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하아, 윽.”
실비아의 애원에도 그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진심 없는 애원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허리를 부서질 듯 껴안은 루카는 그녀의 몸을 덮치듯이 뒤에서 껴안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뜨거운 살덩이가 안을 꿰뚫을 듯 여러 번 왕복하자 엉덩이며 허벅지 안쪽이며 할 것 없이 질펀한 액체가 여기저기 튀었다. 별안간 그녀의 가슴을 양손 가득 쥔 루카는 거칠게 몇 번 주무르며 제 것을 한계까지 박아 넣었고 곧 사정감이 그를 덮쳐 왔다.
“읏….”
“아흣, 으, 아아.”
실비아도 제 안을 가득 채운 그의 중심이 사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고개를 격하게 뒤로 꺾었다. 그녀가 도망칠세라 허리를 옭아매듯 강하게 그러쥔 루카는 사정을 끝마칠 때까지 아래를 잘게 치받았다. 모든 게 끝나고 작은 몸을 빙글 돌린 루카는 발그레한 뺨에 버드 키스를 날리며 감미롭게 속삭였다.
“하…. 좋았어?”
“네, 아주….”
다시 한참 주변 정리가 끝나고 실비아의 의도대로 루카는 우울함이 싹 가신 상쾌한 얼굴이 됐다. 우울함이 사라지다 못해 온실을 들어올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개운해진 둘은 잠시 말없이 벤치에 앉아 정원을 감상했다.
“꽃이… 아름답지?”
“네. 아름…답네요.”
그들은 올 때처럼 다시 손을 잡고 숙소로 돌아갔다. 실비아는 놀이동산에서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얘기했고 루카는 그녀가 없는 바닷가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즐겁게 걸어갔다. 온실에서 열심히 몸으로 위로한 보람이 있는지 루카의 표정이 밝았다.
“…그래서 동네 노점상한테 들으니 거상 한 명이 홀연히 사라졌다나? 뭐 이런 이상한 소릴 하더라.”
“네?”
루카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웃긴지 피식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바닷가마을에 혜성처럼 나타난 타코야키 장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타코야키에 중독돼서 엄청 사 먹었대. 상인 말론 돈을 쓸어 담았을 거라던데. 그래서 어딨냐고 내가 사 먹어 보겠다고 했지. 근데 며칠 하지도 않고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증발했다는 거야. 참나.”
이거 세비스 얘기 같은데…. 루카의 입을 통해서 세비스 얘길 듣자니 무척 흥미로웠다. 실비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흥미로워하자 루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신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소문으로는 노점 정리하고 어떤 할머니랑 같이 사라졌다는데, 수도 가는 마차를 타고 갔다나? 어머니 모시는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하던데. 타코야키를 못 먹어 봐서 아쉽네.”
“그, 그래요?”
할머니는 제 얘기 같았다. 지팡이 좀 짚고 다녔다고 주민들이 자신을 못 알아보다니 그건 좀 섭섭했다. 루카는 새로 생긴 마을 구석 폐허에서 밤마다 울음소리가 난다는 무서운 얘기와 레스토랑을 갈 때마다 문어인지 낙지인지 해산물 요리만 잔뜩 나와서 짜증 난다는 얘기까지 해 주었다.
“폐가라니, 그건 좀 무섭네요.”
“그렇지? 신전에서 퇴마 의식 한다고 고생 중이라던데. 하여튼, 바닷가마을. 조용할 날이 없어.”
한참을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호텔로 돌아왔다. 욕실에서 깨끗하게 씻은 실비아는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밖으로 나오다 흠칫 몸을 굳혔다. 가운을 걸친 루카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었는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이 문제였다. 그는 실비아가 화장대 위에 올려 둔 반지 두 개를 수상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하나는 루카가 온실에서 준 것이고, 하나는 노엘이 준 만능레이저 반지였다.
‘세상에! 저건 노엘 님이 준 반지잖아! 그냥 끼고 오지 말걸.’
실비아의 가슴이 선득해졌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지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바람이 바람은 맞는데 그것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요. 지옥에 안 가려고 절실한 마음으로 게임을 공략하는 플레이어의 마음을 아시는지? 등등 말하면 큰일 날 말들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놈의 게임은 왜 다섯 명이나 공략하라고 해서 자신을 희대의 쌍년으로 만드는 건지. 관자놀이를 타고 비 오듯이 땀이 흐르는 그때. 루카가 그녀를 돌아봤다.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어두운 기운을 스멀스멀 풍기는 걸 보니 곧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다.
“실비아, 내가 신기한 걸 봤거든? 이거 봐. 반지가 두 개야. 하나는 내가 준 거고 하나는, 아아…. 계속 끼고 다녔던 거지? 이게 이제 보이네….”
“…아! 이 반지 말이죠?”
실비아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꾸며 내며 루카의 손에서 만능레이저 반지를 가져갔다. 잠시 당황했지만, 기능성 있는 반지임을 어필하면 되는 거였다. 실비아가 흔들리는 눈으로 반지를 가져가자 루카가 팔짱을 끼고 그녀를 관찰했다. 취조받는 기분이었다.
“이건…! 이런 반지랍니다.”
순간 치석 제거를 보여 주려던 그녀는 너무 갈 데까지 가는 것 같아 참고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바구니에서 사과를 집어 들었다. 사과를 든 조그만 손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헛손질을 몇 번 했을까. 잘못하면 사과 껍질이 아니라 그녀의 손 껍질을 깎을 뻔했다. 겨우 빨간 사과 위에 반지를 가져다 대고 버튼을 누르자 지이잉-소리가 나면서 레이저가 사과 껍질을 깎았다.
손을 떠는 바람에 좀 울퉁불퉁하게 깎였고, 너무 긴장한지라 몇 번 손가락이 타는 냄새가 났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치명상을 입은 토끼 사과를 완성한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비아가 피투성이의 사과를 권하자 그녀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루카가 한쪽 눈썹을 꿈틀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지못해 사과를 받아먹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쇠 맛이 나네. 신기하긴 하다. 이런 게 있었어?”
“쇠맛은 제 피 맛이고…. 짜잔! 이름하여 만능레이저 반지!”
실비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반지를 소개하자 루카의 눈빛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이내 다시 싸늘해졌다. 아무래도 출처가 의심되는 모양이었다.
“기능은 알겠고. 누구한테 받은 거야?”
“…할머니요! 동네 할머니가 선물해 주셨답니다.”
“동네 할머니가? 이거 엄청 비싼 물건일 텐데. 이런 마법이 담긴 물건은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냐. 흔쾌히 남한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루카의 의심은 무척 합리적이고 구체적이었다. 동네 할머니라고 하지 말걸. 실비아는 눈을 도르륵 굴리곤 다시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오염된 던전을 공략한 감사 인사로 받은…거예요. 제가 할머니의 마을을 구했거든요. 그분은 귀족이세요! 혹시,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엄밀히 생각하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노엘의 할머니께선 이미 세상을 등지셨지만, 한때는 노엘의 별장이 있는 그 동네의 할머니셨을 테니…. 그리고 동네 할머니라고 했지. 우리 동네 할머니라곤 하지 않았다. 아주 넓게 보면 노엘은 실비아에게 던전을 정화해 줘서 감사하는 마음 일프로와 그 외 여러 가지 딴 마음을 포함해서 반지를 선물해 준 거니, 손주의 마음은 곧 할머니의 마음. 결국 하늘에 계신 노엘의 할머니도 실비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셈이었다. 여튼 그런 거였다.
양심이 심하게 찔렸지만, 실비아는 부러 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의심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루카는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의심하는 건 아니고….”
“생각해 봐요. 동네를 구해 줬으니 이 정도 마법 반지야 줄 수 있죠. 루카 님 덕에 이 반지가 생각보다 더 엄청난 반지란 걸 알게 됐네요. 고마워요. 할머니!”
실비아는 무의식중에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루카는 잠시 눈을 내리깔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음,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네.”
“에이, 참. 설마 남자한테 받았다고 생각한 거예요? 제가 이렇게 완벽한 남자 말고 누굴 또 만나요.”
실비아가 루카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이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피식거렸다.
“그건 그렇지.”
“그쵸? 괜히 의심하지 말아요!”
“그렇지. 괜한… 거지.”
실비아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한 말이 술술 나왔다. 하지만 루카는 완전히 납득한 표정은 아니었다. 계속 변명해야 하나? 실비아는 죄책감이 들어서 미칠 것 같았다. 지옥에 안 가려고 공략하는 것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바람은 맞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들킨다면 앞으로의 게임 생활은 완전 끝이었다. 그녀는 아예 이 주제를 끝내기 위해 말을 돌렸다.
“치석 제거해 드릴까요?”
“어?! 그거로 치석 제거도 돼?”
루카의 경악한 표정에 실비아가 화색을 띠며 반지를 들이밀었다.
“네. 입 벌려 봐요. 제대로 해 줄게요.”
“아니, 됐어. 그런 거 필요 없어.”
“왜요. 하면 시원하고 좋을 텐데.”
실비아가 이를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긁는 제스처를 취하자 루카가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실비아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치석 제거를 권유하자 그는 결국 딴 걸 하자고 실비아를 껴안아 버렸다. 그렇게 어영부영 루카의 의심을 넘긴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카의 가슴속에 의심의 싹이 자라는 것도 모른 채.
* * *
끼익-. 아직 어두컴컴한 실비아네의 보금자리. 현관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누군가가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들어왔다. 다름 아닌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지레 찔려서 몰래 들어오는 실비아였다.
어제 루카와 호텔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 백화점과 호텔, 그리고 온실에서 실컷 해 놓고도 한밤중에 더 하자고 루카가 덤벼들자 실비아는 기겁했다. 또 지팡이 신세를 지고 싶지 않으니 제발 참아 달라고 사정한 덕에 실비아는 사지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업 일정으로 바쁜 루카가 새벽에 나갈 때 함께 나왔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바쁜 그를 급히 보냈다. 그렇게 새벽에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선 것이다.
‘어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숨죽여야 하는데.’
그녀는 툴툴대면서도 호흡을 숨기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거실로 들어서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세비스가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요사스러운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으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