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어…. 저기로 갈까?”
“어디요? 어디?”
“히이잉!”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반려 짐승 카페’. 축제에 반려 짐승을 동반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놀고 싶어 하는 두 짐승을 맡기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둘을 데리고 헐레벌떡 뛰어가 카페 문을 열자 개랑 고양이부터 해서 너구리, 참새, 심지어 악어 등 온갖 짐승들이 뛰놀고 있었다.
‘세비스…. 세비스도 되나?’
고개를 돌린 실비아는 카운터 한편에 써진 안내 문구 중 ‘수인 동반 가능’ 문구를 읽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이 나서 따라온 세비스와 림보는 카페 내부를 둘러보더니 의문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기서 뭐하고 놀아요?”
“히잉?”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한 그녀는 카운터에 가서 아메리카노 하나랑 대충 단 음료 두 개를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세비스와 림보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다 버리고 가려니 양심이 찔린 탓에 저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저기 가서 잠시 놀고 있어. 생각보다 재밌어 보이네.”
“싫은데….”
“히잉….”
뚱한 표정으로 실비아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몇 번 돌아보던 둘은 짐승들이 놀고 있는 공간으로 마지못해 들어갔다. 그러기도 잠시. 철조망이 쳐져 테이블 석과 별개로 분리된 공간에 들어간 두 짐승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곧 신나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카페에는 노즈 워크, 이갈이 나무 스틱, 말랑말랑한 만득이 공 등등 커튼도 없는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경험하지 못한 재밌는 장난감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와 함께 적절하게 장난감을 이리 던졌다, 저리 던졌다 하는 능숙한 카페 알바생의 조련은 그들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안타깝게도 그 알바생은 열정페이를 받고 초과근무를 하는 건지 얼굴이 누렇게 떠서 안쓰러웠지만 말이다.
잠시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빨며 지켜보던 실비아는 알바생의 조련에 완전히 넋이 나간 둘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최대한 숨죽여서 살금살금 카페 입구로 걸어갔다.
나가기 전에 <은밀한 사과 상자>에서 획득한 비상금에서 100골드를 꺼내 카페 사장에게 건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귀가 예민한 두 짐승이 정신이 팔린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까 봐 입을 닫고 조용히 메모를 써서 사장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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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 혼을 쏙 빼놔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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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를 본 사장이 은밀하게 미소 지으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스르륵 문을 열어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 잠시 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그녀의 양손에 진땀이 잔뜩 배어 나왔다.
“휴, 이제 <프리허그 이용권>을 쓸 수 있겠네.”
실비아는 해수욕장 구석의 그늘진 자리에 서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프리허그 이용권>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사용.’을 속으로 외치니 <프리허그>라고 써진, 손에 들기 딱 좋은 크기의 피켓이 나왔다.
‘피켓을 들고 있으면 되는 거겠지?’
그녀는 피켓을 든 손을 당당하게 위로 추켜올렸다.
이제 미남들이 우르르 와서 그녀에게 안기는 걸까?
‘와라, 미남들이여!’
가슴이 두근대기도 잠시,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었다. 5분, 10분…. 시간이 흘러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대지 않는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곤 아이템의 설명을 다시 봤다.
‘휴…. 화가 나네.’
자세히 보니 <프리허그 이용권>의 아이템 설명엔 그냥 열 명을 껴안으면 레벨이 1 올라간다고만 되어 있지, 저절로 미남들이 먼저 와서 안긴다거나 하는 부가설명이 없었다.
‘개 같은…. 피켓 들고 셀프로 말하면서 돌아다녀야 하는 거야? 난 또 미남들이 저절로 와서 안기는 줄 알았지…. 하….’
실망하기도 잠시, 다시 넣었다가는 일회용 이벤트 아이템이니 바로 없어질지도 몰랐기에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 짓고는 피켓을 들고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민망한 마음에 개미 눈물만 한 목소리로 ‘프리허그 해 드립니다.’라고 해 봤지만, 한 번 흘깃 쳐다본 미남들은 냉랭한 얼굴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잘생겼다고 좋게 봤더니 하나 같이 싸가지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엔 가시가 있다.’라는 옛 선조들의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날 엿 먹이려고 이딴 걸 준 건가. 완전 수치플이 따로 없어….’
땡볕에서 수치플을 당하는 데 지친 실비아는 나무 그늘 밑으로 몸을 피했다. 손부채질을 하던 그녀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필 세비스가 구린 형이상학적 무늬가 현란하게 새겨진 원피스 수영복을 사 오는 바람에, 옷이 그녀의 외모를 더 죽이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유행이라고 했다더니, 세비스가 사기를 당한 모양이야. 나 빼고 다들 세련되게 입고 있는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지만 외모 평균치가 극심하게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혼자 구린 수영복을 입고 있으니 먹히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템을 날릴 수도 없고. 빡치네….’
실비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피켓을 들고 돌아다녔다. 이제 점심이 지나 해가 중천에 떴다. 숨 막히도록 더운 날씨도 문제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도 짜증이 난 그녀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실비아가 중얼중얼 조그맣게 욕을 내뱉자 이젠 일반 관광객들조차 그녀를 슬슬 피해서 길을 지나갔다.
“프리… 프리허그 해 드립니다….”
‘잠깐?’
얼굴이 발개진 채 수모를 계속 당하던 실비아는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 가장 유용한 스킬인 <헛소리를 진지하게>가 있지 않던가.
‘맞다! 그게 있었지! 그렇지만 그 스킬을 쓰면 상태 이상에 걸릴 텐데….’
얼굴이 환해졌던 그녀는 곧 스킬의 부작용을 떠올리곤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때, 머릴 싸매던 그녀의 귀에 관광객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야, 팸플릿 봤어? 이따가 해수욕장 입구에서 씨름대회가 열린다더라.”
“머드 씨름대회 말하는 거지? 그거 토너먼트라고 들었는데. 크, 재밌겠다. 나도 참가 신청해 볼까?”
“아서라, 아서. 넌 한 판도 못 이기고 바로 질걸?”
‘저거다!’
관광객들의 대화를 엿들은 실비아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씨름대회! 맞다, 씨름대회라면 미남들은 그녀와 어쩔 수 없이 포옹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점에서 노끈을 구매해 급하게 피켓을 허리춤에 찬 그녀는 해수욕장 입구로 후다닥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아직 참가 신청을 받고 있기에 얼른 참가신청서도 작성했다. 그녀가 관계자에게 작성한 종이를 내밀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체급이 너무 작아 보이시는데 제대로 경기할 수 있겠어요? 축제 행사로 남녀구분 없이 재미로 하는 거라지만, 힘센 사람들 사이에서 버틸려나 몰라.”
“괜찮아요.”
“나중에 엎어치기 당해서 골병들었다고 병원비 청구하시면 곤란해요, 주의사항 동의서도 작성해 주세요.”
골병이라니, 헤드스핀 80바퀴를 돌고도 멀쩡한 그녀였는데 골병이 들 리가 없었다. 실비아는 거침없이 동의서를 작성하고는 노점에서 주스를 사서 마시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기했다. 그녀의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기에 관중석에서 우선 구경하기로 했다.
잠시 후 폭죽과 빵빠레가 울리더니 머드 씨름대회를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자, 씨름대회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선수들 입장!”
“풉!”
주스를 들이켜며 관중석에 앉아 있던 실비아는 머드 풀로 들어서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대로 뿜어버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너른 어깨와 매달려보고 싶은 단단한 팔뚝에서 시선을 내리면 두툼한 가슴과 논바닥처럼 구역이 제대로 나눠진 아름다운 복근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태닝을 제대로 한 건지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가 그들을 더욱 맛있어… 멋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턱밑까지 흐르는 주스를 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반만 남은 주스를 들고 멍하니 그들의 모습을 감상했다.
‘죽여주는구나. 참가 신청을 하길 잘했어.’
순간적으로 저 선수 중 한 명을 공략해 볼까 생각했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메인 캐릭터들 공략도 다 못 마쳤는데 함부로 루트를 넓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 아직 노엘 님밖에 공략을 못 했잖아. 시간 낭비하다간 지옥에 떨어질 테니 포옹으로 만족해야지, 쩝.’
댕-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참가자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곧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하게 씨름을 했다.
진득한 진흙을 온몸에 사정없이 묻힌 채로 격정적이고 끈적한 플레이를 보여 주는 씨름선수들….
꿈틀거리는 대흉근과 터질 것 같은 허벅지 근육. 분명하게 선이 갈라진 근육 결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한껏 집중한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지지 않으려 서로의 몸을 빈틈없이 붙잡는 열정적인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실비아는 과호흡이 올 거 같아 숨을 거칠게 들이켰다.
정말 다시 없을 아름다운 승부의 현장. 그 파렴치하면서도 더없이 올바른 역설적인 모습에 그녀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읏….”
“후우….”
그들은 간간이 버티기가 힘이 드는지 거친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싸움을 하는 건 그들인데 지켜보는 실비아의 몸이 어째 선수들보다 더 뜨거워질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의 상태도 똑같았는지 고개를 돌려보니 관중들이 넋이 나간 얼굴로 머드 풀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구나…. 좋아…. 이런 바람직한 경기는 모든 사람이 봐야지. 이 좋은 걸 입장료도 안 받고 공짜로 보여 준다니. 이러니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지.’
어느새 씨름의 막바지가 다가왔다. 용호상박이던 두 남자의 씨름은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 났다.
“승자는, ……입니다!”
중년의 심판이 승자의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곤 외쳤다. 그와 동시에 실비아는 생각했다. 이건… 이건 잘못된 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