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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97화 (97/372)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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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 불굴의 의지!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장소를 바꿔 가며 최선을 다해 노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라 먹은 공로로 x3의 배점을 획득! 오늘만 씨앗을 총 27개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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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 먹은 게 노엘인지 실비아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양손을 번쩍 들었다.

‘잭팟? 이야, 대박이다! …가 아니라! 이놈의 시스템이 누굴 놀리나. 난 노엘 님과 곧 헤어져야 한단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구만…. 휴, 아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맞지. 이 게임에 처음 빙의한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해. 최선을 다해서 동정 미남들을 공략해야 천국에 간다. 노엘 님한테만 매달릴 순 없어. 잊지 말자. 메인 캐릭터 다섯 명을 다 따먹어야 한단걸….’

순간적으로 속으로 대박이라고 외쳤던 실비아는 손을 내리며 다시 침울해졌다.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이딴 사이코패스 같은 메시지를 보내다니. 시스템이 미친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미친 것 같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스템은 잘못이 없었다, 실비아가 게임에 과몰입 한 것뿐이지.

‘과몰입…. 과몰입이라. 이렇게 실감 나는 게임에 빙의했는데 과몰입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실비아의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노엘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실비아 님, 이제 괜찮으실 겁니다.”

몸을 움직여 보자 삐걱대던 소리가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실비아는 고맙다고 말하며 노엘의 뺨에 여러 번 키스를 날렸다.

두 사람이 거실로 나오자 사용인이 간단한 간식을 가지고 왔다. 에너지를 많이 썼단 걸 알고 배려한 것이다.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축제 때 있었던 재밌는 일들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왔다. 아쉬운 얼굴로 밖으로 나온 둘은 저택 입구에서 진하게 포옹을 나눴다. 노엘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날렸다.

“실비아 님, 잘 가요.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요.”

“노엘 님….”

한참을 둘은 말없이 껴안았다. 그러다가 번뜩 낮에 샀던 커플 열쇠고리가 생각 난 실비아가 미니 백을 뒤져 조그만 상자를 노엘에게 건넸다. 고개를 갸웃하며 상자를 풀어 본 노엘은 같은 것을 손가락에 걸고 흔드는 실비아를 보곤 눈시울을 붉히고 격정적으로 키스를 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 되었고, 실비아는 망설이다가 ‘흑! 몰라!’하고 울먹이며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노엘은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씁쓸하게 미소짓곤 저택으로 들어갔다.

한 달간의 헤어짐이지만 마치 영영 못 보는 사람들처럼 온갖 유난을 다 떤 둘이 드디어 떨어졌다.

한참 뛰던 그녀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울적하게 밤길을 걷던 실비아는 림보를 부르려고 미니 백에서 열쇠를 꺼내다가 번뜩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맞다, 비밀상점에 가야지. 세비스 생일선물!’

급하게 발길을 돌려 저번의 주점과 여관 사이 막다른 골목으로 간 실비아는 블랙홀 같은 구멍을 발견했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이 구멍은 폐쇄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걸로 봐서 아마도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았다.

저번의 욕 나오는 입장 절차와는 달리 이번에는 손을 대기만 했는데도 몸이 쑤욱 빨려 들어갔다. 덕분에 수월하게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다행히 비밀상점은 24시간 운영하는지 밤인데도 구멍 바깥의 다른 상점들과는 다르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저번의 초등학교 앞 문방구 같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그사이 리모델링을 했는지 대학가의 편의점 같은 모습으로 변한 내부가 그녀를 반겼다.

시크릿은 저번의 폐인 같던 몰골과는 달리 깔끔하게 칼라 티를 입고 입구에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는 실비아를 보며 자본주의 미소를 한껏 머금고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오랜만이세요.”

“여긴 뭔가 많이 변했네요.”

실비아가 깔끔해진 그의 차림새에 입을 벌리자 시크릿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매장 안쪽으로 이끌었다.

“이곳은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변할 거세요, 고객님. 우선 바구니 들고 천천히 구경하세요. 고객님.”

바구니를 받아들고 내부를 찬찬히 구경해 보니 저번이랑 달리 아이템의 가짓수가 많아진 걸 알 수 있었다. 던전 공략 시 퀘스트로 체력 포션을 얻을 수 있단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안개로 싸인 보물섬>은 어느 정도 난이도일지 몰랐기에 체력 포션을 몇 개 담은 실비아는 혹시 몰라 마나 포션도 한두 개 챙겼다.

‘퀘스트로 체력 포션을 얻을 수 있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사고, 마나 포션도 사자. 후후, 루카랑 하고 나면 마법사가 될 지도 모르잖아? 불속성이라…. 아주 제대로 불맛을 보겠구만.’

그녀는 김칫국을 양동이 채 마시며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다. 그 모습을 시크릿이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잠시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뭘 사야 할까. 바로 떠오르는 게 없어 의미 없이 매장을 돌고 있자 시크릿이 약삭빠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조만간 섬으로 가시는 거 아니세요? 이쪽 매대가 딱이세요. 고객님.”

시크릿은 역시 비밀상점의 주인답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양손을 모아 가리킨 곳엔 해충제, 파스, 멀미약 귀미X 등등 여러 가지 자잘한 섬 나들이 필수 아이템들이 보였다. 그녀가 매대를 둘러보며 뒷짐을 지고 있자 시크릿이 손을 싹싹 비비며 능글맞게 미소짓곤 바짝 붙어 섰다. 호구 잡히지 않으려고 실비아는 두 눈을 일부러 부리부리하게 떴다.

“제가 섬에 간단 걸 이미 알고 계시네요?”

“그렇죠. 저는 게임 세계의 특수 NPC! 제가 모르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고객님.”

“근데 멀미약, 해충제 이런 건 바깥에서도 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보아하니 게임 속 다른 상점들보다 가격이 비싼 거 같네요?”

실비아가 물건들을 건성으로 툭툭 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자 그가 입술을 말아 넣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달 동안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으면서 실비아는 이 세계의 물가를 어쩔 수 없이 속속들이 알게 됐다. 게임에 갓 빙의 됐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이젠 호락호락하게 주머니를 털릴 생각은 없었다.

물건들의 가격을 대충 훑어보니 시중 가격의 거의 두 배였다. 특수 NPC만 아니었다면 <뚝배기 깨기> 스킬로 당장 눈앞의 시크릿을 혼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물음에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던 시크릿은 표정 관리를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고! 고객님. 가격표 보고 많이 놀라셨죠? 상점 리모델링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가격표 바꾸는 걸 까먹었네요. 으유, 이거 왜 이렇게 안 떼어져! 쯧!”

시크릿은 물건들에 붙은 가격표를 손톱으로 긁어내려다가 쉽게 떨어지지 않자 카운터에서 급히 검은 펜을 가져왔다. 그리곤 가격표의 숫자를 허둥지둥 고쳐 썼다. 힐끗 쳐다보니 두 배란 말을 듣고 처음엔 반값으로 내리다가 이대론 그녀가 안 사갈 거 같았는지 뒤에 있는 0을 하나 없애 버리는 등 혼자서 야단법석이었다.

실비아는 등 뒤에서 몰래 코웃음을 쳤다.

‘그래, 비밀상점…. 상점 이름은 참 특별하지만 결국 나 아니면 고객이 없는 곳이야. 내가 안 사면 이 물건들 다 반품해야 하니까, 이제 바가지는 함부로 못 씌울걸? 예전의 호구 같던 내가 아니라구!’

몸을 돌려 정신없이 물건들 값을 고쳐 적은 그는 관자놀이에 흐르는 진땀을 닦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건들을 다시 매대에 내려놨다.

“이 가격이 딱 맞죠! 어휴, 저도 보고 깜짝 놀랐네요. 자, 이제 마음껏 골라 보시죠.”

그의 말에 실비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는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매대를 둘러봤다.

‘이제야 가격이 말이 되네. 진작 이럴 것이지. 사람을 우습게 보고 말이야!’

가격이 바깥 상점보다 저렴해졌으니 이제 마음껏 물건을 골라도 될 듯했다. 그녀는 바구니에 해충제, 파스, 멀미약 등 여러 가지 기본 필수품들을 담은 뒤 매장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 바깥에서 구할 수 없는 유니크 아이템은 없나 기웃거리고 있자 시크릿이 침착한 표정으로 양손을 배꼽에 딱 붙인 채 다가왔다.

“어떤 거 찾으세요?”

장난치는 것 같던 말투를 버리고 정중해진 그의 모습에 실비아는 속으로 실소를 삼켰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비밀상점에 온 이유가 뭐겠어요. 바깥에서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을 사러 온 거 아니겠어요?”

“어유, 그건 여기에 있습니다.”

시크릿이 한쪽 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자 저번에 봤던 아이템들과 몇 가지 추가 아이템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그때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던 <제국민 올 누드 모드>를 보며 실비아가 침음을 삼켰다.

‘저건 왜 아직 걸려 있는 거야. 보기만 해도 털보 사장이랑 문신뚱땡이의 올 누드가 상상돼서 괴로워. 좀 내다 버렸으면 좋겠네.’

잠시 안 좋은 상상으로 질색을 하며 오만상을 쓴 실비아는 눈을 옆으로 굴렸다. 거기엔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아이템인 <성장 촉진제>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꿈도 꿀 수 없는 100만 골드짜리 <성장 촉진제>를 보고 잠시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벽에 걸린 다른 아이템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번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아이템들인 <귀환 스크롤>, <엔딩 회귀권>, <뭉게뭉게>, <한여름 밤의 꿈> 등이 보였다. 상태 창을 열어 비상금을 확인해 보니 축제 때 이것저것 먹고 마시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9500골드가 남아 있었다.

<귀환 스크롤>은 말 그대로 집으로 귀환할 수 있는 스크롤이었다. 이번 공략은 사면이 바다인 섬이니 혹시 몰라 헤엄을 못 치는 림보를 놔두고 갈 예정이었던 실비아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었다.

‘저 스크롤이 있으면 배를 안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네.’

이번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저 아이템을 꼭 사야 했다. 가격은 4천 골드로 살짝 비쌌지만 확실하게 집으로 갈 수 있다면 돈 들일 가치가 있는 상품이었다.

‘위급 상황을 대비해서 여러 개 사고 싶지만, 돈이 없어. 돈 쓸 구석이 어디서 생길지 모르니 우선 하나만 담자.’

이 미친 게임은 <새우잡이 배를 타고 가다가 난파당해 무인도에 떨어져 여생을 캐스트 어웨X를 찍다가 사망> 엔딩이나 <배가 없어졌으나 절망하지 않고 망망대해를 헤엄쳐서 집까지 오다가 근육경련으로 사망> 엔딩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위기상황을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엔딩은 바로 죽지 않잖아? 어제 루카랑 있을 때 볼 뻔했던 <염전 노예 60년 그 처참한 기록> 엔딩 같은 건 루트로 진입하게 되면 60년을 살고 돌아올 수 있단 거야? 너무 끔찍한데.’

이 게임은 죽어야 다시 세이브 장소로 돌아올 수 있다. 세이브 파일을 불러내 아무 때나 돌아갈 수 있다면 선택지를 고를 때 긴장감이 떨어져 게임의 재미가 다소 반감되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을 채택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하자면 집 앞 자동 세이브와 어느 때나 세이브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데드엔딩이 뜨지 않는 한 게임 중간에 세이브 지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야 게임의 몰입감을 해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녀는 그동안은 바로 데드엔딩 후 세이브 지점으로 돌아왔기에 이 방식이 문제라는 생각을 크게 못 했지만 <염전 노예> 엔딩을 보고 난 후엔 걱정이 생겼다. 모니터 앞에서라면 그냥 잠시 낄낄대고 말았겠지만 빙의한 지금은 상상만 해도 멘탈이 바스러질 듯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나온 <엔딩 회귀권>이야말로 게임에 빙의한 그녀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마치 그녀가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 적절하게 상점에 들어온 것 같은…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얼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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