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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65화 (165/372)

165화

“그러나! 까탈스러운 신입 물개 파돌이가 실비아 양만을 철저하게 따르는 점, 그리고 물개 못지않은 묘기를 부려 좌중을 압도시킨 점은 확실히 탐나는 능력이에요. 저희 놀이동산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법을 아는 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아, 그럼!”

“그렇다고 해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실비아 양을 저희 아쿠아리움 조련사 보조로 채용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엘리셔스 월드 인턴 채용은 제국민들 모두가 주목하는 연례행사기 때문이죠. 여러모로 고민해 본 결과 실비아 양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채용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초조함에 실비아의 입안이 바짝 말라붙었다. 차분한 어투의 심사위원은 사용인이 가져온 찬물을 한 잔 들이켜더니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인턴이란 건 원래 정식사원이 되기 전에 수습사원을 뽑는 제도죠. 그러니 아쿠아리움 보조 인턴 대신에! …엘리셔스 동물부서 자유 인턴을 제안할까 합니다.”

실비아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붙은 줄 알고 좋아했다가 떨어진 줄 알고 절망했다가 난리였다. 붙었다는 건가? 그녀의 눈에 어린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심사위원이 말을 덧붙였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실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한곳에 매이지 않고 사파리 월드와 아쿠아리움을 번갈아 체험하며 적성을 찾으시는 겁니다. 실비아 양이 테스트에 떨어지긴 했지만, 당신이 가진 잠재력을 높이 사서 제안하는 겁니다. 어때요? 수락하실 건가요?”

동물부서 인턴이라니, 어쨌든 아쿠아리움도 함께 갈 수 있단 거였다. 고민할 것도 없이 당장 수락하려던 실비아는 잠시 멈칫했다. 이 게임에서 대충 살다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무조건 좋다고 할 게 아니라 조건을 자세하게 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심사위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유 인턴이 된다면 수당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또한 저는 아쿠아리움을 원해서 인턴에 지원한 거니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무조건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는 조건을 붙이고 싶습니다.”

“음….”

잠시 고민하던 심사위원은 옆 사람과 속닥속닥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동물부서 자유 인턴이 그녀가 원하던 게 아니라는 점과 업무가 늘어나는 점을 참작해서 일반 인턴보다 20프로 더 많은 수당을 챙겨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쿠아리움의 새 식구인 파돌이가 그녀만 잘 따르고 있었기에 파돌이를 최대한 자주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조건에 실비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습니다!”

“아, 그리고 사파리와 아쿠아리움 총괄 조련사와 동물 전문가로 겸임하실 메리 할머니를 가끔 보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을까요?”

그의 말에 실비아는 고개를 돌려 메리 할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옆에만 있어도 든든한 메리 할머니를 돕는 건 좋지만 인턴치고 너무 할 일이 많은 것 같았다.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심사위원이 말을 이었다.

“혹시나 노동 착취라고 오해하실까 봐 덧붙일게요. 저희 놀이동산은 황태자 저하께서 눈여겨보시는 기관이며 황실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혹사하는 사기업이 아니란 거죠. 실비아 양은 여러 부서를 돌긴 하지만 다른 인턴들과 동일한 시간 동안 근무하실 거예요.”

“…좋습니다. 해 볼게요.”

수당도 더 많이 준다고 하고 근무시간도 똑같다고 하니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인턴에 떨어져서 5만 골드씩 내며 블루를 보러 오는 것보단 좀 피곤하더라도 자유 인턴으로 취직하는 편이 나았으니까.

실비아가 수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쿠아리움 보조 인턴도 한 명 발표됐다. 그녀가 묘기를 보여 주기 전, 가장 성실하게 테스트에 참여하던 지원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야. 난 벼락치기니까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의 자리를 가로챘다면 조금 마음이 안 좋았겠지.’

탈락의 고배를 마신 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실비아와 메리 할머니, 그리고 보조 인턴 합격자는 동물부서 센터로 향했다. 할머니는 따로 부장과 면담을 가졌고 실비아와 보조 인턴 합격자는 관계자에게 인턴 일정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인턴은 한 달 동안 진행되고 이 중에 기준점을 넘은 사람은 정식 사원이 될 수 있었다.

아쿠아리움의 인턴은 한 명인데, 이 경우에도 기준점을 넘지 않으면 탈락이었다. 자유 인턴인 실비아의 경우엔 한 달 동안 두 부서에서 번갈아 인턴 교육을 받고 기준점을 통과할 시에 한 부서를 택하여 정식 사원이 된다고 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공지사항까지. 복잡한 설명이 이어지자 실비아의 집중력이 떨어졌다.

‘블루만 공략하고 싶었는데 다른 일도 해야 한다니. 아흠, 설명이 너무 길어.’

관계자가 침을 튀겨 가며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동태눈깔이 된 그녀의 귀에는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니다. 합격 축하합니다. 다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긴 설명의 시간이 끝나고 합격자들은 새로 발급된 인턴사원증과 입사기념품을 받았다. 메리 할머니는 관계자와 할 얘기가 남아 있어 보였다. 실비아는 ‘다시 봬요.’라고 인사를 하곤 면접실을 나왔다. 복도 대기석에 앉아 있던 세비스가 그녀를 반겼다.

“실비아 님! 정말 수고하셨어요. 갑자기 공 돌리기를 하셔서 좀 놀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합격하셨으니 잘된 일이네요!”

“응, 그러게! 나도 합격할 줄은 몰랐는데 일이 잘 풀렸어.”

“수도에 오자마자 뭐가 잘 풀리네요! 오늘은 축하 파티해요.”

즐겁게 떠들며 건물을 나오니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실비아는 한 달간 부지런히 출근할 놀이동산을 찬찬히 둘러보며 세비스를 따라 놀이동산 출구로 향했다. 출구는 지원자와 그들을 기다리던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인턴 결과는 당일에 바로 떴기에 즐거워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훌쩍이면서 친구에게 위로받는 사람도 보였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네. 마치 현생의 수험생들 같아.’

“실비아 님, 빨리 와요!”

수험생을 바라보며 서 있던 실비아는 세비스의 부름에 급하게 뛰어갔다. 오늘은 원 없이 맛있는 걸 먹을 것이다.

* * *

“눈이 너무 부으셨는데요? 여기요!”

어제 요란하게 축하파티를 하며 야식을 즐긴 실비아는 세비스가 준 얼음팩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녀는 팅팅 불은 얼굴로 세비스가 끓여 준 해장국을 들이켰다. 술을 마셔도 별 탈이 안 난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음주하는 날이 늘었다.

‘술을 마셔도 업보가 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가 술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건 아니잖아? 축하파티 목적으로 술 한잔 정도야 괜찮지.’

머리에 까치집을 한 실비아가 뜨거운 국을 벌컥벌컥 마시자 세비스가 웃으며 그녀를 말렸다.

“그러다 체해요. 천천히 드세요.”

“세비스, 너무 맛있어. 넌 진짜 황실 요리사 될 만해.”

그녀의 칭찬에 세비스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즐겁게 식사가 끝나고 세비스는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실비아는 설거지를 했다. 근데 갑자기 천장에서 쿵쿵-소리가 울렸다. 보나 마나 에어로빅 무리였다.

“에어로빅하고 계신가 보네.”

“그러게요. 아 참! 면접장에서 위층 할머니를 봬서 깜짝 놀랐어요. 성함이 메리, 맞죠? 메리 할머니가 맹수 전문가일 줄이야.”

“응. 층간소음을 참은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 메리 할머니가 한 말이 합격 결과에 영향을 준 것 같아. 그러니 이참에 우리도 위층에 올라가 아침 에어로빅을 하는 건 어떨까? 존슨 할아버지가 우리보고 같이 운동하자고 했었잖아.”

“별로 내키진 않지만…. 실비아 님의 무사 근무를 위해선 그래야겠죠? 그럽시다.”

탐탁지 않아 보이는 세비스의 얼굴에 실비아가 손을 모아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내키지 않다니! 무사 근무를 위해서만이 아냐. 위층 분들, 너도 봐서 알잖아. 보통 분들이 아니라고! 거렁뱅이를 벗어난 김에 한번 제대로 출세해 보자. 그 첫걸음으로 위층 분들과 친분을 쌓는 거야.”

그녀의 말에 세비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탄성을 흘렸다.

“아! 맞네요. 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거군요. 그렇죠. 저분들이랑 친해지면 도시 생활이 편해질 것 같아요. 정보도 많이들 알고 계시고!”

“아니. 편해지는 게 목적이 아냐. 난 이 도시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말 거야! 꿈은 크게 가지랬어!”

실비아의 눈에 독기가 드글드글했다. 현생에서 욜로족이던 실비아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한 달 동안 겪고 난 뒤 독기 가득한 실비아로 업그레이드됐다.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냐고? 아니다. 그녀는 게임 세계에서 거렁뱅이의 서러움을 차곡차곡 적립했다.

물은 100도가 넘어야 끓듯이 차곡차곡 적립된 서러움이 수도에 오는 걸 계기로 독기로 탈바꿈된 것이다. 아직은 살짝 소심함이 남아 있었기에 법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행동하겠지만, 일단 결심은 그랬다.

‘인턴도 봐. 만약 내가 진작에 큰돈을 벌거나 높은 신분으로 출세했다면 굳이 인턴을 할 필요가 없이 입장료를 내고 다니면 되잖아. 그리고 기왕이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김에 출세하는 경험도 한번 해 봐야지!’

그러기 위해선 접근하기 좋은 인맥부터 챙기는 게 중요했다. 실비아는 어제 놀이동산을 나온 뒤, 세비스가 잠시 장 보느라 정신없는 틈에 몰래 옷가게에 들러 에어로빅 복장을 구입했다. 첫 번째로는 메리 할머니와 본격적으로 친해져서 인턴 생활이 편해지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나머지 9명의 천왕들과 친해져 고급정보를 듣기 위해서였다. 방으로 뛰어 들어간 실비아가 에어로빅 의상 두 개를 들고나오더니 세비스에게 내밀었다. 파란색과 분홍색 쫄쫄이에 휘황찬란한 레이스가 달려 있었다.

“자, 입고 가자.”

“아니, 이건 언제 사셨어요? 이렇게까지…. 알겠어요.”

경악하던 세비스는 실비아의 형형한 눈빛을 보곤 어쩔 수 없이 옷을 받아들었다. 둘은 에어로빅복을 제대로 챙겨 입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10대 천왕들은 다행히 ‘아이고, 어서 와. 귀염둥이들!’이라며 그들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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