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굳이 루카 님의 손등을 더럽힐 필요가 있을까요?”
“어? …무슨 뜻이야?”
루카가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실비아가 훗- 하고 웃으면서 손등을 내밀었다. 그리곤 그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곤 조그맣게 속삭였다.
“제 손등에 있는 소금을 먹으면 되잖아요.”
“아….”
루카는 그녀의 말에도 망설이며 선뜻 입을 가져다 대지 못했다. 실비아는 평소에는 건방지고 싸가지 없는 루카가 이런 쪽에선 순수하게 구는 게 너무 흥분됐다. 그녀는 머뭇대는 루카의 입술 앞으로 제 손등을 가져다 대곤 맛을 보라고 재촉했다.
“사양하지 말고 얼른요.”
“그럼…. 하, 그래도 되는 거지?”
“응….”
꿀꺽, 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 삼키는 소리가 둘 사이에 울려 퍼졌다. 루카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혀를 내어 그녀의 손등에 있는 소금을 핥으려고 했다.
“…응? 뭐야?”
“왜요?”
“왜 이렇게 떨어?”
루카의 말에 흠칫 제 손등을 내려다본 실비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이 제 의지랑은 상관없이 수전증 환자처럼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루카가 입을 대려고 할 때마다 손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거칠게 흔들리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 그녀는 몸의 반응이 왜 이런지 이유를 알아챘다.
‘시발, 두 번이나 죽었더니 트라우마가 몸을 지배했나.’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두 번이나 죽었더니 실비아의 몸이 본능적으로 루카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먹어야, 한다고! 가만 있어!’
실비아는 티슈로 입을 틀어막은 채 단호한 손길로 주인의 의지를 거부하는 손등을 거세게 내려쳤다. 몇 차례 다른 손으로 쾅! 쾅! 세차게 내려치자 떨던 손이 힘없이 추욱 쳐졌다. 그것도 모자라 실비아는 급히 카운터에서 노끈을 구해 와서 손을 탁자에 결박했다.
루카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았다.
“어우, 손이 이거… 왜 이래. 이제 괜찮아졌네요.”
실비아는 노끈을 몇 바퀴 돌려 손을 칭칭 감은 뒤 관자놀이로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으며 빙긋 미소 지었다.
“본인 손을… 저…. 그렇게 묶어도 되는 거야?”
“그럼요. 이제 좀 조용해졌네. 자, 이제 맛봐요.”
얼떨떨해하는 루카의 등을 자유로운 한 손으로 쓸어내린 실비아는 탁자에 결박되어있는 제 손으로 루카를 가까이 오게 했다. 그리고는 소금 그릇을 들어 손등에다가 잔뜩 때려 부었다.
“자, 어서….”
탁자에 결박당한 손을 께름칙하게 바라보던 루카가 고개를 저으며 소금 그릇을 들었다.
“손이 벌벌 떨리잖아. 그냥 소금은 내가 알아서 먹을…”
“아뇨!”
‘어딜!’
그녀는 황급히 루카가 들고 있던 소금 그릇을 뺏어 쇄골부터 가슴까지 솔솔 뿌렸다. 순간적으로 가랑이 사이에도 뿌릴까 했지만 너무 추잡스러울 거 같아서 참았다.
루카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실비아는 거친 한숨을 내쉬며 손을 까딱거려 그를 불렀다.
“후우, 이리 와요. 손은 글러 먹은 것 같으니까 여기…. 여기를 핥으면 되겠죠?”
“어? 어어…”
침을 꿀꺽 삼킨 루카가 흰 소금이 점점이 뿌려져 있는 실비아의 쇄골과 가슴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손을 들어 원피스 수영복의 어깨끈을 살짝 내리자 루카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새하얗고 탐스러운 윗가슴이 드러나서 무척 자극적인 장면이었다.
실비아의 양어깨를 부드럽게 잡은 루카가 속눈썹을 잘게 떨며 고개를 내렸다. 그리곤 움푹 파인 쇄골에 입을 맞췄다.
뜨거운 입술이 쇄골에 닿자 실비아가 움칠하고 몸을 떨었다.
루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혀를 내어 몸 위에 뿌려진 소금을 핥았다. 쇄골과 윗가슴에 까끌까끌하고 뜨거운 혀의 촉감이 느껴지자 실비아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십중팔구 만독불침>이 효과를 발휘한 건가. 이대로면 오늘 각이로구나.’
“흣….”
“아….”
처음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루카는 실비아의 반응을 보고 힘을 얻었는지 그녀의 가슴에 살짝 손을 얹었다. 실비아가 등을 감싸자 그의 손길은 더 대담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주물렀다.
실비아는 나른하게 미소 지으며 루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루카가 ‘나 잘했어?’ 하는 얼굴로 핥던 모습 그대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름다운 금안에 홀려 버린 실비아는 촉촉한 붉은 속눈썹을 충동적으로 스윽 훑었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아응…. 좋…”
그때 실비아의 눈앞에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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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 만독불침> 해독 실패. 십중팔구에서 한둘을 걸려 버렸다. 타액 통과, 눈물 해독 실패. 치명적인 독에 중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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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네.”
메시지와 함께 실비아는 손의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아마도 떨고 있던 손은 데드엔딩이 올 줄 미리 알았던 거 아닐까.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마치 뜨거운 달고나에 손가락을 담근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녀는 손에 감겨 있던 노끈을 뜯어 버리고 손가락을 쥔 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끄아아악!”
“…어? 실비아?”
그녀가 손을 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자 루카가 당황해서 그녀를 흔들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실비아가 혼미한 정신으로 손을 내려다보자 독에 제대로 중독됐는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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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독이 손에 스며듭니다. <십중팔구 만독불침>이 눈물 해독을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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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왜 그래? 정신 차려 봐! 실비아…”
극심한 고통과 함께 그녀를 찾는 루카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시야가 암전됐다. 잠시 후 칼이 내려가는 섬뜩한 효과음이 들리더니 데드엔딩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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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의로운 제국민1>인 당신은 게임 시작 <30일> 만에 <데낄라를 마시다 가슴에 소금을 뿌려 루카를 유혹하고는 그의 눈을 만지다가 독이 스며들어 사망> 엔딩을 맞았습니다. 저런! <십중팔구 만독불침>이 아쉽게도 타액은 통과했으나, 눈물은 해독을 실패했군요. 몸이 경고를 하고 있었는데 욕정에 눈이 멀어 눈치채지 못하다니 안타까워요.
당신은 노엘만 먹고 나머지 네 명의 동정 미남은 먹지도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실비아! 그래도 한 명은 먹었으니 최악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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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는 거 같은 메시지와 함께 곧 시야가 어두워졌고 그녀는 정신을 놓았다.
잠시 후 해쓱해진 얼굴로 다시 눈을 뜨자 마지막 세이브지점인 칵테일바의 입구였다. 그녀는 혹시나 몰라 게임을 저장해 둔 과거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입구에서 멍하게 정신을 놓은 채 들어가고 있지 않으니 루카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실비아, 여긴 왜 온 거야?”
“뭐?”
루카 때문에 또 죽었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까칠한 반응이 나왔다. 싸늘한 그녀의 눈빛에 루카가 영문을 모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응? 뭐야, 왜 그래?”
그의 반응에 실비아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죽은 게 얘 탓은 아니지. 손이 떨릴 때 그만둘 걸 그랬어. 괜히 결박플이나 하고 말이야. 후…. 개 같은 게임. 죽음을 불사하고 한 번 더 도전할 것이냐. 아니면 잠시 보류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십중팔구 만독불침>이 이번에는 해독을 성공할지도 모른다. 어쩐다?
실비아는 잠시 머리를 짚고 고민을 한 뒤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호감도를 더 올리자고. 방금 전에 손이 불타는 고통을 맛봤는데 아무렇지 않게 또 루카의 몸에 손을 댈 맘이 들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젠 손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그녀의 의지를 배반하는 건지 선뜻 칵테일바 안으로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비틀- 하고 몸이 안 좋은 척 연기하며 루카의 몸에 기댔다.
“아, 아니에요. 제가 요새 좀 정신이 허해서….”
그러자 얼떨결에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 루카가 잠시 당황하더니 곧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곤 다정하게 그녀의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
“정신이 허할 땐 우리 제품 먹으면 괜찮은데….”
“알바 할 곳은 어디죠?”
실비아는 루카의 개소리를 냉정하게 차단하고 뒤로 물러났다.
루카를 따라 해수욕장을 걸어간 그녀는 입구를 지나 관광객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산책로에는 불법으로 점거한 노점상들이 자리를 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노점상의 상인들은 모두 아까 봤던 덩치들이었다.
‘여기도 루카가 장악하고 있구나…. 오염된 기운을 퍼트린 놈보다 얘가 더 나쁜 거 아닐까?’
실비아는 루카를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 데드엔딩을 안겨 준 공략 캐릭터이니만큼 편견도 잔뜩 들어갔다. 실비아의 마뜩잖은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그가 돌고래가 새겨진 조각상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 조각상 밑에는 아까 그녀를 보자마자 도망쳤던 멸치와 문신뚱땡이가 있었다. 그들은 다가온 루카와 실비아를 알아채지 못하고 행인들을 향해 애타게 외치고 있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건강식품, 어이, 거기 부인분! 남편분한테 와땁니다.”
잇몸이 마르도록 목청껏 외치는 그들의 모습. 정체 모를 약병과 상자들이 쌓여 있는 돗자리…. 딱 보니 행사장에서 팔다 남은 약을 팔고 있는 거였다.
‘잠깐…. 아니지….’
루카가 피라미드… 아니 네트워크 사업을 하고 있단 걸 잠시 망각했다. 자세히 보니 멸치와 뚱땡이는 저마다 가슴에 은색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래 계급이 실버인 듯했다. 그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건강식품을 한꺼번에 샀다가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거일 터였다.
잠시 측은함에 혀를 쯧쯧 차던 실비아는 그들이 통행세를 걷던 쌩양아치였음을 다시 깨닫고 정색을 치고 외면했다.
다시 루카를 표정을 살펴보니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척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잘생긴 거 아니었으면 진작에 도망쳐야 했을 사람이지. 그렇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