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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41화 (241/372)

241화

“잠시 기다리십쇼. 포장해오겠습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해주세요.”

실비아는 다리를 꼰 채 까딱거렸다. 비밀상점에 이런 공간이 있었단 말이야? 처음부터 재깍재깍 여기로 모시지 않고 말이지…. 구시렁대고 있자니 시크릿이 온통 금칠을 한 고급 쇼핑백을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렸다.

“사은품도 두둑하게 넣어놨습니다. 이거는….”

시크릿이 말을 하다 말고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말고 호텔 가셔서 펼쳐보세요.”

“으음?”

실비아의 흥미로운 시선이 금칠 된 쇼핑백으로 향했다. 역시 특수 NPC. 여길 나간 뒤 내가 호텔을 갈 계획이란 걸 알고 있었군. 호텔에서 펼쳐보라니, 뭔지 모르겠지만 기대됐다.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레몬티의 향을 음미하자 시크릿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녀를 살폈다.

“히야, 정말, 이런 분일 줄 알았다면….”

“알았다면요?”

실비아가 레몬티에 꽂힌 빨대를 쪼옥 빨며 묻자 시크릿이 허리가 반이 되도록 접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다음부터는 방문 판매로 찾아뵙겠습니다. 고객님!”

“뭐, 그래주시면 저야 좋죠.”

실비아는 저번 방문 때와는 백팔십도 바뀐 시크릿의 태도에 기가 차 입을 삐죽거렸다. 비밀상점 주인 시크릿은 철저한 자본주의의 노예였다. 세비스의 생일선물(?)이던 하네스를 사려고 할 때 외상은 안 된다며 야멸차게 굴던 시크릿이 122만 골드를 썼다고 저렇게 공손해지다니.

‘내가 장사꾼이라도 122만 골드를 누군가 결제한다면 단번에 태도가 바뀔 거 같긴 하지만 말이야.’

실비아네 보증금이 황실 지원을 받고도 300만 골드였던 걸 감안하면 122만 골드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그러나 희귀한 아이템들을 보자 꼭 사야겠다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개고생을 했으니 돈을 물처럼 펑펑 써보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그 사람이 있지…. 후후.’

사실 실비아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돈이 썩어나는 황족 우라엘 황태자…. <심해에 잠긴 도시>를 갔다 오면 황궁에서 우라엘 황태자의 반려마인 포리쉐를 돌보게 되지 않나. 그녀는 보석을 사탕 주듯 건네는 황태자의 옆에서 아부를 실컷 떨 요량이었다. 그렇게 보석을 얻다 보면 내 집 마련은 물론이요, 욕조에 보석을 풀어놓고 물장구가 아닌 보석장구를 치게 되겠지.

실비아는 흐뭇한 상상을 하며 상점을 나섰고 그 뒤에 대고 시크릿이 고개를 박으며 우렁차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쇼, 고객님! 다시 한번, 방문 판매로 찾아뵙겠습니다!”

새 신을 신은 양 사뿐사뿐 춤을 추며 걸어가던 실비아는 골목길 어귀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발견했다. …설마? 저번의 노점 사기꾼?

후다닥 달려가 보니 예상대로 회색 망토가 돗자리를 펼쳐놓고 또 수상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저 회색 망토는 분명 예전에 가짜 케이크를 팔았던 놈이 확실했다. 이번에도 사기를 치려고 대기 중이었구나. 화가 치밀어오른 실비아는 부리나케 달려가 돗자리를 걷어차며 행패를 부렸다.

“야, 이! 여기서 장사하고 있었구나. 이 사기꾼…아?”

“아이구! 아가씨, 왜 그려.”

장사꾼이 회색 망토의 후드 부분을 내리자 예상과 달리 희끄무레한 머리의 할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할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며 엉망이 된 물건들을 주워들었다.

세상에. 같은 옷이라서 그때 그놈인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이었다. 심지어 노약자. 실비아는 당황해서 함께 물건을 주우며 거듭 사과했다.

“어,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사람을 잘못 봐서….”

“아유,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뜸 사람을 공격하면 어떡해. 내 물건 다 깨졌네, 아이구….”

할아버지가 울먹거리며 실비아를 나무랐다. 못 쓰게 된 물건들을 돗자리에 한데 모으며 실비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애먼 사람 물건을 망가트리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실비아는 개미만 해진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이 물건들 제가 다 망가트린 거니까, 모조리 변상할게요.”

“에이, 그럴 것까진 없어. 어차피 볼품없는 노쇠한 몸뚱어리. 깨진 물건들처럼 낡은 몸뚱어리도 다 깨부숴 버리지 뭐…. 늙은이가 살 가치가 있나. 곧 죽을 건데, 돈이 무슨 필요 있어.”

“아….”

할아버지가 신세 한탄하듯 뱉은 말에 실비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이 물건을 깨버리는 바람에 열심히 삶을 살겠다는 할아버지의 의지도 깨트려 버린 셈이 됐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니 백을 뒤적거려 30만 골드를 꺼냈다. 인턴십 한 달 치 월급인 큰돈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살아갈 의지만 다시 찾는다면야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런 말씀 마세요. 할아버지. 이 돈은 깨진 물건값이랑 제가 행패 부린 값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늙은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야.”

“받으세요. 그래야 제 맘이 편해요.”

실비아가 돈뭉치를 할아버지의 손에 쥐여주자 그가 마지못한 듯 눈으로 액수를 확인하곤 주머니에 넣었다. 깨진 물건들은 어차피 못 쓸 거 같아서 실비아가 열심히 쓸어모아서 주변 쓰레기통에 버렸다.

할아버지는 망토를 다시 덮어쓰더니 이제 집에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실비아는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곤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그녀의 뇌리에 잠시 스쳤던 할아버지 손의 감촉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치곤 무척 보들보들했던 거 같은데?

거기다가, 생각해보니 저번 케이크 사기꾼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인자한 얼굴의 할아버지가 사기꾼일 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상한 건데, 사기꾼이 꼭 젊은 사람이란 법은 없지 않은가. 수상쩍어하며 뒤돌아보니 아까는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걷던 할아버지가 등을 곧게 편 채 지팡이 춤을 추며 폴짝 뛰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저 날쌘 몸놀림, 할아버지가 아니잖아?!’

실비아가 득달같이 달려가 가짜 할아버지의 망토를 걷었다. 그랬더니 흰머리가 아닌 하얀 백골이 훤히 드러났다.

“으악!”

백골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뼈의 등장에 실비아가 혼비백산하듯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백골도 실비아를 보고 놀랐는지 비명을 지르더니 걸음아 나 살려라, 도주를 시도했다.

“어딜! 슬라이딩!”

놀라기도 잠시, 이미 숱하게 몬스터와 귀신인 루카 형도 본 마당에 백골쯤이야! 거기다가 백골이라면 최소한 공경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빠르게 일어난 실비아는 순간 판단력으로 롤러 운동화를 이용해 슬라이딩 기술을 걸었다. 입으로 기술명을 말한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실비아에게 다리를 차인 백골은 볼링공에 스트라이크 당한 볼링핀처럼 풀썩 쓰러졌다.

“아이고! 망령 죽네!”

“이 뼈다귀 새끼가. 어딜 사람을 속여먹으려고 들어.”

실비아가 씩씩대자 백골이 삿대질하며 눈구멍을 부라렸다. 텅 빈 구멍에서 형형한 눈빛이 너무, 이하 묘사가 너무 잔인해서 생략….

“뼈다귀 새끼라니. 이 버릇없는…. 그래도 내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백골이 불쌍한 척 중얼거리며 실비아의 유교 정신을 시험하려 들었다. 여든이면 80살? 순간 유교 국가 출신인지라 움찔했던 실비아지만 맞닥트린 게 뼈다귀라서 그런지 대미지는 근소했다. 안쓰럽다고 생각해서 선의로 큰 보상금도 척척 건넸건만, 백골이 지팡이 춤을 추며 가는 모습을 본 뒤로 여든이고 뭐고, 노인공경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어쩌라고?”

이죽거린 그녀는 백골의 망토를 뒤적여 제가 줬던 돈을 다시 뺏었다. 하마터면 귀중한 30만 골드를 애먼 뼈다귀에게 줄 뻔했다. 돈을 미니 백 안에 냉큼 집어넣은 실비아는 허리에 손을 댄 채 씩씩거렸다.

“너, 바른대로 말해. 어디서 온 거야? 저번 케이크도 너지?! 순순히 대답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피도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어디서 온 건진 알 거 없고. 케이크야 저번에 네가 멍청해서 당한…. 아이고, 골이야.”

케이크 사건의 범인은 역시 눈앞의 백골이었다. 실비아는 분한 마음에 꿀밤을 딱콩 때렸다. 텅 빈 뼈가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백골이 아파하며 제 두개골을 쓰다듬더니 실비아에게 성질냈다.

“방금 내 머릴 때린 거야? 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그러는 자기는 피도 없는 게!”

여든 먹은 백골에게 실비아가 가차 없이 대답했다. 여든 살을 먹었는지 아닌지, 백골인데 알게 뭐람. 어차피 이 세상 사람도 아니고. 더는 자신을 공경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실비아의 태도에 백골이 힐끗 눈치를 봤다. 그는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도망을 시도했다.

“어림도 없지!”

실비아는 다시 한번 슬라이딩 기술을 걸어 백골을 재차 넘어트렸다. 뼈가 바닥과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백골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어디서 온 건지 실토하시지. 그리고 저번에 사기 친 돈도 다시 내놔! 아니, 그거보다 더 내놔.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말 못 해! 줄 돈도 없어!”

백골과 실비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백골이 말하지 않고 버틸 기세자 실비아가 주먹을 들며 위협했다.

“온전하게 뼈가 붙은 채로 돌아가고 싶으면 순순히 말하는 게 좋을걸? 알란 가 모르겠지만 나에겐 <뚝배기 깨기>라는 스킬이 있거든. 사람한테 쓰면 전의 상실만 되는 스킬이지만, 이미 죽은 너의 경우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네?”

“으으….”

백골은 침음을 흘리더니 어깨를 힘없이 내렸다. 순간 힘없는 노인을 괴롭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가슴이 선득했지만, 이미 명을 달리했으니 죄책감은 덜 했다.

“휴우.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괜찮아. 나한테만 말해 봐.”

실비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살 구슬리자 백골이 망토를 만지작거리더니 입을, 아니 위턱과 아래턱뼈를 서서히 열었다.

“그게….”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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