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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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평가 <라이징 스타>의 효과가 점점 희미해집니다. 스타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금방 잊히는 법. 세간의 평가가 <비범한 제국민1>로 변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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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세간의 평가가 다운그레이드되다니.’
설명을 읽지 않아도 새로 획득한 세간의 평가는 <라이징 스타>보다 별로일 게 뻔했다. 실비아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별 이유 없이 공짜 물건이나 혜택을 받았었다. 용왕도 별다른 퀘스트 없이 아이템을 주지 않았던가. 그게 <라이징 스타>의 비호 아래에 있기 때문이었다니.
‘그럼 이제 아이템을 그냥 얻을 확률이 줄어드는 건가?’
언론에 얼굴 좀 안 비췄다고 금방 잊혀 버리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하나 더 저질러서 신문에 얼굴 한 번 더 비추고 내려올 걸 그랬다. 이런 것까지 현실 반영할 필요는 없는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혹시나 해서 상세 설명을 보니 <비범한 제국민1>의 효과는 별다른 게 없었다. ‘가능성이 풍부한 제국민1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별다른 효과는 없다.’라는 간단한 설명만 볼 수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제국으로 돌아가면 좀 더 좋은 세간의 평가를 얻도록 노력해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실비아는 치마를 살짝 손에 쥔 채 블루의 앞에 나타났다. 풍성한 붉은색 치마와 연푸른색 넓은 소맷자락의 상의로 매치한 옷은 실비아의 갈색 머리와 묘하게 어울려서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실비아! 정말 예쁘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아.』
“그래? 에이, 그 정도는 아냐!”
선녀를 본 듯 넋이 나간 블루의 표정을 보니 실비아의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괜히 점잔을 떤 실비아는 거들먹거리며 한 바퀴 돌았다. 넓은 치맛자락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핑그르르 돌았다. 옆이 살짝 트여있고 안에는 바지가 있는 치마바지라서, 전투할 때도 무리가 없는 좋은 옷이었다.
옷맵시 자랑도 잠시, 노닥거리는 건 그만하고 던전의 상황을 살필 차례였다. 그들은 감시탑에 고개만 살짝 내민 채 아래를 주시했다.
『던전 공략에 앞서 드래곤 신전을 가고 싶긴 한데, 아버님이 말씀해주시기로는 신전 내부는 날아서는 들어갈 수 없대. 보안 마법을 걸어놔서 도시를 충분히 걸어 다닌 이들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나?.』
“그래? 아래로 내려가긴 해야겠네. 가는 길에 방해하는 몬스터가 없으면 신전부터 가고, 아니면 몬스터 토벌부터 먼저 하는 걸로.”
날개를 펼친 블루는 그녀를 감싸 안은 뒤 길가에 조심스럽게 착지했다. 인가들이 드문드문 보이긴 했지만 다 전시용인지 살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고 깔끔했다. 사는 이가 없이 관리만 했다던 용왕의 말대로였다. 그럼 아까 봤던 것들은 뭘까? 오염된 기운으로 생성된 하위 몬스터들인 걸까.
“신전으로 얼른 가보자.”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그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었을까,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기다란 두루마리가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
“어엇! 뭐야 이게?”
『잠깐…. 난 못 읽겠어. 제국어 같은데?』
실비아의 얼굴에서 두루마리를 걷어낸 블루가 난색을 표했다. 블루는 제국어를 이젠 어느 정도 유창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읽는 건 아직 무리였다. 그녀는 얼른 두루마리를 펼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읽어내렸다.
“어디 보자…. 걷기 운동은 만병통치약! 수인이 된 걸 까먹고 헤엄만 치면 아주 위험합니다. 자주 걸어서 허리 건강을 지킵시다! 일만 보를 걷고 나면 건물 어디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뭐야, 일만 보나 걸어야 한다고?”
일만 보를 걸으라는 두루마리의 지시에 실비아가 기함했다. 두루마리엔 ‘1/10000’이라고 적혀있었는데, 그녀가 발을 옮기자 1이 2로 변하며 걸음이 카운팅 됐다. 아무래도 마법으로 만든 두루마리인듯한데, 일만 보를 걸어야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니 절망적이었다.
‘해양생물들을 위한 복지정책 같은 건가. 여기는 뭐, 청계천 같은 거라고 보면 되겠네.’
<심해에 잠긴 도시>는 오염된 기운으로 던전화가 되기 전에는 해양생물 수인들의 걷기 운동을 돕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실비아가 옆에서 읽어준 두루마리의 내용에 블루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일만 보나 걸어야 한다니.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이건가 봐. 이러면 침입자들은 일만 보 걷기 전에 경비병들에게 발각될 테니 보안 마법으로도 효과가 좋긴 하겠어.』
“후우, 그러게. 참 효과 좋은 보안 마법…. 일단 걷자.”
또 고생길이 열렸다, 실비아는 욕을 참으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둘은 두루마리의 지시대로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일만 보가 되려면 한참 멀었으니 올라가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아도 됐기에, 두루마리는 일단 집어넣었다. 잠시 걷고 있으려니 블루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걸음을 멈췄다.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어디서?”
실비아가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는 순간 그녀의 귀에도 수상한 소리가 들어왔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뭔가 철들이 덜그럭대는 소리 같기도 한 게….
“어머, 뭐야!”
『이게 대체…!』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 있던 거리가 절그럭 소리를 내며 변하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건물들이 마치 로봇처럼 분해됐다가 합체를 반복했다. 거리 위에는 덜커덩-소리를 내며 끈 달린 물건이 내려오거나 바닥에서 튀어 올라오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잔뜩 경계하고 있던 그들의 귓가에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가로등에 달려 있는 확성기에서 나왔다.
「으랏차차 철인 3종 경기를 시작합니다! 그냥 걷기 참 지겨우시죠? 철인 3종 경기를 즐겨보세요!」
“하아…. 이건 또 뭐람.”
실비아의 얼굴이 상태 이상에 걸린 것도 아닌데 폭삭 삭아버렸다. 그냥 일만 보 걷는 것도 절망스러운데 철인 3종 경기를 하라니, 멀리 시선을 던져보니 복잡하게 바뀐 도시들이 보였다. 이것저것 구조물들을 넘어서 도시를 한 바퀴 돌고 와야 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제자리걸음은 안 될까.’
혹시나 해서 제자리걸음을 걸어봤지만, 다시 펼쳐본 두루마리 속 숫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시를 한 바퀴 돌아야 일만 보를 인정해주는 모양이었다. 플레이어의 고생을 유도하는 게임의 노력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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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힘으로 길의 끝에 다다르면, 원하는 것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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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던 그녀의 눈앞에 얼토당토않게 근엄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원하는 것이라니, 뭘 말하는 걸까? 원하는 것이라, 고위 몬스터거나 아니면 거북이 수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던전 공략을 완수하려면 고위 몬스터를 정화해야 했는데, 확성기 목소리의 주인이 고위 몬스터가 아닐까?
뭐가 됐든 열심히 하라고 응원까지 하는데 이 이상 망설일 순 없었다. 실비아는 펄럭거리는 치마를 엉덩이까지 걷어 질끈 묶었다. 어차피 치마바지인지라 망측스럽진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해야겠네. 제자리걸음으로는 두루마리 속 숫자가 채워지지 않아.”
『그렇네. 걸어야만 되겠어. 아니지, 뛰어야겠네. 걷다간 너무 오래 걸릴 테니까. 실비아, 잘 따라올 수 있겠어?』
날개를 완전히 집어넣은 블루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실비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반짝였다.
“따라오라니, 난 달리기도 누구보다 빠르게 할 수 있거든? 놀라지나 마셔!”
둘 다 준비 자세를 취하자 확성기에서 달리기하기 전의 대기음이 흘러나왔다.
「준비, 띵-띵-띵! 시-작.」
‘<손은 눈보다 빠르다>사용!’
실비아는 이제는 페이보릿 스킬이 된 <손은 눈보다 빠르다>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공기의 흐름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확성기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려왔다.
『가자!』
“응!”
시작 소리와 함께 실비아와 블루는 빠르게 달렸다. 길거리에 있는 허들을 껑충껑충 몇 번 넘기고 코너를 돌자 눈앞에 더러운 웅덩이가 나타났다. 사이사이에 편편하고 높은 기둥 같은 디딤돌들이 있었지만, 무척 디디기 힘들게 넓은 간격으로 배치돼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건너지 못하고 웅덩이에 빠져 고생할 고난이도였다.
‘무슨, 출발 드림X이냐고!’
키가 큰 블루는 어려움 없이 성큼성큼 디딤돌을 딛고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조금 뒤처진 실비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쟨 정말…. 그럼 그렇지, 하루 만에 성격이 바뀌긴 힘든 법.
시합이 아니라 같이 넘어가야 하는 건데 블루는 철인 3종 경기에 푹 빠진 건지 실비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저 혼자 넘어갔다가 뒤늦게 그녀가 옆에 없는 걸 깨닫고 뒤돌았다. 실비아는 황새를 쫓아가려다가 놓친 뱁새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물웅덩이 앞을 서성였다.
그냥 몸이 젖는 걸 감수하고 디딤돌을 건너볼까? 그 순간,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웅덩이에 엉덩방아를 찧거나 발목이 잠기거나 하면 실격입니다. 꼭, 발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날아가거나 하는 건 부당행위입니다.」
블루를 염두에 둔 듯 확성기가 엄중하게 경고해왔다. 빠지지도 말고 꼭 발을 사용해서 웅덩이를 건너라니, 이걸 어쩌면 좋담?
‘뭐, 이런! 난 블루처럼 다리가 길지 않다구! 거기다가 실격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확성기 목소리를 들은 블루가 그녀 쪽으로 손을 내밀며 물었다.
『아! 실비아, 내가 도와줬어야 했는데, 다시 돌아갈까?』
“응? 아니, 잠깐….”
혼자 건너가기 힘들 것 같은데, 블루의 도움을 받을까나. 몸이 빨라졌어도 점프력이 갑자기 느는 건 아니었기에, 넓은 간격의 디딤돌을 건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지,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