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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61화 (261/372)

261화

『실비아. 우린 이제 도시로 가자!』

“어어….”

『근데 아까 던전은 무슨 말이야? 우리가 갈 도시에 던전이 있어?』

‘아차, 블루는 그곳이 오염됐단 걸 아직 모르는구나.’

실비아는 블루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상황을 설명했다. 어차피 그는 실비아와 루카가 대화할 때 함께 던전 이야기를 들은 데다가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던전이 뭔지 모르면 함께 설명해주려고 했으나 다행히도 블루는 오염된 기운과 던전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둥지에서 던전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 데다가 엘리셔스 월드에서 주워들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다음에는 신탁을 통해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블루는 신이 만든 지고한 종족인 드래곤이었기에, 그녀의 말에 전혀 놀라지 않고 바로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얘는 내가 심해도시에 같이 가주겠다고 해서 감동한 상태잖아. 던전 때문에 간다는 걸 알게 되면 실망할지도 몰라.’

순간 던전 입장권을 얻었을 때의 일을 떠올린 실비아는 블루의 감동을 망치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네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까진 몰랐지만, 나중에 신의 계시가 내려왔어. 거기에 던전이 있을 거라고 말이야.”

『아…. 설마 도시 전체가 오염된 건 아니겠지?』

아마도 부모님이 오염된 기운으로 변했을까 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실비아도 살짝 불안했지만 굳이 그걸 블루 앞에서 티 낼 필요는 없었다.

‘설마! 레벨 40이 제한 조건이었으니 절대 아닐 거야. 상식적으로 드래곤을 상대할 수 없는 레벨이잖아.’

제한 레벨을 떠올린 실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어떻게 알아?』

“…신은 항상 나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 주시니까.”

있어 보이는 대답을 내뱉으며 실비아가 먼 곳을 응시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의 말솜씨에 감탄했다. 문장을 잘 고른 것 같았다. 블루는 그녀가 급하게 꾸며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믿어볼게.』

못 알아들은 거구나. 너무 어려운 말만 골라 썼나 보다. 실비아는 ‘괜찮아, 신께서 괜찮다고 했대도.’라고 대충 말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이제 정말 가자!”

『응. 근데, 실비아.』

“왜?”

블루가 갈색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고개를 기울였다.

『많이 피곤해 보여.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갈래?』

“아, 아니!”

『응?』

아차,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그만 ‘쉬었다 갈래’란 말에 과민반응 해버렸다. 실비아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효심과 성욕이 함께 상승했다는 메시지만 보지 않았더라도 블루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알고 나니 저 맑은 감색 눈이 수상해 보였다.

‘아니지.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 성욕이 소폭 상승하는 건 남주들이면 뭐, 나를 보고 누구나 상승할 수 있지. 하필 이 모습을 보고 상승한 게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별 이상한 뜻은 없겠, 없을 거야.’

실비아는 우선 블루를 떠보기로 했다. 이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할 말을 고른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후우…. 상태 이상 때문에 피곤하긴 하지만 수도가 지금 엉망이라 여기서 머물긴 힘들지 않을까? …있잖아, 나는 가끔 피곤하면 이런 몸이 되곤 하거든. 내 모습…보고 놀라진 않았어?”

『놀라긴 놀랐어.』

역시. 안 놀라면 이상한 것일 터였다.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그녀의 귓가에 수상한 감탄사가 들어왔다. 흠칫,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블루가 양 뺨을 어린 소년처럼 붉히더니 두 손을 가지런히 제 가슴 위에 모으는 게 아닌가. 감색 눈이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처럼 초롱초롱해졌다.

『사실, 너무 예뻐서 놀랐어. 실비아, 나중에 이런 모습이 되는 거야? 너무 기대돼.』

“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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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성욕과 효심이 소폭 상승합니다. 그는 살짝 위험한 상태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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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상태라니.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걸까? 뭐가 됐든 이 위험한 친구와 자신은 얼른 던전을 가야 했다. 일정 범위를 덮고 있던 하늘 위의 보호막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아까 루카가 말하길 저 보호막이 사라지면 도망쳤던 사람들도 돌아오고 수도를 복구하려고 마법사들도 온다고 했었다. 수도 파괴의 주범인 블루가 여기 더 있어봤자 좋을 게 없었다.

“블루야, 어서 여길 떠나야겠어. 우선….”

실비아는 블루의 어깨 위에 타고 있던 퍼랭이와 제 품속에 숨겨놨던 참둘기를 꺼내서 바닥에 내려놨다. 육지에서 사는 자신이야 던전 공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닷속에 들어가는 거지만, 하늘을 누비고 다니는 전서구들에게 바닷속에 같이 가자고 하는 건 너무한 처사 같았기 때문이다.

“참둘기야, 퍼랭이 데리고 우리 집에 가 있으렴.”

“구구.”

참둘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퍼랭이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경비행기 조종하듯이 작은 발로 퍼랭이의 깃털을 바짝 모으곤 부리로 쪼았다. 퍼랭이는 잔뜩 쉰 목소리로 블루와 실비아에게 ‘잘 갔다 와!’라고 인사한 뒤 참둘기가 이끄는 대로 하늘길을 떠났다.

실비아는 떠나는 둘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둘이서 조종사와 경비행기 같은 관계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다투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까먹은 거 같은데? 아, <쥐새끼>!’

하마터면 많은 돈을 주고 산 아이템을 한번 쓰고 버릴 뻔했다. 실비아는 설명서에서 봤던 대로 귀때기를 강하게 터치했다. 그러자 빙산이 녹은 틈새로 <쥐새끼>가 낑낑거리며 빠져나와 실비아의 발치까지 기어 왔다. 좋아, 이제 <쥐새끼>도 무사히 챙겼고.

실비아의 눈이 위로 향했다. 보호막도 이제 사라졌으니 블루가 드래곤으로 변신할 수 있을 듯했다.

“블루야, 이제…. 어!”

뒤를 돌아보니 블루는 시키지 않아도 이미 커다란 드래곤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푸른 비늘이 햇빛을 받아 오색 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드래곤으로 변한 그의 몸집은 웬만한 건물 크기와 맞먹었다. 예전에 바닷가 마을에서 본 그대로 푸른 몸통에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비늘줄을 가진 모습이 어떤 애니메이션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지만, 실비아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심해와 같은 감색 눈이 그녀를 올곧이 바라봤다. 그녀가 보기엔 아름답고 신비한 생물일 뿐이었지만, 본 적 없는 거대한 드래곤을 수도 사람들이 본다면 공포에 질려 도망칠 터였다.

혹시나 누가 올까, 실비아는 급히 주변을 살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미 한 번 본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웅장한 모습이 신비하고 놀라웠다. 경이로움과 함께 성층권에서 죽었던 싸늘한 기억이 함께 떠올라 실비아는 가늘게 몸서리쳤다.

『실비아, 나 어때? 이 모습을 그동안 보여줄 수 없어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어? …으응. 멋지긴 멋진데, 역시 널 타고 가야 하는 거구나. 그, 바다로 이동하는 마법 있지 않았어? 그 마법을 이용하면 쉽게 도착할 것 같은데!”

이걸 타고 갔다가 또 성층권에서 죽으면 어쩌나.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녀는 바다를 이동할 수 있는 블루의 마법을 떠올렸다. 왜, 그 물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물개도 꺼내고 빙산도 꺼내는 마법 있잖은가. 그걸 이용해서 바로 던전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실비아의 바람은 해맑은 블루의 대답을 듣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그 마법은 이동 마법이 아냐. 바다로 갔다가 다시 거기 있는 대상을 가지고 돌아오는 마법일 뿐이야. 거기다가 그 입구 근처는 순간이동 마법이 통하지 않아. 침입자들이 쉽게 접근하면 안 되니까. 내가 알기론 심해도시까지 가는 방법은 드래곤인 날 타고 가는 방법 말고는 없어.』

“애석한 일이구나.”

신통방통해 보였던 이동마법이 그냥 대상을 가져오는 마법이었다니. 꼼짝없이 드래곤을 타고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실비아는 한숨을 내쉬곤 지팡이를 짚으며 블루의 곁에 다가갔다.

“잠깐, 좀 올라탈게. 잉차!”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어서 서둘러야 했다. 실비아는 블루의 비늘을 잡고 암벽등반 하듯이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입에 물고 있던 지팡이로는 중간중간 힘들 때마다 블루를 찔렀다. 등산봉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사이사이 지팡이로 쿡쿡 찌르며 올라가자 블루는 아프지도 않은 지 간지럽다고 키득거렸다.

『아우, 간지러워!』

“어휴, 힘들어.”

낑낑대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다다랐다. 실크처럼 하늘거리는 얄따란 비늘 사이, 살짝 편편한 곳에 자리 잡은 실비아는 앞에 있는 비늘을 단단히 붙잡았다. 성층권에서 죽은 경험을 참고해 블루의 귀 근처에 앉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소리가 잘 들리는 곳에 앉아야 하니까.

‘그래도 저번이랑 달리 이제는 말이 통하니까 참사가 벌어지진 않을 거야. 잠깐, 아직 공략 조건이 완수되지 않았잖아. 혹시 모르니 세이브를 해야겠다.’

혹시 모를 끔찍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실비아는 얼른 시스템을 켜 세이브를 했다. 남은 지력을 다 올려버릴까? 20포인트를 쓰면 공략 조건 700을 달성한다. 근데 남신이 함부로 포인트를 쓰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얼마 전 미니게임을 생각하니 지력 20은 어떻게든 올릴 방법이 나올 것 같았다.

‘레벨 업으로 나오는 포인트는 은근히 귀하단 말이야. 어차피 오늘은 섹스할 처지가 아니니 지력을 올리지 말아야겠어. 혹시나 가능한 상태가 되면 더 끔찍할 것 같아. 으, 그래. 역시 지력을 올리는 건 잠시 미뤄야겠어.’

안 그래도 노파인 실비아의 모습을 보고 성욕과 효심이 함께 상승하는 블루인데, 지력을 마저 올려 공략 조건을 달성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실비아는 고개를 젓곤 지팡이로 블루의 귓가를 쿡 찔렀다. 저번 바닷가 마을에서 탔을 때도 느꼈지만, 본체가 된 블루는 실비아가 비늘을 쥐어뜯든 말든 간지러워할 뿐이었기에 이 정도는 해야 블루가 반응했다.

“블루야, 조심해서 날아!”

『응. 실비아가 타고 있으니까 조심해서 날아갈게.』

실비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무작정 올라갔다가 새에 부딪혀 사망, 이런 배드엔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출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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