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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92화 (192/372)

1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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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네가 일하는 곳이 엘리셔스 월드에 있는 아쿠아리움이라고 했었지?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내가 이미 그곳에 도착했을지도 모르겠어! 깜짝 이벤트로 나타날까 했지만…. 근무 중에 날 보고 네가 놀랄까 봐 걱정되더라. 난 매너를 아는 남자거든. 그럼 곧 보자. 우리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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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어 내리던 실비아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이 말인즉슨 지금 엘리셔스 월드 내에 루카가 있단 소리였다. 주말에 바빠서 볼 수 있으려나 싶었더니 갑자기 근무 중에 찾아올 줄이야. 작게 웃은 실비아는 흐뭇한 표정으로 편지지를 유니폼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금요일은 물개 쇼가 여러 번 진행된다. 실비아는 관람객들이 객석에 가득 들어찰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훑어봤다. 루카는 보이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다 돼서 오려나?

블루는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공을 꽤 굴릴 수 있게 됐다. 코에 공 굴리기를 할 줄 아는 남주는 웹소설, 웹툰, 미연시를 통틀어서 얘뿐일 것이다. 물론 실비아는 그런 걸로 치면 이미 기네스 기록을 세웠겠지만…. 발전한 그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실비아는 신나게 정어리를 던졌다. 물개들이 ‘엉!’ 소릴 내며 신나게 정어릴 받아먹으며 오전의 물개 쇼는 성황리에 끝났다.

“실비아 양. 혹시 바쁜 일 없으면 점심 드시고 나서 오후에 잠시 블루 산책 좀 시켜 줄래요?”

“산책요?”

“네. 다른 애들이랑 산책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더라고요. 실비아 양이 산책시켜 주면 좋다고 따라 나갈 것 같아요.”

조련사가 실비아에게 목줄을 건넸다. 점심을 재빠르게 먹고 온 실비아는 아직 휴식 시간이 남았음에도 아쿠아리움으로 다시 찾아갔다. 어차피 식후에 별일 없으면 늘 하던 게 산책이었으므로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블루랑 같이 산책해도 될 듯했다. 물개 우리로 가자 블루가 그녀를 격하게 반겼다.

『실비아! 보고 싶었어.』

“아까 실컷 봐 놓고 무슨 처음 본 것처럼 반기고 있어.”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블루 때문에 단기간에 두 번이나 죽었더니 그에게 순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싫은 건 아니었기에 실비아는 말하는 건 거칠어졌어도, 무의식중에 다정하게 대했다. 툴툴대면서도 블루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츤데레 같은 실비아의 행동에 블루는 헤실거리며 달라붙었다. 며칠 새 저 거친 말투가 익숙해져서 원래 그런 애인가 보다 하게 된 것이다.

『봐도 봐도 좋은걸. 실비아는 예쁘니까.』

“뭐, 그건 이해하는 바지만.”

자식이 보는 눈은 있구나 싶어 실비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블루에게 하얀색 목줄을 매준 실비아는 그가 햇볕에 탈까 염려돼서 장비실에서 베트남 논라처럼 생긴 원뿔형 모자를 가져왔다. 블루의 머리에 그 모자를 씌운 뒤 끈을 매어 주자 아주 귀여운 비주얼이 완성됐다. 실비아가 블루를 데리고 엘리셔스 월드를 돌아다니자 관람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으아, 너무 귀엽다. 한번 만져 봐도 되나요?”

“파란 물개다. 진짜 깜찍하게 생겼어!”

실비아가 안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관람객 중 한 명이 블루의 목덜미를 긁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블루는 실비아가 놀랄 틈도 없이 지느러미로 야멸차게 손을 쳐 냈다. 찰싹, 하고 지느러미에 사람 손등이 맞는 찰진 소리가 들렸다.

『감히 누구 몸에 손대는 거야. 인간은 원래 다 이런가?』

그리고 실비아의 귀에만 들리는 블루의 낮고 음산한 목소리. 조련사에게 대거리할 때랑은 비교도 안 되게 험악해 보였다. 다행히 다른 이들의 귀에는 엉엉거리는 물개 소리만 들렸는지 다들 여전히 꺅꺅거리며 좋아했다. 블루는 이제 이를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이거 자칫하면 놀이공원에서 사고가 나겠는데? 관람객들이 생명 포기 각서에 자신도 모르는 새 다들 사인했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지.’

물론 물개인 모습으로는 힘을 잘 쓰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 든 건 엄연한 드래곤이었다. 실비아는 화가 난 그가 걱정돼 관람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한적한 곳을 향해 갔다. 아쿠아리움 옆 조그만 정원은 볼 게 많은 엘리셔스 월드에서 관람객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몇몇 장소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실비아는 벤치에 앉아 블루를 쓰다듬었다.

“블루야. 많이 화났어?”

『화난 건 아냐. 그냥 내 몸을 허락도 없이 만지려고 하는 게 기분 나빠서 그랬어.』

블루가 만지는 걸 싫어했었나? 내 손길은 좋아했던 거 같은데. 실비아의 눈에 의문이 서리자 블루가 바로 말을 덧붙였다.

『실비아 너 말곤 다른 사람의 손은 싫어. 난 네가 만져 주는 것만 좋아.』

“아….”

내가 만져 주는 게 좋단 말은 설마? 실비아는 눈앞에 있는 물개가 아닌 본체인 블루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미친 이목구비의 남자가 자신이 만져 주는 게 좋다니 순간 행복지수가 마구 올라가며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 블루랑 접촉하려다가 두 번이나 죽었지만, 그녀는 미남 앞에서만은 학습 능력이 제로였기에 그런 끔찍한 기억은 이 순간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 옆에 앉아 있던 블루가 어깨에 살포시 기대며 애교를 피웠다.

『나 쓰다듬어 줘.』

“응. 알았어. 근데 변신은….”

그녀는 블루의 모자를 뒤로 넘긴 뒤 매끈한 머리통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러곤 변신은 안 하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빛나더니 눈 깜짝할 새에 잘생긴 블루의 본체가 나타났다.

혼이 빠질 것 같은 매혹적인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녀의 손엔 매끈한 물개 머리통이 아닌 실크 같은 푸른 머리카락이 닿았다. 머릿결이 어찌나 보드라운지 혀로 핥으면 꿀타래처럼 녹아 없어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실비아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혀를 빼꼼 내미는 순간 블루가 입을 열었다.

『이 모습이 더 좋지? 네가 내 본체를 더 좋아하는 거 같길래 변신해 봤어.』

“어? 아, 아니야. 난 네가 어떤 모습을 하든 다 좋아.”

완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블루가 물개 모습일 때의 실비아는 강 건너 귀여운 강아지를 보듯 그를 대했었다. 그러나 그가 본체로 변신하는 순간 두 번 죽어도 넋을 놓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죽고 나서는 잠시 경계를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어떤 철학자가 한 명언의 산증인이 여기 있었다.

블루는 넋이 빠진 실비아의 얼굴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가볍게 훑었다. 그가 녹아 버릴 것 같은 달콤한 눈웃음을 짓자 왼쪽 눈 밑의 두 개의 점이 섹시하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이 모습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실비아. 나 질문 하나 해도 돼?』

“어? 뭐든지, 뭐든지 다 해.”

실비아가 간도 쓸개도 다 빼 줄 것처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블루가 하얀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미소 짓곤 말을 이어 갔다.

『우린 친구잖아.』

“응. 친구? 어, 뭐. 친구지?”

실비아는 섹스 프렌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대답했다.

‘얘가 또 뭘 물어보려고 그러나? 저번에 포옹을 해 보고 싶다고 했었으니 이번엔 설마 뽀… 뽀뽀?’

혼자서 심하게 앞서 나가며 들뜬 맘을 추스르고 있는데 블루가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친구끼린 포옹 말고 어떤 걸 해? 그게 알고 싶어.』

“어…. 잠깐만.”

실비아가 눈을 도르륵 굴렸다.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챙길 건 챙겨야지. 넋이 나가서 깜빡 잊을 뻔했다. 급하게 시스템 창을 열어 세이브를 한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방심할 뻔했다. 그런 그녀를 블루가 맑은 감색 눈으로 흥미롭게 바라봤다.

‘후후, 뭘 하면 좋을까? 아, 맞다! 루카….’

스킨십을 할까 생각하던 그녀는 이 엘리셔스 월드 내에 루카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원에서 개수작을 하다가 루카한테 걸리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몰랐다. 블루랑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루카는 프러포즈도 받은 데다 만날 때마다 온종일 물고 빠니 거의 연인 사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

‘저번에 반지 사건도 있고, 혹시 마주쳤다가 곤란해질 일은 하면 안 되겠어.’

미니 정원 너머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저기서 언제 루카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 실비아는 흑심을 가라앉히고 블루와 건전하게 놀기로 마음먹었다. 뭐 하고 놀까? 잠깐, 그러고 보니 지금 사람이잖아? 굳이 정원에 틀어박혀 있을 필요가 없었다. 실비아의 시선이 블루의 옷을 훑었다. 신관복 같기도 하고 전투복 같기도 하고 현대인의 눈에선 이게 무슨 옷인지 판단이 안 되는 신비한 옷이었다. 그래도 못 돌아다닐 차림새는 아닌 거 같았다.

인간세계로 오고 나서 잠시 산책할 때 빼곤 아쿠아리움에 갇혀 지낸 블루에게 놀이공원 구경을 시켜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저번에 바깥에 나가서 그녀와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싶다며 울적해하던 그의 말도 떠올랐다. 결심한 실비아는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블루의 손을 잡았다.

“친구끼리 뭐하냐면….”

『응.』

실비아를 향해 매혹적으로 눈웃음치던 블루의 눈빛이 어색해졌다. 실비아가 갑자기 그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를 데리고 거침없이 정원 입구로 향하는 실비아의 뒤로 블루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뭐 안 해?』

“지금 하고 있잖아. 친구끼리 뭐하냐면…. 저기 봐! 물개가 아닌 이 모습으로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거야.”

정원 입구를 나온 실비아가 놀이공원의 아치형 다리 너머 아이스크림 노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좋아서 끔뻑 넘어갈 줄 알았던 블루는 예상외로 덤덤한 모습이었다. 입술을 씰룩거리는 게 살짝 짜증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혼잣말로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하, 진짜 시시하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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