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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08화 (108/372)

108화

실비아가 매혹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단단한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조그만 구명 배가 덜컹- 흔들리더니 바닥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뭐야 이거!”

“엇!”

실비아가 개수작 부리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단 뜻일까. 불빛을 보고 바닷속 정체 모를 물고기들이 배 주위로 몰려든 것이다. 바다도 엄연히 결계 안이니 던전에 속할 텐데, 섬에 들어가기 전이라서 방심하고 수작부터 부린 게 문제였다.

배 근처로 새까맣게 몰려든 물고기들을 보던 실비아는 가까스로 비명을 삼켰다. 선캄브리아대에 존재했을 법한, 심해에서 갓 건져 올린 것처럼 생긴 물고기들이 도처에 바글바글했다.

아니지, 저 이상한 생김새의 덩어리들을 물고기라고 볼 수 있을까. 그냥 물에 사는 괴물들…. 괴물고기들이 순식간에 뛰어올라 배를 덮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피라냐과는 아닌 듯, 배로 들어온 물고기들은 펄떡거리기만 할 뿐 그들을 깨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식인물고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길 틈도 없었다.

무자비한 물고기들의 몸통 박치기 때문에 배가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배가 가라앉아 데드엔딩을 맞는 걸까 걱정하던 와중에 실비아는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을 떠올렸다. 그걸로 노를 저어서 가면 될 것이다.

루카는 배 바닥에 난 구멍 때문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와, 이거 큰일 났네. 우선 구멍부터 막아야겠어!”

루카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구멍을 급하게 막았다. 그가 상의를 벗자 최대치로 운동을 해야만 나올 수 있는 완벽한 상체가 드러났다. 원래라면 눈부시게 빛나는 환상적인 근육의 향연에 감탄할 실비아였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급하게 그에게 다가가 곁에 있던 노를 들었다. 그리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실비아, 뭐해? 노를 젓는다고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냐!”

“갑니다. 안전벨트 매시고 손잡이 꽉 잡으세요!”

“뭐?”

루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 사용!’

실비아가 스킬 사용을 속으로 외치자 여러 번 봤던 대로 공기의 흐름이 느려지고 물고기들이 펄떡대는 모습이 마치 공중에서 먼지가 휘날리는 것처럼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선 괴물고기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를 미친 듯이 저었다.

그러자 양쪽 노에서 위잉- 위잉- 하며 마치 모터가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구명 배는 한순간에 최신식 모터보트가 되어 뒤꽁무니에 하얀 포말을 달고 로켓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그 바람에 사면에 달라붙어 있던 물고기들이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깡그리 떨어져 나간 건 물론이요, 실비아네와 달리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배 안의 물고기들도 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 밖으로 튕겨 나갔다.

쿵-! 쿵-! 어찌나 빠른지 순간순간 실비아의 미친 노 젓기를 감당하지 못한 배가 빠른 속도로 과속방지턱을 지나는 자동차처럼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가 첨벙-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횟수를 딱히 세 보진 않았지만 생명의 위협 속에서 스킬의 효과는 극대화가 됐다. 최대한의 속력으로 미친 듯이 노를 저었으니 최소한 분당 5000번, 그 이상 팔을 돌렸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손목 터널 증후군에 걸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기계처럼 노를 저었다.

루카는 너무 놀라서 말도 못 하고 가까스로 구명 배 옆의 조그만 손잡이를 붙잡은 채 배의 반동을 견디고 있었다.

‘이 방향이 맞나? 아냐, 틀릴 것도 없지. 아마 결계는 돔처럼 섬을 감싼 형태일 테니 이대로 가면 무조건 섬이 나올 거야!’

실비아의 예상대로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나아가다 보니 곧 그들의 눈앞에 안개로 싸인 섬의 윤곽이 보였다.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안정적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앞을 주시하고 있던 루카가 황급하게 외쳤다.

“실비아! 섬이야, 섬이 보여.”

“그렇네요.”

‘이제 조금만 더 노를 저으면 된다!’

그러나 그녀가 간과한 게 있었다. 배 바닥에 괴물고기가 내놓았던 구멍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이었다.

그 상태로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는 바람에 파도와 맞부딪치며 여러 번 충격을 받은 구식 구명 배 바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거의 떨어져 나가버렸다. 심지어 다른 부분들에도 여기저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섬인데 너덜너덜해진 바닥에서 물이 새어 들어와 아까 전보다 더 빨리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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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 사용 시간이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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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의 다 도착했는데!’

더 최악인 건 스킬을 풀로 사용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단 사실이었다. 팔목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상태 창을 불러와 보니 피로도가 100이나 올라가 있었다. 구명 배를 타기 전만 해도 새우잡이 배에서 충분히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 피로도가 0이었건만, 이 피로도는 아무래도 순전히 스킬을 오래 사용한 부작용인 듯했다.

‘그동안은 스킬을 사용하다가 중간에 종료해서 몰랐던 거구나. 한 번에 많은 에너지를 쓰면 피로도가 순식간에 차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다분히 상식적인 일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미친 듯이 몸을 썼는데 몸이 상하고 피로도가 쌓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헛소리를 진지하게>를 쓸 때 무분별하게 스킬을 써서 <상태이상 : 비실비실>에 걸린 것도 단순 업보 때문이 아니라 아마 비슷한 원리로 발생한 부작용이었을 터다. 한꺼번에 여러 명을 속이려고 머리를 팽팽 돌리며 입을 있는 대로 털어댔으니 상태 이상에 걸렸을 테지.

고개를 주억이던 실비아는 상태 창을 보다가 기가 차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아래에 있는 피로도를 우선 보고 나서 스크롤을 다시 올려보다가 발견한 건데, 비상식적으로 바뀐 게 하나 있었다.

‘개 같네, 진짜. 게임이면 인간적으로 하나만 하라고, 하나만!’

상태 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피로도가 올라간 것뿐만 아니라 체력도 100이나 깎여 있었다. 스킬을 풀로 사용한 탓에 체력이 230에서 130으로 내려갔다. 그래, 어찌 보면 몸을 많이 써서 피로한 상태에서 손목을 격하게 돌리면 체력이 상하는 건 당연… 하긴 개뿔. 뭐 이딴 경우가…!

체력만 내리든지 피로도만 올리든지 하지, 왜 한꺼번에 두 개나 타격을 주고 난린가.

명색이 게임인데 이딴 식으로 조건까지 붙여 복잡하게 만들어 놓다니. 누구라도 성질나서 하다가 중간에 모니터 부수고 끌 것이다. 빙의한 저 같은 사람이나 어쩔 수 없이 끝까지 하지.

‘그래, 난…. 지옥에 안 가려면 해야지.’

그녀는 천국에 가려면 게임을 클리어해야 하는 제 처지를 다시 상기하고 파리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하다못해 처음에 스킬 상세설명에 이딴 식으로 근본 없이 체력과 피로도가 내려갈 수 있다고 써놓든가. 아, 노점 게임. 그래, 돗자리에 깔아놓고 파는 게임한테 뭘 바라냐.

스킬 사용 후 눈에 띄게 수척해진 실비아는 급박한 상황을 잠시 잊고 노점 게임을 신랄하게 까대다가 루카의 목소리에 번뜩 눈을 떴다. 그는 안전벨트를 풀고 금방이라도 입수할 준비를 마친 채였다.

“실비아, 이대로면 배가 가라앉겠어! 그래도 코앞에 섬이 보일 정도니 조금만 헤엄치면 되겠는데?”

“아, 헤엄요…. 어?”

실비아가 입을 열자 쇳소리가 나왔다. 단시간에 체력과 피로도에 타격을 입어 몸뿐만 아니라 성대도 팍 상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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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한계까지 사용하여 <상태 이상 : 비실비실, 수수깡 몸>에 걸립니다. 반나절 동안 상태가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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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깡 몸은 또 뭐야. 새로 나타난 상태 이상을 자세히 보니 ‘한 대 치면 파스스 부서지는 수수깡 같은 몸’이란 설명이 있었다.

‘염병…!’

“콜록, 콜록…. 으.”

그녀는 속으로 화를 내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기침을 했다. 실비아의 쉬어 버린 목소리와 애처로운 기침에 입수 준비를 하며 어깨를 풀던 루카가 깜짝 놀라 그녀를 살폈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동그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어쩐지 노를 인간 같지 않게 열심히 젓는다 싶더니…. 이마가 엄청 뜨거워.”

“으으….”

실비아가 고개를 숙이며 몸을 축 늘어트리자 루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고 제 가슴에 기대게 했다.

‘저번 옥장판 행사장에서도 그렇게 아프더니, 강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몸이 약하네.’

품 안의 몸을 살피던 루카는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큰일이었다. 배는 곧 가라앉을 테고 헤엄을 쳐서 섬까지 가야 하는 상황인데 실비아는 곧 기절할 것같이 몸을 떨어 대고 있으니.

“실비아, 고생했어. 어떻게든…. 어떻게든 같이 섬까지 가자.”

실비아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몸살이 난 환자를 바닷물에 담그는 건 안 될 일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본래 루카는 스스로 헤엄치지 못하는 사람 따위 살든지 말든지 버려두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물론이요, 부하들을 대할 때도 그 철칙은 변하지 않았다. 가까운 측근일수록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려 나는 법을 가르치는 독수리처럼 훈련 시켰던 그였다. 떨어져서 못 올라오면 어쩔 수 없이 낙오되는 거라 생각하며.

그러나 실비아는 달랐다. 이득이 될 게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 배를 구해다 준 여자가 아닌가. 그동안 제 화려한 외모를 보고 다가온 이성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 이렇게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을 위해 희생할 여자는 없었을 테다.

거기다가 방금은 멍청하게 배에서 물을 퍼내고만 있는 자신을 책망하지도 않고 손목이 나가도록 노를 저어준 덕에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던가.

루카는 실비아와 함께라면 어떤 힘든 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령 옥장판 사업이 부도 위기를 맞는다거나…, 탈세 혐의로 황실에 잡혀간다거나 할 때 말이다.

지금껏 살면서 항상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이기주의자 루카는 생전 처음으로 눈앞의 여자를 위해서 제 한 몸을 희생하겠다고 다짐했다.

늘 자신을 도와주는 현명하고 능력 있는, 거기다가 사랑스러운 실비아. 이 순간 루카는 마음을 다해 그녀를 지키고 싶어졌다.

그때 실비아가 고개를 루카의 가슴에 기대더니 몸을 심하게 떨었다. 변태 같은 의도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아파서였다. 머릿속이 핑핑 돌고 시야가 흐렸다.

‘옥장판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상태 이상 증상이 두 개 겹쳐서 그런가…. 이러다가 던전 공략을 실패하면….’

머리가 어지러워서 더 이상 생각을 이어 나가기 힘들었다. 그녀는 극심한 추위를 느끼고 루카의 품에 더욱 파고들었다.

그러는 사이 무언갈 알리는 게임 메시지가 빵빠레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나 안타깝게도 확인할 정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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