하기 위해서 제국어로 말문을 열었다.

“이봐, 맛 좋아 보이는 생선.”

“맛! 맛 좋아 보인다니…. 아니야, 아니라고!”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쫓겨난단 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생선 수인은 블루의 말에도 머뭇거리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답답했던 실비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래. 말해 봐. 우리, 아니 이분이 해결해 주실 수 있어. 이래 보여도 이 나라의 왕자님이시고… 헙. 맞아, 맞네! 이분은 왕자님이니까 용왕님에게 직접 말씀드릴 수 있어! 얘기해 봐.”

실비아는 아무 생각 없이 말하다가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깜짝 놀랐다. 맞아, 벼락출세한지라 잠시 잊었지만 블루는 오늘부로 심해 왕국의 왕자님이 됐다. 그러니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생선 수인과 동료들의 사정을 들어줄 수 있을 터.

생선 수인이 정말이냐는 듯 블루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응시했다. 블루는 멍하니 그와 눈을 마주치다가 실비아의 말에 긍정했다.

“맞아, 나… 왕자였지. 그래, 나 오늘부터 왕자가 된 것 같아.”

“뭔가 믿음직스럽지가 않은데….”

블루의 대답에 수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기꾼 보는 거 같은 떨떠름한 눈빛에 답답해진 실비아가 말을 보탰다.

“왕자 맞아. 생선! 너 오염된 기운에 당한 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하긴 한데, 아무리 이곳에서 지내고 있더라도 왕국 동향은 알고 있을 거 아냐. 이 나라의 왕이 블루드래곤인 건 알고 있지?”

“그렇지. 그건 알음알음 들어서 알고 있어. 정확히는 블랙드래곤과 블루드래곤의 혼혈… 허억! 브, 블루드래곤!”

블루는 생선 수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자신의 푸른색 날개를 활짝 펼쳤다. 몸길이의 두 배는 될 법한 커다랗고 아름다운 날개에 생선 수인이 기절할 듯 놀라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블루드래곤이시군요. 그런 분이 굳이 거짓말할 리는 없죠. 제가 큰 오해를 했습니다.”

혹시나 ‘왕자면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까지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얘… 이분은 왕자님이니까 해결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말해 봐. 억지를 부린다면 곤란하지만, 억울한 일이라면 용왕님에게 말해서 해결해 주실 수도 있잖아, 그치?”

“응. 해결해 줄 수 있으니 말해 봐.”

실비아가 블루에게 윙크를 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선 수인을 함께 설득했다. 날개를 확인하고 확연히 밝은 얼굴이 된 생선 수인은 심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어렵사리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우리 계모임은 말이야….”

그들은 심해 잡해양 생물들의 계모임으로, 까마득한 옛 조상들부터 모임이 시작됐다고 한다. 태초에는 다달이 미역을 모으는 미역계를 해 그들 공동체가 함께 살 바다 땅을 구입할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

그들 부모님 대에서 바다 땅을 살 미역을 거의 다 모았고, 모은 미역으로 회사를 만들기 직전. 계주인 유령 해파리가 그 미역을 몽땅 들고 야반도주를 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역을 잘 말려 ‘심해 장인들의 명품 미역’이라는 회사명을 걸고 고래 조리원에 납품하는 게 코앞이었다고. 그런데 유일한 희망이던 미역이 깡그리 없어졌으니! 계모임원들의 절망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고 생선 수인은 회고했다.

“그래서, 왕국에서 머물 땅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명목상으로 관리되던 명예 도시인 이곳에 숨어서 살 수밖에 없었어. 그러나 숨은 것도 곧 발각되고 편의시설 하나 없는 생 심해로 쫓겨날 위기였지….”

죽으란 법은 없다던가. 때마침 오염된 기운으로 도시가 던전화가 됐고, 왕국이 이 도시를 관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도시에서 계모임원들이 모여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한 생선 수인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오염된 기운이 우리를 어떻게 했다, 이런 건 관심이 없어. 우리가 관심 있는 건 내 몸 하나 누일 자리를 보전하고 싶은 것일 뿐…. 이 도시가 오염돼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이곳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새로 태어난 치어들도 있고…. 유령 해파리는 부모님 대에서 도망쳤으니 이제 잡을 수도 없게 됐고.”

“세상에, 그런 사연이….”

생선 수인의 얘기를 듣던 실비아의 눈이 촉촉해졌다. 블루도 안타까웠는지 눈썹을 처량하게 내렸다.

‘이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린 생선으로 먹겠다는 소리나 했다니, 에효.’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미역계를 성실히 들었건만 계주가 미역을 들고 나르다니! 실비아는 계를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릴 때 드라마에서 곗돈 들고 나르는 나쁜 놈들 이야기를 많이 봤기에 잡 해양생물 계모임원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러 대를 걸쳐서 모은 미역을 몽땅 잃은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까! 별다른 재주가 없는 잡해양 생물들이니, 던전화가 된 도시에서 숨어 사는 것 말곤 별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살겠다는 의지 덕에 던전 속에서도 이지를 잃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실비아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생선 수인을 바라봤다. 블루는 촘촘한 속눈썹을 내리고 고민에 빠진 표정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든 해결해 줄게. 이 심해 왕국에 당신들 일할 자리 하나 없겠어? 치어들이 있으니 왕국에 보금자리도 마련해달라고 아버님께 말씀드릴게. 그러면 이 도시가 원래대로 돌아가도 더 이상 걱정이 없겠지.”

“아이고, 정말인가요? 우리도 일할 자리가 있나요?”

생선 수인이 간절한 얼굴로 묻자 블루가 위엄있게 대답했다.

“그래. 만약 없으면, 내가 책임지고 만들어 주겠다.”

블루의 호언장담에 생선 수인이 허리를 연신 굽히며 감사 인사를 했다. 실비아도 새삼 감동한 눈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멍청이 같던 블루가 이렇게 듬직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 일자리가 없으면 책임지고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서 엘리셔스 월드의 아이스크림 노점이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일 것이다. 숨어 살던 노동자 시절의 블루와 왕자님이 된 지금의 블루는 완전히 다른 이였으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계모임원들을 불러 모아줘. 다들 정화를 받아야 도시가 정상으로 돌아가니까.”

실비아의 말에 그가 순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자리와 보금자리 보장을 한 번에 얻어낸 생선 수인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는 동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문어가 확성기를 썼던 기계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블루가 그를 들고 단번에 지붕이 뚫린 기계실로 날아갔다. 잠시 후 확성기에서 쩌렁쩌렁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생선 수인, 카디날 피쉬의 목소리가 들렸고 분수대에서 하나둘 수척한 얼굴의 수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믿진 않은 것인지 아기들을 제외한 어른 수인들만 분수대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무리의 대표인 문어가 머쓱한 얼굴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아까 도망쳤던 문어를 비롯하여 꼴뚜기, 가자미, 카디날 피쉬, 그리고 실비아가 죄책감을 가지고 대할 수밖에 없는 최애 소주 안주, 광어가 오래 살아 수인화가 된 광어 수인이 있었다.

‘세상에, 광어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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