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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72화 (272/372)

272화

“응.”

블루는 답지 않게 망설이더니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말하기가 꺼려지는 듯 드래곤어로 물었다.

『저….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그 물음에 잠시 멍해졌던 용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담겼다.

『이제야 찾는구나. 그래. 마지막에 둥지에서 떠날 때 네 어미가 좀 매몰차긴 했지.』

『그건 몇십 년 전의 일이라 이제 기억도 안 나는걸요.』

『녀석. 이제야 물어보는 거 보니 아직 맘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이템에 정신이 팔려있던 실비아는 두 부자의 묘한 대화에 귀를 쫑긋거렸다.

‘어머니랑 사이가 안 좋은가? 그러고 보니 드래곤이 자웅동체도 아닐 텐데 아버님만 보이시네.’

실비아는 대충 아이템을 뒤적이는 척 두 부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블루는 아버지의 물음에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투덜거렸다. 힐끗 그 표정을 본 실비아는 실컷 어른스러운 척하더니 아직 애는 애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는 어디 계시는데요? 또 어디 놀러 가신 건 아니겠죠.』

『놀러 가긴. 네 어머니는…. 지금 갈 도시에 있단다.』

『도시요? 그럼 던전에 계신단….』

“네에?! 설마 어머님께서 던전 보스가 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놈의 게임이 드디어 미쳤나.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 거기다가 남주의 어머니를 정화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고난이도였다.

실비아가 놀라서 묻자 용왕이 어색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했다. 그러곤 다시 제국어로 말했다.

“그대는 드래곤어를 다 알아듣고 있었군. 이거, 하나하나 놀랄 일밖에 없는데? 아들아, 너 정말 대단한 사람과 친구가 됐구나.”

아버지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자 블루가 뿌듯한 듯 수줍게 미소 지었다. 어째 말만 친구고 분위기는 유사 상견례가 된 듯한 기분에 실비아가 이를 보이며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하하…. 그건 그렇고 내 아내 에리사가 던전 보스라…. 그럴 리가 없지. 그 걱정은 안 해도 되네.”

잠시 씁쓸하게 미소 짓던 그는 상자 속에 손을 넣더니 푸른색 물건을 하나 꺼냈다. 생긴 게 딱 나침반 같았는데, 푸른색 유리로 덮인 원형 장치 안에 오색깔의 바늘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어차피 꼭 주려던 물건 중 하나긴 해. 이 바늘의 방향대로 계속 따라가면 에리사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에리사는 오염된 기운이 침범할 수 없는 드래곤 신전에 있을 테니, 보스가 됐다거나 하는 걱정은 하지 말고.”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아이템을 챙겼다. 블루의 어머니가 던전 보스가 아니라 안전하게 신전 안에 계신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리 게임에 눈이 뒤집힌 독기 가득한 실비아라도 남의 어머니를 망치로 두들겨 패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함부로 덤빌 수 없는 드래곤이라서 자칫하면 반대로 자신이 두들겨 맞아 가루가 될 것 같았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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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나침반>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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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가 인벤토리에 물건을 넣자마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두 드래곤이 눈치채지 못하게 상세 설명을 터치해보니 ‘원하는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 지금은 드래곤 신전을 가리키고 있다.’라는 설명이 보였다.

또 뭐가 좋으려나. 그녀는 혹시나 아이템의 상세 설명을 볼 수 있나 싶어서 하나씩 들었다 놨다 해봤지만, 애석하게도 비밀상점과 달리 획득하기 전엔 쓰임새를 미리 알 수 없었다.

“실비아 양,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럼 내가 하나 추천해 주도록 하지.”

“앗, 네. 감사합니다.”

용왕은 턱을 괸 채 고민하더니 상자 안의 물건을 꺼냈다. 실비아는 공손하게 두 손 모아 아이템을 받아 들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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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장인이 만든 갑옷>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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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지. 조그만 건데 웬 갑옷?’

예전에 루카에게 받았던 전서구 옷이랑 비슷한 크기의 미니 옷이 그녀의 손 위에 있었다. 설마 전서구한테 입히란 건가? 참둘기 손을 빌릴 정도로 궁하진 않은데…. 그녀가 손바닥을 뚫어지라 바라보자 용왕이 물건을 설명해주었다.

“그건 조그마해 보이지만, 착용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손에 든 이의 몸에 맞게 크기가 커지는 갑옷이야. 옛날에 한창 대장간 기술을 취미로 배울 때 내가 만들었던 것이지. 인간들이 만든 방어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구력이 강할걸? 드래곤은 대충 눈감고 만들어도 인간들보다는 솜씨가 좋…. 아차, 인간 앞에서 이런 소리 하면 안 되지.”

인간 흉을 보던 용왕이 실수했다는 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그런 것치곤 별로 미안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이 갑옷을 블루의 아버지가 만들었다고? 근데 취미로 대장간 기술을 배웠는데 ‘장인’이란 이름이 붙는단 말인가. 아무래도 께름칙했던 그녀는 두 드래곤 몰래 아이템의 상세 설명을 터치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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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장인이 만든 갑옷>

- 드래곤 …장인이 만든 갑옷이다. …가 될 이를 단단히 지켜준다. 착용할 시 적의 마법 공격을 20프로의 확률로 반사, 물리 공격을 50프로 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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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효과 좋아. 근데 앞에 이 깨알 같은 글씨들은 뭐지, 돋보기를 대보자.’

수상한 아이템 설명에 실비아는 돋보기를 품에서 꺼내 들이댔다. 험악한 게임 세계에서 눈탱이 맞지 않기 위해 항시 들고 다니는 실비아의 필수품이었다. 자세히 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드래곤 ‘예비’장인이 만든 갑옷이며 ‘예비 며느리’가 될 이를 단단히 지켜준다는 어이없는 설명이 있었다.

‘이게 뭐야.’

실비아가 신뢰감을 잃은 눈으로 용왕을 바라봤지만, 그는 태연한 낯빛이었다. 뭐라 따지려던 그녀는 아이템 설명은 자신만 볼 수 있는 기능임을 떠올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뭐…. 어차피 아이템 설명으로 날 구속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개발자가 재미로 적어둔 설명일 수도 있고 말이야. 또, 어떻게 보면 블루의 소중한 첫 경험을 곧 앗아가게 될 테니 예비 며느리가 된단 건 틀린 말은 아니지.’

예비라고 했다, 예비. 대학이나 청약 당첨만 해도 예비번호를 받는다고 해서 꼭 합격하는 게 아니듯이, 예비 며느리가 꼭 며느리가 되라는 법은 없었다. 이런 문구 하나 때문에 공짜를 마다할 이유는 없는 법. 그녀는 애써 납득하곤 득템한 갑옷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갑옷을 획득한 기쁨도 잠시, 탐욕 가득한 실비아는 또 뭘 주려나 싶어 상자 안을 군침을 흘리며 바라봤다. 실비아의 겉껍데기 효과는 무척 좋아서, 겉보기엔 죄송한 마음에 더 고르기 망설이는 것으로 보였다.

‘이걸론 부족해. 더, 더!’

방어구를 줬으니 기왕지사 세트로 무기도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초록색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지만, 다행히 두 드래곤 모두 그런 그녀의 눈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

『아버지. 그러고 보니 엘리셔스 제국이랑 드래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제….』

블루는 엘리셔스 제국 상공을 날아다니다가 루카 부자에게 선제공격 받았던 일을 얘기했다. 순간 얼굴이 굳어졌던 용왕은 마지막에 씩씩하게 살아가라는 덕담을 들으며 좋게 끝났다는 블루의 말을 듣고 다시 표정이 풀어졌다.

『그건 아주 옛날 일이란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의 일이지. 어차피 복잡한 이야기는 들어봤자 좋을 것이 없고, 불가침조약을 맺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워낙 오래전 일인지라 조심해야 할 리스트에 그 얘길 적어두지 않았구나. 어찌 됐든 무사했으니 다행이야.』

『네. 본체로 돌아올 수가 없어서 싸우기가 힘들었어요. 거기다가 보통 인간들이 아니라 고위마법사들이라 더 그랬고요.』

『인간들이란 드래곤과 달리 필사적인 마음이 있단다. 그리고 잔꾀를 잘 쓰지. 순수한 마나의 힘을 이용하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잔재주를 많이 부리니, 현신했다고 해도 쉽게 상대할 순 없었을 거야.』

진지한 얘기 중에 미안하지만, 실비아는 자신에게 더 이상 뭔가를 권하지 않는 용왕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고르면 고르는 대로 다 주려나? 그녀는 용왕이 다 가지라고 한다면 사양하지 않고 얼른 고개를 끄덕일 셈이었다. 부자의 대화가 끝나길 바라며 실비아는 괜히 상자를 요란스럽게 뒤적거려 주의를 끌었다.

『옛날 일이지만 상공을 날아다녔던 건 네 실수가 확실해. 어찌 됐든 제국에서 유희를 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들은 건 잘된 일이구나. 실비아 양과 함께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까. 그렇지만 너도 이제…. 실비아 양? 물건을 다 골랐나 보군.』

상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견디다 못한 용왕이 실비아에게 관심을 줬다. 그녀는 순진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네? 아뇨. 뭘 골라야 할지 몰라서 우선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었어요.”

실비아는 속물근성을 감추고 배시시 웃었다. 그 빙구 같은 웃음은 용왕도 깜빡 속일 정도로 순수해 보였고, 그는 흐뭇한 얼굴로 이것저것 권했다. 그러나 다 가져가세요, 란 말은 곧 죽어도 안 했다. 실비아는 속으로 구시렁대곤, 제일 좋아 보이는 물건 두 개를 더 골랐다.

“이거면 될 거 같아요. 사실 새 무기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망치가 안 보이네요. 제 주 무기가 망치거든요.”

“흠, 망치는 내 창고는 물론 이 심해 왕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텐데…. 흔히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기도 하고 이곳 수인들은 주로 육탄전을 쓰거나 마법을 쓰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려워. 망치, 망치라…. 던전 공략을 하다 보면 원하는 걸 얻게 될 수도 있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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