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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66화 (166/372)

166화

실비아네는 ‘헛차, 헛차.’ 구호에 맞춰 10대 천왕들과 함께 열심히 운동했다. 각이 제대로 잡힌 그들의 에어로빅에 할머니들이 탄성을 흘렸다. 아침부터 땀을 흘리니 건강에도 좋을 듯하고 숙취도 가시고 10대 천왕들과도 친해지고 일석삼조였다.

“휴식합시다!”

음악이 꺼지고 사람들이 숨을 헉헉대며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같이 에어로빅을 한 궁극적인 목적은 인맥 쌓기였기에, 실비아네는 10대 천왕들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아부했다. 세비스의 손길에 몸이 노곤노곤해진 존슨 할아버지가 그의 손을 토닥였다.

“늑대 청년! 늑대 청년은 수요일부터 황실 요리사로 들어간다면서?”

“네, 맞아요. 존슨 할아버지. 아무래도 보통 일자리가 아닌지라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그렇겠지. 거기 가면 말이야….”

할아버지는 세비스에게 황실에 가서 주의해야 할 점과 몇 가지 사교계에서 도는 소문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건데 할아버지는 황실기사단 출신이며 아들 두 명도 얼마 전에 황실기사단에 입소했다고 한다. 실비아네는 할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몇 가지 조심할 점을 일러 줬다. 다른 것보다 우선 황태자의 심기를 거슬리지 말 것. 엘리셔스 제국의 황태자는 차가운 인상의 미남으로 소문이 자자한데, 얼굴만큼 성격이 매섭기로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아마 타코야키를 좋아하는 건 황후 폐하일 거야.”

“네, 맞아요. 수석요리장 말로는 주로 황후 폐하의 티파티에서 타코야키를 굽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말고는 황실에서 근무하시는 사용인분들을 위해서 타코야키를 상시 준비해 놓기로 했지만요.”

세비스가 긍정하자 고개를 끄덕인 존슨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 갔다.

“역시 그렇군.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는 두 분 다 옆에 있으면 찬 바람이 불거든. 그에 반해 황후 폐하는 햇살 같은 성격이시지. 그분은 맛있는 음식을 무척 좋아하셔. 음식 재료 하나로 무역 협정을 맺은 국가도 있었을 정도니까.”

“그럼 황제 폐화와 황태자 전하 두 분은 타코야키를 안 드시려나요?”

“그건 모르겠어. 황제 내외분이 금실이 좋으시니 황제 폐하는 황후 폐하의 식성에 맞춰 같이 드실지도 모르지. 아이고,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황태자 전하는 늘상 주위에서 호위하는 기사단이 있거든….”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황태자가 어릴 때 암살자에게 죽을 뻔한 경험이 있기에 늘 기사단들이 곁에서 철저하게 경호한다고 한다. 잘못 접근했다간 뼈도 못 추리니 웬만하면 관심을 끄라는 것. 그리고 만나게 되더라도 가까이 가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타국에서 들리는 우스갯소리로 엘리셔스 제국의 국보 1호는 우라엘 황태자란 소리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기사단들이 지나치리만큼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이라나. 가만히 얘기를 듣던 실비아는 혹시 마지막 남주가 황태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현생에서 자주 읽던 웹소설들에선 주로 황태자, 북부대공, 마탑주가 돌아가면서 남주를 했었다. 거기다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접근이 어렵다면 개고생을 유도하는 시스템 특성상, 황태자가 남주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여유가 되면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지금은 블루를 공략하는 게 우선이니 나중에….’

인턴십이 시작되는 수요일 전까지 실비아는 잠시 미뤄 놓았던 림보 찾기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롤러 운동화를 타고 다니면서 림보 얼굴이 그려진 전단지를 광범위하게 뿌렸다가 벌금 딱지만 받았다. 바닷가마을과는 다르게 전단지 좀 뿌렸다고 벌금을 매기는 차가운 수도! 실비아는 울분을 삼키며 전단지 뿌리기를 관둘 수밖에 없었다.

‘휴, 그래. 말 농장 직원의 말대로라면 놀이동산으로 한 달에 한 번은 림보를 데려간 사람이 올 거라고 했으니까.’

놀이동산에서 버티다 보면 림보를 볼 날이 있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녀는 지력을 올리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관적인 방법은 독서였다. 수도 중심의 도서관에 간 그녀는 서고를 뒤적거리며 혹시 능력치가 상승하는 책이 없나 찾았다.

놀랍게도 열에 하나는 집어 들자마자 눈앞에 책 제목과 함께 지력 몇 상승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잠시 좋아했던 실비아는 완독해야 능력치를 얻을 수 있던 문제집을 떠올리곤 다시 상심했다. 지력 좀 얻자고 책을 하나하나 다 읽을 순 없었다. 그녀는 책을 대여하지 않고 다시 꽂아 놨다.

‘찾아보면 지력을 더 쉽게 올리는 방법이 있을 거야. 신전 알바 때 길거리 전도를 하며 화술을 올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지력을 올릴 수 있는 일이 놀이동산 안에 있다면 좋을 텐데.’

블루 공략 조건은 지력 700으로 어마어마한 수치였는데, 분명 그동안의 경험에 미뤄 보면 쉽게 지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였다. 없다면 진짜 절망적이게도 한 권씩 책을 읽으며 지력을 올려야 했다.

한숨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내키지 않아 미뤄 놓았던 <깔깔 유머집>을 펼쳐 <아이고 내 배꼽 아재 개그> 스킬을 습득했다. 어디다 쓸까 싶긴 했지만, 인벤토리에 계속 남아 있는 게 거슬려서 읽어서 없애 버렸다.

“구구구!”

“참둘기야. 편지를 물어 왔구나.”

책을 덮고 거실로 나온 실비아는 참둘기의 소릴 듣고 베란다로 갔다. 그녀는 순종적으로 변한 참둘기에게 찐 옥수수를 물려 준 뒤 빨간 편지지를 보곤 활짝 웃었다. 루카의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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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이제 급한 일이 다 끝났어. 널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서 밤새워서 열심히 일했더니 시간이 나더라. 토요일에 올라갈 테니 같이 백화점에 가자. 잠은 미리 많이 자 둬. 만나면 못 자게 할 거니까. 그럼 잘 지내고 있어.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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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편지를 읽으며 백화점이란 단어에 한 번 웃고 잠을 못 자게 할 거란 말에 두 번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덧붙여진 내 사랑이란 단어에 세 번 웃었다.

‘드디어 백화점을 가는구나! 잠을 못 자게 할 거라니. 기대가 되는걸.’

입가에 미소를 띠며 좋아하던 실비아는 이어지는 생각에 낯빛이 창백해졌다. 세비스랑 토요일에 폐교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설명할지 곤란했던 것이다.

그녀는 세비스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어렵사리 토요일에 개인 약속이 있다고 했다. 의외로 세비스는 별다른 건 묻지 않고 그럼 던전은 일요일에 가자고 답했다. 예전엔 누구랑 가냐,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며 뭔 일이 됐든 따라오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완전 환골탈태한 수준이었다.

‘얘가 몸이 자라더니 정신도 성숙해진 건가? 뭐가 됐든 잘 됐다.’

싱글벙글한 실비아는 수저를 들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내일은 인턴 첫날이니 잘 먹어 둘 필요가 있었다.

* * *

“입장권 구입은 저기서 하시면….”

“여기 사원증이요. 엘리셔스 월드 신입 인턴 실비아입니다!”

다음 날 놀이공원 입구에서 입장권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당당하게 신입사원증을 보여 준 실비아는 어깨에 뽕을 한가득 장착한 채 직원의 확인을 받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놀이동산이었기에 개장 시간부터 관람객들의 줄이 길었다. 그들이 실비아를 쳐다보며 조그맣게 수군거렸다.

“어머, 이번에 뽑힌 엘리셔스 월드 인턴인가 봐.”

“부럽다. 인턴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아이고, 우리 아들도 여기 입사하고 싶어 하는데! 저 아가씨 좀 불러서 비법 좀 듣고 싶네.”

자기 얘기는 원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법. 조그맣게 속닥거려도 다 들렸다. 실비아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제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저절로 턱이 치켜 올라가고 발걸음이 당당해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이 맛에 대기업 입사하는 건가! 관람객들 모두가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

선망의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을 뒤로 한 채 그녀는 롤러 운동화를 이용해 문워크 춤을 췄다. 즉석에서 만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추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야 엘리셔스 월드 인턴이라네! 누구나 부러워한다네! 내가 걸으면 사람들 다 돌아본다네! 과자는 역시 누네띠….”

롤러 운동화를 타고 오니 순식간에 인턴사무실로 도착했다. 실비아는 자유 인턴이었기에 배정받은 건물 없이 사무실로 오라고 안내받았다. 즐거운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그녀를 반겼다. 그는 인턴 전용 유니폼이라며 봉투에 싸인 옷을 건넸다. 그녀는 하늘색 멜빵바지 안에 흰 티셔츠를 입고 인턴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놀이동산 직원들과 차림이 똑같았다. 실비아는 사무실 벽에 걸린 전신거울을 보며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었다.

“실비아 양, 준비됐나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원하셨던 직렬인 아쿠아리움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세요.”

“네!”

센터를 나가려던 실비아는 입구에 비치된 은박에 싸인 사각 초콜릿들을 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린 직원이 실비아에게 하나 권했다.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나눠 주는 간식입니다. 하나씩 가져가세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물개는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거 알죠? 걔들은 먹으면 큰일 나요. 실비아 양만 드세요.”

실비아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상자에 든 초콜릿 하나를 꺼내 품속에 넣었다.

“와! 네네. 저만 먹을게요.”

직원을 따라 아쿠아리움에 가니 월요일에 봤었던 조련사들이 그녀를 반겼다. 메리 할머니는 아쿠아리움뿐만 아니라 사파리까지 맡고 있는 동물 전문가여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선 물개들의 보금자리를 돌보는 일을 배우기로 했다. 우리로 들어가자 안락한 클라우드 소파와 요가 매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제 안 놀라워.’

림보와 사느라 게임 속 동물들의 생활환경에 익숙해진 실비아는 태연한 표정으로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를 청소하는 법을 배울 거예요.”

“아, 네!

조련사의 지시를 받은 그녀는 먼지떨이를 들고 한창 청소에 열중했다. 한창 소파의 방석을 새것으로 갈고 있는데, 퀘스트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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