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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62화 (262/372)

262화

고개를 끄덕인 블루는 우아하게 날개를 펼치더니 몇 번 털 듯이 펄럭거렸다. 날개가 일으킨 바람의 영향으로 가로수의 단풍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이 막 날아다녔다.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 준비하는 것 같네.’

실비아는 단단한 비늘을 잡고 바짝 긴장했다. 곧 블루가 땅을 박차더니 힘껏 날아올랐다.

“어엇! 우와아!”

처음 탔을 때 드래곤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사실에 가슴이 찌르르했었는데, 지금도 그 감동은 여전했다. 얼굴에 부딪히는 서늘한 바람에 실비아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아유, 참 시원하다. 성층권으로만 안 가면 딱 좋겠네.’

점점 위로 날아가서 그런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조금 추운데! 살짝 불안해진 실비아는 블루에게 한 번 더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블루야, 너무 위로 가면 안 돼!”

『…….』

이게 무슨 일일까. 블루가 대답이 없었다. 뭐야, 이 새끼가 또? 섬찟해진 실비아는 비늘을 힘껏 잡아당기며 목이 터지라 외쳤다.

“블, 블루야! 구름 위로 가지 말라고옥!”

『응? 아아. 알았어. 걱정 마! 구름 위까지 올라가지 않을게.』

“어! 알아들었구나!”

천만다행이었다. 이번에는 블루가 말귀를 알아들었으니 성층권에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마음을 놓은 실비아는 몸의 긴장을 풀고 편하게 비늘을 잡았다. 비늘의 편편한 곳에 깊이 엉덩이를 묻으니 폭신한 쿠션 같아 승차감이 나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니 언제 이만큼 올라온 건지 수도의 건물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눈에는 수도가 늘 이렇게 보일까? 두 번째 타는 거라 여유롭게 하늘을 감상하던 실비아의 귓가에 블루의 외침이 들어왔다.

『실비아. 꽉 잡아. 방향 좀 바꿀게!』

블루의 몸이 기우뚱했다. 비늘을 꽉 잡아야… 으응? 실비아는 순간 상태 이상의 여파로 허리가 쿡쿡 쑤시는 바람에 한 템포 늦게 비늘을 잡았고, 별안간 아래가 허전해졌다. 엉덩이가 왜 이렇게 시원하….

“어어?어엇!”

의아해하던 실비아가 비명을 질렀다. 실비아의 엉덩이가 시원스럽게 하늘에 노출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스카이다이빙 중이었다. 쉬이이익! 추락하는 그녀의 귓가를 바람이 시원하게 치고 지나갔다.

“블, 블루야!”

실비아가 애타게 블루를 불러봤지만 조그만 목소리는 큰 몸뚱이에 닿지 않았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하던가. 실비아의 조그만 몸뚱이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낙하했고, 한순간 바닥과 합체…. 그렇게 됐다.

블루는 제 등 위에서 실비아가 사라진 줄도 모른 채 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실비아. 잘 잡고 있지? …실비아? 실비아!!』

고통을 느낄 틈도 없었다. 단박에 뇌까지 박살이 나버린 덕에 통각 신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비아의 시야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내 온통 시커멓게 변했다. 잠시 후,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 암울한 새드엔딩 곡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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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라이징 스타>인 당신은 게임 시작 <62일> 만에 <노약자임에도 불구하고 노약자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았다가 신체 반응 속도가 느려 비늘을 놓치고 추락사> 엔딩을 맞았습니다.

저런…. 상태 이상을 처음 겪은 건 아니잖아요. 그 몸으로 거대한 블루 드래곤을 무사히 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당신의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이 이런 참사를 불러왔습니다. 누굴 탓하겠어요, 부주의한 자신의 탓인걸!

불쌍한 <블루>는 당신이 추락사한 줄 모르고 한참을 하늘 위에서 두리번거리며 울부짖었답니다.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요!

결국, 당신은 노엘, 루카만 먹고 나머지 세 명의 동정 미남은 먹지도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실비아! 그래도 두 명이나 먹은 건 꽤 칭찬할 만합니다. 퍽 좋은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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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확인한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고 잠시 후 번뜩 정신 차렸다. 그녀의 시야에 블루의 푸른색 몸통이 들어왔다. 방금 전 대비할 틈도 없이 즉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그만 얼굴이 사색이 됐다. 가을바람 참 서늘하다고 생각했고, 팔에 소름이 돋았고, 블루의 목소리가 들려온 뒤에 참사가 일어났다.

‘잠깐, 그러고 보니 혹시 소름이 돋았던 게 <망령의 누런 옥수수>의 효과 때문이었나? 이놈의 아이템. 효과를 줄 거면 메시지라도 같이 띄워주지!’

<망령의 누런 옥수수>의 효과는 굉장했다. 실비아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서늘한 가을바람 때문에 소름이 돋은 줄 알았더니,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걸 알고 몸이 반응한 거였다니!

등에 올라탔을 때 세이브를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전의 세이브 지점으로 돌아갔다면 또 우당탕탕 정신없는 과정을 밟아야 했겠지.

‘개 같네 정말. 이제 블루랑 말이 통하니까 안심했던 건데 노약자석이 뭐 어째? 일반석에 앉아서 추락사라니. 드래곤 등에도 자석 구분이 있냐고! 이놈의 게임은 방심하면 골로 간다니깐.’

실비아는 비늘을 만지작거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지력을 마저 올린다고 해도 일반석에 앉아있다면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지력을 올리면 공략 조건이 완수된 채 성욕과 효심이 함께 상승하는 위험한 블루와 밤을 보내야 한다. 해결책은 하나, 노약! 노약자석을 찾아야 했다.

생각에 빠진 실비아가 아무 말 없이 조용하자 블루가 걱정해왔다.

『실바아, 왜 그래?』

“응? 아아…. 아무래도 좀 불안한걸. 내 몸 상태가 지금 많이 안 좋잖아. 여기 앉아있다가 떨어지면 어떡해?”

『그런가? 아! 좋은 생각이 있어. 여기로 내려와.』

블루가 제 머리 위로 손을 뒤집어 들곤 까딱거렸다. 손바닥에도 비늘이 있을 줄 알았는데, 고양이처럼 포동포동한 젤리가 있었다. 이게 뭐야, 드래곤 손바닥이 젤리라니, 말이 되나? …좀 귀엽네.

귀여움을 못 견뎌 잠시 바르르 떤 실비아가 말랑한 손바닥 위로 조심스럽게 앉았다. 실비아가 젤리를 살짝 꼬집자 블루가 제 눈앞으로 손을 가져갔다. 마주친 맑은 감색 눈이 눈웃음치듯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의 왼쪽 눈 밑에 보이는 두 개의 검은 점을 보며 실비아가 오, 하고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드래곤이 되어도 얼굴은 인간화일 때의 블루랑 느낌이 비슷하네. 신기해라.’

『내가 널 손에 쥐고 갈게. 그럼 되지 않을까?』

“으음, 글쎄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손으로 들고 가면 떨어트리지 않으려나? 고민하던 실비아는 번뜩 떠오른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끈을 찾아야겠어. 내 몸을 감을만한 것 말이야. 고정된 채 간다면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거라면 나한테 있어.』

블루가 허공을 뒤적거리더니 붉은 끈을 꺼냈다. 실비아의 몸을 충분히 감고도 남을 만한 긴 끈이었는데 밧줄의 양 끝에 풍성한 술이 달려 있었다.

얘는 왜 이런 끈을 들고 다니지? 설마? 가뜩이나 변태인데 게임을 하면서 머리가 더 썩어버린 실비아는 평범한 끈에 불순한 생각을 담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동정인 블루가 야릇한 플레이를 할 날을 꿈꾸며 이런 끈을 지니고 다니진 않을 터였다.

‘어쨌든 뭔가…. 못 참겠는데.’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 실비아는 제 몸을 야릇하게 감은 뒤 블루의 손가락 두 개에 끈을 동여맸다. 노파의 모습이라 좀 아쉽지만, 끈을 보는 순간 셀프 결박플 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끈이 있고 몸이 있는데 결박플을 어찌 참을까.

블루는 실비아가 하는 짓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 칭칭 감쌌네?』

“이 정도로 단단히 묶어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겠지. 그래서 그런 거야.”

실비아는 괜히 찔려서 다급하게 변명했다. 블루는 가만히 그런 그녀를 내려다봤다. 양 뺨을 발그레하게 볽힌 실비아가 제 손에 요상하게 묶여있는 모습이 색달랐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묘한 감정이 그의 가슴을 간지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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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성욕과 효심이 소폭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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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또 성욕이랑 효심이 같이 올랐어! 어쩜, 이 변태 같으니…. 괜히 결박플을 시도했나. 아니, 이런 모습으로 어필될지 누가 알았냐고! 으음, 뭔가…. 이런 모습도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에잇 몰라! 크흐흠!’

드디어 맛이 간 건지 메시지를 확인한 실비아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좀 변태 같다고 생각해 질겁하긴 했지만, 이 모습을 보고 흥분, 아니 사랑해주는 블루가 어떻게 싫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드래곤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종족. 늙은 자신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사랑해준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종족과의 사랑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보던 블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실비아, 걱정돼서 그렇게 단단히 묶은 거야? 생각보다 겁쟁이구나. 내가 설마 널 떨어트리겠어?』

“…….”

바로 전에 끔찍하게 추락사했던 실비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검지를 펼친 채 손을 위로 뻗었다. 그냥 닥치고 출발하란 소리였다. 블루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양손을 아기 안듯이 고이 모은 블루 덕에 실비아는 이번에야말로 안전히 드래곤 탑승에 성공했다.

등엔 따뜻한 블루의 온기가, 몸에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스쳐 지나가니 이것이야말로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마치 따뜻하게 이불을 덮은 채 에어컨 바람을 맞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나 할까. 떨어질 걱정이 사라진 실비아는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띠곤 블루를 올려다봤다. 그는 실비아가 떨어질까 걱정이 됐는지 사이사이 손안에 든 그녀를 내려다보며 빠르게 제국을 벗어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을까. 실비아는 잠시 졸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짠 기가 서린 바닷바람이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다. 바닷가까지 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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