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예산을 조금 낮춰서 말하자 업자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가게 앞에 있는 마차에 실비아네를 태우고 여러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너무 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림보를 언제 찾을지도 모르는데 외제마 없이 외곽에서 왔다 갔다 하긴 곤란했다.
우선 내일 더 집을 보기로 한 둘은 업자와 헤어지고 나서 햄버거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게 먼저 같아. 그 후에 집을 구해야 순서가 맞는 것 같네.”
“그렇네요. 그럼 실비아 님은 구슬 팔고 알바를 찾으세요. 저는 오늘은 주변 던전 정보부터 알아볼게요.”
햄버거를 해치우고 난 뒤 잠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둘은 각자의 볼일을 보기 위해 헤어졌다. 세비스와 따로 떨어진 실비아는 잠시 벤치에 앉아 악력기를 쥐었다 폈다 하며 문제집을 펼쳤다. 이제 돈 걱정을 할 일이 적었음에도 고생하는 건 여전했다.
‘망할, 이거 엄청 불길하네. 앞으로 나오는 능력치 상승 아이템들이 다 이따위일 거 같아.’
실비아는 이를 악물고 악력기를 쥐었다 폈다 했다. 그 순간 슈퍼마리X가 버섯을 먹는 효과음이 들리더니 실비아의 눈앞에 드디어 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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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력기 1천 회 완료! 오오오, 힘이 솟는다! 힘이 3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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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을 인 자를 새기며 문제집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리자 지력이 30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로써 실비아의 힘은 200, 지력은 230이 됐다. 신이 난 실비아는 얼른 벤치에서 일어나 <롤러 운동화>를 타고 달렸다. 운동화를 얻은 덕에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을 남용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그녀는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거래소로 간 뒤 구슬을 팔아 10만 골드를 얻었다.
‘원래라면 깜짝 놀랄 정도의 큰돈인데 루카 덕에 500만 골드를 한 번에 얻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네. 뭐, 그래도 10만 골드면 어제 쓴 놀이동산 입장료는 다시 벌었다. 야호!’
적당히 기뻐한 그녀는 쉬지 않고 바로 인력 사무소로 달려갔다. 사무소 안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순번표를 뽑은 실비아는 상담사 예약을 한 뒤 대기실에 비치된 구인 광고를 읽었다. 카페 알바부터 시작해서 입주 가정부, 잔디 뽑기 등등 다양한 알바가 있었다. 사람 많은 수도엔 역시나 일자리가 차고 넘쳤기에 뭘 선택할지 무척 고민됐다.
‘아르바이트를 신중히 구해야 공략이 쉬워질 텐데.’
드래곤남을 공략하려면 놀이동산 입장료가 만만찮으니 고소득 알바를 구해야 했다. 지력을 올리는 알바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선은 입장료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순서가 되어 상담사와 만난 실비아는 적성 검사를 하다가 번뜩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니지, 놀이공원에 취직하면 되잖아? 왜 그 생각을 이제야 했담?’
“혹시 엘리셔스 월드에 취직할 순 없을까요?”
실비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곤 상담원에게 묻자 그가 난색을 표했다.
“엘리셔스 월드요…. 쉽지 않을 겁니다. 수도에 있는 모든 청년은 엘리셔스 월드에 취직하길 꿈꾸죠. 신의 직장이니까요.”
말을 들어 보니 엘리셔스 월드는 현생으로 치면 5대 대기업쯤 되는 직장인 모양이었다. 황실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기에 평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귀족 자제들도 엘리셔스 월드에 취직하길 꿈꾼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 알게 된 사실인데 엘리셔스 월드는 입장료가 비싸기에 부자들이나 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놀이동산이었다. 어쩐지 입장할 때 놀이동산 직원이 위아래로 훑어본다 했더니 괜히 그랬던 게 아니었다.
별다른 자격증이 없는 실비아의 이력서를 훑어본 상담사는 엘리셔스 월드에 들어가려면 웬만한 스펙으론 어림도 없다고 겁을 주며 다른 일자리는 어떠냐고 추천했다. 실망하기도 잠시 옆 창구에 있던 직원이 흘러가듯이 말했다.
“거, 지금 인턴 모집 기간 아냐? 별다른 조건은 없었던 거 같은데. 거기 모토가 모든 제국민에게 기회를! 이잖아.”
“인턴 모집? 당장 도전하고 싶어요! 조건 없으면 저도 가능한 거 아닌가요?”
실비아가 옆자리 직원의 말을 덥석 물자 상담사가 낯빛을 흐렸다.
“쉽지 않을 텐데요. 제가 실비아 씨를 낮게 봐서 그러는 게 아니라 헛수고를 하실까 봐 말씀드리지 않은 거예요.”
“헛수고인지 아닌지는 부딪쳐 봐야 알죠? 당장 신청해 주세요!”
실비아의 불도저 같은 발언에 상담사는 어쩔 수 없이 신청서를 주었다. 인턴 분야는 다양했는데, 그중에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동물원 부서의 아쿠아리움 조련사 보조 인턴!
‘이거야, 이것만 합격하면 블루를 매일 볼 수 있다고.’
잠시 후, 인력 사무소를 나서는 그녀의 손엔 ‘엘리셔스 월드 인턴 기출 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그녀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롤러 운동화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구구구!”
숙소에 일찍 돌아오니 참둘기가 멍한 눈빛으로 테라스 테이블에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발에 묶인 편지를 풀어 보니 예상대로 루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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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로 갔다고? 잘됐네. 안 그래도 수도에 있는 백화점에 갈 생각이었는데. 급한 일만 끝나면 수도로 바로 날아갈게.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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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마지막에 적어 놓은 ‘내 사랑’이라는 말에 실비아가 조그맣게 웃었다.
‘진짜 뻔뻔스러운 구석이 있어. 귀엽네.’
흐뭇하게 웃은 실비아는 루카의 편지를 정성스레 접어 미니 백 안에 집어넣었다. 노점에서 산 촉촉한 옥수수를 참둘기에게 급여하고 난 뒤 그녀는 노엘에게도 편지를 한 통 쓰기로 했다. 주거지 주소를 알아야 보낼 수 있는 음성 메시지랑은 달리 전서구는 전서구 둥지 주소만 알면 되었기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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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두막집이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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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솔직하게 편지를 쓰다가 인상을 찌푸리곤 편지지를 구겨 버렸다. 좋은 말만 해도 모자랄 판에 굳이 안 좋은 소식을 전할 필욘 없었다. 그녀는 새 편지지를 꺼내 다시 정성스레 편지를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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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님, 바쁜 일은 잘 해결하고 계세요? 저는 신의 말씀을 수행하기 위해 수도로 올라왔습니다. 어디 사는지 몰라 찾아가지 못했네요. 노엘 님의 몸은 여전히 건강하신가요? 수도에서 만날 날을 꿈꾸며
–노엘 님의 귀여운 자매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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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여전히 건강하냐고 묻는 말의 속뜻을 노엘이라면 충분히 알아챘을 터. 실비아는 마지막에 ‘귀여운 자매’라고 쓰며 조그맣게 키득댔다. 음침하게 웃고 있는 실비아를 전서구 참둘기가 아니꼬운 눈으로 꼬나봤다. 그 눈빛을 눈치챈 실비아가 ‘쓰읍!’ 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참둘기를 나무랐다. 한참을 혼낸 실비아는 그것의 발에 편지를 묶어 노엘 님에게 가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참둘기가 날아가는 뒷모습을 지켜본 뒤 간단한 샤워를 하곤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세비스는 날이 저문 뒤에 오는가 싶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실비아는 책 두 권을 이불 위에 펼쳤다. 다음 주에 바로 있다는 시험에 대비할 ‘엘리셔스 월드 인턴십 기출 문제집’과 ‘깔깔 유머집’이었다. 딱히 아재 개그에 통달하고 싶지는 않았던 실비아의 손은 자연스럽게 기출 문제집으로 향했다.
기출 문제집의 첫 장에는 이번 년도 면접 일정과 인턴 선배들의 합격 수기가 있었다. 그리고 ‘엘리셔스 월드 이모저모’라는 잡다한 정보를 담은 코너가 눈에 띄었다.
면접은 상담원이 말해 준 대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준비 기간이 삼 일이 채 안 남았지만, 그녀가 누군가. 이 게임의 유일한 플레이어인 실비아가 면접에서 탈락할 리가 없었다. 없겠지?
‘합격하겠지. 설마…. 아닌가?’
그녀의 미간이 내 천 자로 찌푸려졌다. 설마 인턴십에 탈락한 뒤 블루를 보려고 입장권 값을 5만 골드씩 지불하며 고생하는 루트가… 있을 수 있었다. 시스템한테 여러 번 당한지라 온갖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오두막집에 한이 맺힌 그녀는 전셋집에 최대한의 돈을 쏟아부을 작정이었기에 그래서야 안 될 말이었다. 5만 골드라니. 바닷가 마을보다 시급이 센 일이 많고 지금 당장은 자금이 넉넉할지라도 그 돈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턴십에 합격해야만 했다.
상담원의 말에 따르면 인턴십 자체는 그렇게 큰돈을 주진 않는다고 했다. 거기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야 정식 사원이 될 수 있는데 그제야 연봉을 크게 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엘리셔스 월드를 거쳐 간 사람들이 정재계에 많이 진출하는지라 귀족들과 신흥 부자 2세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했다.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러나 실비아 입장에선 정식 사원이 되는 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일이었다. 한 달간의 인턴 기간 동안 엘리셔스 월드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단 게 가장 중요했다. 블루를 공략하는 게 그녀의 당장의 목적이니까 말이다.
인턴십 선발 과정은 우선 1차 적성 검사, 2차 압박 면접이 있었고 3차는 각 분야별로 과정이 달랐다. 그녀가 노리는 ‘아쿠아리움 조련사 보조 인턴’은 ‘동물 친화도 테스트’를 마지막으로 봐야 했다. 현생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그녀는 대기업 면접 경험이 없었기에 어떤 방식으로 면접이 이뤄지는지 짐작이 잘 되지 않았다.
‘합격 수기부터 읽어 보자.’
합격 수기의 앞줄엔 하나같이 함박웃음을 지은 선배들의 사진이 보였다. 실비아는 ‘10년 만에 합격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런 수기는 제쳐 두고 ‘일주일 만에 누워서 합격….’으로 시작되는 수기를 펼쳤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실비아에겐 벼락치기 후기가 중요했다. 집중해서 읽어 보니 요점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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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접 스터디를 하라.
2. 강렬한 인상을 남겨라.
3. 타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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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스터디라니 아주 기본적인 팁이었다. 그다음 ‘강렬한 인상을 남겨라.’ 단락을 읽어 보니 처음에 안 좋은 인상이든 좋은 인상이든 심사 위원에게 눈도장을 찍는 게 중요하단 말이 있었다.
‘어그로를 끌란 건가? 어그로하면 자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