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그가 손목시계의 옆 버튼을 누르자 환한 빛이 둥그런 시계에서 뿜어져 나왔다. 루카가 그 공간에 옷을 집어넣는 모습을 보며 실비아가 쩝- 하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뭐야, 내 인벤토리 완전 썩어 빠졌잖아. 저거는 옷도 넣을 수 있는 거 같은데? 빙의자 혜택이라며 왜 이따구야. 완전 구식이네….’
인벤토리가 엄청 대단한 건 줄 알았더니 루카가 돈을 처바른 시계만도 못했다. 잠시 속으로 투덜거리던 실비아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구명 배에서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눈부신 나신이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피부는 새하얗지만 생기 있는 상앗빛을 띠고 있었고, 근육이 제대로 발달 된 완벽한 상체는 조각상 저리가라였다.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대흉근은 루카가 숨을 쉴 때마다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너른 어깨는 빨래를 걸면 100벌은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석진 곳까지 골고루 근육이 꽉 들어찼는데도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골격 자체가 날렵하게 뻗어 있어 시원시원한 게, 보고 있자니 섹시한 흑표범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가슴을 감상하다 시선을 내리면 계획도시처럼 분명하게 나뉜 복근이 자리하고 있었다.
‘복근이 아름답긴 하지만 역시 가슴이 최고로군.’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다시 위로 올렸다. 노엘이 복근파라면 루카는 가슴 근육파랄까. 제대로 모으면 자신의 것보다 큰 건 아닐까 싶은 가슴에서 초록색 눈이 떠날 줄을 몰랐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두툼한 가슴 근육이 정말 장난 아니구나. 브라는 내가 아니라 루카가 차야 하는 것 아닐까.’
그녀가 홀린 듯이 벗은 몸, 정확히는 가슴을 뚫어져라 구경하자 루카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대뜸 윙크를 해 왔다. 자신이 얼마나 잘난지 아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쌍코피가 날 뻔했어.’
급격하게 코로 피가 몰리는 느낌에 그녀가 손을 들어 막았다. 다행히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피라미드 행사에 참여하던 날 피팅 룸 안에서 그의 벗은 몸을 보긴 했지만 훤한 바깥에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녀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가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루카가 입꼬리를 매혹적으로 올렸다. 저도 모르게 황홀한 표정으로 두툼한 가슴을 바라보던 그녀의 손이 저절로 올라갔다. 만지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실비아는 임기응변을 급하게 생각해 내며 그의 가슴을 대뜸 더듬거렸다. 단단하고 두툼한 촉감이 느껴지자 그녀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왜, 왜 그래?”
루카는 자랑스럽게 보여줘 놓고는 막상 그녀가 제 가슴을 만지자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실비아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벌레가….”
“어?”
“벌레가 있어서요. 여기도 있고, 여기도. 숲속이라 그런지 날벌레가 많네요.”
벌레라니. 루카가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나 벌레는커녕 먼지 한 톨도 가슴에 얹어져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왜 저러지?
루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든 말든 실비아의 끈적한 손길은 계속 이어졌다. 윗가슴을 부드럽게 훑던 나긋한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볼록 나와 있는 유두를 스치자 몸속부터 간지러운 감각이 퍼져 나갔다. 야릇한 느낌에 루카가 눈을 나른하게 찌푸렸다.
“아…. 벌레 없는데.”
“…정말?”
그녀는 검지로 사인을 하듯 가슴 위를 간지럽히며 루카에게 되물었다.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장난치다가 긴장으로 더 단단해진 가슴 위를 손바닥을 펴 몇 번 부드럽게 훑었다.
끈적하고 야릇한 손짓에 루카가 몸을 떨더니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곤 뜨거운 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있는 것 같아.”
“그치. 여기 있잖아요.”
실비아는 이제 두 손을 들어 벌레를 털어 내는 척 훌륭한 가슴의 촉감을 즐겼다. 루카도 그녀의 나긋한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있었으니 서로가 윈윈인 셈이었다. 가슴을 훑던 말랑한 손이 살짝 튀어나온 살점을 스칠 때마다 루카의 입술에서 뜨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래가 다시 힘차게 일어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 루카가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아 제 품 안에 가뒀다. 그가 몸을 숙여 실비아를 끌어안자 격렬하게 오르내리는 근육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실비아가 숨을 내쉴 때마다 따뜻한 입김이 가슴으로 그대로 느껴지자 맞닿아 있는 그의 것이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아, 실비아….”
루카는 그녀의 향긋한 정수리에 코를 박고 비비적거렸다. 그리곤 은근슬쩍 가녀린 허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못 이긴 척 더 깊숙이 안기자 발기한 그의 것이 실비아의 배에 비벼졌다. 흡사 몽둥이 같은 크기에 실비아의 온몸이 뜨거워졌다.
‘저번에도 봤지만 역시 진짜 크다. 어떻게 신체 부위가 하나 같이 모자란 구석이 없지. 그냥 여기서 해 버려?’
망설이던 그녀를 루카가 부드럽게 밀더니 야자수에 기대게 했다. 몸을 숙인 루카가 그녀의 조그만 턱을 검지로 받치곤 고개를 돌려 입술을 겹쳐왔다. 루카는 이제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안으로 제 혀를 집어넣었다. 한 번 키스할 때 오랫동안 격렬하게 해서 그런지 학습을 제대로 한 것 같았다.
두툼한 혀가 조그만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촉촉한 점막을 거침없이 헤집었다. 안을 거칠게 휘젓던 혀는 고르게 난 치열을 더듬거리다가 입천장을 두드리고 급하게 다른 혀를 찾아 옭아맸다. 두 혀가 얽히고 난 후론 둘은 정신없이 타액을 주고받았다.
잡아먹을 듯이 그녀의 입을 삼킨 루카가 쪽쪽- 소리가 적나라하게 날 정도로 조그만 혀를 야하게 빨아당겼다. 달콤하면서 야릇하게 느껴지는 키스를 나누는 사이에 그녀의 닫혀 있던 허벅지 사이로 루카의 무릎이 거침없이 파고 들어왔다.
움찔하고 몸을 떨자 루카가 조그만 몸을 끌어안고 제 쪽으로 깊숙이 당겼다. 그러자 그녀는 루카의 허벅지 위에 앉은 셈이 됐는데, 안쪽 깊숙이 들어가자 꺼덕거리는 루카의 성기가 그녀의 아래에 닿았다. 루카는 조그만 입술을 정신없이 빨면서 본능적으로 제 것을 실비아의 아래에 문질렀다.
가르쳐 준 적 없는데 이런 짓도 하다니 기특하다고 잠시 생각하는데, 어느새 내려온 커다란 손이 원피스 안으로 파고들어서 양쪽 엉덩이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와 동시에 아래에 비벼지는 단단한 천의 느낌에 실비아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음, 아….”
“하아…. 너무 좋아.”
‘어? 여기서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실비아는 깜짝 놀라 파드득 몸을 떨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눈새였던 루카가 자연스럽게 실비아를 리드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정글 한복판에서 첫 섹스를 할 판이었다.
‘기분은 좋은데…. 그냥 해 버려?’
실비아는 잠시 루카를 더 자극해 정글 한복판에서 섹스를 해 볼까 생각했지만 이젠 정말로 벌레들이 제 팔을 물고 있었기에 참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정글에서 섹스를 하는 건 정말 아니었다. 축제가 열렸던 바닷가 숲속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섹스한답시고 헐벗고 가만히 있었다간 벌레들의 잔칫날이 열릴지도 몰랐다.
실비아는 팔에 앉아 피를 쭉쭉 빨고 있는 모기를 쫓아내곤 루카를 밀어냈다.
“잠깐! 이러다가 해가 지겠어요. 우선 섬을 빨리 돌아보죠.”
“…응? 하아…. 섬? 그래, 섬…. 후우우….”
그녀의 담백한 말에 루카가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며 저 밑에서 끌어올린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비아는 미안한 마음에 눈을 피했다. 어쩐지 아까부터 본의 아니게 고문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몸을 돌려 옷을 정리하는데 한숨을 쉬며 뒤따르던 루카가 아-! 하는 소리를 지르며 제 손을 감싸 쥐었다. 그 소리에 실비아가 깜짝 놀라서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요? 손이 아파요?”
“응…. 상처가 벌어진 것 같아.”
루카는 가쁜 숨을 내쉬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멀쩡해 보이길래 잠시 잊고 있었는데 루카는 정글에 사는 원숭이에게 물린 환자였다. 급하게 붕대를 풀어 살펴보니 상처가 부풀어 올라 있었다. 손바닥을 살짝 쓸어보니 열감도 느껴졌다.
‘체력 포션도 별 효과가 없었지. 이런 곳에서 탈이 나면 병원도 못 가는데…!’
혹시나 루카가 섬에서 잘못되면 큰일이었다. 실비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 어떡해. 이러다 덧나는 거 아니에요? 섬은 대충 파악했으니 이제 동굴로 돌아가요.”
“괜찮겠어?”
“몸이 멀쩡해야 다른 일도 하죠. 돌아가요.”
그녀의 말에 루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가 퀭해진 것 같기도 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손만 다쳤지만 표정을 보니 곧 몸살이 날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팔짱을 껴 루카를 부축하곤 동굴로 돌아왔다.
“여기 가만히 누워 있어요.”
“응….”
실비아는 루카의 커다란 몸을 조심스럽게 매트리스에 눕혔다. 그는 얌전히 눕더니 두 손을 모아 가슴 위에 얹었다.
‘어제는 루카가 나를 간호했으니 오늘은 내가 정성껏 간호해 줘야겠어.’
보급품 상자를 뒤적여 생수를 찾아낸 실비아는 뚜껑을 딴 뒤 루카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그는 힘없이 눈을 깜빡거리더니 겨우 물을 받아마셨다.
‘원숭이한테 정체 모를 균이라도 있었나?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몸이 안 좋아지다니.’
체력 포션도 안 통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구급상자에서 소독약과 연고를 찾은 실비아는 그의 손을 다시 열심히 치료했다. 손에 감긴 붕대를 갈아 주고 난 뒤 생수로 적신 천을 루카의 이마에 올려 주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났는지 바깥이 꽤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은신지의 실내 전등을 켠 실비아는 한숨을 쉬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오늘 이 섬을 다 둘러봤어야 했는데…. 내일은 루카가 멀쩡해지려나. 휴.’
간호를 하다 지친 그녀는 너른 바위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한편 루카는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게 된 건지 곰곰이 생각했다. 인기척이 없기에 눈을 조심스레 떠 옆을 쳐다보자 실비아가 바위에 팔을 베개 삼아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와…. 나 또라인가?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꾀병을 부리다니.’
아까 정글에서 하다 만 스킨십에 불만이 치밀은 그는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아픈 척을 했고 동굴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원래는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섬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비아와 몸이 닿자 딴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더니 결국 머리가 돌아 버렸다. 하반신의 지배를 받게 된 뇌가 개수작을 부린 거였다.
원래의 음흉한 계획은 동굴로 돌아오자마자 뽀뽀해 주면 나을 거 같다고 하면서 키스를 실컷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간호를 하는 실비아의 얼굴엔 진지함이 가득해서 뽀뽀해 달라는 가벼운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괜히 말했다가 이런 장난을 왜 치냐고 화를 낼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꾀병 부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고, 받고 싶은 키스는 못 받고 간호만 실컷 받아 버린 것이다.
‘하, 참.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이게 무슨 시간 낭비야.’
결국 계략남 합격 목걸이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장난남 타이틀 정도면 가질 수 있겠다. 장난남 루카에게 음흉한 계략은 한참 무리였다. 평소에는 잘만 굴러가던 루카의 머리가 실비아 앞에선 기름칠 안 한 기계처럼 삐걱였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원래 생각한 대로 섬이나 돌아볼 걸 그랬네.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해선!’
루카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루카 님? 깼구나. 몸은 괜찮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