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연기가 걷히고 루카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금색 눈을 커다랗게 떴다. 실비아가 거품이 묻은 미끈한 알몸 상태로 그의 위에 엎어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던 금색 눈동자는 다시 황급하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함부로 그녀의 알몸을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시선을 애써 위로 둔 그의 새하얀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일부러 보지 않아도 온몸으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만 걸레지, 몸은 순결한 루카에겐 너무 자극적인 상황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비아가 그와 딱 붙어 있기에 보면 안 될 곳까지 보이진 않았지만, 온몸이 맞닿아 있으니 이것만으로 큰일이었다. 왜 큰일이냐면 이런 상황에 면역력이 없는 그의 아래가 점점 기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향기도…. 음, 좋다. 만져 보고 싶…. 아, 내가 무슨 생각을….’
루카는 바닥에 넘어진 충격과 더불어 옷 너머로 적나라하게 맞닿아 있는 실비아의 알몸, 그리고 향긋한 바디 워시 향기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그는 바닥에 누운 채 석고상이 되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실비아가 돌처럼 굳어 있는 그의 몸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루카가 서둘러 팔을 들어 그녀를 다시 당겼다. 맨가슴을 보게 될까 봐 놀라 한 행동인데, 그 바람에 의도치 않게 그녀를 껴안은 게 돼 버렸다.
다시 단단한 몸 위에 누운 실비아는 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시커메진 루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침인데 루카가 잠옷 바람이 아니라 외출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걸 보니 <루카 전용 소환 스크롤>이 발동한 후 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뒤늦게 온 듯했다.
‘어, 이 상황. 역시 19금 게임의 신은 날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분명해!’
하필 아이템의 효과가 발가벗고 있을 때 나타나다니. 역시 아직 신은 나를 향해 웃고 있구나. 그녀는 숱하게 당했던 엿 같은 상황들을 까맣게 잊고 속으로 19금 게임의 신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안 그래도 새우잡이 배에 있는 동안 이게 19금 게임인지 대항해시X 게임인지, 곧 신대륙을 발견하는 개척자라도 되는 건가 의문이 들던 참이었는데, 아침부터 아주 오예였다.
샤워실 안엔 마침 둘밖에 없어 선원들에게 들킬 염려도 없었다.
며칠 만에 본 루카는 무슨 생각인지 무심결에 일어서려던 그녀를 다시 당겨 제 품에 기대게 했다. 적나라하게 닿는 그의 커다랗게 부푼 살덩이가 그녀의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게 했다.
아이구 깜찍해라.
음흉한 속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바람에 그녀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 순간 루카가 갑자기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
‘오. 설마. 여기서 역사가 이뤄지나. 근데 아직 해독이 완벽하게 안 될 텐데.’
루카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제대로 흥분한 것 같았다. 실비아가 등 뒤의 감촉에 집중해 보니 루카는 손바닥이 피부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팔만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싸가지가 없는데 이럴 때만 꼭 매너를 지킨단 말이지.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만.’
실비아는 루카의 표정이 어떤가 궁금해져서 고개를 다시 들었다. 어지럽게 일렁이는 금안이 그녀를 외면한 채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금빛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눈꺼풀이 그 위를 덮었다. 붉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실비아. 후…. 내가 눈을 감고 있을 테니까, 일어날래?”
“네?”
“옷을… 안 입고 있잖아. 하아…. 미안해! 이런 상태인 줄도 모르고 갑자기 와 가지고….”
루카가 눈을 감은 채 한숨을 쉬며 사과했다. 그 덕에 그는 실비아의 썩어버린 표정을 보지 못했다.
‘왜 이래. 아니, 얜 평소엔 쓰레기 같은 짓을 잘만 하면서 왜 이럴 때는 선비가 따로 없냐고…. 휴, 그래. 또 나만 변태지.’
실비아는 루카의 쓸모없는 배려를 무시하고 몸 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지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절실한 플레이어의 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태면 변태답게 진도를 나가 주겠어.’
실비아는 음흉한 각오를 다졌다. 스킨십으로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뜰 때까지 버티고 있을 작정이었다.
그녀가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자 루카가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실비아가 너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굳어 있다고 착각했다. 가엾게도 떨고 있는 그녀를 어찌하면 좋을지. 혹시나 자신의 뜨거워진 아래를 눈치채고 기겁할까 봐 걱정도 됐다.
‘하, 날 이런 때를 골라 나타난 변태로 오해하면 어쩌지?’
루카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는 제 눈을 팔로 가리고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실비아, 걱정 마. 눈 가리고 있을 테니까 일어나서 먼저 나가.”
“예? 아아…. 네. 알겠어요.”
‘으휴, 시발. 그럼 그렇지.’
실비아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속으로 투덜댔다. 바랄 걸 바라야지, 얘가 등신인 걸 잠시 까먹고 있었네.
루카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딱 붙어 있기도 그랬다. 무엇보다 아직 독에 당해 죽을 위험이 있었기에 일단은 잠시 단단한 근육질 위에 누워 본 걸로 만족할 수밖에…. 그래도 짜증나는 건 짜증나는 거였다.
노엘도 그렇고 루카도 그렇고, 뭔 놈의 19금 게임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자신보다 참을성이 강한 건지 모르겠다.
그녀는 예상보다 더 답답한 루카의 모습에 살짝 심통이 났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면서 무릎으로 그의 일어서 있는 고간을 한 번 퍽- 쳤다.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럴 바에야 고자나 돼 버려!’
“윽….”
좀 세게 쳤나? 루카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떨었다. 실비아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방금 제가 뭘 친 거죠? 웬 묵직한 콩 주머니가….”
실비아가 고간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며 손을 대려고 하자 그가 눈을 가리고 있는 와중에도 알아차렸는지 황급하게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손댈 틈도 없이 뒤돌았다.
“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실비아 먼저 나가 있어. 나도 좀 있다가 나갈게.”
“휴…. 네.”
실비아는 썩은 표정으로 삐걱이는 녹슨 문을 열곤 뒤돌아 있는 너른 등짝을 노려보며 천천히 나갔다. 진짜 언제 먹을 수 있는 건지, 갈 길이 구만리도 아니고 한 구천만 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실바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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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을 화끈하게 걷어차인 루카의 호감도가 2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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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고간을 차여서 호감도가 올라가? 에게, 그것도 2? 별….’
호감도가 한 10 정도 올라갔으면 맞는 걸 좋아하는 성향인가 싶어서 공략 방법을 달리해 봤겠지만 고작 2가 올랐다니.
실비아 자신도 가끔 고통 속에서 묘한 쾌락을 느끼기도 하니 그 정도면 아주 평범한 수치였다.
눈곱만치 오른 호감도에 실망한 실비아는 투덜대며 입구에 놔둔 미역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곤 거울 앞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한참 후에 삐걱-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루카가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왔다. 탈탈탈, 실비아는 거울 앞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정신없이 털면서 답답한 속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녀의 속마음을 모른 채 루카는 방을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구경하더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배가 맞네. 실비아, 대체 어떻게 구한 거야? 대단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네가 배를 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다 구하는 수가 있죠. 거기다가 이미 보물섬 근처까지 왔는걸요?”
실비아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루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물섬?”
“아, 루카 님 섬이요. 보물 창고처럼 쓰고 있다면서요. 그래서 전 그걸 보물섬이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하하.”
입장권에 쓰인 대로 자신도 모르게 보물섬이라고 말해 버렸다. 실비아가 어색하게 웃었지만 루카는 다행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뭐, 보물섬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어떻게 알고 우리 섬 근처까지 온 거야?”
“음, 결계가 쳐진 섬 얘길 하니까 항해사가 이미 알고 있던걸요?”
“그래? 그게 뱃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나 보네? 어차피 아무나 들어가진 못 하겠지만 조심해야겠는걸.”
실비아가 머리를 말리고 그를 향해 뒤돌자 루카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미역 원피스를 보고 놀란 것이다. 싱싱한 미역을 몸에 칭칭 감은 비주얼에 루카의 금안이 흔들렸다.
“그 옷은 뭐야? 어쩌다가 미역으로 옷을 해 입는 지경까지 간 거야?”
“아니, 이건…. 예쁘지 않아요? 난 맘에 드는데….”
사실 전투복으로 딱일 뿐 미관상으론 맘에 들진 않았지만, 자그마치 내구력이 1만이나 되지 않는가. 무슨 짓을 해도 찢어지지 않는 대단한 원피스였다. 거기다 곧 던전에 갈 테니 미리 이 옷을 입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실비아가 ‘내 눈엔 예쁜데….’라고 재차 중얼거리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다시 보니까 좀 예뻐 보이기도 하네…. 음, 그래도 돌아가면 같이 백화점에 가는 건 어떨까? 실비아 너한테라면 옷 정돈 마음껏 사줄 수 있으니까.”
“정말요?”
루카의 말에 실비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눈앞의 남자 때문에 세 번이나 명을 달리했기에 어떻게 보상받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그동안 당한 게 있으니 꼭 뼈까지 발라먹으리라.
“응, 거기다가 이렇게 내 골칫거리였던 배도 구해 줬으니까. 돌아가면 같이 옷을 구경하러 가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