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40화 (240/372)

240화

“와! 정말 크게 성공하셨네요.”

“예. 마지막에 동업자를 잘못 고르지만 않았어도 야반도주를 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건 참 안타깝네요.”

실비아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안을 찬찬히 훑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시크릿의 개인사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공략 캐릭터도 아닌… 아니, 무조건 아니어야 할 그가 어떻게 사는지 하나도 안 궁금했으니까. 그가 다른 게임을 가든지 말든지 실비아의 지금 당장 목표는 쓸만한 아이템 사기. 조그만 머리통이 미어캣처럼 이리저리 돌아가자 시크릿이 손짓하며 그녀를 매대로 이끌었다.

벽에 아이템들이 하나하나 걸려있던 전과 달리 크리스탈 장식대에 놓여있는 소수의 아이템들이 보였다. 아이템명을 눈으로 훑던 실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에 보던 아이템들은 거의 안 보이네요?”

“이 상점의 아이템들은 고객님이 게임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상황을 고려해서 세팅되죠. 고객님의 생각이 바뀌면 비밀상점의 아이템 구성도 바뀐답니다.”

시크릿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하자 실비아가 감탄사를 흘렸다.

“오, 그러면 여기에 있는 아이템들을 보면 앞으로의 게임 방향도 미리 알 수 있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아아.”

그게 뭐야, 결국 무작위로 배치된단 소리네. 실비아는 대충 호응을 한 후 아이템장식대로 시선을 옮겼다. 전이랑 동일한 아이템은 <엔딩 회귀권>과 앞으로도 영원히 살 일 없을 것 같은 <제국민 올 누드 모드>가 있었다.

‘어? <아무도 모르게>를 사볼까 했더니 없어졌네. 필요 없을 땐 있고, 정작 필요할 땐 없다니!’

실비아는 혀를 찼다. 다른 건 다 사라졌는데, 한 번도 거들떠본 적 없는 <제국민 올 누드 모드>는 남아있다니 어이없었다. 저건 살 생각이 없는데 왜 계속 전시해 놓는 건지. 실비아는 영혼이 빠져나간 눈으로 싸늘하게 <제국민 올 누드 모드>를 응시하다가 들고 있던 바디타월을 덮어 감춰버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올 때마다 사지 못해 아쉬워했던 <성장 촉진제>도 없었다. 세비스가 남주가 아니란 결론이 나서 없어진 낚시 아이템이었을까? 아니면 세비스가 곧 성체가 될 거기 때문에 사라진 걸까? 실비아는 현재 <성장 촉진제>에 대한 물욕이 싸그리 사라진 상태였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새로 선보인 아이템들이 보였다. <엿듣기 좋은 종이컵>, <완벽한 인벤토리>, <신호탄>, <쥐새끼> 그리고 <이모티탄>이 있었다. 시크릿이 옆으로 다가와 새로운 아이템들의 상세 설명을 보라고 그녀를 부추겼다.

“상세설명을 보고 싶어서 근질근질 거리시죠? 어서 보세요.”

“아,예. 천천히 살펴볼게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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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듣기 좋은 종이컵>

- 고객님, 그동안 앞날이 캄캄하셔서 많~이 힘드셨죠? 이 아이템을 이용하면 가까운 미래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벽에다 이 종이컵을 대면 가까운 미래의 소리가 고객님의 귀에 들려올 것입니다.

특이사항 : 1회성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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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엄청난데? 가까운 미래를 엿볼 수 있다니. 이거 완전 회귀자 전용 버프 같은 거 아냐? 마음 같아선 여러 개 구매하고 싶네.’

실비아의 눈이 아이템 가격을 훑었다. 30만 골드라는 다소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가치를 생각하면 합당했다. 돈을 마구 낭비할 순 없고 우선 이 아이템을 두 개 정도 사겠어. 결정한 실비아는 다음 아이템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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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벤토리>

- 불완전했던 플레이어의 인벤토리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다. 기존 인벤토리에 담을 수 없었던 옷이나 기타 잡동사니를 다 집어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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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애초부터 인벤토리가 완벽했으면 살 필요도 없었던 아이템 같은데. 온라인 게임이었다면 캐시 유도로 유저들에게 개쌍욕을 먹었을 아이템이구나.’

지독하다, 지독해. 결국 이걸 팔아먹는구나. 실비아가 못마땅한 눈으로 아이템을 훑었다. 가격은… 50만 골드? 개새끼들. 험한 말을 내뱉은 실비아는 그래도 이 아이템을 사야겠다고 결정했다. 어쩌겠는가. 필요한 건데.

실비아는 원래 입이 험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게임 속에선 저도 모르게 계속 걸걸한 욕을 내뱉게 됐다. 물론 살짝 소심하기에 대부분 머릿속으로만 중얼거렸지만 말이다. 이 거지 같은 게임에 빙의된다면 누구든 그녀처럼 욕쟁이가 될 터였다. 이를 드러내며 얼굴로만 성질을 부린 그녀는 다음 아이템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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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탄>

- 멀리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신호탄을 하늘로 쏘아 보낼 수 있다. 던전에서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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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뭐, 완전 무난템이네. 가격도 저렴하니 한두 개 사두면 좋을 듯해.’

가격은 5000골드. 앞에 것들에 비하면 적당한 가격이었지만 놀이동산에 파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300골드정도인 걸 감안하면 이것도 꽤 눈탱이였다. 시크릿의 말대로 플레이어가 게임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상점의 구성이 달라진다더니 가격도 이따구. 그녀가 돈이 생긴 걸 알아서인지, 물가가 오른 건지 비밀상점 아이템들 가격이 하나같이 허덜덜했다.

‘살 수밖에 없단 걸 알고 이렇게 가격을 매겨놓은 거지. 독점 시장의 폐해로다. 다음 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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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새끼>

- 조그만 귀요미 정찰병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쥐새끼는 조그매서 잘 보이지 않고 녹음기능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소식을 물어다 줄 거에요. 들켜서 부서질 수 있으나 파손 보상은 해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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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직관적인 아이템명이네. 생긴 것도 딱 쥐새끼네.’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회색쥐 모양의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무척 가지고 싶었다. 가격은 10만 골드. 어머나, 저런…. 신호탄은 그렇다 치고 하나같이 가격들이 뭣 같았다. 그래도 하나 사볼까. 나는 예전의 거렁뱅이가 아니니까 말이야.

실비아는 입맛을 쩝, 다시며 마지막 아이템의 상세 설명을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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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탄>

- 신호탄과 비슷한 이모티탄이다. 하늘 높이 쏘아 올려 멀리 있는 상대방에게 플레이어의 지금 기분을 알릴 수 있다. 화, 슬픔, 기쁨, 절망, 재수 없음의 5가지 표정이 있다. 물론 별도 구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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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나당 2000골드네. 이것도 가지고 싶어. 뭐야, 왜 이렇게 탐나는 아이템만 가지고 온 거야? 이거 다 사다간 거지꼴을 못 면하겠는데.’

실비아의 발이 새로운 아이템 장식대 앞에서 떨어질 줄 모르자 시크릿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이번 것들이 좀 맘에 드시나 보네요? 제가 좀 합니다.”

“뭘 해요?”

“상품 구성에 일가견이 있단 소리죠.”

실비아는 대답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섰다. 사실 좀 그렇긴 했다. 새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구미가 당기는 것들뿐이었다. 시크릿은 게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특수 NPC. 실비아가 뒷돈을 많이 챙겼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이런 탐나는 아이템들을 많이 준비해둔 거겠지.

실비아는 시크릿이 들고 있는 장바구니를 뺏은 뒤 아이템들을 주섬주섬 담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카운터로 그녀를 데려간 시크릿은 계산기를 다다다다 두드린 뒤 명세서를 보여주었다.

“<엿듣기 좋은 종이컵> 2개, <완벽한 인벤토리> 1개, <신호탄> 2개, <쥐새끼> 1마리, <이모티탄> 5개. 다 해서 총 122만 골드입니다. 앗차, 바디타월까지 122만 5천 골드네요. 많이 사셨으니 바디타월은 서비스로 드리고, 122만 골드 되시겠습니다. 훠우, 엄청난데요? 감사합니다. 고객님. 오늘 우리 가게의 VIP십니다!”

“뭐, VIP까지야.”

시크릿은 언제 준비했는지 폭죽까지 터트리며 요란하게 그녀의 과소비를 축하했다. 이 가게의 손님은 일단 이 게임 내에선 실비아 혼자였지만, VIP 소리 듣는 게 기분 나쁠 사람은 없었다. 실비아는 흥흥거리며 팔짱을 꼈다.

122만 골드…. 듣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엄청난 액수였다. 루카에게 받은 돈도 좀 남아있고, 세비스가 타코야키 노점을 하며 바짝 번 돈도 있었지만, 그건 실비아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써야 하니 섣불리 건드려선 안 되는 돈이었다.

그럼 122만 골드를 어디서 조달했느냐? 다름 아닌 우라엘 황태자가 선심 쓰듯 던져 준 보석 두 개를 팔아서 마련한 돈이었다. 세비스 몰래 암거래상에게 가서 보석 두 개를 팔아 200만 골드를 받았다. 비상시를 대비해 모아두고 싶었지만, 게임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말아야 했다.

실비아가 돈의 출처를 생각하며 가만 서 있자 시크릿이 초조하게 손을 비볐다.

“고객님?”

“어허, 보채지 말아요.”

시크릿이 어서 돈 내놓으라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대부호가 된 듯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지은 실비아는 미니 백에서 122만 골드를 꺼내 카운터 위에 떡하니 올렸다. 순간 조금만 더 깎아달란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가까스로 참았다.

시크릿은 실비아가 깎아달라거나 할부 시도도 하지 않고 전액 현금으로 내놓자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뒷돈을 챙긴다는 정보는 어떻게 알긴 했었다만, 정확한 액수 파악은 저로서도 힘들었답니다. 그런데 고객님이 이런 돈을 현금으로 들고 다니셨을 줄이야. 꽤 성공하셨군요.”

“뭐, 어쩌다 보니.”

“아유, 다리 아프시죠? 여기 편한 곳에 앉아 계세요. 시원한 것 좀 내오겠습니다.”

실비아는 콧방귀를 끼며 턱을 치켜들었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입이 마르도록 아부한 시크릿은 안락한 소파에 실비아를 데려가더니 박하잎 띄운 레몬티를 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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