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실비아의 눈동자가 어느새 욕망으로 흐릿해졌다. 그녀의 끈적하고 집요한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블루가 물가로 다가갔다.
『그럼 이제 들어갈까.』
“어, 응. 그래…. 아우, 물에 들어가면 옷이 젖을 텐데! 좀 부끄럽지만, 우리 둘만 있겠다, 옷을 벗고 들어가야….”
풍덩!
“휴우, 저 버릇없는…. 사람 말은 끝까지 듣고 가야지.”
블루는 어머니를 빨리 보고 싶은지 실비아의 헛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입수했다.
실비아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놓칠세라 바로 입수했다. 물에 들어간 실비아는 호흡이 자유롭게 되는 것에 감탄했다. 용왕이 준 <임시 아가미>는 그녀를 물고기 수인처럼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었다. 다행히 검게 보였던 바다는 안으로 들어오니 풍경이 또렷하게 보였다. 눈도 물고기처럼 만들어 주는 걸까. 신이 난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야-호! 어머 어머, 물속에서도 말을 할 수 있네!”
『나도 아버님이 너랑 똑같은 물건을 주셨어. 걱정되셨나 봐. 저번에 말했듯이 드래곤들은 아가미가 달린 게 아니라 물 밖에서 숨을 쉬어야 하거든.』
블루의 목 옆에도 그녀가 받은 것과 똑같은 아이템이 달려 있었다. 둘 다 줄 거면 왜 고르라고 한 거야? 입술을 삐죽거리며 꿍해 있던 실비아는 곧 물고기가 된 것 같은 무한한 자유를 만끽했다.
물속인데도 말을 할 수 있다니. 완전 꿀템이었다. 거기다가 자맥질을 좀 쳐보니 평소에 수영할 때보다 훨씬 쉽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었다. 신난 실비아는 햄스터가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서 잠시 수영을 즐겼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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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어딘가에서 신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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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엇, 이건 뭘까.’
실비아는 두리번거리며 메시지의 주인을 찾았다. 곧 수상하게 반짝거리는 바위가 보였다. 저건가? 바위 근처로 다가가자 신묘한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녀가 바위에 붙어 낑낑거리고 있자 블루가 헤엄쳐 다가왔다.
『뭐 하는 거야?』
“너도 좀 같이 채취하자!”
그녀가 바위에서 발견한 건 석화와 해삼이었다. 석화와 해삼은 현생에서 실비아가 환장하고 먹는 해산물이었다. 소주와 함께 즐겨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실비아의 입에 침이 잔뜩 고였다.
‘게임 세계에서 이런 걸 볼 줄이야. 절대 놓칠 수 없어!’
석화는 바위에 단단히 붙어있어 떼기가 힘들었다. 망치를 불러내 깨부쉈다가는 소중한 굴이 흩어져 버릴 텐데. 고민하던 실비아는 손에 끼고 있는 레이저 반지를 떠올렸다.
“블루야, 잠깐 비켜봐.”
『왜…뭐야!』
지이잉-!
블루를 멀찍이 떨어지게 한 실비아는 레이저 반지를 오랜만에 작동시켰다. 치석 제거 기능으로 제일 약하게 레이저를 조절하자 약간의 돌 부스러기를 만든 뒤 굴을 채취할 수 있었다.
굴을 떼어내는 모습을 보며 블루가 입을 헤 벌렸다.
해삼과 굴을 손에 들고 흐뭇해하는 실비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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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해삼 3개, 똑똑한 석화 2개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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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름만 들어도 먹으면 지력이 올라갈 것 같네!’
남신이 포인트를 지력에 쓰지 말고 아껴두라고 하더니 이게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실비아는 비교적 판판한 바위를 찾아 굴과 해삼을 올려두고 레이저 반지의 강도를 조절했다. 그녀가 하는 짓을 지켜보던 블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얘네들 오래 살아서 똘똘한 것 같은데? 곧 영물이 될 수도….』
지이잉-!
그러나 그가 말을 꺼냄과 동시에 실비아는 레이저 반지로 해삼과 굴들을 한꺼번에 요절냈다. 일렬로 세워 두고 자르니 손이 많이 가지 않아 좋았다. 손질 몇 번에 맛있는 해산물 모둠이 먹음직스럽게 바위 위에 펼쳐졌다.
‘어우, 너무 맛있겠다. 소주랑 먹으면 딱인데.’
레이저 소리 때문에 블루의 말을 못 들은 실비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야…. 맛있겠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블루는 오래 살아 영물이 될 뻔했던 굴과 해삼을 맘속으로 추모했다. 이미 깔끔히 손질됐으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해산물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으리라.
“어머, 이거 초장 없이도 맛있네. 갓 잡은 거라서 그런가!”
『으음, 맛있긴 하다….』
실비아는 오독오독한 해삼을 씹으며 블루에게도 한입 권했고 바닷속에서 때아닌 해산물 파티가 벌어졌다.
해산물을 다 먹고 껍질만 남기자 빵빠레 소리가 울리며 지력 상승을 알리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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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해삼과 똑똑한 석화를 섭취한 실비아의 지력이 총 2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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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구슬픈 음악 소리와 함께 이상한 메시지도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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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들에게도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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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헛소리야 대체. 음, 맛있다. 아주 싱싱하니 맛나네.’
손을 휘휘 저어 헛소리가 적힌 메시지를 치워버린 실비아는 열심히 남은 것을 먹어 치웠다. 회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해산물이었는데, 여기서 이걸 먹을 수 있을 줄이야. 블루와 함께 해산물을 다 먹어 치운 실비아의 눈앞에 축하곡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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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지력 700을 달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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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드디어 지력 700 달성이다. 그럼 호감도는?’
실비아는 블루의 상태 창을 켜 호감도가 얼마인지 살폈다. 어느새 블루의 호감도는 98! 딱 2만 더 올리면 공략조건 달성이었다. 그동안의 공략을 돌이켜보면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건지, 호감도가 오를 때마다 꼭 메시지가 뜨는 것은 아니었기에 자신도 모르는 새 98이 된 듯했다.
‘상태 이상 <영광의 상처> 덕을 톡톡히 본 걸까. 어제 이후로 블루가 날 더 좋아하는 거 같단 말이지? 어쩐지 눈빛도 더 진지해진 것 같고 말이야.’
실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곤 어제 일들을 떠올렸다. 물론 그녀는 헛다리를 자주 짚는 데다가, 도끼병이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신빙성 있는 추측은 아니었다.
남은 호감도는 던전 공략하다 보면 올라가겠지.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진득한 눈으로 블루의 가슴팍을 응시했다. 오늘 아침에 봤던 먹음직, 아니 멋진 갈색 피부에 마음껏 스크래치를 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블루는 그녀의 눈빛이 어떻든 말든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굴을 먹으면서도 혼자서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더니, 다 먹고 나서는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모양이었다.
‘휴, 그래. 블루의 어머니를 만나 뵙는 게 급선무겠구나.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엄마를 찾느라 절실한 얘한테 엄한 마음을 먹을 순 없지. 불건전한 마음은 잠시 넣어둬야겠어.’
고개를 저어 불순한 생각을 털어버린 실비아는 블루의 손을 잡고 던전의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용왕의 말로는 입구가 계속 바뀌어서 들어가기 힘들다고 했으나, 입장권을 가진 그녀라면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블루야, 우선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보자.”
나침반이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더니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블루는 빠르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갔다. 빠른 속도에 실비아가 따라가기 힘들어하자, 그가 팔을 뻗어 실비아의 잘록한 허리를 한 손으로 끌어안고 헤엄쳤다.
플레이어 버프 덕인지 용왕이 찾기 힘들어서 포기했다던 입구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정확히는 실비아가 알아본 것인데, 그녀의 눈에 다른 곳과 다르게 묘하게 반짝이는 해저 동굴 입구가 들어왔다.
“블루야, 저기! 저기가 입구인 것 같아.”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블루는 주변 바위를 발로 강하게 박차더니 마치 로켓처럼 빠르게 동굴로 날아갔다. 뭐야, 가자는 소리였지 이렇게 미친놈처럼 튕기듯 날아가란 소린 아니었는데?!
“으아아!”
<임시 아가미>는 <임시 아가미>. 아니, 날 때부터 바다에서 살았던 생선이라고 해도 이리 빨리 날아가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여러 번 죽었기에 블루 옆에서 항상 조심하는 실비아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천천히! 천천히 가락…컥!”
쾅!
동굴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 블루가 몸을 휙 뒤집었다. 그리고 동굴 입구 바위벽에 제 발을 꽂았다. 디딘 게 아니라 꽂은 게 맞았다. 발이 벽을 부수고 파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아이고옥! 블루야. 하마터면 나 죽을 뻔했잖아!”
『에이, 살아있잖아, 그럼 된 거지.』
실비아가 비명에 가까운 말을 내뱉자 블루는 어깨를 으쓱이곤 그녀를 놔주었다. 그녀는 바람에 나폴나폴 나부끼듯이 힘없이 헤엄쳐 바닥으로 내려왔다. 돌 부스러기가 해류를 따라 사라지고 블루도 벽에서 발을 하나씩 뽑고는 아래로 유유히 내려왔다.
‘어우, 어디 탈 난 곳 없지?’
더듬더듬 몸을 살펴보니 상한 곳은 없어 보였다. 다행히 데드엔딩이 찾아오는 비극은 없었다. 인간적으로 여기서 또 죽으면 시스템을 찾아가서 패버리려고 했던 실비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또 죽게 되면 나태 지옥이고 뭐고 게임 목표를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찾아서 도륙 내는 걸로 수정할 참이었다. 다행히 시스템은 염치는 없어도 눈치는 있었는지 그녀를 또 죽이진 않았다.
“잠깐, 나침반 확인 좀 하고.”
실비아는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블루의 팔짱을 끼고는 나침반을 보는 척 함께 입장했다. 입장권을 써야 하니 블루와 함께 들어가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