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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89화 (189/372)

189화

물개들이 단체로 재주를 부리고 모자를 들고 가 관람객들에게 팁을 받는 등, 물개 쇼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실비아가 정어리를 던질 차례가 다가왔다. 그녀는 조련사의 눈짓에 맞춰 양동이에 있던 정어리를 공중에 던졌고 물개가 가뿐하게 이를 받아먹은 후 수조에 들어갔다.

“우리 인턴 실비아 양이 정어리를 던집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와! 엘리셔스 월드 인턴이라니. 저 언니 완전 수재인가 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완전 부러워요!”

조련사가 실비아를 소개하자 관람객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무대 위에서 관람객들이 대놓고 하는 칭찬을 듣는 건 그녀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정어리를 수줍게 던졌다.

놀랍게도 정어리를 몇 번 던진 실비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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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물개에게 정어리를 먹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력이 3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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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남발되는 지력 상승 메시지였다. 수치가 3밖에 안 되는 건 아쉬웠으나 정어리만 던져도 지력이 오르는 게 어딘가. 장내가 시끄러워서 잘 몰랐는데 가만 보니 메시지가 뜨기 전에 빵빠레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정어리를 열심히 던졌다. 몇 번은 쨍그랑, 하면서 실패하는 효과음이 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빵빠레 소리가 들리고 나면 어김없이 지력 상승 메시지가 떴다.

양동이가 다 빌 때까지 정어리를 던지고 나자 지력 수치가 총 9가 올랐다. 물개 쇼를 익혔다는 의미에서 지력이 오른 걸까? 이렇게 지력이 계속 오르다간 조만간 엘리셔스 제국 내에서 최고의 천재가 될 판이었다.

‘딱히 더 똑똑해진 거 같진 않은데. 수치는 수치일 뿐이겠지만 말이지.’

“그 좋은 능력을 놔두고 정어리나 던지고 있다니!”

그때 그런 그녀를 주시하는 눈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면접장에서 그녀에게 훌라후프를 씌웠던 서커스단장이었다. 그는 부단장과 함께 실비아를 스카우트할 목적으로 아쿠아리움을 여러 번 방문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능력 있는 인턴을 공유하기 싫었던 동물원 부서 직원들이 실비아와 한번 만나게 해 달라는 서커스단장의 부탁을 갖은 핑계를 대며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물개 쇼에 실비아 인턴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찾아와 봤더니 정어리나 던지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 놀라운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저런 평범한 업무나 하다니. 한탄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쯧쯧거리자 부단장이 거들었다.

“그러게요. 서커스가 이 엘리셔스 월드의 꽃인데 말이죠. 저 사람만 스카우트하면 이번 황실 개방 축제에서 엄청난 공연을 선보일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커스단장은 실비아와 독대하지 못하게 한 동물 부서 직원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영영 데려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번 주말 황실 개방 축제 공연에 같이 참여해 보자고 제안하려는 것일 뿐인데 방해하다니. 아무래도 그 공연을 계기로 은근슬쩍 재원을 빼갈까 봐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면접 때 봤던 실비아의 능력에 자신은 물론이고 구내식당 헤드 셰프까지 그녀를 영입하려고 혈안이었으니 경계할 법도 했지만 말이다.

곧 물개 쇼의 피날레를 알리는 음악이 축음기에서 흘러나오자 실비아와 모두가 꾸벅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단장은 관람석에서 급히 몸을 일으켜 부단장과 함께 무대 뒤편으로 뛰어갔다. 실비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실비아는 뒷정리하느라 아직 무대 뒤에 있었다.

“실비아 양!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면접날 이후로 처음이죠?”

“누구시죠?”

실비아가 전혀 못 알아보는 기색이자 그는 모자를 벗어 보이며 뻘쭘하게 웃었다.

“하하, 기억이 안 나시나요? 그, 훌라후프….”

“아? 아!”

훌라후프란 말에 실비아의 기억이 살아났다. 면접날 무작정 제 허리에 훌라후프를 끼웠던 서커스 단장! 가만 보니 줄무늬 양복 차림과 손에 들린 채찍, 콧수염까지 멋지게 말려 있는 게 딱 서커스 단장 같은 외양이었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다름이 아니라, 인턴 기간에 바쁘신 줄은 알지만 한 가지 제안을 드릴까 해서요.”

“아, 네네. 어떤 제안을 하시려고요?”

명함은 서커스 단장답게 화려한 색을 자랑했다. 실비아는 힐끗 명함을 보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서커스단장은 실비아의 뒤를 힐끗대더니 그녀를 복도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의 눈짓에 부단장은 조련사가 오지 않나 망을 봤다. 왜 이렇게 은밀하게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이해 안 되는 상황에 실비아가 눈을 깜빡거리는데, 단장이 손을 싹싹 비비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황실 개방 축제가 이번 주에 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아? 네! 같이 사는 식구한테 들었어요.”

“혹시 주말에 바쁜 일 없으시면….”

서커스 단장은 주말 황실 개방 축제 때 본인들이 공연을 한다며 말을 꺼냈다. 면접 때 실비아의 엄청난 능력을 보고 크게 감동했고 자기네 쪽 인턴이 아닌 게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적절한 보상을 줄 테니 이번 주말 공연 때 실비아도 함께 서커스를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공연이요? 음, 해도 되려나.”

“그럼요! 인턴은 어차피 평일에만 하는 거 아닙니까. 실비아 양은 엘리셔스 월드 직원으로만 지낼 인물이 아녀요. 거기서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 두면 좀 더 큰물에서 놀 기회가 생길 겁니다. 어때요?”

큰물이라. 대체 서커스 공연 중에 무슨 재주를 보여 줘야 큰물에서 논다는 것인지 이건 뭐 왕의 남X도 아니고…. 대륙을 돌아다니는 광대가 되는 엔딩도 있는가 싶었다. 실비아가 별로 탐탁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서커스 단장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더니 말을 이어 갔다.

“좋은 기회인데 아직 잘 와닿지 않으시나 보군요. 매년 하는 이 공연을 황제 폐하 내외와 황태자 저하가 상석에서 관람하실 겁니다. 그리고 엘리셔스 제국의 명망 있는 귀족들은 대부분 이 공연을 보러 오시죠.”

서커스 단장의 말에 실비아의 표정이 묘해졌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타 웹소설에서 본 사교계 데뷔 같은 고상한 행사가 아니라 서커스 짓거릴 모두에게 선보인다니. 어떤 이득이 있는 걸까.

물론 서커스도 참 훌륭한 예술이지만 아무래도 황태자를 포함 제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은 다 온다니, 그중에 남주 후보가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황태자가 남주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의외로 귀족들 중에 있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혹여나 마주칠지 모를 남주 중 한 명과 서커스 묘기를 부리다 만난다니. 이게 맞는가 싶었다.

‘시스템아.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 여주인 내가 이제 서커스까지 해야겠니?!’

그녀가 속으로 투덜댔지만, 시스템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실비아는 눈을 굴리며 생각을 이어 갔다.

‘아냐. 어차피 별의별 짓 다 했는데 거기서 서커스 하나 추가된다고 딱히 달라질 거 같진 않아.’

이 세계에 한 달 넘게 있으면서 온갖 쪽팔린 일에 면역이 생긴 그녀였기에 이제 뭘 해도 상관없었다. 남주 후보를 만날 수 있단 점이 살짝 걸리긴 했지만 설마 서커스를 하는 실비아를 보고 도망가진 않을 것이다. 루카도 피라미드 행사장에서 만났지만 지금 누구보다 뜨거운 사이가 되지 않았는가. 차라리 서커스 행사를 통해 남은 남주 중 한 명을 더 빨리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실비아의 고심하는 모습에 초조해진 단장이 열정을 가진 젊은이를 현혹하는 사람처럼 웅변투로 말을 내뱉었다.

“실비아 양! 이곳 인턴을 하는 젊은이들은 다들 꿈이 큽니다. 실비아 양도 큰 꿈을 가지고 계시겠죠? 여기 직원들은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다른 더 큰 곳으로 이직을 합니다. 제 경우에는 여기서 단장이 되는 걸 택했죠. 저는 실비아 양이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음,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그거랑 서커스랑 대체 무슨 상관이….”

“상관이 왜 없어요. 요즘은 자기 자랑시대지 않습니까. 실비아 양이 어떤 가문의 사람인지는 제가 알지 못하니 그건 빼고 얘기할게요. 본인 능력만으로 최단 루트로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포부가 있다면! 그렇다면 서커스 공연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실비아가 의문을 표하자 마침 잘 말했다는 듯 서커스단장이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그의 설명을 들어도 실비아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기 자랑시대라, 자기 PR을 말하는 거 같긴 한데 그게 서커스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네? 정계 진출을 위해선 서커스를 하라뇨. 그게 무슨….”

“어어? 모르세요? 엘리셔스 월드 직원 출신으로 삼 년 만에 정계에 진출한 크리스티나 님 얘기요! 그분은 요리사 출신이랍니다. 그녀가 어떻게 정계에 진출했냐면….”

서커스 단장의 말에 따르면 그분도 요리쇼로 이름을 알린 뒤 정계에 진출, 훌륭한 의전 장관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분을 롤 모델로 삼아보란 게 서커스단장의 조언이었다.

우선 기상천외한 묘기를 보여주고 난 후 전문 서커스 단원이 아닌 한낱 인턴이란 걸 어필하며 놀라움을 이끌어 낸다. 황실 일가를 포함 귀족들의 눈에 띄고 호감을 얻어 인지도를 얻는다. 그 후에 귀족사회에 뛰어들어 의외의 능력을 보여 줘 호감도를 더 쌓는다. 그러면 단기간에 정계 데뷔 성공!이라는 것.

듣다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현생에는 그런 케이스가 왕왕 있었으니까. 영화배우 출신 정치인도 많지 않은가.

그녀는 제 나이대의 정치인들을 떠올렸다. 현생의 또래들 중에서도 영리하게 머리를 써 단시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요직에 진출하는 이들이 있었다.

‘음, 확실히 내 능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면 정계 진출이 쉬워지긴 하겠어.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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