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루카가 전혀 말하지 않기에 까먹었다만, 그녀는 지금 새댁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놀이공원 직원들도 그녀에게 아무 말이 없었단 걸 떠올렸다. 아무래도 세간의 평가는 플레이어가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인 게 아닐까?
바닷가마을과 달리 수도는 무척 넓어 소문이 퍼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가 직원들이 세비스를 본 건 면접날 사용인 자격으로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실비아네 아파트의 소문을 모르면 다들 그녀가 새댁인 걸…. 아니지, 새댁이라고 적혀 있는 세간의 평가란을 모를 만했다. 생각보다 무척 현실적인 항목이었다.
‘메리 할머니가 직원들에게 내 얘기를 한 적이 없단 소리도 되겠네!’
그럼 루카가 만약 실비아네 근처에서 오래 머무른다면 세간의 평가를 들을 수도 있는 걸까? 혹시나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루카를 다음에 만나게 되면 이 헛소문을 미리 해명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혹시 쓸 만한 아이템이 떨어지진 않았나 잿더미를 관찰했다. 곧 그녀의 시야에 잿더미 사이로 반짝이는 뭔가가 들어왔다. 앞서 얻었던 쓸모없는 아이템들은 반짝이지 않았었다. 실비아는 희망을 가지고 반짝이는 아이템을 주워 들었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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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속옷>
-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의 속옷이다. 그는 수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이 속옷을 학교 사물함에 버리고 떠났다. 속옷을 베개 밑에 넣어 놓고 자면 일정 확률로 아침에 지력이 10 오르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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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완전 좋은 아이템이다. 근데 왜 하필 속옷이야? 망측스러운 19금 게임 같으니.’
쓸모 있는 아이템을 얻어 좋아하던 실비아는 왜 하필 방석, 부적도 아니고 속옷인가 한탄했다. 남의 속옷을 베개 밑에 베고 자라니 좀 그랬다. 그래, 뭐 현생에서도 고시 합격자의 속옷이나 기타 여러 물품을 얻어 합격 확률을 올리지 않던가. 애써 납득하며 트렁크 속옷을 인벤토리에 넣은 그녀는 다른 아이템을 잿더미에서 하나 더 발견했다. 재를 털어 보니 녹이 슨 열쇠 꾸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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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열쇠 꾸러미
- 녹이 잔뜩 슨 열쇠 꾸러미이다. 몇 개는 망가져서 아예 쓸 수 없어 보인다. 열쇠 꾸러미를 이용하면 폐교의 잠긴 곳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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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가 열쇠를 주워 들여다보고 있자 세비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실비아 님, 그건 뭐예요?”
“열쇠! 몬스터가 가지고 있던 건가 봐. 폐교 안의 잠긴 곳들을 열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학교로 들어가 보자.”
열쇠를 공중에 휙 던지고 다시 받은 그녀는 몸을 털고 일어났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복도 벽에 붙어 있는 안내도가 보였다. 둘은 안내도를 살펴보며 들려 볼 교실들을 손으로 짚었다. 교무실, 양호실, 그리고 과학실이었다. 공포 괴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장소들이니 뭐라도 있을 것 같았다.
“우선 교무실부터 가 볼까?”
안내도를 보니 교무실은 폐교의 3층에 있었다. 의자들이 사라진 휑한 복도를 지나 교무실에 도착한 실비아는 열쇠들을 하나하나 집어넣어 맞는 열쇠를 찾았다. 곧 딸깍-소리가 나며 교무실 문이 열렸다.
책상이 잔뜩 있으면 서랍을 하나하나 다 뒤져봐야 하나 싶어 걱정했는데 바닥은 다행히 다 정리되어 휑했다. 교무실 책상은 단 두 개가 남아 있을 뿐이어서 수색이 쉬웠다. 두 번째 책상의 서랍을 열어보자 졸업 앨범이 하나 나왔다. 실비아는 세비스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앨범을 훑었다.
‘현실에서도 볼 법한 교복들이네.’
그때 예상치 못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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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유령 토마스의 한을 풀어 주자!
- xx 학교가 폐교된 이유는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한이 서린 학생 유령 때문이란 소문이 유력하다. 유령이 된 토마스의 한을 풀어 주고 좋은 아이템을 얻어 보자.
성공 보상 : 새로운 아이템 획득
실패 시 : 집에 유령 한 마리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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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오두막집 귀신을 겨우 떼 놓고 왔는데 또 귀신이 따라붙는다니. 너무 하잖아.’
죽고 나니 영매 체질이라도 된 걸까. 단순 퀘스트지만 유령이 달라붙는다니 찝찝하기 짝이 없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유령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등골이 오싹한 게 뭐가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으, 어쩐지 등 뒤가 찝찝해.’
실비아는 손을 뒤로 뻗어 꼼지락거렸다. 어쩐지 간지럽고 싸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간지러워한다고 오해한 세비스가 대신 등을 긁어 주었다. 어떻게든 퀘스트를 성공시켜야겠다고 다짐한 실비아는 우선 앨범을 뒤적여 토마스란 이름을 가진 학생을 찾았다. 졸업 앨범을 뒤적이다가 퀘스트가 떴으니 그 단서가 이 안에 있을 것 같았다. 등을 열심히 긁어 준 세비스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걸치곤 내려다봤다.
“실비아 님, 뭘 찾으세요?”
“어? 아니. 그냥 옛날 생각나서 좀 봤어.”
퀘스트 창을 볼 수 없는 세비스는 실비아의 알 수 없는 행동에 갸우뚱할 뿐이었다.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토마스란 이름을 앨범에서 발견했다. 학생들의 사진 밑에는 각자의 소원이 적혀 있었는데 똘똘해 보이는 토마스의 사진 밑에도 글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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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차 엘리셔스 제국을 빛낼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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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라…. 안내도에 과학실이 있었으니 거기로 가면 단서를 찾을지도. 뭔 놈의 세계관이 마법이랑 과학이 공존하는지. 세계관 충돌 아닌가 싶었으나 자세한 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실비아는 토마스의 사진을 살짝 쓰다듬으며 잠시 애도를 표했다.
“열쇠 꾸러미를 얻었으니 쓸만한 게 있나 찾아보고 싶어. 과학실로 가 볼까?”
“그래요.”
그녀는 혹시 앨범이 다시 필요해질지도 모르니 옆구리에 끼고 과학실로 향했다. 교무실과 같은 층 복도 끝에 과학실이 위치했다. 열쇠로 과학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케케묵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각이 예민한 세비스가 코를 감싸 쥐며 얼굴을 찌푸렸다.
“과학실이라 그런지 냄새가 특이하네요.”
교무실과 달리 과학실은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뭘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인체 모형과 지구본, 벽에 붙은 원소 기호표까지. 얘 꿈이 과학자라고 했지? 근데 어떤 과학자인지 구체적으로 얘길 안 했잖아? 막막함에 눈을 가늘게 뜬 실비아는 공교육을 원망했다.
‘어릴 때부터 확실한 꿈을 가지게, 어? 구체적으로 진로 설계를 해 줘야 할 거 아냐. 그게 교육기관이 할 일 아니냐고. 꿈이 생물학자인지 화학자인지 전공을 뭐로 하고 싶은지 말이야!’
투덜댄 실비아는 답답한 마음에 졸업 앨범을 다시 뒤적였고 단체 졸업 사진에서 힌트를 찾아냈다. 활짝 웃은 토마스가 사진 속에서 지구본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자유로운 졸업 사진을 추구하는 듯 각자 소품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은 덕분이었다.
답을 얻은 실비아는 환한 얼굴로 지구본에 손을 댔다. 그녀는 순간 등 뒤를 누가 콕, 하고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 돋게도 유령이 힌트라고 알려 준 것 같았다. 실비아가 오싹한 느낌에 오돌오돌 떨자 세비스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걱정했다.
“실비아 님, 추우세요? 이거라도 입으세요.”
세비스는 피크닉 가방에서 얇은 카디건을 꺼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실비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디건을 껴입었다. 옷을 입으니 추운 기운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다음은 뭘 해야 할까. 그녀는 이런 류와 비슷한 게임을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졸업 앨범을 다시 펼쳤다.
토마스의 반은 3-5반. 양호실은 별거 없을 듯하고 토마스의 교실에서 그와 관련된 걸 찾아서 지구본과 묻어 준다거나 하면 되지 않을까. 게임 속 세계인데 지구본이 왜 있느냐는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보나 마나 개발자가 넣어 놓은 거니까.
“이번엔 교실로 가 볼까?”
3-5반 교실은 열쇠로 열 필요도 없이 뒷문이 살짝 열려 있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구석에 몰아 놓은 책걸상을 힐끗 본 실비아는 교실 뒤편 비어 있는 사물함들 사이에서 자물쇠가 굳건하게 잠겨 있는 걸 하나 찾아냈다. 번호 자물쇠였기에 열쇠 꾸러미는 소용이 없었다. 실비아는 혹시나 해서 사물함 위쪽에 붙은 알림판을 올려다봤다. 놀랍게도 알림판 구석에 토마스에 대한 추모 글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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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토마스. 다음 생에는 네가 원하던 꿈 이룰 수 있길!]
[조금 있으면 xx월 xx일. 네 생일이야. 토마스! 네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여기 놓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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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생일. 자물쇠는 생일일 확률이 꽤 높았다. 실비아는 추모 글귀에 적힌 생일 날짜대로 번호를 돌렸다. 그게 답이었는지 바로 자물쇠가 열렸다. 사물함 안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교과서와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뭘 선택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신발주머니가 순간 들썩였다. 이게 아마도 단서인 것 같은데, 무생물인 신발주머니가 움직이다니. 토마스가 건드리기라도 한 걸까.
유령이 도와주는 퀘스트라니 기가 막혔다. 이것저것 찾긴 찾았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실비아는 알림판에 붙은 수수깡 하나가 툭-하고 떨어지는 걸 보고 고개를 들었다. 수수깡이 붙어 있던 자리 밑에 글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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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반 친구들아. 10년 뒤에 뒤뜰에 묻어 놓은 타임캡슐을 찾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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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 뒤뜰에 이 물건들을 묻으면 되겠구나. 화색을 띤 실비아가 교실을 나서자, 아까부터 그녀가 하는 짓을 지켜보던 세비스가 궁금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실비아 님. 아까부터 뭐 하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