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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88화 (88/372)

88화

휘리릭- 텅텅.

보는 사람이 다 어지러운 저글링쇼가 끝나고 다리 사이로 컵 다섯 개로 드리블도 7백 번 했다. 그 와중에 실비아가 힐끗 사람들을 바라보니 모두 눈을 떼지 못하고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주스 컵을 턱에 그대로 가져다 붓는 사람도 있었다.

‘심심하다!’

그녀는 이제 컵 다섯 개를 차례차례 벽에 걸려 있던 바구니에 덩크슛으로 3백 번 꽂아 넣은 뒤 다시 받았다. 그리고 점프하면서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동시에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블로킹을 1백 번 정도 주고받으며 야바위게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녀의 기행이 끝나 가고 곧 1분을 알리는 종소리가 댕- 하고 울렸다.

탕!

종이 울리자마자 다섯 개의 컵이 줄을 맞추어 테이블 위에 올라갔다. 속으로 ‘스킬 사용 종료.’를 외친 그녀는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곤 눈만 내려 남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려 웃었다.

“어떻습니까? 어느 컵에 구슬이 들어 있는지 맞혀 보시죠.”

“…….”

“저기, 손님?”

실비아가 땀을 뻘뻘 흘리는 남작을 다시 부르자 그는 불안한지 연신 다리를 떨며 깊은 한숨을 연거푸 쉬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으, 으아!! 괴물이야. 인간을 데려오라고 했지, 누가 괴물을 데려오라고 했어!”

그는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의자를 넘어트리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실비아의 미친 손놀림에 구슬이 든 컵을 고를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의도대로였다.

‘그대로 컵을 고르려고 했으면 혹시 운이 좋아서 맞힐 수도 있으니 곤란했는데, 쫄아 줘서 다행이네.’

하우스 안의 사람들은 방금 뭘 본 건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너무 놀라서 딸꾹질을 하는 치도 있었다.

남작이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가려고 하자 흉흉한 덩치들이 그의 양손을 팔짱 껴 실비아에게로 다시 데려왔다. 그중 한 명이 해머를 고쳐 들며 그녀를 향해 사악하게 미소지었다.

“딜러님, 손모가지 날릴까요?”

“음….”

‘애초부터 손모가질 자를 생각은 없다만, 좀 놀려 줄까.’

실비아는 여유로운 태도로 앞으로 걸어가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검지를 입에 댄 채 즐거운 표정으로 망설이는 척 고개를 기울이자 남작의 낯빛이 새하얘지더니 곧 절실한 얼굴로 빌기 시작했다.

“아니지? 인간적으로 손모가지는 아니잖아. 한 번만 봐줘…!”

“그렇다고 해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한 약속을 무를 수가 있나요. 도박판에선 신뢰를 지키는 게 참 중요한 법인데 말이죠.”

실비아가 싱긋- 미소를 날리자 남작이 덩치들에게 붙잡힌 몸을 버둥대더니 갑자기 존댓말을 해 왔다.

“죄송합니다. 촌구석이라고 한 건 사과드릴게요. 이런 대단하신 분이 계신 줄 모르고…!”

실비아는 남작의 존댓말에 깜짝 놀란 척을 하곤 손사래를 쳤다.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손모가지는 약속대로 날릴 거니까요.”

“…돈! 여기서 딴 돈 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제발 봐주세요!”

남작의 말에 실비아가 힐긋 구석에 있는 루카를 바라보자 그가 넋을 놓고 있다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답지 않게 멍청한 표정을 보아하니, 루카도 그녀의 신들린 손놀림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실비아는 실제로 손모가지를 자르는 잔인한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기에 장난은 이쯤 하기로 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녀는 몸을 일으켜 덩치들에게 붙잡혀 있는 도박꾼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바지에다가 손을 닦고는 그에게 내밀었다.

“그래요. 그럼 딴 돈 다 돌려주시면 손모가지는 지켜 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덩치들이 도박꾼을 풀어줬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실비아의 손을 맞잡고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크으, 재밌구만.’

실비아는 왠지 이 상황에서 뭔가 멋진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해 버렸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도박판에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네?”

실비아의 말을 들은 도박꾼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화에서 볼 땐 멋있었는데….’

실비아는 꿀꺽 침을 삼키곤 그의 눈치를 보다가 대충 대답했다.

“그, 그냥 기억하세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환전소로 가서 획득한 칩을 다 돌려준 남작은 하인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하우스를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루카가 감격한 표정으로 박수를 짝- 짝- 치면서 다가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경외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도박꾼은 남작과 같은 처지가 될까 겁났는지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브라보! 완벽해.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넌 정말 완벽한 여자야.”

“뭐…. 생각한 대로 상황이 굴러가서 다행이었어요.”

루카가 크으- 하면서 엄지를 추켜올리자 그녀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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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성공적으로 완료! 보상으로 루카의 호감도 +20, 3천 골드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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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다시 떠오르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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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수도에서 놀러 온 도박꾼을 혼내 줬다. 세간의 평가가 <정의로운 제국민1>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마을 명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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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건 뭘까.

그녀는 급하게 상태 창을 켜서 세간의 평가 설명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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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마을 명물>

- 이제 실비아는 마을의 자랑이 되었다. 실비아를 가진 마을의 관광 수입이 오릅니다.

- 상점에 가면 항상 10프로의 할인을 받습니다.

- 마을에서 유명해진 그녀는 10프로의 확률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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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상점에서 항상 10프로 할인을 받는다니. 대박이다!’

관광 수입이 오르거나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지금 당장 와닿지 않아서 심드렁했지만, 상점에서 항상 10프로 할인은 엄청난 수확이었다. 이건 비밀상점에도 적용되는 걸까? 실비아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루카가 그녀의 어깨를 은근하게 감싸 쥐었다. 그의 손이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실비아, 사실 네가 손모가지 얘길 꺼냈을 때는 너무 걱정이 되더라구. 그래서 여차하면 판을 뒤엎을 생각이었거든? 하아…. 그건 내 기우였단 걸 알았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넌 정말 대단한 여자야….”

루카는 나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포니테일을 쥐고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옆의 덩치들이 못 볼 걸 봤단 눈으로 루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은 게, 아까 힐끗 봤을 때 생전 처음 보는 걱정 가득한 얼굴이긴 했었다.

‘정말 날 걱정한 건가? 그러고 보니 호감도가 이미 60까지 오르긴 했었지. 방금 20이 올라서 80이 됐을 테고. 공략이 조만간이겠네.’

감격한 루카는 연신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더니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으로 가자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쥔 채로 하우스 안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언뜻 바라보니 그의 새하얗던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도박꾼이 딴 돈을 다 돌려받은 덕에 그녀에게 홀딱 반한 걸까?

그는 문을 열어 그녀를 사무실 안으로 먼저 들여보낸 뒤 자신도 따라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실엔 실비아와 루카 말곤 아무도 없었다. 그렇단 건 단둘만 이 밀폐 된 공간에 있다는 것.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 한번 대주려나? 아무도 없는 게 딱 섹스 각인데 말이야. 아니지, 밀폐된 공간에서 뭘 어쩔 거야. 스킨십하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퀘스트 설명을 떠올려보면 호감도가 100이 되어야 스킬이 완성될지도 모르니, 그전까진 몸 사려야 해….’

잠시 기대했던 그녀는 손이 불타는 듯하던 고통을 떠올리곤 이내 제 뺨을 쳐 진정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세이브를 했다.

‘얘랑 있을 땐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지.’

사무실 안의 붉은색 벨벳 소파에 그녀를 앉힌 루카는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감싼 채 더욱 자신 쪽으로 당겼다. 하우스의 담배 냄새와 섞인 머스크향이 그의 몸을 진하게 감싸고 있었다. 타는 듯 붉은 속눈썹이 드리워진 금빛 눈동자는 옆에서 보니 더욱 아름다웠기에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실비아…. 할 얘기가 있어서 둘만 있는 곳으로 온 거야….”

“무… 무슨 얘기요?”

‘분위기를 보니 최소 뽀뽀라도 해 줄 거 같아. 근데 아직 죽을 수도 있어서 그다지 안 끌리는데.’

실비아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데, 그가 몸을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까 네가 멋지게 도박꾼을 물리치는 걸 보고 깨달았어. 넌 정말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걸 말이야.”

“아….”

사랑 고백 같은 그 말에 실비아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독만 없었다면 지금이 딱 루카와 뒹굴 타이밍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실비아의 음흉한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루카가 그녀의 양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곤 우수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네, 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실비아가 기대에 차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더욱 붉혔다.

“…나랑 평생 함께해 줄래?”

“네? 평생 함께해 달라니….”

‘엄머, 엄머.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평생 함께해 달라니. 결혼은 안 돼, 우선 일부터 치러야 하는데….’

실비아는 갑작스러운 루카의 고백에 당황했다. 섹스부터 먼저 해야 하는데 대뜸 결혼 얘기라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루카가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사무실 구석에 있는 서랍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두꺼운 서류철을 하나 꺼내 와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실비아는 웃음을 참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서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 슬쩍슬쩍 올라가던 입꼬리가 그대로 굳었다. 서류의 제목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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