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말 못 해!”
문어 수인이 몸의 색을 주변에 맞게 변화시키며 도망을 시도했다. 순간 수인의 몸이 쑥 줄어들더니 바닥에 옷만 남았다. 텅 빈 옷을 들고 황당해하던 블루가 보호색을 띠며 사라지려던 문어를 얼른 잡았다.
미끄덩해서 잡기 힘들었지만, 강하게 움켜쥐자 문어도 별수 없었다. 문어가 된 수인이 연체동물답게 울렁울렁 몸부림을 치며 블루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다.
“아악! 놔줘!”
『허튼수작하지 마.』
문어는 꿈틀거리더니 탈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블루는 이공간에서 긴 작대기를 꺼내더니 문어를 낙지호롱 말듯이 작대기에 돌돌 말아버렸다. 잔인하지만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선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낙지호롱을 당한 문어는 처분을 기다리듯 힘없이 몸을 늘어트렸다.
“블루야, 다른 수인은 저 건물 위에서 못 봤어?”
『응. 얘 말고는 안 보이던데.』
다른 수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선 문어 수인을 추궁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비아는 망치를 꺼내 문어 수인 앞에서 붕붕-소리가 나게 휘두르며 위협했다.
“좋은 말할 때 동료들 위치를 부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탕탕! 그녀가 눈을 부릅뜬 채 애먼 바닥을 망치로 두드리자 돌바닥이 부서졌다.
“문어 탕탕이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 탕탕, 골고루 두드려서 말이야!”
“아이고! 문어 살려!”
대충 두족류들이 제일 질색할 법한 협박을 내뱉자 문어의 색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탕탕이 협박이 먹혀들어 간 것인지 문어발을 오므리며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애처로워 보였다.
『탕탕이가 뭐야?』
“그런 게 있어. 잘게 다지고 참기름 뿌려서 고소하게 만들어놓은 거. 쿠키보다 더 고소하고 달달할 걸?”
『그래? 맛있겠다!』
블루가 입맛을 다시며 문어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진득한 눈빛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그는 발을 모두 들며 항복을 선언했다.
“살려줘! 동료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줄게! 그 대신에 나랑 동료들을 식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줘!”
“그래. 식재료로 사용하지 않을게. 빨리 안내해.”
실비아의 대답에도 머뭇거리며 즉각 안내하지 않던 문어는 그녀가 망치를 내리자, 그제야 앞장설 마음이 들었는지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수인으로 다시 변했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둘이 양옆으로 따라붙었다. 문어 수인은 왼쪽에 있는 블루의 다부진 팔뚝을 힐끗, 오른쪽에 있는 실비아의 손에 든 망치를 힐끗 바라보곤 침을 꿀꺽 삼켰다.
가자미눈이 된 실비아는 영화에서 본 악당들의 대사를 떠올리며 흉흉한 말을 내뱉었다.
“헛짓거리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허허, 속고만 사셨나….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마법 못 쓰는 거 이미 봤잖아.”
“확, 수틀리면 이 망치로 죄다 다져버릴 거야! 이제 슬슬 밥 먹을 시간이야. 난 배가 고파. 무슨 말인지 알지?”
문어 수인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헐레벌떡 목적지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도시 가운데에 있는 초대형 분수대였는데, 특이하게도 근처로 가자 소금기가 확 느껴졌다.
분수대의 가운데에는 물병을 든 거북이 석상이 있었는데, 물병에서 바닷물이 나와서 분수대를 채우고 어딘가로 다시 그 물이 빠져나가는 순환구조인 듯했다. 분수대 앞에 선 문어수인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여기로 들어가면 동료들이 있어.”
“뭐? 밖으로 유인해! 우리가 여길 들어갈 순 없잖아.”
“아, 그, 그렇지? 유인, 유인을 해야…어? 저기 온다! 에잇!”
문어 수인은 눈치를 보더니 실비아 뒤편을 가리키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풍덩!
블루와 실비아가 뒤를 돌아보며 한눈을 파는 그 잠깐 사이에 문어로 변신한 수인이 분수대에 뛰어들었다. 어찌나 재빨랐는지, 알아챈 후에는 이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뒤였다.
“뭐야! 도망쳤어!”
실비아가 깜짝 놀라 분수대에 고개를 내밀었다. 제국에서 본 일반적인 분수대와 달리 이 도시의 분수대는 수심이 꽤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어두운 걸 보면 그들이 지나온 해저 동굴과 연결된 걸지도 몰랐다.
“방심하지 말 걸 그랬어. 설마 분수대 속으로 도망갈 줄이야. 바닥이 안 보이는 걸 보니 꽤 깊은가 본데, 어떡하지?”
『큰일이네. 마나를 안 쓰는 수인인지라 마나 추적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까 잡힌 경험이 있으니 다시 기어 나오지도 않을 것 같고…. 잠수해서 찾아볼까?』
“흐음, 이 분수대 속에 고위 몬스터들이 다 들어가 있는 거면 완전 적진에 뛰어드는 셈인데. 그것들은 바다에 익숙한 수인들이니 섣불리 들어갔다간 우리가 불리해질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일단 분수대에 들어가서 사라진 문어를 추적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때 고민하던 실비아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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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게임을 시작합니다! <퐁당퐁당 강태공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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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미니게임이다.’
저번 마차 몰기 미니게임에 이은 낚시 미니게임이었다. 이 미니게임을 이용하면 도망쳤던 문어 수인은 물론 그의 동료들도 다 낚을 수 있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바다 놈들이니 낚시를 하는 수밖에!”
호기롭게 외친 실비아는 오랜만에 인벤토리에서 <최고급 낚싯대>를 꺼냈다. 낚싯대를 손질하고 있으려니 논이 동그래진 블루가 그녀의 낚싯대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거 낯설지가 않은데?! 어디서 본 거 같아!』
“…블루야, 미끼 걸 만한 거 없을까? 얘네들을 다 낚아버리겠어!”
바닷가 마을에서 자신을 낚았던 낚싯대가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걸까? 블루의 말에 실비아는 잠시 멈칫했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미니게임 대기화면이 떠 있었는데, ‘낚싯대에 미끼를 거시오. 효과 좋은 미끼가 대어를 낚습니다.’라는 친절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끼?』
‘미끼’라는 단어를 못 알아듣는구나. 실비아가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했다.
“문어나 다른 생선들을 유인할 만한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말하는 거야. 용왕님이 챙겨주신 음식 있지? 그중에 괜찮은 거 있으면 줘봐.”
『아아, 잠깐만! 뭐가 있었더라….』
블루가 이공간을 뒤적여 음식 꾸러미를 꺼냈다. 그 안에는 동양풍 왕국답게 약과와 한과, 명태전과 오색 꼬치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일단 몇 개 먹자.”
배가 고팠던 그들은 우선 몇 개 찹찹거리며 급하게 먹어 치워 허기를 채웠다. 그 후 실비아가 오색 꼬치에 있던 고기 하나를 조그맣게 떼어내 낚싯바늘에 걸었다.
“후우, 내 낚시 실력을 보여주마!”
심호흡을 한 실비아가 낚싯대를 단단히 쥔 손을 힘차게 휘둘렀다. 퐁! 하고 낚싯바늘이 분수대로 들어가고 그다음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하암! 뭐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쉬잇! 떠들지 마. 물고기가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블루가 하품을 크게 하자 실비아가 입에 손가락을 대며 주의를 줬다. 기껏 근처까지 다가온 사냥감이 도망쳐버리면 곤란했다. 실비아의 진지한 눈빛에 블루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닫았다.
근데 좀 오래 걸리긴 했다. 언제 무냐 이것들…. 원래 사냥이든 낚시든 큰 것을 낚으려면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게 중요한 법. 계속 같은 자세로 있었더니 점점 다리가 저렸다. 실비아는 코에 침을 묻혀가며 낚싯바늘을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블루가 이공간에서 낚시 의자를 꺼내 실비아와 제 엉덩이 밑에 하나씩 깔았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이어지길 한참, 낚싯바늘이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실비아의 눈앞에 붉은색이 반쯤 찬 작대기가 떠올랐다.
‘이 붉은색이 꽉 차도록 당기되, 과하게 당기면 안 되겠구나.’
게임 세계에 처음 들어와 낚시할 때는 실제 낚시를 해본 적 없기에 미끼를 안 거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낚시 미니게임이라면 심심풀이로 해본 적 있어 자신 있었다. 실비아는 일단 낚싯대를 당겼는데, 꽤 엄청난 놈이 걸렸는지 낚싯대가 묵직했다.
“으으! 이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잡고 말 테다!”
『엄청난 게 걸렸나 봐!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도와줄까?』
블루는 턱에 호두가 생기도록 안간힘을 쓰는 실비아가 안쓰러워 도와주려고 다가왔다. 조그만 몸으로 낑낑대는 걸 보니 귀엽단 생각과 함께 힘이 되어 주고 싶은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도와주고 나면 힘센 나한테 감동하지 않을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비아의 거친 대답이 돌아왔다.
“안 돼! 내 손맛을 망치지 마!”
『어? 어어…. 미안해. 네 손맛을 망쳐서.』
블루의 조그만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사과했다. 그녀가 눈을 부릅뜨며 외치자 블루의 흐뭇하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는 풀이 죽은 채 옆으로 물러섰으나, 실비아는 낚시에 정신이 팔려 그의 측은한 모습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야, 이놈과 나만의 사투인 거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롯이 내 힘으로 이뤄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과제! 반드시 해내고 말겠어.’
낚시게임에 과몰입한 실비아의 안광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낚싯대를 당기다가, 붉은 게이지가 가득 차려고 하면 힘을 살짝 빼며 최선을 다했다.
“익! 이이익! 이노옴!”
『잡았다! 실비아, 잡았어!』
실비아와의 힘겨루기에 진 생선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분수대에서 끌려 나온 사람 팔뚝 크기만 한 생선이 땅바닥에서 힘차게 퍼덕거렸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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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혔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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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이라니! 잡느라 온 힘을 다 썼건만 너무하네.’
메시지를 본 실비아의 눈썹이 힘없이 내려갔다. 온몸에 땀이 흥건한데 수인을 잡긴커녕 이라니, 절망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상세 설명을 보니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하루의 근심이 날아간다. 맛이 엄청나다.’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잘 보관해뒀다가 요리로 해 먹으면 제격일 듯했다.
“수인은 안 잡혔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몇 번 더 낚시를 해봐야겠다. 블루야, 일단 이 생선 좀 어떻게 보관할 수 없을까?”
물 밖에 나온 생선을 이대로 방치해두면 얼마 못 가 죽어버릴 것이다. 실비아의 말에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선을 손에 들었다. 그러곤 이공간에서 어디서 많이 본 커다란 물건을 꺼냈다.
“뭐야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