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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77화 (277/372)

277화

“어엇!”

『실비아, 내 허리 꽉 잡고 있어!』

레버를 잡고 있던 조그만 몸이 물살을 못 견뎌 급격하게 안으로 쏠렸다. 블루는 휩쓸려갈 뻔한 그녀를 재빨리 낚아챈 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처럼 날개로 단단히 감쌌다.

곧 정신없는 동굴탐험이 다시 시작됐다. 당황했던 처음과 달리 물살에 익숙해지니 살짝 스릴도 느껴졌다.

‘오션월X의 미끄럼틀 같기도 하고?!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짜릿해!’

훠우, 예! 같은 추임새를 조그맣게 외치며 그녀는 즐기는 자 모드에 들어갔다. 블루가 당황한 듯 ‘왜 그래, 실비아.’라고 조그맣게 속삭였지만, 그도 곧 그녀와 같이 즐기는 자 모드에 들어갔다.

“야호!”

『와, 재밌다!』

물살이 그들을 이리저리 신나게 흔들었다. 이런 의도로 만든 던전은 아닐 텐데, 그들은 놀이기구 타듯이 소용돌이를 타고 신나게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지나가다가 우렁찬 폭포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이 밑으로 빠져나갔다. 엉덩이가 휑해진 실비아가 데드엔딩의 악몽을 떠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악! 안돼!”

『괜찮아.』

폭포 밑으로 떨어지기 전 블루가 그녀를 꽉 잡은 채 날개를 펼쳤다. 몸길이의 두 배는 되는 날개가 펼쳐지고 둘은 무사히 폭포에서 빠져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길이의 폭포가 보였다. 한참 밑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로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심해동굴이었는데 폭포가 나오다니? 정말 한 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네.’

실비아는 블루의 품에 안긴 채 눈을 비벼 주변을 살폈다. 폭포 밑에 호수가 있고 그 앞을 안개로 덮인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블루가 무릎 밑과 등을 받쳐서 안아주고 있었기에 실비아의 손은 자유로웠다. 품을 뒤적여 나침반을 꺼내자 바늘이 빙글빙글 돌더니 숲 너머를 가리켰다.

실비아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숲을 지나가면 드래곤 신전이 나오나 봐! 어서 가보자.”

『응. 꽉 잡아.』

블루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절벽을 발견하곤 그쪽으로 날아갔다. 얘가 앞으로 가라니까 왜 뒤로 돌아가지? 그 의문은 바로 해결됐다. 블루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절벽 쪽으로 날아가더니, 아까처럼 강하게 절벽을 박차고 로켓처럼 또 날아갔다!

“으아아아! 사람 살려!”

미친 듯이 뺨을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실비아가 또 비명을 질렀다. 속도가 어마무시했기에 순간 얼굴이 뒤로 쏠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블루의 몸통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충격을 버텼다.

‘빨리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안겨있는 내 생각도 해줘야지!’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한참 들리고 블루가 심해동굴 입구에서처럼 갑자기 빙글 몸을 돌렸다. 곧 쾅! 하고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어딘가에 착지한 것이다. 돌가루가 심하게 휘날리는 걸 보니 또 발로 단단한 벽을 부순 모양이었다.

실비아는 콜록콜록 기침하며 손을 휘저었다. 휘날리는 돌가루 때문에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우, 드래곤들은 다 이래? 무슨 오늘만 살 것처럼 날아가냐고!”

『미안해, 실비아. 그래도 덕분에 일찍 도착했잖아.』

사방에 휘날리던 돌가루가 점점 가라앉더니 시야가 맑아졌다. 실비아의 눈에 동양풍의 기와지붕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시선을 내려보니 인적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가 휑했다. 이곳저곳을 훑어봐도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게 무척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여기가 <심해에 잠긴 도시>구나.”

블루가 로켓처럼 날아온 덕분에 숲을 순식간에 지나 도시를 둘러싼 성벽 위에 착지한 것이다. 박살 난 돌벽은 다른 기와집들보다 높았기에 실비아와 블루는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대체로 낮은 건물들이 위치했는데, 중심부에서 살짝 비켜 간 곳에 우뚝 솟은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이 보였다. 이질적인 것으로 보아 그들이 찾던 ‘드래곤 신전’이 분명했다. 나침반을 꺼내 보니 바늘이 그 건물 쪽을 강하게 가리켰다.

“저 건물이 드래곤 신전 같아 보이는데?”

『저기로 날아가야겠네.』

“이번엔! 정상적으로 가자. 굳이 건물을 부수고 다닐 건 없잖아.”

혹시나 또 로켓처럼 날아갈까 봐 겁이 난 실비아가 급히 그를 만류하자 블루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또 그 미친 방법으로 날아갈 셈이었나 본데,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 다행히 부드럽게 날개를 펄럭이는 블루의 모습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느려진 비행 속도 덕에 실비아는 아래를 살펴볼 수 있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는 건가? 정말 아무도 안 사나.‘

그 순간 아래로 향한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건물 사이에 뭔가 수상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비슷한 덩치에 옷을 걸쳤지만, 던전에 멀쩡한 사람이 살 리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멀리서 본 거라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드래곤 신전은 오염된 기운이 침범할 수 없다고 했었지, 그러면 그곳 빼고는 도시 전체가 다 오염된 기운에 당했다는 건데, 고위 몬스터가 도시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겠구나.’

“방금 저 아래에 이상한 게 지나간 것 같아.”

『음, 던전 공략을 해야 도시가 정상화된다고 했던가? 몬스터들을 다 잡아야겠네.』

“그렇지. 근데 일반적인 몬스터는 아닐 거야. 던전을 갈 때마다 늘 고위 몬스터는 때리지 않고 정화해야 했거든.”

그들은 도시 내부의 감시탑에 도착했다. 실비아는 블루가 몸을 올려주자 탑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도 실비아를 먼저 올려준 뒤 뒤따라 뛰어올랐다.+

“대비 없이 내려갔다가 기습공격을 받으면 곤란한데…. 너랑 비슷한 옷이 필요해. 스치듯이 봤지만 몬스터들이 여기 왕국 사람들과 비슷한 옷을 걸치고 있었던 것 같거든? 위장해야 하는데 어쩌지.”

던전 안에 있는 존재들은 이지를 잃은 상태기에 그들과 비슷하게 꾸미면 공격을 잘 하지 않았다. 이를 떠올리며 실비아가 방법을 찾자 블루가 ‘아!’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이공간을 뒤적였다.

『아까 아버지가 챙겨주신 봇짐이 있는데, 그중에 우리한테 필요한 게 들어있을 것 같아. 곤란할 때 꺼내 보라고 말씀하셨었거든.』

블루가 이공간에서 상자를 하나 끄집어냈다. 커다란 상자를 열자 블루와 비슷한 비단옷 한 벌이 나왔다. 동양풍 여자 옷으로 붉은색 하의에 연푸른색의 넓은 소맷자락의 상의가 한 세트였다.

마치 동양풍 RPG에서 봤을 법한 신비로운 옷에 실비아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예쁘다.”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옷을 들었다. 블루는 이미 도포 같은 걸 걸치고 있으니 갈아입을 필요가 없었고, 실비아만 갈아입으면 될 듯했다.

“잠깐, 옷이 흠뻑 젖었네. 이러면 어떻게 하지이….”

달라붙은 옷을 보며 실비아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안에 걸친 갑옷은 투명하게 사라져 능력치만 남은 상태였기에, 얇은 원피스가 딱 달라붙어 살이 비치는 게 야하기 짝이 없었다.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젖은 옷은 자신이 봐도 엄한데, 블루가 보면 어떨까?

‘이걸 보고 좀 불순한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실비아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블루를 힐끗댔다.

『그건 걱정 마. 이 목걸이면 되니까.』

휘리릭! 거지 같게도 블루는 목걸이를 써 실비아와 제 몸을 바로 뽀송뽀송하게 말려버렸다. 순식간에 건전한 모습이 된 실비아가 입을 삐죽거렸지만, 어머니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블루는 현재 불경함 0%의 뇌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자극적인 모습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었다.

‘뭐 이런 거지 같은 게임이 다 있지? 직진남 아니었어? 줬다 뺏기 있냐고. 공략 코앞에 와서 저렇게 건전해져 버리면 어쩌자는 건데!’

그러나 이내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불만스러웠지만, 어차피 결국에는 먹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어머니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한 블루 앞에서 계속 이런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자신이 몹쓸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난, 플레이어로서 공략이 절실할 뿐이야. 절대 변태가 아니라고! 우씨….’

“휴…. 갈아입고 올게.”

실비아는 탑의 한구석, 쌓여있는 포대 자루 뒤에 숨어 옷을 갈아입었다. 새삼 블루 앞에서 벌거벗는 게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훤하게 바깥이 뚫린 감시탑에서 옷을 벗었다간 벌거벗은 채 공격당하는 흉측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던전마다 이렇게 옷을 갈아입고 위장해야 하는 거야? 정말 성가셔. 게임이면 캐릭터를 다양하게 꾸밀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아! 게임이라서 이런 거구나.’

게임 빙의 63일 차, 실비아는 던전에 갈 때마다 그곳 분위기에 맞게 위장하는 이유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왜 몬스터들이 이지가 흐려져서 위장을 해야 하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건만, 다양한 옷을 입음으로써 유저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거였다. 이 간단한 이치를 이제야 깨닫다니. 노점 게임이긴 하지만, 이게 만약 온라인 게임이었다면 플레이어가 갈아입는 옷들은 원래는 캐시 아이템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플레이어가 캐시템을 사지 않으면 공략도 힘들고 보는 재미가 덜 하게 게임을 만들었겠지. 거기다가 수집욕이 있는 플레이어들이라면 옷을 모으는 재미도 빠트릴 수 없는 거니까, 옷을 갈아입지 않고 게임 공략이 가능했어도 캐시템을 사는 유저가 많았을 것이다.

‘흠, 확실히 이것저것 옷을 입고 변장하는 재미가 있긴 했지. 모니터 앞에서 했다면 사진을 자주 찍었을지도.’

실제로 시스템 안에 사진첩 기능도 있지 않은가. 실비아가 딱히 저장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이상한 장면들이 찍혀 있어서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뭐,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다고 해도 여러 옷을 입을 수 있으니 눈이 즐거웠겠지? 빙의한 나로선 좀 성가시지만 말이야.’

생각을 마친 실비아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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