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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20화 (220/372)

220화

『하아.』

실비아는 한참 블루의 입맞춤에 얼을 빼놓고 있다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블루의 품에 안긴 자세로 거칠게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어머, 이렇게 자연스럽게…. 얘가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실비아가 움찔 몸을 떨며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블루가 손을 내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더니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블루의 손길을 따라 몸을 돌리던 실비아는 탄탄한 허벅지 안쪽에 있는 묵직한 무언가를 어렴풋이 느끼고야 말았다. 이 뜨겁고 딱딱한 감촉은... 설마?

천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묵직한 존재감에 그녀가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유레카! 섰구나! 그럼 그렇지. 키스를 이렇게 해대는데 아래가 잠잠할 리가 없었다. 드래곤은 생물학적 반응도 조절이 가능한 생물일까 싶었더니, 그런 게 아니었다. 실비아가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은근히 붙이자, 블루의 입술 사이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읏….』

블루는 풍성한 속눈썹을 깜빡거리더니 흠칫 놀라 몸을 뗐다. 블루의 아래를 제대로 확인하는 데 실패한 실비아가 아쉬운 한숨을 흘렸다. 겹쳤던 두 입술이 떨어지자 그 사이로 은색 실이 가느다랗게 이어지다 끊어졌다. 제 입가를 손으로 훔친 블루는 잠시 눈을 굴리며 힐끔, 실비아의 눈치를 봤다. 그러곤 살짝 상기된 얼굴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실비아. 나 지금…. 기분이 이상해. 왜 이런 거지?』

“글쎄….”

당연히 이상하겠지. 섰으니까. 실비아가 말끝을 흐리자 블루가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너랑 더 친해지고 싶어. 우린 친구잖아….』

“으음.”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돼? …알려 줘, 실비아.』

이 앙큼한 자식. 아래를 저렇게 세워 놓고 친구란 말이 뻔뻔하게 나오다니. 블루는 친구의 정의를 잘못 익혀도 한참 잘못 익혔다. 그러나 그건 전부 실비아가 정정해 주지 않은 탓이었다. 블루랑 나중에 이것저것 할 계획으로 일부러 오해를 고쳐 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래, 틀리게 가르쳐 준 건 아냐. 우린 우정도 나누고 몸정도 나누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거니까.’

실비아도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알려 주고 싶지만 여긴 일터였다. 더 알려주다 보면 끈적한 분위기가 될 텐데, 이곳에서 훌렁훌렁 벗을 순 없었다. 실비아는 어쩔 수 없이 허벅지를 꼬집으며 치밀어오르는 욕망을 참았다. 그녀가 후다닥 일어나서 소파에 앉자 블루가 실망한 눈빛을 했다.

『가르쳐 주지 않을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몸은 어때? 이제 힘이 돌아온 거 같아?”

『응. 내 힘을 묶어 놨던 다른 기운이 아까부터 안 느껴져.』

실비아는 기록 창에서 지나간 메시지를 열었다. 정말 블루의 말대로 마법진이 파훼 되면서 블루가 자유로워졌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실비아가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자, 그틈을 타서 블루가 곁에 와 앉았다.

『실비아, 기분 좋아?』

“그럼! 이제 넌 자유야!”

실비아가 팔을 흔들며 기쁜 듯 외치자 블루가 어쩐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몹시 감동한 기색이었다.

『내가 자유가 돼서 네 기분이 좋은 거야?』

“응? 어!”

『왜? 왜 기분이 좋아?』

블루의 물음에 실비아는 고민했다. 당연히 조만간 섹스 각이 떠서 좋아하는 건데, 그런 노골적인 말을 할 순 없었다. 고민하던 실비아는 대충 적절한 답을 내뱉었다.

“그야, 너는 내 친구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즐거워하는 게 친구잖아.”

『친구란 참 좋은 거구나.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즐거워하고….』

“응. 맞아.”

내가 대답을 잘했구나. 실비아가 마주 보며 웃자 블루의 말이 이어졌다.

『기분 좋아지는 입맞춤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어어….”

양심에 찔려 블루의 시선을 피한 실비아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근데…. 자유로워진 건 좋은데,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난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처음에 여기 온 이유가 어떤 좋은 예감 때문이었고 그게 결국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단 걸 알았으니까.』

“나랑 함께? 나도 좋지만…. 당장 내 집에 널 데려가긴 좀 그래. 같이 사는 친구가 있거든.”

실비아의 말에 순간 눈을 커다랗게 뜨던 블루가 다시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 네 친구라면 나도 친해지고 싶어. 붉은 머리 같은 재수 없는 자식만 아니면 상관없어.』

“루카 같은 애는 아니긴 한데. 아, 그게….”

태도를 보니 여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남자인데, 아니 늑대 수인이니 수컷이라고 해야 하나. 실비아는 어쩐지 세비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가 꺼려졌다. 집사는 집사인데, 이게 넓은 집이 아닌 데다가, 단둘이 살고 있으니 말만 집사지.

그냥 같이 사는 식구라고 하는 게 더 맞았다. 세비스와 마주치면 블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쓰러운 새댁>으로 주변 사람들이 오해한 것처럼, 곧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할 블루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싶어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친해지고 싶다니까?』

실비아가 말끝을 흐리자 블루가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말을 하다가 말면 보통의 인간은 대답하기 곤란하구나 할 텐데, 인간이 아닌 블루는 눈치가 없었다.

“그, 친구가 좀 까다로워서 말이야. 생각해 봐. 너라면 하루아침에 밥만 축내는 군식구가 한 명 생기면 즐겁겠니?”

『군식구?』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블루가 되묻자 실비아가 무슨 단어인지 설명해주었다.

“그래. 밥만 처먹는 식충이를 말하는 거야. 군식구가 생겨 봐. 대번에 쫓아내려고 하지!”

『나 그럼 군식구 아니야. 밥 말고 쿠키만 먹으면 되잖아.』

블루의 복장 터지는 소리에 실비아의 속이 답답해졌다. 더 설명하기 피곤했던 실비아는 빠르게 말을 돌렸다.

“…어쨌든 우리 집으로 오는 건 친구 때문에 안 되겠어. 그것도 그렇고 너 저번에 아쿠아리움이랑 프리랜서 계약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어떡할 거야?”

『그건 해지하면 되지. 어차피 프리랜서니까.』

“아, 간단하네.”

그는 잠깐 기다려보라고 한 뒤 허공에 손을 집어넣었다. 뻗은 손이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공간이 주머니를 뒤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잠시 놀랐던 실비아는 바로 납득했다. 드래곤은 마나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종족이니 물건을 저장할 공간도 가지고 있을 법했다. 그는 한참을 뒤적이더니 종이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그 계약서가 있었는데…. 여깄다!』

“어디 봐봐.”

블루의 옆에 붙어 앉은 실비아는 계약서를 찬찬히 살폈다. 다행히 독소조항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흉흉한 게임 세계에서 언제 눈탱이 맞을지 몰라 준비해둔 돋보기로 자세히 봐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계약서였다. 그러나 연 단위 계약으로 되어있어 중도해지를 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네가 지금 밖으로 나가면 받은 돈도 다 토해내고, 또 몇 배로 변상해야 돼.”

『뭐? 그건 싫어. 실비아, 어떻게 안 될까?』

“음, 다른 물개로 데려다 놓는다거나 하지 않는 한…. 근데 넌 또 몸이 파란색이라 사라지면 금방 알아차릴 텐데.”

『아! 그거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루가 밝게 웃더니 손을 모으고 중얼거렸다. 순간 그의 발아래에 바다 내음이 나는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순식간에 물웅덩이 속으로 입수한 블루는 잠시 후 물개 한 마리를 안고 돌아왔다. 처음 봤던 날처럼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도 그는 전혀 젖지 않고 뽀송뽀송했다.

“어?”

“엉?”

실비아는 블루의 품에 안긴 물개를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놀란 물개도 실비아를 마주 보며 입을 벌리고 ‘엉’거렸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순식간에 물개를 만들다니!”

『만든 게 아냐. 바다에서 데려온 거지. 난 마법으로 바다에 갔다 올 수 있거든.』

블루가 안고 있던 물개를 바닥에 내려놨다. 물개는 어리둥절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짖어댔다.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는 물개의 눈을 보며 실비아의 눈썹이 처량하게 내려갔다.

“엉엉!”

“불쌍해. 이렇게 함부로 데려오면 어떡해! 납치한 거야?”

『잠깐.』

블루가 물개를 툭툭 치더니 실비아가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구사했다. 그러자 물개는 처음엔 몇 번 항의하듯 엉엉거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지느러미를 내밀었다. 블루가 펜과 함께 종이를 건네자 그가 사인했고, 그렇게 순식간에 모종의 거래가 성사됐다. 블루가 손가락을 딱 소리나게 부딪치자 물개의 몸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잘 끝난 건가? 실비아는 어색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블루는 감쪽같이 제 대체품이 된 물개의 어깨를 주무르며 격려하듯 또 못 알아들을 소릴 했다.

“뭐라고 했길래 물개가 협조적이야?”

『내가 여기 있으면서 번 돈 다 얹어주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좋다고 하던데? 여기가 어딘가 했더니 아쿠아리움이냐고. 취직하기 힘들어서 집에서 구박받고 있었는데 잘 됐다고 하더라.』

블루의 말에 따르면, 아쿠아리움 취직은 아무 물개나 하는 게 아니었다. 헤드헌터의 눈에 띄어야 하고, 몸이 미끈하게 잘 빠져야 하고, 주둥이가 이뻐야 하고 등등…. 하여튼 물개 세계도 인간 세계 못지않게 취직이 쉽지 않았다. 그러니 물개는 좋은 일자리를 얻어서 좋고, 블루는 대체자를 구해서 좋고, 위장취업이란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윈윈인 셈이었다. 블루가 아쿠아리움 생활 수칙이 적힌 종이를 물개에게 건네주자 물개는 열심히 읽어 내렸다.

물개는 내버려 두고 실비아는 다시 블루의 거처를 그와 함께 고민했다. 집에서 함께 사는 건 안 된다고 하자 블루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실비아에게 유니폼과 모자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실비아는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라커룸으로 가 그가 말한 것들을 챙겨왔다. 블루는 실비아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부끄러워하며 어딘가로 숨었다.

‘저 저…. 내외하는 건 또 어디서 배워가지고. 쩝, 아쉬워라.’

실비아가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블루가 옷을 완벽히 갈아입은 채 나타났다. 단정한 차림새가 완전히 엘리셔스 월드 직원이 따로 없었다.

『실비아, 어때? 이러면 나도 여기 직원처럼 보이지?』

“일단 가져달라길래 주긴 했는데, 어떻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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