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곧 죽을 것처럼 파리해진 실비아의 얼굴을 보며 루카는 결단을 내렸다. 옷 하나 벗기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반응해서야 될 일이 아니었다. 다시 힘차게 원피스 사이로 손을 넣은 그는 부드럽게 손바닥에 뭉개지는 살덩이를 꾹 눌렀다. 그리고 원피스를 벗겼지만, 신축성 없는 미역 원피스는 쉽게 탈의가 되지 않았다.
“하, 진짜….”
고작 옷 하나 벗기려고 낑낑댄 것뿐이건만 격한 운동이라도 한 듯, 붉은 머리가 온통 땀으로 젖었다. 그는 가늘게 떨리는 실비아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속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실비아. 고의가 아냐.’
그는 손바닥을 깊숙이 집어넣곤 그대로 말캉한 가슴을 강하게 눌렀다. 기다란 손가락에 추위로 꼿꼿해진 유두가 닿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슴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힘을 주어 옷을 위로 끌어올리자 드디어 한쪽 가슴이 드러났다.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력 있는 가슴은 봉긋한 넓은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가운데 솟아오른 붉은 정점은 입을 대면 무척 달콤한 맛이 날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멍하게 관찰하던 루카는 뒤늦게 깜짝 놀라 손으로 실비아의 가슴을 가렸다.
“헉! 이게 아니지!”
가린다고 가린 게 대놓고 만진 셈이 되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에 닿은 손을 치운 루카는 다시 보이는 가슴에 또 놀라서 가렸다가 다시 치우는 등 혼자서 생쇼를 했다.
‘이게 무슨 멍청이 짓이지. 마저 벗기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날카로운 턱선을 타고 흐른 땀이 실비아의 몸 위로 뚝뚝 떨어졌다. 루카에게 있어 ‘실비아의 옷 벗기기’는 이제껏 해 왔던 어떤 사업보다 힘겹게 느껴졌다.
다행히 걸리던 구간을 통과하니 나머지 가슴은 쉽게 드러났다. 휑하게 드러난 양쪽 가슴을 차마 계속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그는 실비아의 긴 머리를 손으로 집어 정성스럽게 가슴을 가렸다. 양쪽 가슴에 소용돌이 모양의 머리카락 뭉치가 얹어졌다.
‘잠깐. 어차피 마저 벗기려면 가려도 소용이 없잖아.’
평소에 잘만 돌아가던 그의 뇌는 완전히 녹아 버렸다. 루카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실비아의 가슴을 가리는 걸 포기하고 그녀의 가녀린 팔을 만세하듯이 위로 올렸다. 그리고 윗가슴까지 올라가 있는 원피스를 마저 벗기려 시도했다. 근데 이제는 아까부터 제대로 서 있는 아래가 너무 고통스러워 견디기가 힘들었다.
털썩-. 실비아의 머리맡에 주저앉은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다리를 벌린 채 실비아의 원피스를 마저 당겼다.
‘제발 신이시여, 도중에 실비아가 깨지 않게 해 주소서.’
이 추잡한 자세에서 그녀가 깬다면 단단히 오해할 거 같아 걱정됐다. 그는 어지간해선 찾지 않는 신을 속으로 부르짖으며 낑낑댔고 드디어 원수 같은 미역 원피스를 다 벗겨 낼 수 있었다.
“망할! …아니지.”
저도 모르게 신경질을 내며 미역 원피스를 매트리스 밖으로 내던졌던 루카는 다시 조심스럽게 기어나가 원피스를 차곡차곡 개어 편편한 바위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실비아를 살피려고 뒤를 돌아보곤 멈칫했다.
아래에 젖은 속옷만 입은 그녀의 몸이 무척 야릇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켜 놓은 은은한 전등이 눈부신 나신을 은은하게 비췄다. 조그만 발가락이 살짝씩 꼼지락거렸고 나긋한 선을 가진 곧게 뻗은 종아리, 그리고 탄력 있어 보이는 허벅지에 저절로 숨이 멎었다.
그의 단단한 몸이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나긋하고 아름다운 몸이 있을까?
홀린 듯이 납작한 배까지 시선을 올리던 그는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가까이 다가가서 아까처럼 실비아의 긴 머리로 가슴을 꼼꼼하게 가렸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시 보게 된 탐스러운 가슴에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만 튀어나오려고 하는 게 아니다. 천을 뚫고 나올 것처럼 발기한 아래는 이제 꺼덕이며 욕망을 분출하고 싶어 난리였다.
‘팬티도 젖긴 했는데… 이건 벗기지 말자. 그냥 알아서 마르게 둬야겠어.’
이제 어떻게 한다? 축축한 옷은 다 벗겼겠다. 아까 상자를 뒤져 본 바론 이불 같은 건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섬은 사시사철 열대기후였다.
거기다가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전시용 은신지는 최소한의 식량과 생존을 위한 물품만 있을 뿐, 몸에 덮을 이불까지 준비해 놓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 실비아를 살피던 루카는 무의식중에 매트리스를 손으로 짚었다가 깜짝 놀랐다.
‘잠깐, 장판이 왜 아직도 차갑지?’
한참 전에 전기석에 연결해 놨으니 이제 따뜻해져야 마땅하건만, 옥장판은 여전히 차가웠다. 고장이 난 게 분명했다. 그때 실비아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몸을 떨었다. 바닥도 차가운데 옷까지 벗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황한 그는 황급하게 원래 상자를 덮고 있던 비닐 천을 가져와 실비아의 몸을 꼼꼼하게 감쌌다. 그러나 비닐 소재로 된 천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긴 무리였다. 거기다가 바닷물로 젖은 그녀를 닦아 주지도 않고 매트리스 위에 올려놨기에 옥장판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몸을 계속 떠는 실비아를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던 루카는 밖으로 나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왔다. 그리고 매트리스 옆 빈 공간에 내려놓고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그러고 나니 동굴 안의 공기가 살짝 훈훈해지긴 했으나 이걸론 부족했는지 작은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상자들을 급하게 다시 뒤져 봤지만 역시 몸을 덮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나 있다. 루카는 참담한 심경으로 제 아래에 두른 천을 내려다보았다.
‘후, 진짜… 이건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야.’
루카는 눈을 질끈 감고 아랫도리를 가리던 천을 벗었다. 그 후 차마 휑해진 아래를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그리고 실비아의 오금에 손을 넣고 등을 받쳐 번쩍 들어올린 뒤 그녀를 바닥에 내려놨다.
비닐 천을 젖은 매트리스 위에 깐 그는 밑에 힘없이 널브러져 있던 실비아를 빠르게 매트리스에 다시 올렸다. 그리고 본인이 입고 있던 천으로 그녀의 몸을 꼼꼼하게 감쌌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실비아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걸로는 부족한데.’
그때 이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몸으로 몸을 데우는 방법. 옥장판도 소용이 없어진 지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쩌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의식이 없는 실비아를 맨몸으로 껴안는 건 좀….’
루카가 망설이고 있는데, 실비아의 몸이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곧 죽을 거 같은 모습에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매트리스 위로 올라갔다.
‘실비아. 정말 미안해.’
그는 실비아의 곁에 다가가 누운 뒤 떨고 있는 몸을 어설프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팔베개를 해 그녀의 목을 받치고 천을 들어서 함께 덮었다. 실비아는 무의식중에도 따뜻하다고 느꼈는지 단단한 가슴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코알라처럼 그의 골반에 다리를 척 올려 달라붙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헉…. 제발, 이러지 마.”
루카는 어금니를 꽉 물며 음란한 망상을 참았다. 실비아가 계속 바짝 붙으려는 바람에 팬티를 뚫고 나올 듯 발기한 그의 것이 실비아의 조그만 궁둥이에 계속 닿았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후우….”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 달라붙은 다리를 떼어 내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실비아가 추워하는 바람에 다시 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다행이라면 서로 최후의 보루인 팬티를 입고 있단 것일까.
실비아는 파래진 입술로 계속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루카가 무의식중에 실비아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손길이 끈적해지려고 해 얼른 떼어 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변태 같은 짓을 저지를 뻔했다. 그렇게 루카는 생 고문을 당하면서 뜬 눈으로 한참 동안 그녀의 몸을 데워 주었다.
“음….”
실비아의 눈이 가늘게 떨리다가 떠졌다. 여긴 어디지?
바로 누운 그녀의 눈에 인위적으로 깎아 낸 것 같은 동굴의 천장이 보였다. 서늘한 감촉에 손으로 더듬거리니 사각거리는 비닐 천이 만져졌다. 코를 킁킁대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녀의 시야에 불에 타다 꺼진 나뭇가지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여긴 동굴인가. 천연동굴이라기엔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게 꼭 누가 일부러 만든 장소처럼 보이네. 루카가 날 여기로 데려온 걸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다가 제 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몸이 얇은 천으로 돌돌 말려 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천을 묶어 몸에 고정한 뒤 실비아는 동굴 안을 여기저기 기웃댔다. 루카가 어디 갔나 찾기 위해서였으나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기절하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헤엄을 쳐야 한다는 루카의 말을 듣다가 그의 품 안에서 정신을 놓았었다. 아마도 그가 자신을 데리고 섬까지 수영을 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나서 이 동굴에 데려온 거고, 그다음엔 상태 이상에 걸려 비실대는 저를 보살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젖은 미역 원피스도 벗겼을 테고 말이다. 그럴 때 기절해 있었다니 호감도를 올리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린 안타까움에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왜! 하필! 이런 때만 기절하냐고. 안타까워라, 화가 난다, 화가 나!’
그러고 보니 벗겨진 미역 원피스는 어디로 간 걸까? 누워 있던 자리 근처에는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빛이 들어오는 입구의 바위에 미역 원피스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바닷물의 짠 기가 없이 보송보송 마른 걸 보니 루카가 빨래도 한 것 같았다.
화를 내던 것도 잠시, 실비아는 바짝 마른 미역 원피스를 보며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