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은근히 죄책감을 건드리는 그의 말에 실비아가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녀는 무심결에 시선을 돌리다가 문뜩 깨달은 사실에 흠칫했다. 잠깐, 클라우드 소파에 앉아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여긴 물개 우리잖아. 아무리 둘밖에 없다지만 너무 장소를 안 가리는 거 아냐?
동물수용소랑 달리 감시 수정구 같은 건 없었지만 아무래도 좀 찝찝했다. 실비아가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블루가 그녀의 턱을 제 쪽으로 돌리고 설득했다.
『누가 올까 봐 그래? 잠깐만 할게.』
어째, 블루가 하는 말이 죄다 어디서 많이 본 음흉한 놈들의 단골 멘트 같았다. 그건 제 머릿속 음란마귀 탓인 걸까. 실비아는 고개를 저으며 약하게 거부했다. 얼굴에 손댄 게 미안해 단호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여긴 물개 우리잖아. 또 하는 건 좀….”
『아까 두 번이나 했잖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
“음….”
그건 그랬다. 뽀뽀해도 아무 일 없는 거 보니 배드 엔딩은 없을 듯하고…. 딱 뽀뽀에서 그친다면 말이다. 실비아가 침음을 흘리자 블루가 칭얼거리듯 호소했다.
『실비아아. 으응? 이러다 다시 물개로 돌아가겠어. 한 번만 더, 제발.』
블루의 애교 섞인 설득에 실비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뽀뽀가 기분 좋긴 했나 보네.’
실비아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기다란 손가락이 턱선을 천천히 쓸더니 서로의 코끝이 살짝 스쳤다. 입술이 닿기 전 따뜻한 숨결이 먼저 느껴지자 그녀의 기분이 이상해졌다. 새삼스럽게도 드래곤도 사람이랑 별다를 것 없이 숨을 쉬는구나 싶었다.
곧 말랑한 입술이 닿고 허리를 껴안은 손아귀 힘이 더 강해졌다. 블루는 아까 혀를 넣었다가 뺨을 맞았기 때문인지 이번엔 입술을 대고 가만히 버텼다. 입만 닿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게 재밌나? 실비아는 속으로 피식거렸지만, 생각과 달리 그녀도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뭔가 본격적인 스킨십보다 더 야릇하고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맞닿은 입술 새로 따뜻한 숨이 끼쳐왔다. 허리와 턱을 쥐는 손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걸 몇 번이나 셌을까. 뽀뽀가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이 정도면 블루의 맘도 다 풀렸을 터.
눈을 가늘게 뜬 실비아는 슬슬 입을 떼려고 했다. 그러나 블루가 소파 팔걸이 쪽으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순식간에 그녀는 팔걸이와 블루의 팔 사이에 갇혔다. 그거로도 모자라 더 단단하게 턱을 그러쥐는 손길에 놀란 초록색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뭐, 뭐야, 왜?”
『하…. 이걸론 부족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감색 눈이 나른하게 휘어졌다. 블루는 가쁜 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혀를 내어 실비아의 입술을 핥았다. 뜨거운 혀의 감촉에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었다. 그녀가 움찔거리자 블루가 입술을 핥던 모습 그대로 눈을 마주쳐왔다.
『실비아, 한 번만 넣어 보면 안 돼?』
“누가… 누가 들으면 오해해.”
음란마귀를 항상 곁에 두는 실비아에겐 블루의 말이 낯뜨겁게 들렸다. 순간 엄한 망상을 한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민망해져 얼굴을 붉혔다. 뭐, 혀나 그…거나 야한 건 마찬가지지만. 여전히 붙은 상태에서 말하니 서로의 입술이 계속 스쳤다. 블루는 아까 허락 없이 혀를 넣었다가 실비아의 나무람을 제대로 들었기 때문인지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않았다. 그는 고개를 기울인 채 실비아의 입술을 한 번 더 핥았다. 대답을 바라는 듯한 행동에 그녀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
『혹시 아플까 봐 그래? 별일 없을 거야. 한 번만 넣었다가 빼면….』
“으음….”
와, 무슨 말을 저렇게 하냐. 저 말이 야하단 걸 블루는 알까? 실비아는 곤란해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어쩌다가 이런 야릇한 분위기로 흘러간 건지. 얘가 친해지고 싶다고 순진하게 웃음 짓던 블루랑 동일 인물 맞나? 순간 눈앞의 남자가 딴사람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블루의 모습이 낯설었다. 루카를 보고 나서 질투가 나서 이러는 걸까.
‘혀를 한번 넣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설마 큰일이 나겠어.’
블루랑 입맞춤하는 게 생각보다 짜릿하고 좋았다. 그녀는 현생에서 사람들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이유를 완벽히 이해했다.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을 왜 하는가. 그게 다 죽음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짜릿함에서 비롯된 스포츠 아닌가. 블루와의 스킨십은 그런 스포츠랑 비슷했다. 안전장치가 언제 끊어질지 몰라 더 아슬아슬하다고나 할까.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블루가 입을 살짝 벌리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막상 바로 더 깊은 스킨십을 해 오진 않았다. 하고 싶은 마음에 졸라대긴 했지만 긴장됐기 때문이다.
사실 실비아의 생각과 달리 블루는 이 행동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인간을 모를 뿐 스킨십의 의미를 모르는 멍청이는 아니었기에. 100년을 살았는데 남녀 간의 성애를 모른다면 드래곤생 헛산 거였다. 둥지에 있으면서 책을 많이 읽었기에 이성과 관계를 맺은 적은 없지만, 스킨십의 의미는 알고도 남았다. 그러나 실비아 앞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순진하게 굴면 실비아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블루를 귀엽게 여기는 걸 자기도 모르게 은근히 티를 냈고, 그게 좋았던 블루는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하며 귀여움을 연기했다.
물론 손가락은 정말 몰라서 한 거 맞았다. 겉보기엔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힘은 드래곤의 그것과 똑같았기에. 인간의 몸을 만져볼 일이 없으니 힘 조절을 못한 것이다.
그는 혹시나 실비아를 다치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입술을 머금었다. 고작 입술만 닿은 건데도 벌써부터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실비아가 알아채지 않길 원했기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척 제 몸의 반응을 숨겼다. 어쩐지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혀를 살짝 내밀어 탐스러운 입술을 간지럽게 핥자 실비아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열기를 띤 눈으로 그 모습을 관찰하던 블루는 윗입술을 할짝거린 뒤 조심스럽게 제 혀를 미끄러트렸다. 살짝 열린 입술 사이 가지런한 치열이 혀끝에 닿았다. 다물려 있는 이를 약하게 두드리자 실비아가 입을 살짝 벌려 침입을 허락했다.
혀끝에 촉촉한 살덩이가 느껴졌다. 약속대로라면 여기서 끝나야 했다. 그러나 충동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조그만 머리를 감싸 쥔 채 혀를 더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물컹한 살덩이가 작은 입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안으로 진입한 혀는 입천장을 두드리고 여린 살을 헤집었다. 두꺼운 혀가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혀를 휘감았다. 그러자 단단한 팔 사이에 갇혀 있던 몸이 펄쩍 뛰었다.
뭐, 뭐야? 생각보다 본격적인 키스에 깜짝 놀란 실비아가 순간 그의 가슴팍을 세게 밀쳤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블루의 혀 놀림이 예상보다 훨씬 현란했다. 얘 키스 처음 하는 거 맞아? 뭘 이렇게 환상적으로 혀를 놀리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휘몰아치는 키스에 실비아의 몸이 잘게 떨렸다.
그 반응에 목을 울리며 작게 웃은 블루가 계속 키스를 이어 나갔다. 애당초 한 약속이랑 달리 입맞춤이 끈적해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두꺼운 혀가 작은 혀를 휘감고 애무하듯 문질렀다. 당황한 혀가 안으로 자꾸 숨으려 했다. 블루는 속박을 풀고 도망가려는 혀를 끈질기게 매만졌다. 처음 맛본 야릇한 느낌에 그의 머릿속이 온통 실비아를 가지고 싶단 욕망으로 가득 찼다.
블루가 몸을 숙이는 바람에 거의 누워 버린 자세가 된 실비아는 눈을 번쩍 떴다. 블루의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려 온통 시야가 막혔다. 내가 언제 이렇게 누웠지? 생각보다 입맞춤이 너무 길었다.
처음에 한 번만 넣어 본다는 말과는 다르지 않나? 배드 엔딩이 안 뜨는 거 보니 괜찮을까 싶긴 한데, 사고란 게 원래 예고하고 찾아오는 게 아니지 않던가.
실비아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소파 팔걸이를 받치고 있던 블루의 한 손이 슬금슬금 내려왔다. 커다란 손이 여린 어깨를 스치더니 가는 허리를 더듬었다. 입을 겹치다 보니 딴 것도 겹치고 싶어진 건 당연한 본능이었다. 가녀린 몸을 은근슬쩍 만지다 보니 그의 중심이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키스뿐만 아니라 더한 것을 하고 싶은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실비아는 허리께에 수상한 손길이 닿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얘가 지금 혀만 넣으랬더니 어디까지 하는 거야? 그의 손이 곧 만지면 안 될 곳을 만질 것 같았다.
이러다가 또 배드 엔딩이 찾아오면 어쩌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차라리 데드 엔딩이 낫지, 엄지 사건처럼 또 신체 부위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키스를 이렇게 진하게 해도 아무 일도 없었으니 안전한 거 아닐까 싶겠지만 그렇게 방심하다가 여러 번 죽었다. 불안해진 실비아는 격하게 몸부림을 치며 단단한 가슴팍을 퍽퍽 쳐댔다.
“읍, 읍읍!”
『윽!』
격한 반항에 블루는 어쩔 수 없이 실비아한테서 물러났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실비아는 뭍으로 올라온 생선처럼 헐떡이며 심호흡했다. 그녀가 숨을 가다듬느라 정신없는 새 블루는 엉거주춤하게 앉은 채 최선을 다해 제 것을 가라앉혔다. 아직 실비아에게 순진해 보이고 싶었다. 이미 늦은 거 같지만.
“허억, 허…. 아, 미쳤어.”
『…하아.』
둘의 입가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타액으로 엉망으로 젖어있었다. 숨을 마저 고른 실비아는 입가를 급히 훔쳤다. 상체를 일으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그녀가 블루를 째려봤다. 혀 한번 넣어 주게 했더니 몸까지 더듬다니. 순진한 줄 알았더니 블루는 예상보다 너무 위험한 존재였다. 그리고 아직 공략조건도 완수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자신이 먼저 껄떡댄 것도 아닌데 몇 번 더 배드 엔딩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