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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55화 (255/372)

255화

“실비아 님, 저…. 저는 이만 가볼게요.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어? 어어…. 어머! 너,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실비아는 세비스의 어깨를 무심코 토닥이다가 깜짝 놀랐다. 얇은 천 사이로 여느 때와 다른 싸늘한 온기가 느껴졌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은 몸보다 더 싸늘하고…. 심상치 않은 그의 상태에 실비아의 낯빛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이 정도면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근처 병원이라도 가 봐. 아니면 노엘 님한테….”

신성력을 써달라고 부탁하자고 말하려 했는데, 세비스가 그녀의 말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아녀요. 고위 신관의 귀한 신성력을 고작 몸살에 써달라고 할 순 없죠. 그리고 몸이 왜 이런 상태인지 알 거 같아요. 만약 나아지지 않으면 실비아 님 말대로 병원에 들를게요.”

“음, 그래. 병원에 같이 가주고 싶은데, 보다시피 내 몸 상태도 엉망이라.”

실비아가 지팡이를 흔들자 안색이 푸르딩딩한 세비스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실비아 님 몸이 더 심각한데 어떻게 같이 가달라고 말해요. 휴, 실비아 님 던전 가는 것까지 보고 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요. 부디 무사히 다녀오시길….”

세비스는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각해 보이는 몸 상태에 실비아는 얼른 가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세비스는 말없이 옆에 서 있던 노엘과 실비아에게 차례로 가보겠다고 인사하고는 골목 끝에 정차 중이던 모범 마차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골목 끝을 멍하니 바라보던 실비아는 주머니 안에서 찰랑대는 열쇠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노엘 님의 저택에서 함께 살자고 말해봤어야 하는 건데, 경황이 없는지라 깜빡하고 말았다.

‘이건 나중에 돌아와서 말해야겠네…. 휴, 그래도 루카랑 세비스도 사라졌겠다, 이제 던전을 가면 되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실비아가 주머니 속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굳은 표정의 노엘이 말을 걸어왔다.

“실비아 님, 아까 붉은 머리 남자가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제 좁은 식견으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맙소사, 다행이라 생각하기 무섭게 또다시 곤궁에 빠졌다. 그녀는 순간 질끈 눈을 감고 현실도피를 감행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고 가늘게 눈을 뜬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좀 복잡한데요. 저분이 저한테…. 그게, 하아….”

루카 부자가 무슨 말을 했더라? 대충 말의 뉘앙스로 봐서는 결혼을 말리는 상황처럼 보이긴 했다. 실비아는 노엘을 힐끗댔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실비아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실비아는 순간 루카가 자신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물고 빤 세월이 얼만데,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했다가 루카나 노엘에게 거짓말한 걸 들키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거기다가 서로 좋아서 한 짓인데 양심에 찔리기도 했고 말이다.

‘아이고,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정말!’

실비아가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봤지만, 평소와 달리 노엘은 아무 말 안 하셔도 된다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도 신관이기 이전에 사람인지라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빨간 머리 남자의 거만한 태도 하며 하려다 만 말, 그리고 중년 남자의 실비아에 대한 묘한 언사까지….

실비아의 입으로 직접 어떻게 된 상황인지 듣고 싶었다.

노엘이 빤히 실비아를 쳐다보자 점차 그녀의 얼굴에선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땀이 우수수 떨어졌다. 상태 이상과 심적 고통이 겹쳐진 결과였다. 제발,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쳤으면!

“그냥, 그게 있잖아요. 어쩌다 보니….”

실비아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귓가에 메시지 알림음이 띠링, 하고 울렸다. 뭐지? 그녀가 메시지를 확인하려는 순간 노엘의 목걸이에서 삐삐-! 하고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와 함께 노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실비아 님. 아무래도 저는 급하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전에서 비상 연락망으로 저를 부르네요. 어떻게 된 일인지 실비아 님에게 직접 듣고 싶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목걸이가 한 번 더 요란하게 경고음을 내보냈다. 노엘은 한숨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외제마 키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마자 어디서 대기 중이었는지 그의 외제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단숨에 말 위에 올라탄 노엘은 실비아를 향해 아쉬움이 어린 시선을 보냈다.

“아무래도 당장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재차 부르는 거 보니 위급한 일인 것 같습니다. 실비아 님, 던전 공략 다녀오신 후에 뵙도록 하죠.”

“아, 노엘 님! …잘 가요. 나중에 꼭 다시 봐요.”

“후우.”

그는 그대로 앞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외제마에서 내려와 실비아를 끌어안았다. 이마와 코, 그리고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한 노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녀의 뒤통수를 끌어당겨 진하게 입술을 겹쳤다. 영원 같던 찰나가 지나가고 실비아의 망토를 여며준 노엘은 다시 말에 올라탔다.

“진짜 갈게요. 참,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안 쓰셨네요.”

“뭘요?”

실비아의 물음에 그가 실비아의 손가락에 시선을 둔 채 제 검지를 두드렸다. 찔릴 구석이 많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제 손가락으로 내렸다. 다행히 그녀는 노엘을 만날 걸 대비해 만능 레이저 반지를 끼고 있었다.

“반지. 절 보고 싶으실 때 비상 연락망을 누르시면 됩니다.”

“아! 꼭 명심할게요.”

“그럼….”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노엘은 외제마 열쇠를 세게 눌렀다. 그러자 말의 눈이 새빨갛게 빛나더니 부아아아앙-하는 요란한 터보음이 울렸다. 외제마가 터보 주행을 시작하자 노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씁쓸한 눈으로 노엘의 흔적을 쫓던 실비아는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잘 해결돼서 좋긴 한데, 이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필 이런 때 신전에서 노엘을 부르다니. 아, 맞아. 아까 메시지가 떴었던 거 같은데.’

실비아는 확인 못 한 메시지를 다시 보기 위해 기록 창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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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 스킬 <기적을 일으키는 자>가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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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박. 이 스킬 신통방통하네. 이게 아니었으면 정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아찔했을 거야.’

실비아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높은 확률로 위기 상황에서 기적을 일으킨다는 스킬 설명답게 <기적을 일으키는 자>가 적재적소에 발동한 것이다. 노엘의 씨앗 30개를 소모한 스킬이 노엘 앞에서 그녀를 구해주다니. 정말 배덕한 스킬이었다.

그녀가 지팡이를 짚은 채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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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모두가 모이도록 유도한 결과 N명의 남주들에게 상처를 줬다. 모르는 게 약인데 알게 됐으니 역으로 치명타가 됩니다. 업보가 30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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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발! 내가 언제 유도를 했다고, 피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아이고 억울해! 꺽, 끄윽…! 후우, 죽을 뻔했네.’

망할 놈의 업보 상승 메시지였다. 일이십도 아니고 자그마치 삼백이 한꺼번에 오르다니! 그녀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은 그녀는 가까스로 급사를 막았다. 상태 이상으로 심장도 노쇠해졌는지, 순간 심장마비로 명을 달리할 뻔했다.

그러나 진정하기도 잠시, 화르륵-! 하고 모닥불 타는 asmr 같은 소리가 풀 사운드로 들려오더니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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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가 300을 초과하여 나태 지옥과 당신과의 거리가 30,000,000걸음 가까워집니다. 남은 걸음은 70,000,000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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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순간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 실비아는 지나가던 망자의 강냉이를 신속하게 털고 재빨리 현실로 돌아왔다.

‘후우. 두 번째라 그런가, 처음처럼 놀랍진 않아.’

그게 끝인 줄 알았더니 메시지가 한 번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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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개판 오 분 전!>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의 효과로 귀여운 개랑 더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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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답잖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메시지 창을 끈 실비아는 올라간 업보를 확인하려고 상태 창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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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레벨 57

망치 전사

가진 돈 : 7만G(림보 것 : 5만 골드)

체력 : 250 힘 : 250 지력 : 680 민첩 : 150

화술 : 310(+50)

업보 : 300

신앙심 : 5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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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도 : 200

세간의 평가 : <라이징 스타>

전투 스킬 : <뚝배기 깨기>, <1+1>, <정화의 망치>, <*손은 눈보다 빠르다>, <불망치>

생활 스킬 : <헛소리를 온 누리에 진지하게>,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아이고 내 배꼽 아재 개그>

패시브 스킬 : <만독불침>, <기적을 일으키는 자>

상태 이상 : <영광의 상처>

[분배하지 않은 포인트가 60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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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과 실컷 해서 업보를 0으로 만들어 놨더니 난리통 끝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업보를 한 번에 얻었다. 지옥과 순식간에 가까워진 셈이었다.

‘평소에 자잘하게 조심하고 살아도 다 소용없구나. 한방에 300을 안겨주다니, 나쁜 시스템 같으니라고!’

영광의 상처 때문인지 피로도도 200이나 올라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실비아는 인벤토리에서 <체력 포션>을 꺼내서 마셔봤으나 역시나 상태 이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연거푸 3개를 들이키자 피로도가 100 정도로 줄어들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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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상처>의 영향으로 실비아의 몸엔 약발이 잘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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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흡수율 낮은 저주받은 신체 같으니.’

<영광의 상처>는 신체가 노화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디버프라서 <체력 포션>도 잘 받지 않았다. 서러워진 실비아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찍어누르곤 상태 창을 껐다. 상태 이상 때문에 감수성도 예민해진 것 같았다.

‘이미 올라간 업보는 어쩔 수 없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업보가 왕창 올라가는 거면 평소에 단단히 조심을 해둬야겠구나.’

생각을 마친 실비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사라진 골목엔 어느새 실비아뿐이었다.

‘블루랑 이제 던전을 가버리면 되는 걸까? 돌아오면 노엘 님에게 해명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지만, 뒷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지, 뭐.’

지붕으로 옮겨간 실비아의 시선에 의문이 서렸다. 지붕에 대기 중이던 블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얜 또 어디로 간 거야. 아무래도 망토 쓴 노파(?)가 실비아일 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녀를 찾으러 자리를 옮긴 듯했다.

“어어!”

그때 쾅-하고 엄청난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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