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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79화 (79/372)

79화

“그래, 참둘기야. 편지가 와 있었나 보구나.”

다리에 묶은 편지를 끌러보니 루카가 보낸 거였다. 참둘기는 정신없이 울어대다가 세비스가 조그만 옥수수 주머니를 건네주자 팩-! 하고 뺏어 가더니 후루룩 날아갔다.

참둘기가 휘청대며 날아가는 모습은 멀건 죽을 배급받는 중세시대 노예처럼 보여 퍽 안쓰러웠으나 세비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저, 저… 저 싸가지 없는 새 같으니. 옥수수를 주면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진 못할망정….”

“새가 어떻게 예의범절을 알겠니. 빨리 들어가자.”

집에 들어선 둘은 저택과 비교도 안 되게 코딱지만 한 방을 보고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게임이면 유저한테 즐거움만 주라고….’

속으로 잠시 구시렁거린 실비아는 세비스와 함께 짐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청소를 했다. 방 청소가 끝난 뒤 세비스는 시장으로 가서 던전에서 획득한 구슬을 팔고 필요한 옷을 사야겠다며 바쁘게 집을 나갔다.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실비아는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으며 루카가 보낸 편지를 펼쳤다.

가난한 집구석에 대한 절망은 날아가고 이제 공략 가능한 존재가 된 루카를 따먹을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외꺼풀로 트인 금안, 두툼한 가슴, 늠름했던 그곳…. 상상만 했는데 그녀의 입안에 군침이 한가득 고였다.

루카는 꼭 제 외모에 어울리게 글씨체도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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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축제 때 알바를 하기로 한 거 잊지 않았겠지? 마음 같아선 금은보화를 한가득 안겨 주고 싶지만, 네가 원치 않는 것 같으니 참을게! 월요일은 내가 너무 바쁘고 축제는 3일간 진행되니까, 화요일에 바닷가 입구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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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금은보화를 원치 않는다고 했었지?’

편지를 읽던 실비아의 눈이 가자미처럼 가늘어졌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실비아도 돈을 좋아했다. 가난에 허덕이는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 루카는 그녀를 제멋대로 오해한 듯했다.

‘만 골드 일당 알바를 거절해서 그러나? 아니면 신전 앞에서 만났을 때 마차 얘길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아무 관심을 안 보여서? 하여튼 단단히 오해했네.’

돈을 준다면 당연히 받을 생각이었다. 물론 루카가 주는 돈이니만큼 출처가 불분명하므로 업보가 올라갈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월급루팡의 축복이 담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니 최소한 쉬는 날은 업보가 오르지 않을 것이고 거기다가 섹스할 때마다 업보를 줄여주는 노엘이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루카랑 가까워지면 언제 부지불식간에 업보가 늘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노엘 님이 있으면 뭐.’

정작 문제가 되는 건 다른 거였다. <십중팔구 만독불침>. 스킬을 얻을 당시엔 이게 어디냐며 좋아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앞에 붙은 십중팔구가 꽤 거슬렸다. 독을 팔구는 해독해도 한두 번은 뒤진다는 것이니.

‘세이브를 자주 해야 하나…. 한두 번은 죽을 각오를 해야 루카 같은 미남을 얻을 수 있다는 거로군….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천국 가야지.’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지혜로운 선조들의 명언을 떠올리며 실비아의 눈이 활활 투지로 불타올랐다.

편지를 읽으며 전의를 불태우던 실비아는 피곤했는지 잠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그녀는 단잠을 자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파드득 놀라며 깨어났다. 눈을 비비고 있으려니 세비스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누런 봉투와 쇼핑백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시장 통닭이었다. 잠시 초라한 오두막집에 도착해 우울해져 있었던 둘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운을 되찾았다.

즐거운 야식타임이 끝나고 실비아가 뼈랑 부스러기가 뒹구는 카펫 위를 정리했다. 그때 세비스가 구슬을 팔고 얻은 돈주머니를 소파 위에 올렸다. 그리곤 뿌듯한 표정으로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는 실비아를 돌아봤다. 그녀의 시선이 돈주머니로 가자 세비스가 눈을 빛내며 말을 걸었다.

“실비아 님, 이번에 던전에서 얻은 구슬을 팔아서 얼마 벌었는지 아세요?”

“얼만데?”

“후후. 듣고 놀라지 마세요.”

놀라지 말라니, 어느 정도길래? 실비아가 멍하게 돈주머니를 쳐다보고 있는데 세비스가 그녀의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자그마치 3만 골드!”

“헤엑!”

3만 골드라니, 대박이었다. 일반 던전과 알바로 번 돈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에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곤 곧 신이 나서 세비스의 손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이야! 대박났다, 대박났어! 3만 골드야!”

“와아!”

세비스도 신나서 방방 뛰며 실비아와 팔짱을 끼고 포크댄스를 췄다. 두 인간이 빙글빙글 도니 조그만 오두막집의 나무 바닥이 들썩거렸다. 그들은 아예 무도회에 온 듯 춤을 추며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네가 통닭을 사 온 거구나!”

실비아가 손뼉을 한 번 짝 치고 손을 내밀자 세비스도 짝- 하고 손을 맞부딪쳤다. 그리곤 실비아의 한 손을 잡은 채 허리를 감싸 안고 한 바퀴 빙글 돌며 외쳤다.

“원래 사 올 생각이긴 했어요!”

“알바가 뭐야, 이제 눈에 불을 켜고 던전을 찾아다니자! 우리 이러다 부자 되는 거 아냐?”

실비아가 활짝 웃으며 세비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도 흥겨워하며 그녀의 허리를 바짝 당겼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걸요!”

“!”

아무 생각 없이 춤만 췄을 뿐인데 자세가 미묘해졌다. 신나게 대화하다가 그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실비아가 어색하게 얼굴을 굳히자 세비스도 잠시 일시 정지하고 있다가 후다닥 팔을 풀고 멀찍이 떨어졌다.

돈 생각하면서 신나게 춤을 추다 보니 마치 연인처럼 껴안는 자세가 된 것이다. 세비스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졌고 실비아도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가만히 있다가 곧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 하여튼 잘된 일이네.”

“…하아, 그러게요. 잘된 일….”

대화 시도도 무색하게 둘 사이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유, 갑자기 이게 무슨 민망한 상황이람.’

어색한 침묵의 시간. 실비아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욕실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일부러 크게 외쳤다.

“이제 잘 시간이네! 이제 3만 골드도 생겼겠다, 한동안은 힘들 일 없겠다!”

“…휴, 그러게요.”

샤워기를 튼 실비아는 간만에 물을 맞으며 벽을 쾅쾅치고 애국가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욕실은 달랑 하나뿐이었기에 실비아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세비스도 어색한 표정으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한참 침대에 누워있으려니 슬슬 잠이 왔다. 눈이 감기려는데 세비스가 촉촉해진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나왔다.

“실비아 님, 내일 축제에서 입을 옷 사 왔는데 보실래요?”

“아아…. 어련히 알아서 잘 사 왔겠어. 내일 확인해 볼게. 너무 피곤해….”

실비아는 잠이 묻은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고 세비스를 바라보다가 이불을 푹 눌러쓰곤 뒤돌았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비스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곤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래요…. 잘 자요, …내 주인님,”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 실비아는 얼굴에 직격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어우, 왜 이렇게 밝아.”

“실비아 님! 이제 일어나셔야죠!”

귀가 밝은 세비스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다가 그녀가 일어난 기척을 눈치채고 외쳤다. 오두막집에서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나중에는 신전알바를 가느라 항상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이놈의 집은 창문에 커튼이 없었다. 간만에 축제 날이라고 늘어지게 자고 평소와 달리 늦게 일어난 덕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게임 한다고 정신이 없다 보니 이제 알았네, 구질구질한 것도 정도가 있지…. 뭔 놈의 집구석이 커튼도 없냐고.’

실비아는 속으로 투덜대며 손으로 눈을 문지르곤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커튼도 사야겠네….”

“아! 커튼! 맞아요. 사실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에 커튼 같은 거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돈도 벌었겠다, 커튼 하나 정돈 장만해도 되겠죠.”

귀가 밝은 세비스가 주방에서 또 외쳤다. 욕실로 들어간 실비아는 갑자기 드는 생각에 낯빛이 하얘졌다.

‘그러고 보니 세비스 귀가 엄청 밝네. 그동안 욕실을 주먹으로 치며 애국가 부르는 소리도 다 들었으려나. 뭐 때문에 그러는진 알지 못했겠지만 말이야.’

잠시 얼굴빛이 안 좋아졌던 그녀는 앞으로 세비스 근처에선 뒷담을 까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간단하게 씻고 주방으로 가자 따끈따끈한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세비스가 해 준 밥을 맛있게 먹고 이를 닦고 있자 그가 어제 사 온 쇼핑백꾸러미를 가져왔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림보가 땀을 흘리며 들어왔다. 아침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말만 못 하지 산책도 지 스스로 하고, 보면 볼수록 기특한 동물이었다.

‘이 맛에 외제마를 사는 걸까. 유지비 감당할 만하네….’

림보는 갈기를 멋들어지게 털면서 에비X 생수 뚜껑까지 입으로 까드득- 돌려서 까먹고 있었다. 그 영특함에 실비아가 새삼 또 감탄하고 있는데 세비스가 쇼핑백에서 예상치 못한 옷을 꺼내 들었다. 알록달록하고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재질이었다. 실비아는 수상한 천 쪼가리를 받아들곤 고개를 갸웃했다.

“이 천 쪼가린 뭐야?”

“열어 보세요.”

포장지를 뜯어 보자 안에서 조그마한 원피스 수영복이 나왔다. 예쁜 원피스나 세련된 바지를 사 올 줄 알았더니 웬 수영복을 사 온 걸까.

“응? 수영복이잖아.”

“모르셨어요? 성년의 날 축제는 바다축제랍니다. 여긴 바다가 유명해서 여름이 되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요. 그걸 노리고 성년의 날 축제를 개최하는 거죠.”

“아, 그렇구나.”

축제라길래 어련히 광장 한가운데에서 포크댄스를 추며 맥주나 마실 줄 알았더니, 바닷가에서 하는 거였다. 그렇다면 수영복 의상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수영복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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