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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73화 (173/372)

173화

“네. 와, 잘생긴 줄은 알았는데…. 오늘은 정말 빛이 나요.”

실비아의 솔직한 감상에 루카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실비아가 콩깍지가 낀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그는 정말 잘생겼다. 분수대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루카를 보고 한 번씩 감탄사를 흘렸다.

어떤 이는 입이 아니라 목에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대다가 깜짝 놀라고, 어떤 이는 혹시 오늘 화보집 촬영 있냐고 다 들리게 친구와 수군거렸다. 심지어 가로수를 마차 한 대가 들이박았는데,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는 마부와 마차 밖을 빠져나온 귀부인이 루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구급 마차에 실려 갔다. 사람이 옷발을 받은 건지, 옷이 사람발을 받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늘 루카의 모습은 눈부셨다.

실비아는 루카를 보고 넋을 놓는 사람들을 보면서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저 남자가 내 남자라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

흡족하게 미소 짓던 실비아의 어깨를 루카가 감쌌다.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고급스럽고 시원한 향수 냄새가 났다.

“들어가자.”

“좋아요.”

루카에게 이끌려 백화점의 입구에 들어선 실비아는 깜짝 놀랐다. 게임 세계에서 가 봤던 어떤 건물들보다 화려한 내부가 그녀를 반겼다.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일정한 간격으로 장식돼 있었다. 바닥에 깔린 붉은 레드카펫 덕에 걸을 때마다 폭신한 감각이 느껴졌다. 백화점 건물 가운데를 거대한 금사자 조각상이 관통하고 있었는데, 사자가 든 물병에서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쏟아져 나와 퐁뒤 접시 같은 다층 탑 분수대에 들어가는 모습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와!”

실비아는 놀란 미어캣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별천지를 구경했다. 입구에서 몇 걸음 내디뎠을까. 양복에 하얀 장갑을 끼고 단안경을 걸친 중년남성이 루카와 실비아에게 다가왔다.

“루카 님, 실비아 님. 저희 유토피아 백화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이 백화점의 지배인입니다.”

지배인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루카가 미리 예약이라도 한 건지 그는 이미 실비아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는 영업용 미소를 짓더니 둘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궁금해하며 여기저기 기웃대는 실비아와 달리, 루카는 여러 번 방문해 익숙한지라 여유롭게 걸었다. 지배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복도를 걷자 검은 대리석으로 이뤄진 고풍스러운 VIP룸에 다다랐다. 그곳의 콘셉트가 검정인지 화이트 계열로 포인트를 준 몇 가지 소품을 제외하면 바닥은 물론이요, 천장과 대부분의 가구가 검은색이었다.

실비아는 VIP룸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실비아가 정신이 팔린 새 루카는 지배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소파에 앉았다. 실비아도 구경을 마치고 그 옆에 앉자 잠시 후 카탈로그 책자를 든 여성과 여러 명의 직원이 베일에 싸인 뭔가를 주르륵 끌고 나타났다. 베일을 걷자 행거에 걸린 조명에 반짝이는 화려한 옷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말씀하신 스타일대로 옷들을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맘에 드시는 게 없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다른 걸 가져오겠습니다.”

카탈로그 책자를 든 여성이 기품있는 말투로 말하자, 루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실비아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실비아, 네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이 이런 종류인 거 같아서 내가 미리 말해뒀어. 천천히 구경해 봐. 맘에 안 들면 말하고.”

“우와! 맘에 안 들 리가 있나요. 고마워요!”

조심스레 옷걸이에 다가간 실비아는 잠시 뒤를 돌아봤다. 배부른 맹수처럼 나른한 표정의 루카가 다리를 꼰 채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자 섹시하게 윙크를 해 왔다.

‘세상에, 재력이며 저 거만한 잘생김이며. 완벽하다 완벽해!’

그를 계속 보다간 입이 찢어질 것 같아 실비아는 황급히 뒤돌았다. 옷걸이를 살펴보니 루카의 말대로 그녀가 평소에 즐겨 입는 스타일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꺼내 거울 앞에서 대보던 실비아는 입어 보시라는 직원의 말에 옷을 몇 벌 들고 피팅 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실비아가 수줍은 표정으로 나왔다. 카탈로그를 보고 있던 루카가 고개를 들더니 그런 실비아를 보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와, 잘 어울리는데?”

곧 다가올 가을에 맞춰 실비아는 긴 팔 원피스를 골랐다. 팔 부분은 시스루 처리가 되어 하늘거렸고, 스퀘어 네크라인을 조그만 진주로 장식하여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하늘하늘한 팔 부분과 달리 허리와 골반 라인은 타이트해서 몸의 장점을 더 살려 줬다.

실비아는 전신거울에 제 모습을 비쳐 보고는 루카를 향해 물었다.

“정말 어울려요?”

“응. 그건 꼭 사야겠어.”

그 후 실비아가 옷을 입고 나올 때마다 루카가 넋을 놓고 칭찬하는 바람에 그녀는 자신이 입어 본 세 벌의 옷을 다 선택하게 됐다. 실비아는 옷을 세 벌이나 얻자 하늘을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조금씩 불만이 생겼다.

‘좋긴 한데…. 원래는 백화점을 아예 털어 버릴 작정이었는데 말이지. 여기부터 여기까지 싹 다 줘. 이런 말 안 해? 드라마에서 보면 남주 단골 대사잖아.’

그녀는 입을 살짝 삐죽댔다. 루카가 ‘여기서 여기까지 싹 다 줘.’라고 하면 ‘어우,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을! 말만으로도 고마워요.’라고 하며 대충 10벌 정도 챙길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하늘이 돕는 걸까. 속으로 생각을 하느라 옷걸이 앞에서 머뭇대던 실비아를 향해 루카가 가벼운 어조로 몇 마디 툭 던졌다.

“뭘 그렇게 고민해? 고르는 족족 다 사 줄게. 아! 아니다. 그냥 여기 있는 거 다! 네가 가져.”

바라고 또 바라던 멘트였다. 실비아는 귀까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최대한 내리려 노력하며 평정심을 가장했다. 그러나 살짝 얼굴이 빨개지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루카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정말…요?”

“응. 여기 있는 거 너 다 가져!”

그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침없이 내뱉자 실비아는 잠시 곤란한 척하며 눈을 굴렸다. 머릿속에선 이미 폭죽이 터지며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야호! 이게 다 얼마야. 그래, 원하는 대로 되고 있어. 백지수표 때 시스템 때문에 얼마나 짜증 났는지!’

그러나 시스템 욕을 해서일까.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이려던 실비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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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옷을 다 가질 시 업보가 1천 상승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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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오랜만에 뜬 업보 메시지였다. 1천이라니?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지옥불에 퐁당 입수각이었다. 입을 막고 경악한 실비아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루카의 제의를 거절했다.

“어우, 아니…에요. 이렇게 많은 옷은 필요…도 없을뿐더러 들고, 들고 가도 놔둘 공간이 없어요.”

“그래? 정말 싫어?”

그녀는 눈을 부자연스럽게 깜빡이며 거듭 사양했다.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하려니 말하는 사이사이 버퍼링이 걸렸다. 그녀의 거절을 들은 루카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더니 눈에 의문을 가득 담았다. 남녀 불문하고 여기 있는 옷을 다 주겠다고 하면 좋아 죽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실비아가 제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물질만능주의에 휩싸였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돈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너무 많은 옷은 필요 없다고 하다니. 종잡을 수가 없어. 백지수표도 그렇고….’

백지수표 때도 그렇다. 욕심껏 적어넣는 것 같더니 결국 여러 번 지우고 소박한 금액을 내밀지 않았던가. 줄을 빽빽하게 그어서 원래 얼마가 적혀 있었는진 알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얼마 안 되는 금액에 루카는 잠시 놀랐었다. 생각으로 눈썹을 찌푸리던 루카는 제 나름대로 실비아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돈 욕심은 있는 것 같은데…. 나름의 신념이 있는 거 아닐까. 필요한 만큼만 얻고 과한 건 원치 않는다거나 말이야.’

사실 실비아는 신념 따위 없고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루카가 주는 대로 받지 못하는 거였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루카는 제멋대로 실비아를 오해했다. 그는 실비아에게 앞으로도 이것저것 안겨다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제가 주는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돈으로 마음을 얻으려고 했던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돈이 다가 아냐. 마음이 더 중요하지….’

실비아가 알았다면 꺼이꺼이 울었을 생각을 마친 루카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조금만 더 골라 볼게요.”

루카는 ‘그렇게까지 말씀’한 적이 없지만, 실비아는 괜히 말꼬리를 잡은 뒤 옷걸이를 재빨리 뒤적거렸다. 이 좋은 기회를 달랑 세 벌의 옷으로 끝낼 순 없었다. 후다닥 골라 두벌의 옷을 더 들어 보이자 루카가 아까의 거만한 표정과는 달리 차분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이 실비아의 손에 들린 옷을 받아 가선 앞의 세 벌과 함께 쇼핑백에 담아 테이블 구석에 올려놨다.

다행히 다섯 벌은 괜찮았는지 아무 메시지도 뜨지 않았기에 실비아는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룸과 연결되어있는 다이닝 룸으로 간 둘은 요리사가 눈앞에서 만들어 주는 요리를 먹으며 여러 대화를 나눴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휑한 레스토랑을 둘러본 실비아는 루카가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단 걸 한 번 더 실감했다.

‘아까 VIP룸이야 그렇다 치고, 이 레스토랑은 원래 수용 인원이 많아 보이는데 통으로 예약했다고? 진짜 엄청난 부자이긴 한가 보다.’

식사를 끝내고 VIP룸으로 돌아오자 직원이 다과와 차를 내왔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옷은 이제 치워 드릴까요?”

“아니. 조금 더 볼게.”

“알겠습니다. 그럼 필요한 거 있으시면 설렁줄을 당겨 주시면 됩니다.”

루카가 말없이 고개를 까딱했다. 직원들은 꾸벅 인사를 한 뒤 VIP룸을 빠져나갔고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쿠키를 오독오독 씹어 먹던 실비아를 루카가 사랑스러운 소동물 보듯이 바라봤다.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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