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뭐, 밖에서 오면 어쩌라는 거죠? 화성에서 지구로 온다고 지구가 가짜 세상인가?”
그가 다시 말을 이어 갔지만, 실비아는 곧장 반박했다. 그는 화성이나 지구가 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여기가 게임 세계란 걸 알고 있는 이답게 모르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속에서 끌어 올린 듯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손으로 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말이 안 통하는군. 지금은 더 말해 봤자 소용없겠어.”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라! 저는 여기가 가짜라고 생각 안 한다니까요?”
“뭐, 차차 알게 되겠지.”
그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실비아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눈을 순간 가렸다. 손에 가려졌던 시야가 다시 드러나자 가면을 쓴 루카가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 아주 짧은 대화였다.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답잖은 소리만 할 거면 뭐 하러 나타난 건지 모를 일이었다. 두 번째로 마주치니 처음과 달리 귀신인 걸 알고 있어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하는 짓을 보니 루카의 형은 그녀에게 별 해코지를 못 하는 모양이었다.
‘헛소리만 할 거면 왜 나타난 거야?’
실비아가 싱거웠던 루카 형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입을 삐죽이고 있는데 순간 거울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그냥 관람객을 놀라게 하려는 조명 효과였다. 아무래도 루카 형을 보고 난 후라서 그런지 뭘 봐도 놀랍지 않았다. 그녀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자 루카가 실망한 듯 칫-하고 혀를 찼다.
“재미없다. 이제 익숙해진 거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요. 똑같은 일에 계속 놀라면 사람이 아니죠.”
실비아가 이것쯤이야 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가 ‘오’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인형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실비아의 모습에 배를 잡고 웃었지만 말이다.
“으아악!”
“그럼 그렇지.”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지르다 보니 어느새 귀신의 집 출구였다. 뛰듯이 밖으로 나온 실비아는 단시간에 너무 많이 놀란 제 가슴을 다독였다. 루카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힐끗 살핀 실비아가 흘겨보며 물었다.
“재밌었나 봐요?”
“응. 귀신의 집이 제일 재밌었어. 너 놀라는 거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참나…. 기가 막혀서 원.”
실비아가 툴툴대자 루카가 또 미친 듯이 웃었다. 뭐가 저렇게 웃기다고 눈물까지 흘려 대며 낄낄대는지 기가 막혔다. 볼을 부풀리고 앞서가던 실비아는 하얀 구름이 둥둥 떠 있는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관람차를 발견했다. 그녀는 뒤돌아 루카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관람차를 가리켰다.
“놀이동산에 왔으면 관람차는 타고 가야죠.”
“좋아.”
관람차로 간 둘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줄 앞에 선 직원에게 아까 그 많던 관람객들은 어디 갔냐고 물어보자 패키지 상품이라서 몇 시간 안 돼 금방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비싼 놀이동산을 조금밖에 못 즐기고 가다니. 패키지 상품의 폐해로구먼.’
직원의 안내에 따라 관람차에 마주 보고 탄 둘은 가면을 벗고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건설적이고 명랑한 대화도 잠시 둘은 바깥 풍경을 말없이 구경했다. 관람차 창문을 통해 밝은 햇빛이 들어와 루카의 붉은 머리카락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햇빛을 받아 환해진 얼굴은 마치 태양의 신이 강림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찬란했다.
‘참, 봐도 봐도 잘생긴 얼굴이란 말이지.’
눈이 부신지 황금색 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던 루카는 실비아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보기 좋은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는 나른하게 눈을 뜬 채 혀로 입술을 핥았다. 유혹하는 듯한 행동에 실비아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신발을 벗어 던졌다. 곧 조그만 맨발이 루카의 다리 사이에 와 닿았다. 그녀의 발이 은근한 곳을 야릇하게 비비자 루카의 입에서 더운 숨이 새어 나왔다.
“하, 잠깐. 실비아. 여기서는….”
루카가 작은 발을 가볍게 잡고 곤란한 듯 눈썹을 내렸다. 불여우처럼 입술을 혀로 핥으며 유혹할 땐 언제고 곤란한 표정을 짓다니. 그런 표정은 유죄라고. 실비아는 못마땅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유혹한 게 누군데.”
“여기서? …나, 그렇게 빨리 못 하는데?”
루카가 황당한 듯 입을 살짝 벌리고 헛웃음 쳤다. 그의 말대로 관람차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그 안에 일을 치른다면 루카는 조루일 터였다. 실비아는 검지를 까딱이며 매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하란 소리 안 했는데요. 이렇게….”
“읏, 아!”
실비아가 발끝을 모아 부풀어 오른 허벅지 안쪽을 꾹 누르자 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금빛 눈동자가 쾌감으로 몽롱해졌다.
그 표정에 실비아의 눈이 희열로 가득 찼다. 아까 엄청 놀려 댔겠다? 기회가 왔으니, 이젠 그녀가 복수할 차례였다.
“가만히 있으면 귀신의 집보다 더 재밌을 거예요.”
“아, 정말. 흐읏.”
실비아는 제 속옷이 루카의 시야에 보이도록 원피스를 살포시 걷어올렸다. 자신이 사 준 속옷으로 감싼 은밀한 곳을 노려보던 루카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그녀는 발의 움푹 팬 곳으로 살짝 우수납 한 그의 중심을 재봉틀 발판을 누르듯 반복적으로 눌렀다. 기둥의 선단이 있을 법한 곳을 엄지발가락으로 찍어 누르듯 자극하자, 그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조그만 발은 이제 담배꽁초를 비비듯이 루카의 것을 격렬하게 짓뭉갰다. 약간의 고통과 그보다 더 큰 희열이 그의 아래를 달궜다. 루카는 어쩔 줄을 모르며 달뜬 신음을 뱉어냈다. 관람차의 손잡이를 쥔 손에 푸른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흥분으로 붉어진 눈가가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커다란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관람차가 약하게 흔들렸다.
루카는 곧 죽을 듯 숨을 헐떡이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아, 여기선 하지도, 으읏. 못 하는데…. 그만하지?”
“좋으면서 왜 그래요?”
“하아, 윽.”
순간 루카가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그 순간 실비아의 발이 천을 뚫고 나올 듯 발기한 그의 것을 힘주어 밟았고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거기 얌전히 있어야지?”
“읏, 실비아. 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황금안에 눈물이 차올랐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촉촉한 금빛 눈을 보며 실비아의 아랫배가 더 뜨거워졌다. 간만에 루카를 괴롭히니 더욱 즐거웠다.
어느새 관람차가 삐걱거리며 정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일은 관람차가 다 했는데 루카의 숨이 등산이라도 한 것처럼 가빠졌다. 그는 뜨거워진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실비아. 미치겠어. 만지게 해 줘.”
“에이, 여기선 못 하는데. 만져 봤자 뭐해요.”
그는 애원하는 시선으로 실비아를 응시했지만, 그녀는 야릇하게 눈매를 접으며 거부했다. 오히려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즐거워져 발놀림이 더 격렬해졌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뒤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녀의 발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나 애석하게도 좁은 관람차는 그가 도망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감당 못 할 자극이 계속되자 질끈 감긴 루카의 눈가로 맑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아, 실비아! 제발, 그만. 흣.”
“하아….”
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실비아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더운 숨을 내뱉은 그녀는 커다랗게 부푼 중심을 발끝으로 천천히 쓸었다. 발에 닿은 단단한 살덩이가 제 아래를 뚫고 들어올 때의 감각을 상상하자 속옷이 서서히 젖어 들었다.
실비아의 눈빛에 즐거움이 아닌 다른 감정이 또렷이 담겼다. 루카는 아래를 짓밟히는 와중에도 귀신같이 그녀의 반응을 알아차렸다.
“읏…. 흥분했네?”
“아니…거든요.”
“속옷이 흠뻑 젖었잖아. 후우, 내 걸 밟으면서 젖다니, 변태.”
루카의 눈이 그녀의 다리 사이를 빤히 바라봤다. 속옷이 젖었다는 말에 깜짝 놀란 실비아가 원피스 자락을 내려 아래를 감췄다. 오늘 그녀의 속옷은 살구색 실크 팬티였다. 옷을 내리고 나서야 그가 앉은 자리에서 속옷이 젖은 게 보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지레 찔린 실비아의 빠른 행동에 조금 전까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루카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맞네. 변태… 아읏!”
“흥. 말씀하신 대로 저는 변태니까, 변태답게 해 주겠어요.”
실비아의 발이 그의 것을 뭉개듯이 지르밟았다. 더 놀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관람차가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아 탑승지점에 다다랐다. 루카가 급히 손을 까딱이자 실비아가 뜻을 알아차리곤 걸치고 있던 재킷을 건네주었다. 관람차가 아래에 도착하자 루카는 가면을 급히 쓰면서 재킷으로 제 앞을 가렸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발기한 아래를 드러내고 다닐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출구엔 직원이 대기하고 있지 않았기에 어색한 시선을 받는 일은 없었다. 루카는 어기적거리며 제 머리를 정신없이 헝클어트렸다. 커다란 손이 실비아의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 루카는 씨근거리며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눈이 뒤집힌 그 모습에 실비아는 너무 자극했나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실비아의 손을 잡은 채 성큼성큼 걸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탈 거 다 탔어?”
“네? 관람차 탔으니 이제 탈 만한 건 다 탄 거 같은데….”
흥분한 거 같더니 갑자기 탈 거 다 탔냐니? 생뚱맞은 루카의 물음에 실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루카가 목을 울리며 웃더니 윗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곤 근처에 관람객들이 없는 걸 확인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둘은 어느새 인적이 드문 곳에 서 있었다. 그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곤 나긋한 허리를 더듬어 내려가더니 조그만 엉덩이를 한 손으로 살짝 움켜쥐었다.
“난 탈 거 하나 더 남았는데?”
“…아!”
“날 괴롭힌 값은 받아야지.”
실비아가 깜짝 놀라며 제 엉덩이에 닿은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그는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지 그녀의 제지를 무시하고 더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실비아의 눈이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아무도 없어서 그랬구나. 안도한 실비아도 어느새 그의 은근한 손길을 즐겼다.
그래도 혹시나 누가 그들을 발견할까 걱정된 루카는 더 후미진 곳으로 실비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엘리셔스 월드는 넓은 만큼 철거를 하거나 새로 짓고 있는 건물도 꽤 있었고, 그들이 있는 곳은 짓다 만 새 건물이었다. 입구의 표지판엔 다음 주에 건설이 재개된다고 쓰여 있었다. 뭔 짓을 해도 쥐새끼 한 마리 오지 않을, 외따로 떨어진 곳이었다.
그때 건물 뒤편에 있는 물개 조각상을 본 루카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걸 보자 여기는 실비아의 직장이란 자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는 계면쩍은 얼굴로 제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장에서 섹스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음. 아무래도 여긴 무리겠네. 밖으로….”
“무리면, 안 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