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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99화 (99/372)

99화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가 혼자서 키득거리며 입을 가리고 웃는 등 정상이 아닌 모습을 보이자, 상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가까스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시장의 법칙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효과가 죽여주는 아이템은 이렇게 지하시장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기 마련이죠.”

“정말 사고 싶네요. 얼마인가요?”

상인이 말없이 케이크 상자를 빙글 돌려 가격표를 보여 주었다. 자그마치 1만 골드…. 이미 비밀상점에서 많은 지출을 한 상태이건만. 엄청난 가격에 실비아가 입을 떡 벌렸다.

“아…. 가격이 너무 세네요.”

“안 사실 건가요? 그럼 당장 폐기처분….”

상인이 케이크 상자를 당장이라도 부숴 버릴 것처럼 높이 들자 실비아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

“살게요! 사요. 누가 안 산댔나요! 성격이 급하시네?! 당장 주세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고객님.”

실비아는 후다닥 가격을 지불하고 혹시나 상인이 케이크를 상자째 부숴 버릴세라 얼른 건네받았다. 대충 인사를 하고 집에 가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뛰어간 그녀는 상인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1만 골드를 더 지출하는 바람에 소지금은 28000골드가 남았다. 좀 지나친 지출이 아닌가 싶었지만 이건 미래를 위한 지출이니 괜찮다고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성장 촉진제>는 100만 골드라 당분간은 절대 살 수 없는 아이템이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아이템을 얻다니. 개이득이었다.

실비아는 랄라라- 콧노래를 부르며 게이트 같은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는 진공청소기처럼 실비아를 빨아들이더니 게임 세계로 그녀를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구멍에서 튀어나온 그녀 때문에 골목에 있던 고양이가 ‘니야옹!’하고 화들짝 놀라며 도망갔다.

열쇠로 림보를 부른 그녀는 순식간에 집에 도착했다.

“세비스! 나 왔어!”

“…오셨어요.”

세비스가 힘없이 그녀를 반겼다. 그는 우울한 얼굴로 고깔모자를 쓰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마감 세일에 급하게 산 건지 말라비틀어진 조그만 당근케이크가 있었는데, 그 위에 싸구려 초를 억지로 꽂아서 빵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터질 것 같은 그 안쓰러운 모습에 그녀는 능력 없는 가장이 된 기분을 느끼며 세비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세비스, 왜 이러고 있어. 하루 종일 뭐 하고 놀았어?”

“놀긴요. 청소하고 앞마당에서 썬캡 쓰고 쑥도 좀 캐서 시장에 내다 팔고…. 이놈의 집구석 탈출하려면 한시도 놀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이 당근케이크는 시장 빵집에서 떨이로 산 건데 유통기한이 지났나 봐요. 맛이 이상하네요.”

세비스가 기운 없이 미소지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자 한껏 튼 입술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 갈라지는 게 보였다. 생일인데 쑥이나 캐다니, 정말 비참한 일이었다.

티 안 나게 눈물을 훔친 그녀는 세비스를 놀라게 해 주기로 했다. ‘그렇구나….’라고 말하며 살금살금 주방으로 간 뒤 그가 눈치 챌라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에서 케이크 상자를 꺼냈다.

인벤토리를 열 때 <성인으로 한 걸음 더! … 케이크 상자>라는, 가운데에 ‘…’이 들어간 불길한 아이템 명이 있었으나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하고 기쁜 얼굴로 초를 꽂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세비스. 생일 축하합니다!”

성냥으로 불을 붙인 뒤 케이크를 들고 방으로 건너가며 노래를 부르자 세비스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비아 님! 제가 생일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

“크흠, 뭐… 다 아는 수가 있어! 어쨌든 생일 축하해! 자, 빨리 촛불 불면서 소원 빌어야지.”

실비아는 케이크를 세비스의 눈앞에 내밀었다. 물론 그녀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가 성체가 된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실비아의 초롱초롱한 눈을 잠시 바라본 세비스는 감격한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요! 후-.”

“와아!”

“히이잉!”

어느새 말 방석에서 자고 있던 림보도 잠에서 깨어나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발굽을 맞부딪치며 세비스의 생일을 같이 축하해 주었다.

세비스가 후- 하고 촛불을 모두 끄는 순간, 실비아는 벅차오르는 심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찰나가 억겁 같던 순간이 지나고 드디어 그녀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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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으로 한 걸음 더! …케이크>의 효과로 세비스의 신체 나이는 19.111111…세가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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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와…. 응? 방금 뭘 잘못 본 것 같은데, 시스템 오륜가.’

실비아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다가 눈앞의 세비스는 미세하게 자란 거 같긴 한데 별로 성체가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몸도 마음도 성체가 되나 했더니, 검은 늑대 족은 성체가 돼도 크게 변하는 게 없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설마…. 기록 창을 다시 불러와 보자.’

촛불을 다 끈 세비스가 접시를 가지러 간 사이, 실비아는 초조함에 손톱을 쥐어뜯으며 기록 창을 켰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잘못 됐…. 응?’

19.111111…세라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실비아는 눈을 여러 번 비비며 기록 창을 껐다 켰다, 반복해 확인했다. 어느새 그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한 방울 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그마치 없는 살림에 1만 골드나 주고 산 케이크가 자신을 농락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 먹는 케이크란 사실에 흥분해 제대로 아이템을 확인하지 않았다. 기록 창을 불러 지나간 아이템의 상세 설명을 클릭한 실비아는 아연실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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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으로 한 걸음 더! …케이크>

- 성인으로 한 걸음 더! 갔지만 갈 뻔했을 뿐 간 건 아닌 아이고 아깝다 케이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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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세계 바깥에 있는 상인이 자신을 속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속은 거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산 그녀의 탓이니….

실비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별안간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내 1만 골드… 1만…. 어떡해!’

그녀가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자 접시와 포크를 가져온 세비스가 무릎을 접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실비아 님, 왜 그러세요?”

“아… 세비스, 그게….”

세비스에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그가 성체가 되길 바라고 욕망에 눈이 멀어 샀던 케이크가 알고 보니 가짜였다고? 그래서 1만 골드를 그냥 공중에다 뿌렸다고?

설명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 실비아의 눈앞이 흐려졌다. 완전히 맛이 가버린 제 주인을 바라보던 세비스가 걱정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실비아 님! 정신 차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니야. 아니야 세비스…. 그래, 맞다. 선물… 선물이 있었지.”

세비스의 생일날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그녀는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고는 쇼핑백에서 선물 꾸러미를 꺼냈다. 낮에 반려 짐승 동반 카페에서 샀던 장난감들이었다.

거기서 함께 산 조각케이크 두 조각은 이미 저 망할 놈의 케이크가 있으니 냉장고에 넣어 두기로 했다. 그녀가 선물상자를 내밀자 세비스가 뜯어보고는 감동한 얼굴로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우와! 고마워요, 실비아 님.”

“으응…. 앞으로 성체… 흡…. 성체 될 때까지 그거 가지고 놀아.”

실비아는 성체란 단어를 말하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 급히 숨을 삼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안 그래도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눈앞에 퀘스트 실패 메시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없이 경건한 마음이 솟는다는 메시지였는데 경건하다 못해 기분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듯했다.

‘게임 퀘스트도 처음으로 실패했고 돈도 날렸고. 정말 난 최악이야.’

실비아의 낯빛이 점점 안 좋아졌다. 세비스가 그런 그녀를 잠시 걱정스럽게 바라보기에 애써 태연한 척 싱긋 웃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무슨 일 있으시죠?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실비아 님.”

세비스의 단호한 표정에 실비아가 움찔 몸을 떨었다. 세비스 본인은 생일날인데도 쑥을 캐며 돈을 모았는데, 제 주인이란 자가 돈을 물 쓰듯 썼단 걸 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렇지만 티 내지 않고 넘겼다가 나중에 돈이 확 줄어 버린 걸 알면 그가 화를 낼지도 몰랐다. 고작 한 달이지만 함께 살면서 많은 정이 들었던 실비아는 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고, 결국 돈을 날렸다는 것을 이실직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의도대로 성체가 됐다면 이런 신비한 물건을 내가 어렵게 구해 왔다고 으스대며 신나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사서 돈만 날렸다고 말하려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은…”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솔직하게 케이크의 사연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녀의 욕망에 대한 얘기만 빼고, 진심으로 네가 성체가 되길 바라서 케이크를 샀는데 사기를 당했다고 말한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 반응도 없어서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세비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역시 화났나? 어떡해.’

실비아가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며 세비스를 바라보는데, 그가 별안간 한숨을 내쉬더니 예고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 세비스….”

“하아…. 전 또 뭐 때문인가 했네요. 실비아 님, 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울지 마세요.”

“응…?”

세비스의 말에 실비아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인식하고 나니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와 그녀는 소리 내어 울었다. 애도 아니고 세비스 앞에서 울 게 아닌데. 한 달 동안 가난에 시달리다 보니 1만 골드를 생으로 날렸단 충격이 생각보다 크게 와 닿아서 쉽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거기다가 잘하고 있던 게임도 최초로 퀘스트를 실패했고 말이다. 화낼 줄 알았던 세비스가 그녀를 위로하자 안도감이 생기면서 눈물은 더욱 마음껏 펑펑 나왔다.

“저 때문에 그런 큰돈을 쓰실 생각을 했다니 정말 기뻐요. 그리고 다행이에요. 별일 아니라서.”

“별일 아니라니…. 같이 악착같이 모은 돈을 바보처럼 날려 버렸잖아. 난 멍청이야. 흑흑….”

“다시 모으면 되니까 별일 아니죠. 앞으로도 던전은 계속 나올 거고 그러다 보면 지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단 걸 알게 될걸요?”

세비스의 위로에 그녀의 눈물이 점차 멎었다. 휴지를 가져와 온통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 준 세비스는 케이크를 잘라서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실비아는 말없이 아기 새처럼 그것을 받아먹었다. 옆에서 림보도 찹찹 대며 케이크를 맛있게 먹었고, 그렇게 끔찍했던 1만 골드 케이크 사건은 세비스의 따뜻한 위로 덕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설거지를 마친 세비스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실비아에게 건네주었다.

“실비아 님,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해요.”

“왜? …아! 맞다. 새우잡이 배 선장한테 답장이 왔어?”

실비아의 물음에 세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우잡이 배 선장과 얘기가 끝났다며 내일 바로 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원래라면 루카 공략에 방해가 되는 세비스를 떼놓고 갈 작정이었던 실비아는 듬직한 그의 모습에 감동해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어느새 자야 할 시간. 같이 침대에 누워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세비스 덕에 실비아는 편안한 얼굴로 깊게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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