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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86화 (186/372)

186화

블루는 정어리를 지느러미를 휘둘러 내팽개치곤 험한 말을 내뱉다가, 옆에 선 실비아를 뒤늦게 인식하곤 눈치를 봤다. 이 세계 최강자 근처쯤은 될 듯한 드래곤이 어쩌다가 정어리를 지겨워하는 처지가 된 건지. 실비아는 안쓰럽게 블루를 내려다봤지만, 그가 물개로 지내는 동안은 생선을 섭취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조련사가 곤란한 낯빛으로 실비아에게 정어리를 건넸다.

“파돌이에게 좀 먹여 주시겠어요? 이놈이 점점 삐쩍 말라 가네요. 안쓰러워서, 원.”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실비아는 어쩔 수 없이 정어리를 받아 블루의 주둥이에 내밀었다. 그녀는 근처에서 아닌 척 그들을 바라보는 평가자의 눈을 놓치지 않았다. 인턴 기간 동안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야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했으니까. 엘리셔스 월드의 정직원이 되기 위해선 블루에게 정어리를 먹여야 했다.

“먹을 수 있지? 파돌아. 맛있게 꿀꺽하자.”

『실비아. 난 정어리가 지겹단 말이야…. 맛있는 게 먹고 싶어. 너랑 밖에 나가서 달콤한 걸 먹고 싶다고.』

블루가 도리질을 쳤으나 어쩔 수 없었다. 못 먹는 음식도 아니고, 평가점수를 잘 받기 위해선 조그만 업무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편식하고 그러면 나쁜 동물이야. 정어리는 영양가가 풍부해요.”

『하아….』

그래도 블루가 아예 답 없는 눈새는 아니었나 보다. 실비아의 거듭되는 설득에 그는 마지못해 정어리를 받아먹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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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블루에게 정어리를 먹이는 걸 성공했다. 지력이 1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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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여기서 지력이 상승한다고?’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실비아는 얼떨떨해졌다. 지력이 상승하니 좋긴 한데 블루가 정어리를 받아먹게 설득한 게 지력과 무슨 상관인지.

‘설득력도 나름 지력의 한 부분으로 치는 걸까? 어이없네. 뭐, 지력이 올라가면 나야 좋지.’

뭐가 됐든 능력치가 팍팍 오르니 좋긴 했다. 실비아가 생각에 잠긴 동안 정어리를 받아먹은 블루에게 조련사가 가글을 권했다. ‘아르르르.’ 소리가 들리고 가글을 마친 블루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정어리가 든 양동이를 바라봤다. 저렇게 싫어해서야 무대에서 제대로 정어리를 받아먹을지 걱정됐다.

“혹시 물개용 케이크 같은 건 없나요? 파돌이가 좀 식성이 까다로워서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는 거 같네요. 표정이 어째 안 좋아 보여요.”

“아! 케이크 있죠. 근데 보통 생일에만 주는 거긴 한데…. 파돌이가 워낙 먹을 걸 가리니 케이크라도 먹여야겠네요. 사무실 직원에게 가 보실래요?”

고개를 끄덕인 실비아는 사무실로 가서 물개 전용 케이크를 얻어왔다. 초콜릿색의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본 블루가 지느러미를 부딪치며 행복해했다. 그러나 블루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초콜릿 케이크를 입에 댄 순간 싹 사라졌다.

『정어리 맛 케이크네….』

“어? 정어리 맛 케이크?”

블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조련사가 실비아의 말만 알아듣고 대답했다.

“네. 물개들은 달달한 걸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그래서 얘네들이 좋아하는 정어리로 예쁜 케이크를 만들었답니다. 파돌아, 어때. 맛있지?”

『누구 놀리나….』

블루가 언짢은 얼굴로 조련사를 꼬나봤다. 그 표정을 알아채지 못한 조련사는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케이크를 반 갈라보자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정어리들이 보였다.

『안 먹어!』

“엉엉!”

블루가 정어리 케이크에 관심을 안 보이자 주변 물개들이 얼른 다가와 케이크를 맛있게 섭취했다. 오만상을 쓰고 있는 블루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실비아는 번뜩 출근할 때 사무실에서 받은 간식을 떠올렸다.

‘맞다. 초콜릿 쿠키를 받았었지.’

물개인 블루는 못 먹지만 사람인 블루는 초콜릿 쿠키를 먹을 수 있을 터.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물개 쇼가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조금 전만 해도 곁에 있던 조련사는 어느새 구석으로 가 고참 물개들과 물개 쇼 맹연습 중이었다.

“잠시 파돌이 주변 산책 좀 시키고 올게요!”

“그래요. 파돌이 기분 전환 좀 시켜 주고 와요.”

실비아가 조련사에게 외치자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물개용 목줄을 블루에게 채운 후 우리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복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한테 쿠키가 있어. 인간으로 변신하면 과자를 먹어도 될 거야.”

『정말? 고마워, 실비아. 쿠키라니. 빨리 먹고 싶다.』

블루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쁨을 표출했다. 아무도 없는 다용도실로 간 실비아는 문을 잠근 뒤 블루의 지느러미를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저번과 같이 밝은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눈을 감았다 뜬 그녀의 앞에 쿠키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생긴 블루의 본모습이 나타났다.

실비아가 쥐고 있던 지느러미는 어느새 듬직한 손으로 바뀌었다. 잠시 커다랗지만 실크 같이 부드러운 손의 감촉을 즐기던 그녀는 곧 얼마 전의 살인 포옹을 떠올리고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뿌리쳤다. 하마터면 생명의 소중함을 잊을 뻔했다. 영문을 모르는 블루는 내버려 두고 그녀는 시스템 창을 열어 세이브를 눌렀다.

‘아무리 몇 번이나 죽어서 익숙해졌다 해도 죽는 건 질색이야.’

무사히 세이브를 눌러 목숨을 지킨 그녀는 다용도실의 소파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 블루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곁에 앉더니 실비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는 게 아닌가.

흠칫하고 얼굴을 돌린 실비아는 빨려 들어갈 것처럼 매혹적인 감색 눈동자에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향기에 두 번 넋을 놓았다. 코끝으로 들어오는 이 향기는 아쿠아마린일까? 향수는 잘 모르지만 그런 영롱한 향기 아닌가 싶었다.

분명 물개 우리에 있을 때만 해도 이런 좋은 향기가 나지 않았는데? 인간형이 되더니 몸에서 이런 단내까지 풍기다니, 요망하기 짝이 없었다. 실비아는 코를 킁킁대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가늘게 떠보자 조금만 고개를 내려도 조각처럼 반듯한 코가 닿을 것처럼 블루의 얼굴이 가까웠다.

『…실비아. 네 어깨에 기대니까 기분이 좋아져. 원래 이런 거야?』

‘원래 이런 거냐니. 뭘 모른 척을 하고 자빠졌어? 드래곤이면 살 만큼 살았을 텐데 알 건 다 알아야지. …아니지? 혹시, 남의 어깨에 기대 본 경험이 처음인가. 이 게임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렇겠네.’

실비아는 거친 생각을 했지만, 블루의 순진해 보이는 물음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조그만 어깨에 실크 같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닿았다. 수조의 락스 물에 절여져 뻣뻣해질 만도 한데, 인간형일 때는 물에 들어가지 않아서 괜찮은 모양이었다.

보기 좋게 그을린 갈색 피부는 어쩜 저렇게 건강하고 탄탄해 보이는지, 그리고 굳이 만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옹골차게 들어찬 근육들 하며…. 실비아는 설화 속의 구미호에 홀린 나무꾼처럼 몽롱한 눈빛을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자. 방심하다간 또 골로 가는 거야.’

단호한 표정이 된 그녀는 매몰찬 손길로 블루의 얼굴을 떼어 냈다. 그러자 블루가 눈썹을 처연하게 내렸다.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감색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들자 실비아의 가슴이 따끔거렸다.

『내가 가까이 가는 게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좋… 아니. 안 좋…. 아무것도 아냐.”

좋다고 했다가 저번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곤란했다. 실비아는 얼버무리곤 멜빵바지에서 쿠키 봉투를 꺼냈다. 쿠키를 반으로 쪼갠 뒤 그에게 건네자 블루가 눈에 띄게 좋아하며 손을 내밀었다. 먹을 거 보고 좋아하는 표정인 건 매한가진데 물개일 때랑 인간화된 모습일 때가 천지 차이였다. 그녀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가 사랑했다는 미소년 아도니스가 얘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결 좋게 찰랑거리는 머리에 수채화 같은 이목구비가 딱 신화 속 인물을 연상시켰다. 붉은 입술은 한 떨기 장미꽃 같아서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실비아는 어느새 눈앞의 블루가 살인마란 사실을 잊고 머릿속에서 얼굴 감상문을 길게 작성 중이었다.

『실비아, 그거 안 먹을 거야?』

쿠키를 순식간에 다 먹은 블루가 그녀의 손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 아아. 너 다 먹어!”

왜 저렇게 보나 했더니 반쪽 남은 쿠키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실비아가 쿠키를 내밀자 블루는 얼른 가져가 감동한 표정으로 입안에 넣고 녹여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실비아는 돈만 있으면 헨젤과 그레텔을 꼬신 마녀처럼 과자의 집이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이 됐다.

멍하니 블루를 바라보던 그녀는 블루의 도톰한 입술에 쿠키 부스러기가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떼 주고 싶어졌다. 사실 아무것도 없어도 저 탐스러운 입술에 손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더운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블루야. 입에 쿠키 부스러기가 있구나. 내가, 크흠… 내가 떼 줄게.”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곧 넘쳐흐르기 직전이라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의 제안에 블루는 꽃이 만개하듯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실비아의 손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 제 입술에 대는 게 아닌가. 손가락 끝에 닿는 보드라운 입술의 촉감에 실비아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응. 실비아가 떼 줘.』

“그, 그래. 내가 딴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냐. 알지?”

실비아는 부러 할 필요 없는 변명을 하며 한 번 더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손으로 털면 금방 깔끔해질 거 같은 입술을 나긋한 손가락 끝이 조심스럽게 덧그렸다. 말랑하고 촉촉한 입술 위를 살짝 문지르고 톡톡 두드리길 반복하자 블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미 그의 입술 위에 있던 쿠키 부스러기들은 애초에 다 사라지고 없었다. 숨도 함부로 내쉬지 못하고 블루의 입술을 만지던 실비아의 손이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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