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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64화 (164/372)

164화

“흠, 내가 아무래도 사람을 제대로 본 모양이구만.”

쑥스러웠던 실비아는 그냥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층간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결투 신청을 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일로 그녀는 인생이든 겜생이든, 순간의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3차는 동물 친화력 테스트로, 물개 쇼를 봤던 무대에서 인턴 후보자들이 얼마나 동물들과 잘 교감 하나 보는 테스트였다. 세비스는 사용인 자격으로 다른 후보자의 사용인들과 함께 관람석에서 테스트를 지켜봤다.

무대 위에는 귀여운 물개 몇 마리와 펭귄들이 있었는데, 블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블루는 테스트에 참여 안 하나?’

아쉬워하던 찰나, 물개들이 나오는 철문에서 쾅쾅-요란한 소리가 났다. 조련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조그만 철문을 열자 블루가 짜증 난 표정으로 미끄러지듯 무대 안으로 난입했다.

“아이고, 파돌아. 왜 그러니. 집에서 쉬고 있어야지.”

『뭐, 임마.』

심기가 불편한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조련사에게 대거리를 하던 블루는 곧 실비아를 발견하곤 신나서 배를 밀며 다가왔다. 실비아도 그를 발견하곤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실비아! 저놈이 날 밖으로 안 내보내 줘서 고생했어.』

“에구구, 그랬어?”

블루가 미끈한 지느러미를 들어 실비아의 다리를 감곤 마구 치댔다. 그녀는 우쭈쭈해 주며 블루와 대화를 나눴는데, 어쩐지 주변이 조용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조련사 일동이 경악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아니, 쟤가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파돌이는 인사 대신에 면전에 침부터 뱉고 보는 애잖아.”

“쟤가 오늘따라 왜 저렇게 사람한테 친한 척이지. 저러다가 갑자기 지느러미로 때리는 거 아냐?”

조련사들은 평소와 다른 블루의 태도에 놀라다가도, 블루가 별안간 실비아를 공격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들은 안절부절못하며 블루에게 붙어 있는 실비아 주변을 서성였다. 조련사들이 수군대는 이야기를 들은 실비아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순하고 귀여운 애가 면전에 침을 뱉는다니 믿을 수 없었다. 실비아가 ‘저거 설마 네 얘기야?’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자 블루는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쟤들 이상해. 설마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 말을 믿진 않을 거지? 넌 나랑 친하잖아.』

블루는 반짝이는 눈망울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친하긴, 너도 나랑 이제 두 번째 보는 거잖아….’

실비아는 살짝 부담스러움을 느꼈기에 순간 이중턱을 만들며 뒤로 물러섰다. 직진남을 넘어 블루의 친한 척이 좀 과했다. 데드엔딩의 기억은 블루에게 없을 테니 이게 두 번째 만남인 셈인데 일방적 친밀감을 표시하다니. 사교성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그러나 공략 캐릭터인 블루에게 왜 친한 척하냐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실비아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블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면접관이 무대의 앞에 서더니 모두를 집중시켰다. 이미 블루랑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이 정도면 친화력 테스트 통과는 따 놓은 당상 아닌가 싶었으나, 그 테스트가 그 테스트가 아닌 모양이었다. 물개들을 쫘라락 줄 세운 조련사가 테스트를 설명했다. 블루도 마지못해 그 줄의 끝에 섰다.

“아쿠아리움의 꽃은 바로 물개 쇼입니다. 그 물개 쇼를 위해 물개들이 재주를 잘 부리게 만드는 요령을 시험하는 게 이 테스트의 핵심이죠.”

조련사의 안내에 따라 지원자들은 물개를 한 마리씩 배정받았다. 블루는 다른 지원자에게 갈 뻔했으나 그가 이를 보이며 으르렁댄 덕에 실비아에게로 배정됐다. 하는 짓만 보면 물개인지 맹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때 어디서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같은 추임새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그녀 옆 지원자의 파트너 물개가 코끝에다 공을 굴리는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실비아도 얼른 블루의 코에 공을 대곤 재주를 부려 보라고 시켰으나 블루는 다른 물개들과 달리 코끝에다 공을 굴리지 못했다. 공이 픽, 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실비아! 난 원래 물개가 아니라서 이런 거 못 해. 힘들어. 벌써 코가 얼얼해.』

“못 하는 게 어딨어. 다 하면 되는 거지.”

실비아가 엄한 표정으로 다그쳤으나 블루는 도리질만 할 뿐이었다. 테스트를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실비아의 가슴에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남주 공략을 하러 온 건데 어째서 물개의 재주를 돕는 지경까지 이른 건지. 블루 이 새낀 왜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건지. 드래곤이면 없는 마나 끌어모아서 아쿠아리움을 탈출하든가!

다시 한번 블루의 코끝에 공을 올렸으나, 미끄러운 코끝을 채 한 바퀴 구르지 못하고 굴러떨어졌다. 아무래도 진짜 물개가 아닌지라 타고난 물개들처럼 공 굴리기를 하기 힘든 듯했다.

‘이러다가 최종 테스트에서 떨어지겠네. 근데 코끝으로 공굴리기가 그렇게 힘든가?’

화를 가까스로 참은 실비아는 제 코끝에 공을 얹고 굴려보았다. 빙글 돌던 공이 한 바퀴를 채 구르지 못하고 툭-하고 떨어졌다. 블루가 옆에서 지느러미를 부딪치며 ‘실비아 잘한다!’라고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해왔다.

“네가 잘해야지. 자, 잘 봐. 이렇게 하라고!”

답답했던 실비아는 블루를 가르쳐 줄 요량으로 고무공을 자신의 코에 올리자마자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을 사용해 코 위에서 500번 가볍게 돌렸다. 원래 두 바퀴만 돌리려고 했으나 빨라도 너무 빨라진 신체 속도에 그냥 마구 돌려 버렸다. 이것도 자제심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순식간에 천 번을 돌려 버릴 뻔했다.

“아니, 저 여자 뭐야?”

“이, 이것도 돌려 봐요!”

주변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리며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경악한 조련사 중 한 명이 물개들이 돌리는 접시를 그녀에게 두 개 건네며 돌려 보라 주문했다. 그녀는 내친김에 코로 공을 돌리는 동시에 검지로 접시까지 함께 돌렸다.

“설마 이것도?”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옆 동네 서커스단장이 무작정 훌라후프를 그녀의 허리에 끼워 버렸다.

“아니, 이 사람이! 허락은 맡아야… 으아니!”

실비아는 훌라후프도 함께 돌렸다. 그 후로 놀라서 달려온 구내식당 요리사가 가져온 밥그릇과 간장 종지까지 손가락에 얹었으나 실비아는 전부 빙글빙글 돌려 버렸다. 열 손가락에 다 올리기에는 무리라서 엄지, 검지, 그리고 약지만 펼쳐서 돌렸다. 실비아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꼼지락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면접관이 ‘설마?’라고 중얼거리며 제 귀에 꽂혀 있던 펜을 발끝에 얹자, 실비아는 펜도 무리 없이 돌려 버렸다. 중력을 벗어난 미친 경지였다.

보통의 접시 돌리기 재주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리는 것과 달리 실비아는 붙박이 기계처럼 한꺼번에 공과 접시, 펜까지 마구 돌렸다. 미용실 회전 간판이 이를 본다면 자신의 자리를 실비아에게 양보하고 떠나리라.

‘조금 힘든걸? 왜 멋대로 물건을 얹고들 난리야!’

실비아는 살짝 힘들다곤 생각했지만 그냥 무아지경으로 계속 돌렸다. 물개도 하지 못할 차원이 다른 돌리기 기술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어나 더 클라쓰!”

“세상에!”

“실비아 양, 조련사 보조 인턴 말고 물개로 취업할 생각은 없나요?”

무대 위는 실비아의 돌려돌려돌림판 쇼로 완전 난리가 났다. 조련사들뿐만 아니라 지원자, 심지어 물개들조차 경쟁할 의지를 잃고 실비아의 미친 묘기를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몸 위에 있던 모든 물건을 저글링 하듯이 굴린 후 코 위에 다 쌓아서 한꺼번에 돌리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사람이 아니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휴우. 좀 많이 돌렸나? 살짝 어지럽네요.”

실비아가 묘기를 끝내고 턱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저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 있단 걸 뒤늦게 알아차리곤 머쓱해졌다.

‘이번에도 본의 아니게 주목받아 버렸네.’

“와…. 무슨 퀵 마차 바퀴인 줄.”

“저게 뭐야?”

사람들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곁에 선 메리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코를 쓱 훔치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사람 구실은 하네. 이래야 내 보조지.”

“할머니!”

할머니는 실비아를 보며 엄지를 치켜들고 입꼬리를 올렸다. 할머니와 실비아가 둘만의 공간을 만들며 어깨를 서로 맞부딪치고 손뼉을 치는 등 우정 무대를 연출하는 동안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저래야 사람이야?”

“모, 몰라.”

실비아를 본 물개들이 의기소침해지는 바람에 테스트는 중단됐다. 물개한테 재주를 부리게 하라고 시켰더니 본인이 재주를 부리는 지원자는 엘리셔스 월드 인턴 모집 이래 처음이었다. 난장판이 된 무대 위를 지켜보던 심사위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삐익-!

“테스트 끝입니다! 모두 하던 거 멈춰 주세요.”

모두를 주목시킨 심사위원은 잠시 어우, 하고 한숨을 쉬더니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 양, 묘기 잘 봤습니다.”

“네.”

“친화력 테스트는 물개에게 묘기를 시키는 능력을 보는 테스튼데, 본인이 재주를 부리셨더군요.”

진지한 심사위원의 말에 실비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저도 모르게 공을 미친 듯이 돌렸을 뿐인데, 이렇게 테스트가 끝날 줄 몰랐다. 이게 다 블루가 코가 아리다고 하는 바람에…. 실비아가 입을 삐죽이며 사태의 원흉인 블루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향해 미소 지었다.

『실비아! 너 공 잘 굴리더라. 어디서 배운 거야?』

루카 못지않은 눈새가 한 명 더 생겼다.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블루의 발언에 실비아는 이를 악물었다. 심사위원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맛살을 찌푸리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실비아 양의 테스트 점수는 0점입니다. 왜냐하면 파트너 물개가 전혀 재주를 부리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아…!”

0점이라니. 절망적이었다. 실비아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 차려는 순간 심사위원이 말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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