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13화 (113/372)

113화

루카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황급히 뒤돌았다. 실비아는 잠시 미끄러질 뻔했을 뿐 아무런 일도 없다고 대답한 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태 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럴 수가! <십중팔구 만독불침>이 <만독불침>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뛰는 가슴을 달래며 기록 창을 불러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만독불침>이 완성됐을 줄이야. 상태 이상에 시달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떨리는 손으로 지나간 메시지를 터치한 실비아는 순간 너무 놀라 다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잠시 등을 돌리고 있는 루카를 힐끗 바라본 그녀는 메시지를 다시 천천히 읽었다.

———————————————

[축하합니다! 루카의 호감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십중팔구 만독불침> 스킬이 <만독불침>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

‘세상에나! 이걸 모르고 지나칠 뻔하다니. 한참 뒤에 확인했으면 어쩔 뻔했어.’

혹시나 함정이 있을까 싶어 실비아는 메시지를 여러 번 확인했다. 뒤로 봐도 앞으로 봐도 호감도 100이었다.

‘이번엔 진짜로구나! 정말 공략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녀는 소리 없이 만세를 했다. 이젠 루카의 독도 제거됐으니 더 이상 공략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실비아는 아까보다 훨씬 정성스럽게 빡빡 몸을 문질러 닦았다. 손에 쥔 팬티를 바라본 그녀는 순간적으로 확 버려 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저절로 입에서 허밍이 흘러 나왔다.

“룰루루.”

‘던전 공략 내내 노팬티는 너무 노골적이니까. 후후. 뭐 좀 향기 나는 건 없나. 이걸론 부족한걸.’

언제 루카랑 거사를 치르게 될지 몰랐다. 그건 지금 당장일 수도 있고 오늘 밤일 수도 있었다. 향기를 풀풀 풍겨도 모자랄 판에 바디 워시가 없이 물로만 몸을 닦아야 한다니 슬펐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쉬운 맘에 그녀가 루카를 불렀다.

“루카 님! 혹시 바디 워시 같은 건 없겠죠? 비누라거나….”

“응? 아, 준단 걸 까먹었네. 자, 여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 본 건데 그가 무언가를 던졌다.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서 급하게 손을 내밀어 날아온 비닐 백을 낚아채 보니 여행용 샴푸 세트였다. 안에는 치약, 칫솔, 샴푸 등의 세면도구가 다 들어있었다. 그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말을 이어 갔다.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챙겨오길 잘 했네. 바디 오일도 있으니까 필요하면 말해.”

“이게 무슨? 가방 같은 거 안 들고 오지 않았어요?”

“응? 아, 실비아 너도 비슷한 거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내 시계엔 무한 저장되는 공간이 있거든.”

그녀의 당황한 목소리에 루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설명을 해 주었다. 세비스가 들고 있는 무한 저장되는 피크닉 가방처럼 루카도 무한 저장되는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저번 행사장에서 봤을 때 비싼 시계일 거라곤 예상했지만 정말 예사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격은 억 소리 날만큼 비싸지만, 마법 공간 제작 장인에게 원하는 물건에다가 설치해 달라고 의뢰하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제작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자신은 시계로 맡겨 6개월 만에 받았다고 했다.

실비아는 새삼 별의별 게 다 있는 게임 세계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네. 그건 그렇고, 그럼 내 인벤토리가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단 거네. 어쩐지 망치가 나왔을 때 별로 안 놀란다 싶더니.’

이런 세계관에 빙의 된 게 다행이었다. 인벤토리나 능력들이 그녀만 얻을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겐 생소한 거라면, 캐릭터들이 그녀의 능력을 알아챈 순간 이상하게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녀는 잡생각을 끝내고 물가로 나와 조심스럽게 몸을 씻었다. 환경 오염 걱정에 물속에서 씻기가 좀 그래서였다. 그녀의 생각을 안 건지 루카가 뒤늦게 말을 얹었다.

“그건 물속에서 씻어도 금방 분해되는 친환경 제품들이야. 혹시 몰라서 모두 친환경으로 준비했지.”

“아, 예….”

동식물을 생각하다 못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루카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의외의 면을 발견해 버린 실비아가 순간적으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티 내진 않고 열심히 몸을 뽀독뽀독 씻었다.

몸을 다 씻고 나온 실비아는 옷 옆에 놓인 바디 타월을 보고 놀랐다.

“수건도 챙겨 왔어요? 준비성이 철저하시네.”

“어? 어…. 그건 챙겨 온 건 아니고…. 없, 없는 줄 알았는데 잘 뒤져보니 상자에 있더라고. 크흠….”

루카는 잠시 놀라서 더듬거렸다. 저런 큰 수건이 있는 줄 진작 알았으면 밤새도록 실비아를 맨몸으로 껴안진 않았을 텐데, 괜히 스스로 찔려서 나온 반응이었다.

실비아는 허둥대는 루카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몸을 닦고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옷을 입던 그녀는 바디 오일도 있다는 루카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그건 아마도 19금 게임의 인과 법칙에 의해 루카가 무의식적으로 챙긴 물품이 아닐까?

‘바디 오일이라. 그래, 내 귀에 들린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실비아는 입꼬리를 비열하게 올리며 뇌를 팽팽 굴렸다. 그녀는 원피스를 다시 벗어던지고 바디 타월로 몸을 아슬아슬하게 감쌌다.

몸을 다 덮을 만큼 쓸데없이 큰 바디 타월이었으나 가슴골이 살짝 보이도록 일부러 아래로 끌어당긴 뒤, 목을 가다듬고 루카를 불렀다.

“루카 님.”

“응?”

“저 다 씻었어요. 이제 뒤돌아봐도 돼요.”

실비아의 말에 몸을 돌린 루카는 그녀가 옷이 아닌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왜 옷을 안 입고 수건을 걸치고 있어?”

“음, 바디 오일을 바르고 싶어서요.”

“아, 그래? 자, 여기.”

놀란 반응도 잠시, 루카가 시계를 누르자 나온 공간에서 투명한 바디 오일 병을 꺼내서 던졌다.

‘휴, 그래. 내가 발라 줄게- 같은 말은 애초부터 기대도 안 했어.’

이제는 익숙해진 루카의 눈치 없음에 쓸데없이 화내지 않기로 다짐한 실비아는 오일 병을 찰랑찰랑 흔들면서 속눈썹을 내리 깐 채 눈을 깜빡거렸다.

“오일 좀 발라 주실래요?”

“응? 직접 바를 수 있잖아.”

“후후….”

‘시발,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떡을 칠 수 있다.’

실비아는 욕이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고 살랑살랑 몸을 흔들면서 루카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살포시 몸을 기대며 묘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 각도에서라면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보일 테지.’

“루카 님이 직접 발라 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의 예상대로 루카는 시선을 내렸다가 숨을 헉- 하고 들이키며 얼굴을 붉혔다. 아슬아슬하게 타월이 걸려있는 가슴을 힐끗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루카는 살짝 잠긴 목소리로 더듬대며 입을 열었다.

“아…. 어, 어딜? 어디를… 발라 주면 되는데?”

“후…. 등에 팔이 안 닿아서, 우선 등?”

“팔이… 안 닿아?”

루카의 눈에 순수한 의문이 서렸다. 이 와중에도 찬물 끼얹는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원래 이 정도로 심각하게 눈치가 없진 않았던 거 같은데. 호감도가 오르면서 눈치도 같이 증발한 건지 무척 짜증나는 상황이었지만 실비아는 올라오려는 화를 억누르며 열심히 연기를 했다.

“끙, 아이 참, 팔이 너무 짧네.”

“?”

그녀는 열심히 낑낑대는 척하며 팔을 뒤로 돌리다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그리고는 눈썹을 가련하게 내리며 눈을 깜빡였다.

“도저히 팔이 안 닿아요. 거기다가 제 손은 너무 작다구요. 루카 님이 그 커다란 손으로 오일을 발라 주시면 금방 다 바를 거 같은데….”

그녀가 두 손을 고이 모으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자, 루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는 환호성을 지를 뻔한 걸 가까스로 참고 뒤로 돌아 섰다. 가슴 앞으로 매어놓은 매듭을 푼 그녀는 햇살을 받아 따끈한 바위에 조심스럽게 엎드렸다. 그리고는 팔베개를 만들어 벴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얼른 엎드리는 실비아의 모습을 루카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봤다. 뭔가 당한 거 같은 기분이지만 뭘 당한건지 몰라서였다.

“루카 님, 뭐해요. 빨리 발라 주세요. 햇볕도 따끈하니 지금 바르면 딱 좋겠어요.”

“그래, 빨리 발라야겠다. 얼른 섬을 돌아봐야 하는데….”

또 시작된 루카의 눈치 없는 멘트를 실비아는 무시하기로 했다. 입을 다물고 꾹 참고 있자, 망설이던 루카가 그녀의 옆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리고는 등을 덮고 있는 타월을 내려 허리가 절반 정도 보이게 걸쳐놨다.

그러자 답답한 마음이 든 실비아는 손을 뒤로 뻗어 타월을 엉덩이 근처까지 아슬아슬하게 내렸다. 혹시 너무 노골적인가 싶어 태연한 척 담백하게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왕 바르는 거 꼼꼼하게 해 주세요.”

‘루카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는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것보단 아닌 척 다가가는 게 더 잘 먹혔던 것 같으니까.’

정확히는 노골적으로 유혹할 때마다 데드엔딩을 맞았기에 저도 모르게 방어 기제처럼 순진한 척 해 버렸다. 힐끗 위를 바라보니 예상대로 루카는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무척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뭐야, 왜….”

“등 전체에 발라 줘야죠.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아…. 그래. 발라 줘야… 지.”

루카가 갈라진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잠시 후 오일 병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은은한 장미 향기가 공기 중에 맴돌았다. 손에 오일을 적당히 부은 루카는 침을 꿀꺽 삼키곤 뽀얗고 매끈한 등 위에 조심스럽게 펴 발랐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커다란 손이 미끌미끌한 오일을 등 위에 바르자 실비아의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아, 이것 참 느낌이 묘하네.’

“실비아…. 이렇게 바르면 돼?”

“네….”

실비아는 나른한 얼굴로 팔꿈치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대화가 끊기자 질척이는 오일 소리와 쪼르륵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그 사이를 채웠다. 어깨 부근을 어루만지던 손은 가느다란 목 위로 올라와 꼼꼼하게 오일을 도포했다. 그러다가 다시 내려와서 날개 뼈와 기립근까지 빠짐없이 오일을 펴 바른 손은 옆구리에 가다가 잠시 떨어졌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질척이는 오일을 담은 손이 잘록한 허리에 미끄덩한 오일을 펴 발랐다. 손은 옆구리로 아슬아슬하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엉치 부근에서 멈췄다.

“이제 거의… 다 바른 것 같은데.”

“…여기까지.”

실비아는 손을 뒤로 뻗어 엉치 근처를 머물던 단단한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타월로 가려져 있던 엉덩이까지 손을 끌고 갔다. 움찔하며 도망가려는 손을 그녀가 힘을 주어 엉덩이 위에 내리눌렀다.

“여기까지 발라 줘야죠.”

“여기… 도?”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