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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26화 (226/372)

226화

“참둘기야, 괜찮니? 유리창을 열어놓는다는 게 미세먼지 때문에 깜빡했어. 그건 그렇고 편지를 가져온 모양이구나? 얼른 내놓으렴.”

웅크리고 있는 참둘기의 깃털을 들춰보자 발에 묶여있는 편지가 보였다. 근데 편지가 두 개…. 빨간 편지와 노란 편지가 참둘기의 양발에 하나씩 묶여 있는 상황에 실비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뭐야, 응? 무슨 재주로 한꺼번에 두 개나 가져온 거니? 혹시 편지를 먼저 확인해 본 사람이 있진 않았지? 이게 대체, 뭐지.”

실비아의 경악해서 입을 떡 벌리자 참둘기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루카와 노엘이 상대방의 편지를 안 본 거면 다행인데. 그래도 하필 서로 들키면 안 되는 이들의 편지가 한꺼번에 두 개라니. 상당히 찝찝했다. 참둘기 발 양쪽에 묶여있던 편지를 모두 끄른 실비아는 부엌에서 따끈한 물주머니를 들고 와 참둘기의 머리에 대주었다. 참둘기는 끙끙 앓는 소릴 내며 둥지로 들어갔고, 참둘기에게 이불까지 덮어준 뒤 실비아는 안으로 들어왔다.

’불길한데. 우선 루카가 보낸 편지부터 봐야겠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우선 루카의 편지부터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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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우리 자기! 잘 지내고 있어?

이번 주 토요일에 수도에 또 올라가거든. 그때 잠시 보면 좋을 거 같은데. 온종일 보면 더 좋고! 그리고 어쩌다가 가족들끼리 식사 자리에서 실비아 네 얘기가 나왔는데, 아버지가 궁금해하시더라. 너만 괜찮다면 토요일 날 우리 아버지와 함께 자리를 만들어도 될까? 혹시 바쁠 수도 있으니까 미리 물어보는 거야. 가볍게 물어보는 거니까 부담가지진 말고. 아직 좀 그렇다면 나랑만 잠깐 봐도 돼. 그럼 답장 기다리고 있을게. 천천히 생각해보고 연락 줘.

-자기 전에 항상 실비아를 생각하는 루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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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끝까지 읽은 실비아의 낯이 새하얘졌다. 아버지랑 보자니. 이거 완전 상견례였다. 역하렘 게임 여주가 아직 남주들 공략도 안 끝났는데 상견례라니. 파멸 엔딩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루카의 아버지라면 그때 본 카를 마법사단장님? 괜히 얼굴을 익혔다가 나중에 다른 남주랑 있을 때 루카의 아버지랑 마주치거나 했다간 끝장이었다. 이건 볼 것도 없이 거절해야 하는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기분이 안 상하게 거절을….

생각을 이어 나가던 실비아는 접었던 편지를 다시 펴서 읽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네? 토요일에 잠시 보자고? 노엘 님이 이번 주에 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실비아는 초조하게 입술을 말아 물며 노엘의 편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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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실비아 님.

어느덧 가을 날씨가 완연하네요. 이번 주에 드디어 실비아 님을 볼 수 있다니 꿈만 같네요. 금요일에 수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날 저녁에 신관 협회가 위치한 수도 엘베우스 대신전에서 예배와 회의 일정이 잡혀 있어요. 그래서 회의가 끝나고 야심한 밤, 그 근처 분수대 앞에서 볼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혹시나 엇갈리실 것 같으면 전서구로 연락하는 건 시간 차가 있으니 제가 준 반지의 비상 연락망을 누르세요. 그럼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자매님을 볼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 노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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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날 노엘이 오는구나. 신난다! 으음, 금요일 날 보는 거면 그나마 보는 날이 루카랑 겹치는 건 아닌데….‘

오랜만에 노엘을 보는 건데, 좀 길게 봐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루카랑 실컷 하기도 했고. 이번에는 노엘이랑 실컷 하는 게 어떤가 싶었다. 이럴 때는 몸뚱이가 하나인 게 정말 아쉬웠다.

우선 실비아는 노엘에게 금요일 날 보는 게 기대된다고, 그날 분수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 끝에 루카에게는 부담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일정이 바쁘다고, 이번 주에는 보기 힘들 거 같다고 답장을 했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역하렘 게임 플레이어로서 공평하게 굴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괜히 토요일 날 보자고 했다가 노엘이랑 루카랑 같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진짜 끝장이야. 루카는 그동안 많이 봤으니 이번 주엔 노엘만 보는 걸로 해야겠어.‘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번 주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금요일 날 황제와 황태자가 오면 엘리셔스 월드 안내를 하며 황태자의 상태 창이 떠오르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날 황궁에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추천받는 것도 좋겠지. 그러고 나면 인턴 일이 다 정리되고. 블루와 주말 후에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 후에 집에 가서 던전 갈 짐을 미리 챙겨 나온다. 노엘이랑 실컷 할 텐데, 저번처럼 밖에서 자고 들어갔다간 세비스 얼굴 보기가 민망하니까. 그리고 노엘을 만나며 꿀 같은 주말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비밀상점에 갔다가 블루와 만나 던전을 간다.

’어휴, 한가한 날이 없네. 그래도 주말에는 오랜만에 노엘과 종일 있을 테니 그거 하나는 좋다. …루카에겐 편지로 만나기 힘들겠다고 답장했는데, 설마 수도로 오진 않겠지? 오더라도 뭐, 수도는 넓으니까 마주치지 않을 거야. 좁아터진 바닷가마을에서도 한 번도 안 들켰으니까….‘

실비아는 애써 불길한 예감을 떨치며 눈을 감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걸 모르고서….

* * *

목요일은 평범하게 지나가고 드디어 인턴 마지막 날이자 황제와 황태자의 엘리셔스 월드 시찰 날인 금요일이 왔다. 엘리셔스 월드로 출근한 실비아는 평소와 달리 한껏 긴장한 모습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무래도 날이 날인지라 다들 군기가 바짝 잡혀 있었다. 사무실 직원이 실비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했다.

“오늘 시찰 때 두 분을 안내하기로 했다며? 실비아 양이라면 실수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네. 점심시간 후에 오신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벌써부터 떨리네요.”

실비아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자 직원이 찬물을 건네며 소파에 앉으라고 권유했다. 그녀가 진정한 것 같자 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괜찮아? 그러고 보니 실비아 양은 오늘 근무가 마지막이지? 크으, 인턴 출신으로 바로 황궁에 가다니. 정말 대단해. 나중에 신문에서 실비아 양 얼굴을 보게 될 날이 기대되는걸!”

“하하, 사건 사고로는 안 나오게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직원들과도 한참 덕담을 주고받은 뒤 실비아는 블루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지력을 보니 660. 40이나 모자랐다. 단어장도 어제부로 다 뜯어먹어서 없어졌고, <전교 1등의 속옷>도 소모성 아이템이었는지 아침에 베개를 뒤적여보니 삭아버린 걸 발견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투자할 수 있는 건 분배 포인트뿐인데 60이나 있으니 써도 되려나?

상태 창을 터치하며 지력에다가 분배 포인트를 쓰려던 실비아는 남신이 했던 경고를 떠올렸다. 분배 포인트를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었지.

’다음 공략캐릭터를 위해서 아껴두란 뜻인 걸까. 지력은 40만 더 올리면 되니까 던전이든 어디든 지력을 올릴 수 있는 이벤트가 뜨는 걸 기다려보자.‘

실비아는 상태 창을 껐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실비아는 길을 걸으면서 상태 창을 본 덕에 어느새 아이스크림 노점 앞에 도착했다.

“어?”

근데 있어야 할 블루는 없고 웬 새로운 알바생이 노점에 있었다. 설마 잘렸나? 아무리 국영이라도 그 정도로 대충 했으면 짤릴 수도 있었다. 실비아가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데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실비아!』

“어, 블루야!”

실비아는 놀라서 뒤돌았다. 블루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봤다. 실비아는 블루에게 손짓한 뒤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너 아이스크림 노점은 어쩌고? 설마 잘렸어?”

『잘려? 아니. 조만간 던전 가기로 했잖아.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했지.』

“아아….”

뭐 어떻게 말이 통한 건지는 몰라도 시기적절하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니 다행이었다.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니는 것답게 알바도 하루아침에 잠적할 줄 알았더니 무척 의외였다.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에 앉자 블루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아이스크림 노점으로 다가갔다. 그가 뭐라 뭐라 알바생에게 말하더니 아이스크림을 두 개 받아왔다.

『자, 아이스크림 먹어.』

“뭐야, 너 돈 없잖아?”

블루는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다가 멍하니 입을 벌리며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너무해. 돈 없다고 대놓고 말하다니!』

“어, 그건 좀 미안하긴 한데. 없는 건 사실이잖아.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산 거야?”

『이건 공짜래. 공짜는 돈 없이 그냥 먹는 거고! 새로 온 알바생한테 쉽게 일하는 법을 알려줬거든. 그랬더니 언제든 공짜로 먹어도 된다고 하던데?』

쉽게 일하는 법이라니. 실비아의 눈이 아이스크림 노점으로 향했다. 인수인계를 잘못 받아도 한참 잘못 받은 알바생은 블루가 하던 것처럼 노점 앞 테이블에서 팔자 좋게 늘어져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뒤로 불쌍한 관람객들이 셀프로 아이스크림을 받아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블루가 하던 것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해서 옆에 호떡 굽는 철판도 하나 설치해놨다. 손님들이 거기서 호떡을 굽느라 야단이었다. 몇몇 손님은 집에서 가져온 걸로 보이는 반죽을 부어 빈대떡을 만들어 포장해갔다. 심지어 남의 가게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자기 물건을 파는 손님까지….

“저게 뭐야! 다 네가 가르쳐준 거야?”

『응? 아,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부지런하네. 돈 잘 벌리겠다.』

“네가 언제 부지런…. 그래, 뭐. 돈만 잘 벌면 됐지….”

실비아는 머리가 아파져 아이스크림 노점 걱정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녀는 블루의 머리를 땋아주며 입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만두면 며칠간은 어디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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