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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45화 (145/372)

145화

균열이 나타났을 때 떠오른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 섬의 아래가 나태 지옥 아닐까. 보물섬은 아리센트 가문과 관련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지 않았나. 만약 그 법칙이 죽은 자에게도 적용되는 거라면 지옥에 있는 루카의 형이 가문의 피를 이용해 이 섬으로 올라온 걸 수도 있었다. 물론 귀신이니까 못 다닐 곳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옥에서 올라오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실비아는 잠시 진저리를 치며 얼굴을 찌푸렸다. 게임에서 계속 나태 지옥이 등장하는 걸 보니 지금 당장은 지옥에 갈 생각이 없더라도 추후엔 가야 할 일이 생길 거 같단 예감이 들었다. 아니면 가고 싶어지거나….

고개를 저은 실비아는 일단 나태 지옥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고 획득한 아이템부터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인벤토리를 열자 이번 던전 공략으로 얻은 전리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손에 든 악력기와 문제집은 힘과 지력을 30씩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보스 몬스터들에게 획득한 요리 두 개, <갖은 약재를 넣고 만든 새우 코코넛 커리>와 <흙 묻은 칡>은 상황을 봐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몰래 먹어 치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불을 진화하며 얻은 <꿀단지>까지. 혼자서 몰래 먹는다니 너무 먹보 같았지만, 능력치 든 아이템을 뺏길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다음 행운의 동전은 마을에 돌아가서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나서 광장 분수대에서 몰래 던져 볼 계획을 잡았다. 나머지 아이템들은 필요할 때 쓰면 되는 기본 소비템이었다.

실비아는 미니 백에 든 ‘백지 수표’와 ‘전서구 옷’은 혹시 불면 날아갈세라 조심스럽게 확인만 하고 다시 백 안에 집어넣었다. ‘백지 수표’에 얼마까지 적어 넣을지, 적당히 양심껏 해야겠다 생각하며 실비아의 입꼬리가 찢어지도록 올라갔다.

‘아, <던전 클리어 보물 상자>를 까 봐야겠네.’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상자를 까는 건 제일 흥분되는 일. 실비아는 두근거리는 맘으로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상자 밖으로 새어 나오더니 빵빠레 소리와 함께 아이템 목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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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클리어 보물 상자

레벨 업 포션

롤러 운동화

투명 비닐 망토

깔깔 유머집

감쪽같이 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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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업 포션 말곤 한눈에 봐선 뭔지 알 수 없는 아이템들이 가득하네.’

우선은 레벨 업 포션의 상세 설명을 보니 마시면 레벨이 1 오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꿀꺽-꿀꺽. 쭈욱 들이켜자 짜란- 소리가 나더니 실비아의 레벨이 45가 됐다는 설명이 떠올랐다.

‘오, 이 보물섬에서 5레벨이나 올렸어. 완전 좋다.’

그다음은 <롤러 운동화>. 롤러가 달린 운동화로 신고 다닐 시 <손은 눈보다 빠르다>를 사용하지 않고도 빠르게 경보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혹시나 착용하면 민첩이 올라갈까 싶었지만 이미 상당수 민첩을 올릴 상태라서 그런지 아쉽게도 별다른 능력치 상승 효과는 없었다.

그다음은 <투명 비닐 망토>. 투명 망토면 망토지 투명 비닐 망토라니? 상세 설명을 본 실비아는 아이템명이 왜 그런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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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비닐 망토

- 두세 번 정도 착용 가능한 투명 망토이다. 해지면 버려야 한다. 소중히 쓸수록 더 쓸 수 있지만 조금씩 구멍이 나서 숨어 있는 당신을 누군가가 알아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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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줄 거면 그냥 투명 망토를 주든가. 비닐이 왜 붙었나 했더니 웃기지도 않네. 더럽게 쪼잔해!’

투덜거리던 실비아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투명 인간이 된다면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까? 옛날에 봤던 변태 만화처럼 남탕에도 몰래 들어갈 수 있으려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실비아는 순간 저도 모르게 남탕에 숨어들어 갔다가 주점 털보와 문신 뚱땡이를 마주쳐 실명해 버리는 상상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안 돼!”

“……?”

부채질을 해 주고 있던 부하가 나뭇등걸에 뒤통수를 부딪쳐 신음하는 실비아를 잠시 이상하게 바라봤다. 아린 뒤통수를 문지르던 실비아는 부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어우, 끔찍해. 그런 곳은 함부로 가지 말아야지.’

순간 실수로 상상해 버렸지만 그런 끔찍한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남탕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실비아는 다음 아이템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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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 유머집

-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명언을 아시는지? 이 책을 닳도록 읽으면 주변 사람들의 배꼽이 남아날 일이 없을 겁니다. 껄껄! 완독하고 나면 <아이고 내 배꼽 아재 개그> 스킬을 획득할 수 있답니다. 까알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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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읽고 싶은데.’

실비아는 똥 씹은 표정으로 아이템 설명을 바라보았다. ‘아재 개그’ 스킬을 획득한다니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스킬을 터치해 상세 설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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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배꼽 아재 개그

- 눈치 없이 친한 척하는 상대가 앞에 있을 때, 혹은 한창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을 때 사용하는 스킬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재 개그를 얼른 내뱉은 뒤 늦기 전에 선수 쳐서 먼저 배꼽을 잡으며 웃는 게 키포인트. 자주 쓰다 보면 가끔 화술이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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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 스킬인데. 별로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우선 익혀 두긴 해야겠어.’

어쩐지 드래곤남을 만난 후로 공부할 거리가 늘어나는 게 기분 탓만은 아닌 거 같았다. 읽어야 할 책이 벌써 두 권. 실비아는 머리를 감싸 쥐며 신음한 뒤 마지막 아이템의 상세 설명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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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연고

- 떨어진 팔다리를 1회에 한해 감쪽같이 붙여 드립니다. 단, 머리는 붙이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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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메시지를 보던 실비아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명이 무척 끔찍했다. 갑자기 장르가 고어로 가는 건가? 이딴 아이템이 있단 건 언젠가 제 팔다리가 떨어질 끔찍한 일이 벌어진단 거였다.

‘엄청 불길한데. 거의 살인 예고나 다름없네.’

오소소 소름이 돋는 팔다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아이템 확인을 마쳤다. 그리고 인벤토리 옆 칸을 본 실비아는 붉은색 씨앗이 9개 더 추가된 걸 발견했다. 9개나 추가되다니, 공터에서 한 섹스가 좀 색다르긴 했다. 그녀는 기록 창을 열어 지나간 메시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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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와 최초의 야외플 섹스! 심지어 던전에서 언제 몬스터나 부하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스릴을 즐겼다. 하마터면 합체 전투를 할 뻔했잖아? 색다른 야외플로 x3의 씨앗을 얻습니다.]

[루카의 가족들과 함께한 추억이 담긴 벤치에서 하는 배덕한 플레이, 심지어 루카의 형을 언급하면서 섹스 하다니, 형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크흠! 어쨌든 x3의 씨앗을 얻습니다.]

[트리플 악셀! 언제 몬스터가 올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동시에 추억이 담긴 벤치를 한 번 더 더럽혔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x3의 씨앗을 연거푸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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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짭짤하네. 역시 침대보다는 야외에서 하는 게 배수가 좋네. 하기 전엔 좀 꺼려지긴 했지만 막상 하니까 좋았어. 기분이 색다르더라니까!’

막걸리를 들이마시듯 ‘크으!’를 연거푸 외치며 실비아가 손뼉을 짝짝 쳤다. 씨앗을 얻는 즐거움에 점점 사회성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같은 섹스를 하게 되는 거 같지만, 뭔 상관인가. 씨앗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지는데!

낄낄대며 배를 잡고 웃은 실비아는 떨떠름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부하를 힐끗 바라본 뒤 표정 관리를 했다. 죄책감에 시달릴 땐 언제고 낄낄대며 사이코패스 같이 웃다니! 실비아는 남주들을 공략하는 게 마치 다이어트와 같다고 느꼈다. 먹을 땐 누구보다 신나서 이것저것 시켜 먹지만 배가 부르고 나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주 공략은 먹고 나면 씨앗을 얻고 음식은 먹고 나면 살을 얻고…. 그래, 뭐 행복했으면 됐다. 잡생각을 하던 실비아는 고개를 젓고는 확인을 마저 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상태 창을 보니 분배 포인트가 85나 쌓여 있었다.

‘분배 포인트는 좀 더 모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해야지. 아무래도 지력에 몰빵을 하게 될 것 같지만 말이야.’

지금 당장 절실한 건 드래곤남을 공략하기 위한 지력이었다. 그러나 괜히 한꺼번에 포인트를 썼다가 갑자기 다른 능력이 필요해지면 곤란할 수 있었다. 실비아는 우선 포인트를 아껴 두기로 결정했다. 빡빡-빡. 힘차게 악력기를 쥐었다 폈다 하며 문제집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창고 정리가 다 끝난 듯 육중한 석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실비아! 잘 놀고 있었어?”

“루카 님!”

부하들을 대동하고 계단을 내려온 루카는 어느새 야자수 잎을 떼고 멀쩡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는 실비아를 창고 옆 별장으로 데려갔다. 던전 공략을 할 때는 무성한 숲에 가려져 있어 발견하지 못한 곳이었다. 사용감 있는 고풍스러운 가구들을 보니 섬에 올 때마다 루카와 가족들이 머무르는 곳 같았다.

거실 벽에는 어린 루카와 가족들이 나란히 서 있는 가족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를 들여다보니 루카의 엄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의 매혹적인 미인이었는데, 루카의 집에 가면 만나 뵐 수 있는 걸까?

그녀는 눈을 굴려 루카의 아빠와 어린 루카, 루카의 형을 찬찬히 훑었다. 세 명 다 머리 색, 눈 색이 똑같고 이목구비도 무섭도록 비슷했기에 실비아는 거푸집에서 빼 온 거 같다고 생각하며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초상화를 보고 나니 더 확실해졌네. 그때 본 귀신은 루카 형이 맞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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