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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30화 (130/372)

130화

망치를 들고 망설이던 실비아는 스킬명을 속으로 외쳤다. 전투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루카 앞에서 <부메랑 망치>라거나 <뚝배기 깨기>, <1+1> 같은 기술명을 말하는 건 너무 민망했기 때문이다.

재빠르게 앞으로 날아간 망치는 야자수 괴물의 머리에 달려 있던 코코넛을 깨부수고 돌아왔다. 그러자 비틀거리던 야자수 괴물이 코코넛 물을 흘리며 마치 낮잠을 자는 것처럼 누웠다.

실비아는 계속해서 몬스터를 공략했다. 루카도 말없이 야자수 괴물들을 손 위에 떠오른 불꽃으로 공격했다.

화르륵-. 그가 던진 불꽃에 야자수 괴물이 활활 탔다. 뒤늦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게임 심의 준수> 아이템의 효과로 타다 남은 야자수가 엎드려 자는 모션을 취했지만 이미 생기 있던 식물이 활활 타서 꼬부라드는 모습을 본 후였다.

‘그래. 식물이라서 죄책감은 좀 덜하다…. 덜한 거 맞지?’

그녀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잡생각을 떨쳤다.

몬스터들의 이동 속도가 느렸기에 실비아는 한 마리를 마저 해치우고 난 뒤 루카의 전투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제비짓 하는 모습이나 불법 일을 하는 루카만 주로 봐 왔기에 그가 제대로 전투를 할지 걱정됐다.

야자수들이 여러 개 몰려 있는 걸 본 루카가 정신을 집중해서 주문을 외웠다. 루카의 손 위에 있던 불꽃들이 분열을 하더니 여러 개의 조그만 구체가 되었다. 원을 그리며 루카를 둘러싸던 구체들은 그가 손짓하자 차례차례 야자수 괴물들을 덮쳤다

끼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코코넛 라떼>들이 활활 불탔다. 실비아는 루카가 몬스터들을 보며 입꼬리를 비열하게 올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루카는 그녀의 우려를 종식 시켰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였다.

‘평소에 입만 털고 다녀서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싸움을 잘하네. 그래, 괜히 암흑가의 후계자는 아니지. 암흑가보단 피라미드 사업의 후계자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루카는 환경을 걱정한 나머지 친환경 여행용 샴푸 세트를 들고 다니지만 몬스터에겐 얄짤없었다. 그 잔인한 모습에 실비아의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갔다. 가치관이 딱 저랑 잘 맞았다. 루카는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해치우곤 실비아를 돌아봤다. 오랜만에 그의 입가에 떠오른 비열한 미소가 이 순간만은 사랑스러웠다.

“실비아, 내가 하는 거 봤어? 나 잘하지.”

“와!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굉장했어요. 너무 멋있어요. 다시 봤어요. 루카 님.”

그녀가 망치를 잡은 채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야자수 괴물의 속도가 느린지라 둘은 수다를 떨면서 던전을 공략했다. 실비아는 마치 컴퓨터 앞에 앉아 채팅을 치면서 게임을 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 야자수가 이것저것 잘 떨구네요.”

놀랍게도 <안개로 싸인 보물섬>은 이름값을 제대로 해서 아이템 드랍률이 현저하게 높았다. 구슬 외에도 여러 가지 잡템들이 야자수 괴물을 해치울 때마다 후드득 떨어졌다.

한 마리 더 해치우고 나니 그녀의 앞에 음료가 담긴 잔이 나타났다. 심지어 빨대까지 꽂혀 있었다. 흙이 묻은 걸 털고 주워 보니 시원한 코코넛라떼치노였다. 그냥 차가운 라떼라도 행복했을 텐데, 얼음을 간 음료가 나오다니! 기쁜 나머지 컵을 들고 어깨춤을 추던 그녀가 멈칫했다.

‘잠깐, 이건 당장 마시지 않으면 녹아 버리겠는데?’

그녀는 드랍 된 아이템을 급하게 호로록 들이켰다. 그리고는 전투에 여념이 없는 루카에게도 한입 권했다. 녹기 전에 아까운 아이템을 먹어야 했다.

“와, 진짜 맛있다. 빨리 먹어 봐요.”

“실비아, 고마워.”

루카는 던전에서 떨어지는 아이템에 익숙한 듯 태연한 얼굴로 코코넛라떼치노를 받아마셨다. 후덥지근한 열대 우림의 기후에 좀만 움직여도 금방 땀이 송공송골 올라왔는데 시원한 라떼치노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아쉽게도 벤티는커녕 레귤러 사이즈라서 한 잔을 나눠 마시니 잔이 금방 바닥을 보였다. 더 없나 기웃거리고 있으려니 루카가 해치웠던 몬스터들의 주위에도 컵이 떨어져 있었다. 근데 머그컵이었다.

“오, 또 있다. 녹기 전에 얼른 먹어 볼…. 에이. 이게 뭐야.”

머그컵을 들여다본 실비아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어렸다. 황당하게도 루카가 해치운 괴물들은 불로 공격해서 그런지 <미지근한 코코넛 라떼>나 <따뜻한 코코넛 라떼>를 뱉어 냈다. 보기만 해도 더워지는 느낌이라 둘은 그 아이템들을 줍지 않고 내버려 뒀다.

‘<불망치>로 때리면 저런 식으로 따뜻한 아이템이 나오겠구나.’

쓸모없는 따뜻한 음료 말고도 다양한 아이템이 떨어졌다. <바삭한 코코넛 칩> 몇 봉지와 <코코넛 쿠키>가 비닐에 싸여 땅에 떨궈졌다. 둘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떨어진 과자들을 주섬주섬 주워 루카의 시계 속 공간에 집어넣었다.

상당수의 몬스터를 루카가 해치웠지만, 실비아는 파티원으로 인식된 덕분에 고렙에게 쩔을 받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루카와 함께 던전을 공략한 덕에 순식간에 42 레벨이 되었다. 게다가 이 던전은 필드가 꽤 넓어서 여러 던전을 돌아다녀야 했던 <잊혀진 신전>과 달리 한군데만으로도 많은 수확이 있었다. 여러모로 개이득이었다.

‘능력치가 올라가는 아이템은 없나? 보스 몬스터가 아마도 능력치를 올리는 아이템을 뱉을 텐데!’

이제 슬슬 보스 몬스터가 나올 때가 됐는데 어디에 있는 건지. 넓은 필드를 속속들이 돌아다녔는데도 보스몹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실비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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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살기가 느껴집니다.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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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심의 준수> 아이템 덕에 낮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던 몬스터들이 스르륵 일어나더니 한데 모여서 덩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 덩어리들은 몬스터들이 모일수록 점점 부피가 커지더니 곧 집채만 한 야자수 나무가 되었다.

완성된 보스 몬스터는 해치웠던 몬스터들의 눈이 여러 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옆구리에도 눈이 달려 있었는데, 데루룩 굴러가며 실비아네를 살피더니 꿈뻑이는 모습이 기괴했다.

한 번 해치웠던 몬스터들이 한데 모여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만으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타다 만 나무의 잔해와 눈알이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달린 무척 꼴 보기 싫은 비주얼이었다. 썩은 덩치가 입을 쩍 벌리자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풀풀 풍겼다.

‘으,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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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기한이 1년 지난 우유로 만든 코코넛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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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 풍기는 몬스터다운 이름이었다. 썩은 냄새의 정체는 유통 기한이 1년 지난 우유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치가 올라가는 아이템을 기대하며 보스 몬스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실비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욱…. 저 썩은 덩어리한테서 나온 아이템을 내가 먹어야 하는 건가.’

“와, 냄새. 미쳤다 정말.”

“그러게요. 와, 이 더운 날씨에 저 썩은 내를 맡자니 정신이 혼미하네요.”

실비아와 루카는 코를 감싸 쥔 채 신음했다. 날씨도 후덥지근해서 온몸에 끈적하게 땀이 흐르는 상황에 썩은 내까지 맡자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순 없는 법. 그녀는 코로 숨 쉬지 않으려 노력하며 망치를 고쳐 잡았다.

‘어, 잠깐. 이거 안 그래도 유통 기한이 1년이나 지난 건데, 따끈해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아까 잔챙이들을 루카가 공격했을 때 따뜻한 코코넛 라떼가 나오지 않았던가. 그럼 이 끔찍한 덩어리를 루카가 불로 공격하면 썩은 내 나는 따끈한 코코넛 라떼가 나올지도 몰랐다. 덩치도 크니 유튜버들이 먹방하는 것처럼 2리터 보틀에 담겨 나오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구독자 모을 것도 아니고 팔자에 없는 썩은 대왕 라떼 먹방을 해야 한다고 상상하니 오만상이 써졌다.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인데.’

드랍 되는 아이템이 공격 속성에 따라 달라진다니. 그동안 노엘과 세비스랑 함께 던전 공략을 할 땐 걱정한 적 없는 부분이었다. 잠시 고민한 실비아는 선공하려는 루카를 막아섰다.

“혼자서 할게요.”

“왜? 혼자서 해치울 수 있겠어?”

“아니, 그…. 저 몬스터한테서 따뜻한 코코넛 라떼가 나온다고 상상해 봐요. 그걸 먹을 수 있겠어요?”

“어차피 썩어서 못 먹을 거 같은데.”

‘난 그걸 꼭 먹어야 한다고!’

루카의 말에 그녀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잠시 침묵한 그녀는 아무 말이나 내뱉기로 했다.

“…저는 차가운 건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라서요. 막상 나오면 썩은 거든 뭐든 차갑기만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차가운 거에 환장하는 제 취향을 이해해 주세요. 공격하다가 힘들 것 같으면 도움을 요청할게요.”

보스 몬스터한테선 능력치가 있는 아이템이 나온다는 건 비밀이었다. 실비아는 우선 급한 대로 자신이 썩었든 말든 차가운 음료라면 환장하는 사람임을 어필했다. 루카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곧 뒤로 물러서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의 말대로 하겠단 제스쳐였다.

루카를 뒤에 둔 채 실비아는 천천히 괴물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다행히 괴물은 덩치만 크지 속도가 엄청 빠르거나 선제공격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냄새가 엄청나서 가까이만 다가가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우선 여러 몬스터가 합쳐진 괴물이라 실비아의 눈높이보다 훨씬 덩치가 컸기에 그녀는 <부메랑 망치> 스킬을 써 괴물을 물리치기로 했다.

퍽- 퍽!

스킬을 쓸 때마다 망치가 부메랑처럼 날아가 코코넛 열매를 때리고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망치가 괴물의 머리까지 갔을 때 <1+1> 스킬을 써 보니 스킬 중첩 사용이 가능했다. 철퍼벅-! 날아간 망치가 한꺼번에 2연타를 날리자마자 두 개의 썩은 코코넛 열매가 후드득 떨어졌다.

따닥- 도 아니고 철퍼벅- 하고 덩어리가 떨어지는 효과음을 내는 걸 보니 몬스터는 아주 뿌리까지 제대로 썩은 것 같았다. 썩은 나무 액이 얼굴 여기저기에 튀었다. 오만상을 쓰던 실비아는 애써 공략 후 나올 아이템을 상상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공격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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