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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60화 (260/372)

260화

‘호감도 상승? 어째서?’

그다음에 연달아 떠오른 메시지는 다소 생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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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성욕이 소폭 상승합니다. 더불어 효심도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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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째서 성욕과 효심이 함께 상승하는 건데?’

실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블루를 바라봤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그녀를 마주 보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저 순수한 얼굴만 보면 도저히 성욕과 효심이 함께 상승한 배덕한 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희한하네. 살다 살다가 이 꼴을 보고 호감도가 상승하는 남주가 있을 줄이야.’

실비아는 몰래 시스템을 켰다. 겜생 고작 두 달이 조금 넘어가지만, 호감도가 상승한단 메시지는 받아봤어도 성욕과 효심이 함께 상승한다는 해괴한 메시지는 처음이었다.

블루의 상태 창을 급히 확인해보니 사이사이 스킨십을 해서 그런지 방금 올라간 호감도까지 합해서 현재 호감도는 92였다. 호감도가 92인 걸 확인한 실비아는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 하며 여기저기 뒤적였다. 아무리 상태 창을 샅샅이 봐도 효심이나 성욕 같은 속성은 보이지 않았다.

‘효심이나 속성은 히든 속성 같은 건가 보네. 가지가지 하는구나. 망할 놈의 노점 게임! 휴, 그나저나 조금 위험한 상태 아냐? 효심이랑 성욕이 같이 상승한 거면…. 설마 이 상태로 진도를 나가려 들진 않겠지.’

시스템 창을 모두 종료한 실비아는 블루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감색 눈에 소스라치게 놀라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시발, 뭔가 많이 불길했다. 몸 상태가 엉망이기도 했고 실비아는 이런 노파가 된 모습으로 블루와 그 짓거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림이 영 아니었다.

‘설마? 눈깔이 왜 저렇게 초롱초롱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께름칙해진 그녀는 애써 블루 쪽으론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영광의 상처>는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는 상태 이상이니까 오늘만 버티면 되겠지. 일정 변경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원래라면 이 상태로 블루와 숙소를 잡아서 쉬려고 했건만. 무척 건전한 밤이 될 줄 알았더니, 어느 때보다 위험한 밤이 될 수도 있겠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불길한 망상이 계속 이어졌다. 이 망할 놈의 게임은 이제 저를 이상한 세계로 이끄는 데 주저함이 없으니 앞날을 한치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방을 따로 잡을까? 아냐. 그래도 얘는 싫다고 하면 안 하는 애니까. 으음, 이 상태에서 블루가 들이댄다면 무척 곤란할 것 같은데.’

생각을 마친 실비아는 고개를 들어 카를 단장쪽을 보았다. 그는 블루와 대화를 끝낸 후 루카와 얘기하는 중이었다. 오해가 다 풀린 덕에 온화한 표정이었다.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표정이 어색해졌지만. 잠시 굳어졌던 그는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며 실비아에게 다가왔다.

“얘기는 다 들었습니다. 오해도 다 풀렸고요. 저 드래곤의 안내로 던전…공략을 가신다는 말씀이시죠.”

“네….”

카를 단장은 아직도 실비아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블루에 대한 오해는 다 풀린 모양인데 실비아에 대한 오해는 안 풀린 듯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실비아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몸으로 어찌 던전을…. 아니, 실례했군요. 싸움을 꼭 몸으로 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혹시 마법사십니까? 아니면 기타 몸을 쓰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계신다거나 말이죠.”

카를 단장은 애써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의 눈엔 실비아가 전혀 던전 공략을 하러 갈 인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저 굽은 허리를 보라! 던전 입구에서 과일을 팔러 간다고 해도 말릴 판이었다.

실비아는 이제 그냥 반박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 개방 축제 때 사인받았던 젊은이가 자신이라고 해도 전혀 믿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이 지치기도 했고 말이다.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어. 상태 이상 때문에 피로가 금방 찾아오네, 그냥 푹 쉬고 싶다.’

카를 단장의 질문에 실비아는 가만히 있는데 정작 루카가 울컥했다. 그는 아까 몰아세우던 건 까맣게 잊어먹고 곁으로 와 그녀를 변론하기 바빴다.

“아버지, 제가 여러 번 말했잖아요. 실비아는 원래 이런 꼴이 아니라고요. 실비아는 정말 아름답고 귀엽고 완벽하고! 흠, 아니에요. 하여튼 이 모습은 잠시만 이런 거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조그만 손이 등을 툭, 하고 치자 루카가 번뜩 정신 차렸다. 그는 헛기침하곤 남은 말을 마저 내뱉었다.

실비아는 루카가 변호해주니 고맙긴 했지만, 카를 단장의 나라 잃은 듯한 눈빛을 보니 차라리 입을 닫는 게 맞겠다 싶었다. 아들이 그녀를 감쌀수록 카를 단장의 기분은 더 저조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좀 기분 나쁘긴 하지만 이해는 가. 나라도 자식놈 옆에 이런 할머니가 붙어있다면 머리를 죄다 깎아 버렸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 차라리 지금 이렇게 오해해주면 잘 된 거지. 내가 할머니인 줄 착각하고 지나간다면 다음에 나를 소개받지 않으려 할 거 아냐.’

절절하게 변호해주는 루카에게는 미안하지만, 카를 단장이 오해하고 넘어가는 건 실비아에게 달가운 일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실비아는 카를 단장에게서 그녀를 지키는 것처럼 서 있는 루카의 너른 등을 보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방금 전만 해도 위태로운 분위기가 감돌았기에 루카가 자신에게 정떨어졌나 싶었더니, 그런 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감동과 함께 미안함도 함께 찾아와서 그녀는 잠시 쓰린 가슴을 문질렀다. 기왕지사 역하렘 짓거리를 할 거면 독하기나 할 것이지, 이럴 때만은 자신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란 게 힘겨웠다.

카를 단장은 옆으로 손을 까딱여 아들을 비켜서게 한 후 실비아를 응시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드래곤이 자격 없는 이를 안내하진 않겠죠. 아들에게 들으니 저희 가문 소유의 섬도 정화해 주셨다고요. 그건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아니요.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실비아가 지팡이를 옆에 둔 채 허리를 숙이며 겸손을 떨자 카를 단장의 말이 이어졌다.

“보시다시피 방금 전투로 인해 피해가 막심합니다. 저희는 수도 복구를 위해 바쁘게 뛰어야 할 것 같군요. 아들…흐음. 아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능력이 출중하신 분이라면 다음에 더 좋은 자리에서 뵀으면 하는군요. 제국에는 능력 있는 인재가 많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카를 단장의 발언에 실비아는 속으로 꽤 놀랐다. 아들을 후린 팜므파탈 노파의 능력을 높이 사 다음에 만나 뵀으면 좋겠다는 속 좋은 소리를 하다니. 웬만한 인내력으론 쉽지 않은 언행이었다.

‘역시 암흑가 뭐시기랑 제국의 제1마법사단장은 헛으로 되는 게 아니었구나. 보통내기가 아닌걸?’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아들이랑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카를 단장이 정중하게 인사한 뒤 루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루카가 당황하며 실비아를 힐끗거렸다. 이대로 떠나긴 좀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버지, 잠깐만요. 실비아랑 얘기 좀만 더….”

“어허! 실비아라니! 실비아 옹이라고 불러야지.”

‘옹이라니. 너무해.’

퍼석한 제 뺨을 쓰다듬은 실비아는 루카 부자의 대화를 들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 녀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카를 단장은 아들이 제발 저 노파에게 정을 뗐으면 싶은 바람으로 엄하게 소리쳤다. 남아있는 이성을 가까스로 끌어모은 덕에 무례한 언사를 참을 수 있었다. 단단히 미친 제 아들의 팔뚝을 강하게 끌어당기자 루카의 눈에 억울함이 한가득 차올랐다.

“아버지! 하아, 왜 제 말을 안 믿으세요.”

“어허! 녀석이 끝까지!”

‘하, 아들 교육을 한참 잘못 시켰구나. 알아서 잘 크는 줄 알았더니 이제라도 신경을 써야겠어.’

저 노파에겐 미안하지만, 황혼의 사랑을 금쪽같은 제 자식이랑 하게 놔둘 순 없었다. 그는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루카에게 혀를 찬 뒤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앞머리를 정신없이 헝클어트리며 스트레스를 표출하던 루카는 카를 단장을 향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는 실비아에게 다가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실비아, 잘 다녀 와. 아, 그리고 다녀오면 네가 한 말대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다. 잊지 않았지?”

“네. 루카 님이야말로….”

루카는 뒤를 힐끗 보더니 실비아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아버지의 서슬 퍼런 모습에 여유롭게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널 믿고, 네가 소개해주기 전에는 그 엘베우스 신관을 찾아가지 않을게. 그럼 되는 거잖아. 아버지가 오해하고 계시는 건 지금 당장은 풀 길이 없어. 후우…. 괜히 이런 취급 받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다시 보게 되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야. 그럼 난 이만! 전서구로 연락해!”

“저…! 갔네.”

대답할 틈도 없이 루카가 뛰어갔다. 만인에게 건방지던 루카이기에 부모님에게 망나니처럼 굴 줄 알았더니 잘못된 판단이었다. 카를 단장의 매서운 눈빛에 저렇게 빨리 뛰어가는 걸 보니 영락없는 평범한 아들이었다.

‘루카는 아버지의 오해를 풀고 어떻게든 나랑 결혼하고 싶은가 보네. 좋으면서도 좀 씁쓸한걸.’

루카는 자신이 노엘과 수상한 관계라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와는 별개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무슨 생각인 걸까? 지금으로선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실비아는 사라지는 루카의 뒷모습을 쫓다가 뒤로 가까이 다가온 기척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봐도 알 수 있는 익숙한 기척, 효심과 성욕이 함께 상승한 블루였다. 그는 여전히 양 뺨을 수줍게 붉힌 채 실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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