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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83화 (183/372)

183화

“부끄러워? 귀여워라.”

실비아는 괜찮다는 듯 세비스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기겁한 그가 ‘깨갱!’하고 짐승 소릴 내자 실비아의 눈빛이 더 그윽해졌다. 완전히 강아지한테 푹 빠진 사람의 눈동자였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세비스의 앞발을 들어 올려 살짝 깨물어 버렸다. 세비스는 깜짝 놀라서 파드득거렸다.

“앗! 뭐 하세요, 실비아 님.”

“꼬순내는 안 나네….”

실비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곤 다시 즐거운 표정으로 축축해진 그의 발을 조몰락거렸다. 그녀가 즐거워하는 반면 세비스는 죽을 맛이었다. 심장이 곧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세차게 뛰었고, 몸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제발 이제 좀 내려 줬으면, 하고 속으로 빌고 있을 찰나 실비아의 걸음이 멈췄다.

“네가 말한 곳이 여긴가 봐!”

그들의 앞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폐교가 나타났다. 폐교의 입구 간판이 삐뚤어져 곧 떨어질 것 같았다. 녹슨 쇠사슬이 엉성하게 철문에 휘감겨 있어 흉흉한 분위기를 더했다. 들어갈 수 없는 건가 걱정하기도 잠시, 입구 옆 쪽문이 바람에 불 때마다 끼익-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옆문이 열려 있네!”

“그렇…네요.”

실비아가 내려 주자마자 세비스는 뒷다리로 제 몸을 세차게 털었다. 계속 그녀에게 안겨 있었더니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털어 댄 그는 겨우 진정하고 실비아가 들고 있는 개 줄을 몸으로 당겼다.

“들어갈까요?”

“어째 좀 무서운걸….”

실비아의 시선이 녹슨 철문 너머 폐교에 닿았다. 스산한 바람이 폐교에서 불어와 실비아의 팔 위에 소름이 돋게 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곤 세비스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한구석의 그네는 완전히 돌돌 말아져 위에 걸쳐져 있었고, 시소는 옆으로 쓰러져 쓰임을 다했다. 그리고 폐교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엔 비를 맞아 썩어 버린 나무 의자들이 보였다.

“어떤 몬스터가 있을까?”

“글쎄요. 폐교니까 학교랑 관련된 몬스터가 나오려나요? 킁, 퀴퀴한 냄새가 나네요.”

세비스가 코를 킁킁대더니 다시 한번 몸을 털어 댔다. 폐교면 설마 귀신? 그런 것만 아니었으면 했다. 귀신이 싫기도 하고, 물리 공격 위주의 실비아와 세비스가 고스트 타입 몬스터를 물리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건물 문을 열고 복도에 들어서자 오싹하고 불길한 기운이 안에서 느껴졌다. 세비스의 몸줄을 풀어 준 실비아는 망치를 꺼내고 한껏 긴장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 한쪽의 벽은 침입자들이 페인팅으로 휘갈겨 놓은 그라피티가 가득했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1층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둘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한층 위로 올라가니 햇볕에 의지할 수 없을 만큼 사위가 어두워졌다. 세비스는 실비아가 들고 있던 피크닉 가방을 뒤적여 휴대용 랜턴을 꺼냈다. 실비아도 <불망치> 스킬을 사용하자 그녀의 전용 무기가 화려한 불꽃에 휩싸였다. 새로 획득한 스킬을 처음 본 세비스가 감탄사를 흘렸다.

“오! 이건 처음 보는 스킬이네요. 화려한데요? 망치에 불이 붙다니.”

“섬에 가서 얻은 스킬이야. 기존 물리 공격보다 좀 더 효과가 좋긴 하더라.”

그녀가 망치를 세비스 근처에 조심스레 가져다 대자 따뜻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기겁하던 세비스는 망치에 손을 가져다 대도 데지 않는다는 실비아의 말에 안도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실비아의 달라진 기운을 느끼곤 탄복했다.

“확실히 섬에 갔다 온 뒤로 실비아 님이 강해진 게 느껴져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보니 많이 성장하셨군요.”

“너도 몸집이 많이 커졌어.”

그들은 복도 벽에 붙어 있는 먼지가 낀 거울로 서로를 바라봤다. 실비아는 현재 <불망치>를 들고 미역 원피스를 입은 상태였다. 세비스는 완전 먼지만 하던 강아지 때는 실비아의 종아리 반만 했는데, 지금은 무릎 밑까지 껑충 자랐다.

“아무래도 새우잡이 배에서 생사를 다퉜던 경험이 제 몸에 영향을 미쳤…어?”

세비스가 귀를 쫑긋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을 멈추자 실비아도 한껏 경계하며 복도를 주시했다. 복도 끝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절뚝이면서 왔는데 자세히 보니 생물이 아니라 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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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율학습을 10년 동안 견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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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위에 떠 오른 이름을 본 실비아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10년 버텼으면 저렇게 낡을 만했다. 의자 다리는 고무 봉 하나 없이 맨다리여서 움직일 때마다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말 거슬렸다.

눈코입이 달리지도 않았고 그냥 움직일 뿐이었는데, 마치 귀신에 씐 것 같아 더 재수 없었다. 의자는 절뚝이며 그들과 점점 거리를 좁혔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에 멀리 시선을 옮겨보니 코너를 돌아 여러 의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주고받은 둘은 다가오는 의자들을 곧바로 공격했다. 순간 <불망치>로 후려칠까 하던 실비아는 숲이 불타서 고생했던 경험을 떠올리곤 일반 물리 공격인 <1+1>을 이용했다. 의자들이 하나둘 박살이 나며 우지끈, 콰당 소리가 교내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의자들은 정말 쓸모없는 아이템만 뱉었다. <나무 조각>, <녹이 슨 나사> 같은 것들이었는데, 혹시나 해서 아이템을 터치해 보니 전자는 ‘장작으로 쓸 수 있는 나무 조각. 거스러미 주의.’라는 설명이, 후자는 ‘어디 쓸 데가 없다. 괜히 쥐고 있다 파상풍에 걸리지 않게 주의할 것.’이라는 하찮은 설명이 있었다.

아이템을 내동댕이친 실비아는 계속 의자 부수기에 집중했는데 이놈의 의자가 끝도 없이 계속 나왔다.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닦은 실비아가 의자 부수기에 열중하는 세비스를 불렀다.

“세비스. 이거 끝도 없겠어. 밖으로 몰아서 한 번에 다 해치우자.”

“어떻게 하시려고요?”

“얘네들은 나무니까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다 탈 거 같아. 위층에 있는 의자들까지 한 번에 중앙복도로 몰아서 건물 밖에서 상대하자. 안에서 불이 붙으면 곤란할 테니까.”

“제가 다 데려올게요.”

세비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실비아는 중앙복도 쪽에서 대기했다. 섬에서 한 것처럼 아무렇게나 불로 공격했다간 폐교가 순식간에 불타 공략을 마저 하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냥 건물 자체를 다 불태우는 방법도 잠시 생각했으나, 그랬다가는 문화인들이 사는 수도에서 어떤 어마무시한 벌금 딱지를 받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걱정된다면 정화 스킬을 써도 됐지만 그러면 오염된 기운만 다 정화될 뿐 아이템을 못 받게 된다….

세비스는 4층까지 가서 마치 양치기를 하는 늑대처럼 의자들 근처에서 어슬렁대며 도발했다. 그는 의자들을 한꺼번에 이끌고 실비아가 기다리고 있는 중앙복도로 내려왔다.

실비아는 그를 도와 건물 바깥까지 의자를 끌고 이동했다. 의자들은 죽을 길인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떼로 바깥으로 나왔다.

의자 더미가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한데 모인 순간 실비아는 <불망치>와 <1+1>을 한꺼번에 써서 여러 번 의자를 내려쳤다. 쾅쾅- 요란하게 망치로 내려치니 불타기 전에 부서지는 의자도 있었다. 순식간에 의자 더미에 불이 붙더니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타닥타닥 의자가 타는 소리와 함께 세비스와 실비아의 얼굴이 불꽃에 반사돼 붉은빛을 띠었다.

“활활 잘 타네….”

“그러게요.”

실비아가 의자 더미 앞에서 불을 보며 멍때리고 있으니 어느새 피크닉 가방에서 옷을 꺼내 본체로 돌아온 세비스도 옆에 따라 앉았다. 멍한 표정으로 불을 바라보던 세비스는 ‘아, 이럴 때가 아니죠!’라고 외치며 얼른 일어났다. 피크닉 가방에서 고구마와 마시멜로를 꺼낸 그는 꼬챙이에 급히 꽂고 불타는 의자 더미에 가져다 댔다. 한참 캠프파이어를 즐긴 후 의자 더미는 완전히 전소되어 잿가루만 남았다. 세비스는 검댕이 묻은 입가를 손으로 훔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력이 엄청나네요. 즐거운 간식시간이었어요.”

“무기에다가 직접 고기 굽기는 안 된다고 해서 실망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네!”

마지막 마시멜로를 씹으며 즐거워하던 실비아의 눈앞에 레벨이 한 계단 올랐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녀는 잠시 상태 창을 불러 현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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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레벨 46

망치 전사

가진 돈 : 7만G(림보 것 : 5만 골드)

체력 : 250 힘 : 200 지력 : 280 민첩 : 150

화술 : 310(+50)

업보 : 20

신앙심 : 5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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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도 : 30

세간의 평가 : <안쓰러운 새댁>

전투 스킬 : <뚝배기 깨기>, <1+1>, <정화의 망치>, <*손은 눈보다 빠르다>, <불망치>

생활 스킬 : <헛소리를 진지하게>,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아이고 내 배꼽 아재 개그>

패시브 스킬 : <만독불침>

[분배하지 않은 포인트가 5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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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봐도 달라진 게 없는 ‘가진 돈’ 항목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냐면, 실비아네는 이제 인벤토리에 인식되지 않게 몰래 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림보 몫의 돈을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데….’

눈시울을 잠시 붉힌 그녀는 레벨이 오른 것과 바뀐 세간의 평가, 그리고 분배 포인트를 확인하고 다시 상태 창을 껐다.

‘루카는 왜 세간의 평가에 대해선 아무 말을 안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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