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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69화 (269/372)

269화

“뭐, 뭐야? 갑자기 성욕이 상승했어?!”

『무슨 소리야. 그냥 네가 하는 짓이 귀여워서 뽀뽀한 건데.』

“뭐, 그런…. 빨리 가자!”

실비아는 발갛게 뺨을 붉히곤 삐걱거리며 걸어갔다. 블루가 오늘따라 좀 낯설었다. 물개 모습으로 있을 때는 실비아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 계속 이것저것 물어대기에 답답하다고 느꼈었는데. 힘을 완전히 되찾아 제 구역인 바다로 온 그는 어쩐지….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어른이 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것저것 설명한 보람이 있구나. 물음표 살인마짓도 좀 줄어든 것 같단 말이지.’

100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둥지에서만 있어서 그런가, 속 터지는 구석이 많은 블루였다. 그러나 상태 창에서 본대로 ‘인간을 몰라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충실히 따른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좀 변한 것 같았다.

엘리셔스월드에서 무단 알바를 하며 여기저기 활개치고 다닐 때도 처음보다 똘똘해졌다고 느끼긴 했는데, 그가 기를 마음껏 펼 수 있는 바다로 오자 달라졌다는 게 더욱 확실해졌다. 징징거리는 것만 할 줄 알던 블루가 오히려 무서워하는 그녀를 보듬어주고 있지 않은가.

인격이 성숙해진 블루의 모습에 실비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믿음직해지니까 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 눈앞에 도시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 앞을 지키고 선 경비병들의 외형을 본 실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수인이겠지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그냥 사람이었다.

“어…. 뭐지. 수인이 아니네.”

『수인 맞을걸.』

묘한 미소를 지은 블루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잘 봐. 저 경비병의 발밑이 이상하지?』

그 말을 따라 시선을 내려보니 경비병이 딛고 선 돌바닥이 물에 젖어있어 살짝 어두웠다. 심지어 미역 조각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게 아닌가.

『바다에 갔다가 급히 돌아온 모양이야. 갑옷으로 무장해서 어떤 수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다생물 수인인 건 확실하지.』

“정말이네. 설마, 물고기 수인도 있을까?”

『음…. 이 도시에 있는 지까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보통 물고기보다 오래 살면서 마나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면 물고기도 수인화를 할 수 있지.』

세상에, 그럼 설마 광어 수인도 있는 걸까. 실비아는 술안주로 즐겨 먹었던 광어회를 떠올리며 죄책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광어 지느러미가 참 고소하고 오독오독 씹히는 게 술안주로 제격이었는데, 즐겨 먹던 광어가 수인이 된 걸 보게 된다면 표정 관리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잠깐! 너희들은 누구냐!”

그때 입구로 다가오는 둘을 발견한 경비병이 창을 들이밀며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했다. 실비아는 경비병이 제국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블루의 옆구리를 살살 찌르면서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뭐야, 쟤네 왜 제국어를 써?”

『으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짐작하기론 이 바다는 엘리셔스 제국과 멀지 않으니까, 국가 언어를 제국어로 택한 게 아닐까.』

“아아….”

블루가 미간을 좁히더니 합리적인 가정을 내놓았다. 실비아는 말끝을 흐리며 그녀 나름의 짐작을 했다. 아마도 게임 속에서 더 이상의 다른 언어를 새로 내놓는 건 개발자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지금 인식하는 언어는 드래곤어와 제국어 뿐. 그중에 대충 동전 던지기를 해서 심해 도시 언어를 제국어로 지정한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보통 게임이라면 에이, 설마가 되겠지만 이 게임이라면 가능해. 새로운 언어를 더 만들기 싫었을 거야, 아마도.’

실비아와 블루가 별다른 대답 없이 자기네끼리 숙덕거리자 경비병의 낯빛이 울그락불그락했다. 그가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불자 곧 성안에서 병사 여럿이 뛰어왔다.

“저 수상한 것들을 잡아라!”

경비병들이 갑옷을 덜그럭거리며 달려오자 둘은 뒤늦게 정신 차렸다. 뭐야, 갑자기 이렇게 선제공격을 한다고? 몬스터도 아닌 것 같은데 맞서 싸워도 되려나?

실비아가 판단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수인 경비병들이 둘을 에워쌌다. 이제라도 공격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블루가 차분한 제국어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놀랍게도 하룻밤 사이에 제국어가 더 유창해졌다.

“나는 보다시피 드래곤이다. 이 도시에 있는 부모님을 찾으러 왔는데, 안내해 줄 수 있을까?”

블루가 살짝 뒤로 물러선 뒤 커다란 날개를 펼치자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이던 경비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굽혔다.

“아! 그 날개는…! 아이고, 몰라뵀습니다.”

그의 태도에 다른 병사들도 혼비백산하며 서둘러 굽신거렸다. 간단하게 해결된 상황에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바다가 주 활동무대라서 그런가? 확실히 믿음직스러워졌네.’

실비아는 조심스럽게 블루를 곁눈질했다. 모두가 굽신거리는 블루와 일행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드래곤이란 걸 밝히자마자 저렇게 벌벌 떨다니. 오늘부로 실비아는 블루의 키워드에 능력남을 추가하기로 했다.

“너희들에게 물어볼 게 있어.”

“아이고, 뭐든 물어보십쇼!”

이 도시에 블루드래곤 부부가 있느냐는 블루의 질문에 경비대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해주겠다고 대답했다.

경비대장이 다른 병사에게 눈짓했다. 잠시 기다리자 마차인지 뭔지 정체 모를 이동 수단이 그들 앞으로 스무스하게 다가왔다. 왜 스무스하게 다가왔냐고? 마차가 아니라 해마차였다. 해마가 끄는 차, 해마차! 해마는 말처럼 발이 달려 있지 않았기에 무슨 재주인지 모르겠지만 스무스하게 다가왔고, 그 모습에 실비아는 깜짝 놀라 버렸다.

‘세상에, 엄청 신기해! 역시 바닷속 도시가 이래야지. 이제야 바닷속에 들어온 것 같네!’

검은색 해마 네 마리가 끄는 해마차는 지상에서 본 마차들에 버금갈 만큼 화려했다. 불가사리로 화려하게 장식된 문에다가 앞머리엔 상어상이 달려있어 고풍스러웠다. 눈이 초롱초롱해진 실비아는 호들갑을 떨려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해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관광 온 것도 아니고, 차분하게 굴 필요가 있었다.

블루와 경비대장까지 함께 해마차로 들어오고 잠시 후 해마들이 스르륵 부드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경비대장이 블루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날개 색을 보아하니 블루 드래곤이시군요. 아까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괜찮아. 충분히 이해해.”

아쿠아리움에서 쿠키 하나에 눈물 흘리던 동네 바보 블루는 어디 가고 한 명의 귀공자가 옆자리에 있었다. 본 적 없는 블루의 기품있고 차분한 태도에 실비아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머, 무슨 귀족처럼 대답을 하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그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블루가 차분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블루드래곤이 여럿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

“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도시는 수인화 가능한 바다생물들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블루드래곤 님들도 이곳에 많이 머물다가 가셨죠. 그중에는 여기에 아예 터를 잡고 사시는 분들도 몇몇 계십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경비대장이 뜸을 들이자 블루가 재촉해왔다. 옆에 멀뚱히 앉은 실비아는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블루의 귀족 같은 대화에 넋을 놓은 상태였다.

‘참 기품있긴 한데…. 듣다 보니 좀 이상하네. 이 자식, 내 앞에서 연기한 거 아냐? 화법이 완전 딴사람이잖아!’

오늘 참 여러모로 놀란다. 가만 보니 성장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구역이다 싶으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은 저 앞에서만 멍청이 연기를 한 게 틀림없었다. 사실 블루는 딱히 멍청이 연기를 한 적이 없고, 실비아를 좋아한 나머지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했고, 인간세계가 낯설어 얼 탄 것일 뿐이었지만, 그녀가 느끼기엔 그랬다.

대충 경비대장과 블루의 얘기를 들어보니 블루드래곤 일족은 유희를 하다가 이곳에 한 번씩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현재 이 나라의 왕이 블루 드래곤족인지라 터를 잡고 사는 블루 드래곤들이 몇몇 있다고까지 얘기하자 블루가 흥미를 보였다. 경비대장이 그의 부모님에 대해 묻자 블루가 인상착의를 간략히 설명했다. 갸웃하던 경비대장이 혹시,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나 해서요. 아버님께서 블랙 드래곤과 블루 드래곤의 혼혈이신지요?”

“맞아. 아버지 머리카락에 검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여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그런 분이 여기 계시나?”

“아이고! 황송합니다! 제가 어마어마한 결례를!”

경비대장이 갑자기 달리는 해마차 안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무릎을 꿇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블루는 물론 옆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실비아도 깜짝 놀랐다. 경비대장이 왜 이런 공손한 태도를 보였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왕자님을 몰라본 것을 사과드립니다! 말씀하신 인상착의가 맞다면, 왕자님의 아버님은 용왕닙이십니다. 이 나라의 지존이시죠!”

“뭐?”

“네에?!”

블루가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그보다 더 놀란 실비아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경악했다. 날백수이나 좀 강한 드래곤으로 태어나서 아주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던 블루가 이 심해 도시 왕의 아들이라니?! 이보다 더한 반전 드라마가 어디 있을까!

보통 왕국도 아니고 심해 도시의 왕자님이라니. 아니지, 엄연히 다스리는 왕이 있으니 여기는 그럼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왕국인 셈이었다. 심해 왕국의 왕자에다가 종족도 드래곤이라니. 제국의 황태자와 버금가는 남주 버프 아닌가.

‘세상 참 불공평하구나.’

실비아는 눈에 부러움을 가득 담고 블루를 힐끗거렸다. 태생도 드래곤이라 귀한데, 왕자까지 돼버리다니, 공략해야 할 남주인 걸 떠나서 시샘이 났다. 블루는 경비대장의 말에 놀란 나머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신경 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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