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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69화 (169/372)

169화

실비아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다가 그대로 굳었다. 나뭇가지에 몸을 감고 숨어 있던 독사가 메리 할머니의 머리 위를 순식간에 덮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편안한 표정으로 독사의 마름모꼴 두개골을 엄지와 검지를 모아 뽀각-하고 부순 뒤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쳤다.

“아유, 귀엽게 굴기는.”

“하하….”

방금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할머니의 표정은 태연했다. 실비아는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으며 진땀을 흘렸다. 그 후로도 그런 일은 몇 번 더 일어났다. 늪지대를 지나다 악어가 돌연 튀어 올라 할머니의 팔을 물려다가 이빨만 다 털리고 사라지거나,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의 흑곰이 할머니를 후려치려다 반대로 후려침 당하고 10바퀴 회오리를 치며 저 멀리 날아갔다.

무기도 들지 않은 맨손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는 게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실비아는 층간소음 사건 때 결투 신청을 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거듭 생각했다. 저 동물들처럼 탈탈 털렸을 자신을 떠올리자 멀쩡한 잇몸이 다 시리는 느낌이었다.

‘천만다행이야. 치아는 소중한 거니까.’

한참을 걷다 보니 실비아는 궁금증이 생겼다. 메리 할머니는 계속 공격해 오는 동물들을 물리치는 일만 반복했는데, 왜 인턴인 자신을 데리고 사파리에 들어온 걸까?

“할머니. 저희가 여기 들어온 이유가 뭔가요? 여기 동물들은 딱히 보살핌이 필요 없어 보이는데….”

“응? 방금 한 게 다 보살핀 건데? 여기 동물들은 호시탐탐 관람객들을 노리는지라 이렇게 시간 내서 쓰다듬어 줘야 엄한 생각을 안 해. 사파리 부서 정직원을 노린다면 잘 봐 둬.”

“아아….”

쓰다듬어 준 것치곤 상당히 과격하시던데. 보살핌을 받은 동물들은 한동안 후유증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사파리 정직원이 되면 이런 동물들과 매일 마주쳐야 한다니 순식간에 입사 욕구가 사라졌다. 그러나 실비아는 한껏 쫄아 있었기에 할머니의 말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메리 할머니의 맹수 털기가 끝나고 짧은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메리 할머니는 너른 바위에 앉아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는 할머니가 건네는 달달한 과자를 열심히 씹어 먹었다.

“힘들지?”

“아, 아뇨. 힘든 건 하나도 없었어요.”

한 게 있어야 힘들 거 아닌가. 실비아는 나중에는 망치도 집어넣고 메리 할머니가 공격해 오는 맹수들을 아작내는 것만 지켜보았다. 실비아는 과자를 먹으며 할머니에게 여러 얘기를 들었다. 메리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는 무척 재밌어서, 그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에 열중했다. 그러다 실비아는 잊고 있었던 블루의 부탁이 생각났다. 이 광활한 사파리 월드에서 어떻게 ‘블루의 힘을 제어한 원인’을 찾을지 막막했다.

‘특수시설 같은 건 없으려나?’

“할머니. 저는 내일은 사파리에 못 오잖아요. 혹시 여기에 견학할 만한 시설은 없나요? 인턴 기간 동안 배울 게 많으니 시간 난 김에 한꺼번에 둘러보고 싶어서요.”

“음. 그런 게 있던가? 아! 날 따라와.”

실비아는 메리 할머니의 넓은 등을 뒤따라갔다. 그 와중에도 공격해 오는 동물들을 파리 쫓듯 가뿐하게 쳐내는 살풍경한 모습이 잠시 펼쳐졌다.

그때 독사 한 마리가 넋을 놓고 따라가는 실비아를 만만하게 보고 급습해 왔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메리 할머니가 했던 것처럼 검지와 엄지를 모아 독사의 두개골을 뽀각-소리가 나게 비틀었다. 그러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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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메리 할머니 덕에 독사를 처치하는 법을 배웠다. 지력이 1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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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지력이 또 올랐네.’

실비아의 낯빛이 환해졌다. 슬슬 지력 700이란 어마어마한 조건을 어떻게 채우는지 감이 왔다. 퀘스트대로 인턴 기간 동안 놀이동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배우면 지력을 얻을 수 있는 원리인 것 같았다.

‘인턴을 하길 잘했어. 블루를 볼 수 있으니 입장료 5만 골드도 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 지력도 올라가고. 최고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어도 지력이 올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이동산 인턴은 블루를 만날 입장료를 아낀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였다. 실비아는 신이 난 상태로 할머니를 따라갔고 곧 돌로 만들어진 첨탑에 도착했다. 그 때 건물 안에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까 입구에서 들었던 울음소리의 출처는 이 첨탑이 아닐까?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걸세.”

할머니는 인자하게 미소 지은 뒤 주머니에서 열쇠를 하나 꺼냈다.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문틈으로 온갖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선 실비아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쇠창살로 만든 우리가 기다란 복도 양옆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동물들이 그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을 공격하기 좋은 맹수들이라지만 이런 곳에 가둬놔도 되나?’

동물들을 측은해하며 눈썹이 저절로 내려갔던 실비아는 메리 할머니의 설명을 듣고 다시 눈썹을 올렸다. 이 첨탑은 범죄 동물수용소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동물들을 가둬놓은 것이라고 한다. 치킨을 즐겨 먹는 닭부터 시작해서 상습적인 공갈·협박으로 전과 100범이 넘는 앵무새, 남의 얼굴에 침 뱉는 독사까지…. 하여튼 엄청 무시무시한 동물들이 있단 말에 실비아는 제 팔을 쓰다듬으며 오돌오돌 떨었다.

“아! 아까 조련사님이 말하던 수용소가 여기였군요. 치킨을 즐겨 먹는 닭이라니. 그건 좀 끔찍하네요.”

“그렇지. 사파리 부장의 말로는 살인을 저지른 동물의 경우는 즉결처분을 하면 되지만 좀 애매모호한 흉악동물들은 여기다 가둬놨다고 하더라고. 바깥에 풀어놓으면 피해가 막심하니까 말이야.”

얘길 듣고 나니 더 이상 동물들이 가여워 보이지 않았다. 실비아는 입마개를 한 독사와 눈이 마주치곤 얼른 할머니의 뒤에 바짝 붙었다. 둘은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첨탑의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수정구가 여러 개 모여 있는 감시실이 나타났다. 감시실에는 안경을 낀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첨탑관리자라고 했다. 그는 실비아의 인턴사원증을 한번 힐끗 보더니 미소를 띠며 감시실의 이모저모를 설명했다.

“새로 온 인턴이시구나. 이 수정구들로 각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을 감시할 수 있죠. 그리고 저 천장 위에 있는 마법진들로 동물들의 힘을 제어합니다.”

첨탑관리자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복잡한 문양으로 이뤄진 수백, 수천 개의 마법진이 천장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법진마다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눈을 바쁘게 굴린 실비아는 구석 자리에서 드래곤 문양을 찾아냈다.

‘저게 블루가 힘을 못 쓰는 원인이구나!’

그녀는 태연한 얼굴을 꾸며내곤 첨탑관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마법진들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나요?”

“이 첨탑에만 영향을 미칠 겁니다. 바깥에 있는 동물들까지 제어하면 곤란하겠죠.”

관리자의 대답에 실비아는 의문이 생겼다. 그럼 블루는 왜 힘을 못 쓰는 걸까. 그녀는 손가락으로 드래곤 그림을 가리키며 관리자에게 물었다.

“저기 저 도마뱀처럼 생긴 건 뭐죠? 자세히 보니 드래곤 같기도 하고! 어머, 설마 이 놀이동산에 드래곤도 있어요?”

실비아의 놀라는 연기에 관리자는 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놀이동산의 역사를 술술 불었다.

“아아. 저건 옛날에 새겨진 거라서요. 원래 이 첨탑 옆에 드래곤을 가두는 탑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드래곤이 워낙 힘이 강하니까 초대마법사가 엘리셔스 월드 전체를 제어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진을 설치했다네요. 지금은 가둬놨던 드래곤도 없어지고 마법진만 남아 있어요. 저 마법진을 볼 때마다 엘리셔스 월드의 직원인 게 뿌듯하죠.”

직원은 가슴에 손을 모은 채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표정을 지었다. 블루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저 마법진 때문이 맞았다. 실비아는 직원의 말에 감동한 척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저걸 어떻게 무용지물로 만들지 당장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좀 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로 했다.

“그럼 이제 쓸모없는 걸 왜 놔두는 거죠? 자리만 차지하니 지워 버리면 될 텐데.”

실비아의 질문에 직원이 난색을 표했다.

“저걸 없앨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없으니까요. 놀이공원 자료실에 첨탑 마법진 파훼법이 담긴 고서가 있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법진 전문 마법사를 초청해서 해결하면 되겠지만 굳이 그런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고요.”

직원은 햇병아리 인턴에게 이것저것 말해 주는 게 신이 나는지 많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덕분에 블루 공략 조건이 지력 700인 이유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고서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지력을 올려야 한단 거겠지.

‘그래도 그렇지, 그럼 지력 700이 될 때까지 물개인 블루랑 호감도를 쌓아야 해? 그건 안 돼!’

그녀가 속으로 투덜대는 와중에 직원이 수정구 감시대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실비아 양, 그럼 잠시 구경하고 계세요. 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천장에 돌을 던지거나 하면 안 돼요. 마법진에 금이 가면 효과가 떨어질 수가 있거든요. 뭐, 돌 하나 던지는 걸론 끄떡없겠지만요.”

“네?! 아, 네네!”

직원은 엄청난 힌트를 남긴 뒤 메리 할머니와 함께 다른 업무를 하러 갔다. 심지어 실비아를 내버려 두고 말이다. 원래 게임 속 인물들의 말이 힌트가 되는 법. 이건 퀘스트를 수행하라고 자릴 비켜 준 거나 다름이 없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실비아는 바로 망치를 꺼냈다.

‘자리까지 비켜 줬는데, 이건 안 하면 바보다!’

실비아는 <부메랑 망치> 스킬을 써서 드래곤 문양을 향해 망치를 날렸다. 곧 뽀각-소리가 들리더니 드래곤 문양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돌 부스러기를 맞으며 돌아온 망치를 손에 쥐자마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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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에 금이 갔다. 블루의 힘이 약간 돌아온 것 같기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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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날리란 소린가?’

괄호 안의 숫자를 확인한 실비아는 두 번 더 망치를 날려 마법진에 커다란 금을 만들었고 메시지가 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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