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87화 (87/372)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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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우! 게임 내에서 <최초의 사랑 고백 받기♥>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효과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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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떠오른 메시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말에 잠시 실망했던 그녀는 한편으로 기대하며 속으로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아무 효과도 없네…. 그래도 호감도가 60이니까 아예 맘에 없는 말은 아닐 거야…. 조만간 공략 성공? 기분 좋다. 헤헤.’

실비아는 똥차 콜렉터답게 의미 없는 고백에도 속으로 엄청 좋아했다. 그러나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을 야릇하게 감싸 쥐곤 울멍울멍 뜬 눈으로 내려다보는 게 아닌가. 풍성한 금빛 속눈썹을 내리깔고 파르르 떠니 그렇게 처연해 보일 수가 없었다.

“실비아, 너만 믿을게.”

“그럼요. 저만 믿으시라구요.”

실비아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손을 들어 토닥인 뒤 직원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포니테일로 질끈 묶고 나비넥타이와 조끼를 착용했다.

루카 앞에선 큰소리 떵떵 쳤지만 사실 긴장 되긴 했다. 다른 게 아니라 실패하면 루카의 호감도가 –100이 된다는 게 좀 그랬다. 이 게임은 세이브는 되지만 죽기 전엔 세이브를 불러올 수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실패하면 루카에게 얼굴에 침 좀 뱉어 달라고 하고 데드엔딩을 맞으면 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부러 죽는 건 좀 아니잖아?’

일부러 데드엔딩으로 돌진하는 것도 께름칙했지만 무엇보다 적대적인 관계로 변한 루카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굉장히 아플 것 같았다.

실비아가 비장한 표정으로 탈의실에서 나오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루카가 게임의 룰을 설명해 주었다.

야바위. 사전상의 의미로는 남을 속여 돈을 따는 노름을 뜻하지만, 이 게임 내에선 간단하게 컵 돌리기 게임을 말한다. 컵 세 개 중 하나에 구슬을 넣고 딜러가 컵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섞다가 멈춘다. 그럼 세 개의 컵 중에 어디에 구슬이 들어있나 맞히는 게임이다.

설명을 듣고 난 실비아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을 쓰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스킬 설명에 도박이나 소매치기를 할 때 쓰기 좋다고 나와 있었으니 딱이네.’

실비아가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까의 그 테이블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루카의 골칫덩이인 문제의 도박꾼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호언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여긴 무슨 나무늘보들밖에 없어? 이런 사람 말고. 진짜를 데려오란 말이야, 진짜를!”

“손님, 다른 분들도 계시니 조금만 조용히…”

“어?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 손모가지 날라가분께. 내 눈으로도 못 볼 만큼 손이 빠른 딜러를 데려와야지. 없어? 그래, 뭐 이런 곳에 그런 프로가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이 하우스 판돈은 내가 다 가져가겠는걸? 크하하하!”

도박꾼은 연이어 얻은 달콤한 승리에 단단히 취한 듯 거만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루카가 깊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덩치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해도 계속해서 돈을 따고 있는 손님을 명분 없이 함부로 쫓아낼 순 없어서 곤란해하는 듯했다.

어지간해선 볼 수 없는 루카의 한숨 쉬는 모습에 실비아의 맘이 아려왔다.

“한판으로 끝낼게요.”

루카에게 조용히 속삭인 그녀는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식은땀을 흘리던 딜러랑 바톤터치를 한 그녀는 의기양양한 도박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곤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척하며 도박꾼을 한눈에 스캔했다.

그는 바닷가 축제이니만큼 편한 옷을 걸쳤지만 옷의 원단이 딱 봐도 고급스러운 데다가 금팔찌, 금목걸이가 몸에서 반짝였다. 거기다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동행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 보니 귀족임이 분명했다.

“주인님, 이제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허, 조금만 더 하고.”

“남작부인께서 기다리시고 계실 텐데….”

‘남작? 그럼 귀족이군. 옆에 있는 사람은 하인 같고…. 돈은 꽤 있어 보이지만 딱히 강해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네. 스킬을 간파당할 위험은 없을 것 같아.’

실비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테이블을 정리했다. 한바탕 판이 끝나고 딜러가 교체되면서 휴식시간이 5분 정도 있었기에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남작으로 유추되는 도박꾼은 돈맛을 제대로 봤는지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손깍지를 낀 채 판이 재개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지만… 퀘스트를 위해선 이 사람을 조져야 한다. 거기다가 루카가 날 사랑한다고 했다고…. 이 사람도 혼쭐을 내면 도박판에 얼씬하지 않고 새 삶을 살겠지. 여러모로 나쁜 짓은 아니야.’

잠시 루카의 사랑 고백(?)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 지은 실비아는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다시 얼굴을 굳혔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옆 테이블에서 딜러가 카드를 섞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비아는 비장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은 도박꾼들과 한 번씩 눈인사를 나눴다.

“그럼, 야바위게임 시작하겠습니다.”

그녀가 게임의 시작을 알리자 남작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야? 네가 딜러야? 이런 풋내기 말고 손이 빠른 사람을 데려오라니깐!”

“…빠른 걸 원하시는 겁니까?”

실비아가 침착한 얼굴로 정중하게 묻자 잠시 움찔했던 그는 이내 턱을 치켜들곤 외쳤다.

“그래. 빠른 사람. 도박이 뭐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어야지 말이야…. 촌 동네라 그런가, 죄다 초보딜러들밖에 없으니, 원.”

그의 말에 실비아가 훗-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테이블 위에 양손을 탕- 소리가 나게 얹었다.

“제가 바로 손님이 찾던 손 빠른 딜러입니다만?”

“뭐어? 어린 아가씨가 허세를 잘 부리는군. 내가 이기면 울면서 도망치지나 마!”

“자신이 있으신가 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건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컵 다섯 개에 구슬 하나로 야바위. 그리고 못 맞히면 손모가지 하나. 어떻습니까?”

“응?”

실비아가 소매를 걷으며 손을 들어 올리자 일순간 하우스에 남아 있던 모두가 조용해졌다. 남작도 그녀의 속내를 가늠하듯 미간을 내 천 자로 찌푸렸다. 실비아는 조용해진 좌중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표정을 꾸며 냈다.

‘도박은 기세다. 영화에서 봤기 때문에 잘 알아…. 아마도.’

물론 기세만 있는 건 허세다. 그러나 실력이 뒤따른다면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 진짜가 되는 법.

원래는 컵 세 개를 돌리는 게 야바위의 기본 롤이다. 그러니 컵 다섯 개는 얼핏 생각하면 도박꾼에게 불리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보통의 딜러들은 컵 다섯 개를 빠르게 돌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눈으로 구슬이 어디에 가는지 똑똑히 봐야 하는 도박꾼에게 무척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반면에 ‘손모가지 하나’는 엄청나게 큰 대가다.

실비아는 컵 다섯 개를 제시하면서 제 속도에 자신이 있단 걸 나타낸 것이고 ‘손모가지 하나’를 걸면서 그 자신감이 근거 있는 자신감임을 표현한 것이다.

‘자, 어떻게 나올래?’

그녀의 예상대로 도박꾼은 잠시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가 다시 푸르딩딩하게 바꾸는 등, 머릿속이 복잡한 듯했다. 연속해서 딜러의 손기술을 읽어 낸 그였으니 동체 시력이 뛰어난 건 물론 머리도 꽤 좋을 터. 실비아가 던진 말의 진위를 대번에 파악하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입술을 초조하게 짓씹더니 기대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한번 훑었다. 그리고는 이내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그래! 컵 다섯 개라니 더 쉬워지겠는걸? 손모가지를 걸겠다니. 딜러 양반도 지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럼 하자고. 나중에 울며 도망치지나 마!”

원래 도박은 판이 커질수록 엔도르핀이 미친 듯이 도는 법이다.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던 그는 이내 흥미로운 상황에 흠뻑 취한 듯했다.

그녀가 루카에게 눈짓을 하자 벽에 기대 입을 떡 벌리고 얼이 빠져있던 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덩치들에게 손짓했다. 루카의 표정을 보니 웬일로 걱정이 가득했다. 잠시 사라졌던 덩치는 곧 해머를 들고 흉흉한 기세로 테이블 구석으로 와서 섰다.

해머를 든 덩치를 본 주변 테이블 도박꾼들이 침음을 삼켰다.

“오늘 여기서 누구 하나 죽어 나가겠구만….”

“저 귀염둥이 밤색 머리는 심부름도 잘하고 싹싹했는데 아쉽게 됐어….”

그들은 실비아가 이번 도박판의 패자가 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작이 야바위를 연달아 맞히고 있었는 데다가 그녀는 심부름만 하고 다녔으니 허세를 떠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댕-

잠시 후 침묵 속에서 야바위게임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우스 안의 모든 사람이 도박을 멈춘 채 ‘손모가지 하나’가 걸린 판에 시선을 집중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컵 다섯 개를 한 번씩 들춰 보이며 가운데 컵에 구슬이 있음을 확인시켜 준 그녀는 집중하고 있는 도박꾼들의 모습을 냉정하게 내려다봤다.

“후….”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컵을 잡고 속으로 스킬 명을 외쳤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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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이 적용됩니다. 범인의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를 5분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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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실비아의 눈에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슬로비디오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숨소리도 그녀에게는 0.2배속 정도로 들렸다.

실비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다섯 개의 컵을 섞기 시작했다. 보통의 딜러들은 야바위게임을 한 번 할 때 1분간 평균 100번의 섞기를 한다. 그러나 실비아는 30초간 오버 조금 보태서 3000번의 섞기를 감행했다. 이것도 너무 빨리 섞으면 인 외 존재인가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제한 거였다.

휙- 휙- 휘휘휙.

실비아의 손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하우스 안을 울렸다. 그리고 섞으면서 힐끗 바라본 좌중들의 얼굴은 경악, 경외. 그 자체였다.

‘섞다 보니까 좀 심심한데.’

얌전히 테이블에서 손을 왔다갔다하기 심심해진 그녀는 컵을 던져올려 저글링을 시작했다. 보통의 야바위게임에선 구슬이 컵에서 빠져나갈까 봐 저글링을 하지 않지만 딱히 하지 말라는 법칙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했다.

그리고 실비아는 구슬이 있는 컵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손목을 미친 듯이 돌리며 공중에서 무려 5000바퀴의 저글링을 돌렸다.

그녀의 기행을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관중 중 하나가 혼잣말을 했다.

“…저건 야바위가 아니라 서커스 아냐?”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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