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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03화 (103/372)

103화

배는 누구한테 줘야 할까. 공평하게 배분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녀가 망설이자 그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선원이 앞으로 나섰다.

“실비아 님, 이 배는 어차피 오래돼서 좀 있으면 고물이 될 겁니다. 연식이 꽤 된 지라 부품도 팔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 항구로 돌아갈 때까지만 쓰고 고물상에 파는 게 나을 겁니다.”

그의 말에 나머지 선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배를 보고 풍랑을 한번 맞으면 그대로 다 부서질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본 거였다.

‘날씨가 좋았어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물고기 밥이 될 뻔했네.’

이제 악덕 고용주들을 혼내 줄 차례였다.

눈까리가 맛이 간 항해사가 열정적으로 운전한 배는 털털털 소리를 내며 조그만 무인도에 도착했다. 쌍욕을 연신 내뱉는 선장과 겁이 나서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배불뚝이를 해안가에 내려놓은 그들은 잠시 섬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꿀 같은 휴식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해안가에 정박했던 배는 악덕 고용주를 해변에 버려 놓은 채 다시 털털거리며 떠나갔다.

“야, 이 씨발! 이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것들아!”

해변에 내동댕이쳐진 선장이 무릎으로 뛰며 떠나는 배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배의 난간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실비아는 말없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그녀의 모습에 선원들도 의미는 모르지만 선장에게 뻐큐를 날렸다. 어쩐지 가운뎃손가락을 드니 통쾌하다는 그들의 말에 실비아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밧줄에 묶인 채 무릎으로 기며 길길이 날뛰던 선장의 모습이 점처럼 사라지고, 배는 이제 실비아의 목적지인 보물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보물섬 근처에서 루카를 부르면 되겠지!’

맛탱이 간 항해사의 말에 따르면 좌표의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내일이나 되어야 할 거라 했으니 그때 부르면 될 터였다. 세비스와 루카는 눈치로 보아도 사이가 안 좋아 보였으니 최대한 접선을 뒤로 미룰 필요가 있었다.

실비아는 상태 창을 켜 소지금을 확인했다. 금고에서 꺼낸 금화와 수표를 선원들에게 장부에 적힌 대로 배분하고 난 뒤 그녀와 세비스도 삼 일 동안 일한 돈을 6천 골드씩 빼서 가졌기에 소지금은 4만 골드가 되어 있었다. 림보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10만 골드는 반려 짐승 호텔 숙박비를 낼 때 말고는 고이 넣어놨기에 5만 골드가 남아 있었다.

‘반려 짐승 호텔이 7성급이라 하루 숙박비가 5천 골드여서, 10일 정도 맡기려고 5만 골드를 썼지. 체크아웃 때 지불하는 룸서비스 비용까지 치면 더 지출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 돈은 웬만하면 쓰지 말아야겠다.’

소지금을 확인하고 창을 끈 그녀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잠시 뱃머리에 앉아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는데, 선원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녀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자 턱수염 선원이 입을 열었다.

“신 씨…, 아이고 아니지. 실비아 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저 나쁜 놈들을 혼내주고 체불 된 임금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제 고향에 자식새끼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정말… 정말 감사, 흑흑….”

“아이고, 덕팔이. 울지 말라니깐.”

실비아는 그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쩐지, 외양도 낯설지 않고 그녀랑 세비스를 계속 신 씨, 서 씨로 불러 댄다 싶었더니 게임 속에는 서양권 캐릭터뿐만 아니라 동양권 캐릭터도 존재하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이름을 알고 나니 동네 아저씨 같고 더 친숙하네.’

실비아가 측은하게 그를 바라보자 덕팔이 눈가를 연신 훔치더니 말을 이어 갔다.

“아유, 젊은 사람 앞에서 울고 그러면 안 되는데.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부끄럽게.”

“아니에요. 드디어 고향에 돌아가실 수 있게 됐다니, 다행이네요.”

실비아가 싱긋 미소지으며 대답하자 그가 손부채질을 하며 눈가를 말리고는 씩씩하게 외쳤다.

“그렇죠! 여기 있는 선원들 다 임금이 체불 돼서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이 배에 묶여 있었던 겁니다. 실비아 님이 저희를 도와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니에요. 저는 한 게 없는걸요.”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항해사를 헛소리로 설득하고 돌아왔을 뿐인데 모든 일이 다 끝나있지 않았던가. 그녀가 고개를 젓자 선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같이 싸우자고 말해 준 덕분에 우리 모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실비아 님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새우잡이 배에서 노예처럼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일하고 있었겠죠. 그러니… 그러니 실비아 님은 우리의 은인이십니다.”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선원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낯간지러운 상황에 실비아가 뺨을 긁적이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선원이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듯, 따개비와 고동이 잔뜩 붙은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어, 이 상황은? 아이템을 받을 것 같아.’

역시 예상대로 나이 지긋한 선원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더니 상자를 내밀었다.

“받아 주세요. 새우 잡다가 바다에서 건진 상자인데, 선장 몰래 저희끼리 가지고 있었답니다.”

“엇, 감사합니다.”

실비아가 상자를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미역이 말라붙어 있는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새하얀 빛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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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마녀의 튼튼한 원피스>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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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끄무레한 빛이 곧 사라졌다. 상자 속에는 미역 색의, 착용하는 순간 피부가 좋아질 것 같은 원피스가 들어 있었다. 실비아가 코를 대고 옷 냄새를 맡아 보니 다행히 바다 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이걸 입으면 전신 미역 팩을 하는 기분일까. 뭔가 미역 공주가 될 것 같은 원피스네. 보통 옷이랑 달라서 유니크 해 보이기는 한데 특별한 효과가 있는 걸까?’

실비아는 옷을 살펴보는 척 자연스럽게 아이템의 상세설명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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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마녀의 튼튼한 원피스>

내구력 1만의 질긴 원피스이다. 천 년 동안 심해에 숨어 무사히 살아남은 미역마녀의 미역을 뜯어 만든 원피스로 웬만한 괴력으론 찢어지지 않는다. 이 아이템을 착용하고 전투 시 적의 날카로운 무기가 소용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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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좋은 아이템이다. 안 그래도 망치는 있지만 방어구라곤 기본 여성용 가죽 갑옷밖에 없어서 좀 그랬는데, 마침 딱 필요한 게 나와 줬네.’

원피스 형태라 다리는 훤히 드러나 방어해주지 못할 테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온몸을 가리는 해녀복이거나 내복이었다면 아무리 튼튼한 방어구라고 해도 순수하게 기뻐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 게임은 참으로 건전해서 가끔 잊어버리지만 엄연히 역하렘 19금 게임이다. 그러므로 전투 시에도 남주들과 함께 할 확률이 높았다. 설마 해녀복을 입고 전투를 한다고 해서 같이 있던 공략 캐릭터의 호감도가 내려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다.

‘남주들을 공략하는 건 던전 공략 못지않게 중요하지.’

실비아가 옷을 손에 들고 방긋 웃자 선원들이 안심하며 기뻐했다.

“좋아하실지 몰라 걱정했는데 표정을 보니 다행히 맘에 드시나 보네요.”

“네! 저한테 딱 필요한 물건이에요.”

“그럼 이것도 받아 주시겠어요?”

턱수염 선원이 두둑한 갈색 주머니를 내밀었다. 딱 봐도 돈주머니로 보여서 실비아가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려고 하자 그가 단호하게 주머니를 내밀었다.

“저희가 십시일반으로 모은 겁니다. 실비아 님이 아니었다면 한 푼도 못 받을 돈이었어요. 사양하지 말고 받아 주세요.”

“아….”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돈주머니를 받아들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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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잡이 배에서 일으킨 작은 혁명>으로 실비아는 3만 골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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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골드라니. 그녀는 돈주머니를 옆구리에 찬 뒤 급히 상태 창을 켜 불어난 소지금을 확인했다.

소지금 7만 골드! 돈 때문에 절망했던 게 엊그젠데 불의에 대항한 덕분에 한 번에 많은 돈을 얻다니,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선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그녀는 흥분한 얼굴로 일어나 선상을 돌아다녔다. 세비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조만간 합류할 루카랑 보물섬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얘가 어디로 간 거람?’

그녀는 배 2층으로 올라갔다가 그물 속도 뒤져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배 끝머리에서 고독을 씹고 있는 세비스를 찾아냈다.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해가 기울어가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세비스는 몸이 편해지자 며칠 전에 실비아와 침대에서 함께 잔 일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땐 실비아를 위로하느라 별생각을 못 했지만, 다시 떠올려 보니 함께 살긴 하지만 저도 엄연히 남잔데 그녀의 얼굴엔 한 톨의 사심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사심은커녕 같이 자는 것에 대해서 아무 거리낌이 없지 않았던가.

그때의 기억 위로 <잊혀진 신전>에서 어쩌다가 봐 버렸던 노엘과 실비아의 야릇한 스킨십이 겹쳐졌다. 그보다 더한 스킨십을 제 주인과 노엘이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세비스는 난간에 팔을 기대고 그 위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비볐다. 심란한 생각은 도무지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도 한 침대에서 잤는데…. 실비아 님은 나를 전혀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실비아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자라났지만 여전히 늑대족의 성체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기분 탓인지 생일 이후로 조금 더 자란 거 같지만 아직 성체가 되려면 멀었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휴, …아냐. 실비아 님은 이 세계를 구하러 오신 분인데 거기다 대고 내 감정을 앞세울 순 없지.’

세비스가 한숨을 푹푹 내쉬는데 갑자기 누가 그를 놀라게 했다.

“웍!”

“으앗!”

세비스가 놀라서 돌아보자 실비아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놀라기도 잠시, 그녀의 동그란 정수리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제 키를 가늠하고 있던 세비스는 덥석 아무렇지 않게 잡아 오는 따뜻한 손에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세비스, 기쁜 소식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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